무기백과
마르더 대전차 자주포
무기 재활용의 모범 사례
  • 남도현
  • 입력 : 2020.04.27 08:51
    마르더는 다양한 기존 전차 차체와 주포를 이용한 대전차포다. 프랑스 소뮈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르더 I. < 출처 : (cc) Fat yankey at Wikimedia.org >
    마르더는 다양한 기존 전차 차체와 주포를 이용한 대전차포다. 프랑스 소뮈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르더 I. < 출처 : (cc) Fat yankey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전격적으로 소련을 침공했다. 제2차 대전의 일부로 취급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사 최대였던 독소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은 6개월 동안 무려 500여만의 소련군을 소탕하고 2,000여 km를 진격하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경이적인 결과는 1939년 폴란드 침공전 이후 연전연승하며 얻은 풍부한 경험 덕분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소련군의 무능이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련은 전쟁 전에 있었던 대숙청 등으로 인해 지휘력이 엉망이었던 점이 문제였지 보유한 무기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상군 무기는 독일을 놀라게 만들었을 정도였는데, 특히 전차가 그러했다. 소련의 T-34, KV 전차는 화력, 방어력, 기동력에서 그동안 독일의 승리를 가장 앞장서서 이끌어 왔던 독일 3호, 4호 전차를 압도했다. 때문에 독일군은 적 전차 요격을 7.5cm Pak 40 같은 고성능 대전차포들이 담당하다시피 했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7.5cm Pak 40. < 출처 : (cc) Stefan97 at Wikimedia.org >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7.5cm Pak 40. < 출처 : (cc) Stefan97 at Wikimedia.org >

    문제는 대구경 대전차포가 견인식이어서 기동력이 좋은 전차를 저지하는데 애로 사항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초기형 4호 전차의 주포가 PaK 40을 기반으로 한 KwK 40이었지만 24구경장 단포신이어서 기갑전에서 우위에 서기 어려웠다. 포구 속도를 늘릴 수 있는 장포신으로 환장하려면 포탑을 재설계하고 밸런스를 새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선에서의 빗발치는 요구에 어떻게든 당장 대안을 내놓아야 했다.

    궁리 끝에 점령지에서 노획하거나 성능이 부족해 2선 급으로 사용 중인 전차의 포탑을 제거하고 대구경 대전차포를 얹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단순해 보이나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여러 장비를 결합해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려면 기술적으로 손봐야 하는 부분이 많다. 독일은 반드시 필요한 성능만 갖추는 방식으로 최대한 구조를 단순화하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필요한 성능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43년 동부전선에서 활약 중인 마르더 Ⅲ Ausf. H. < 출처 : Public Domain >
    1943년 동부전선에서 활약 중인 마르더 Ⅲ Ausf. H. < 출처 : Public Domain >

    이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노획한 슈코다 4.7cm PaK(t) 대전차포를 1호 전차 차체에 결합한 '1호 대전차 자주포(Panzerjäger I)'로 프랑스 침공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재미를 보았기에 노하우도 충분했다. 때문에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1942년부터 일선에 배치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기존 장비와 무기를 재활용해 독일이 패망하는 날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주인공이 마르더 대전차자주포(Marder, 이하 마르더)다.


    특징

    마르더는 당장 물량이 확보된 노획 장비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때문에 마르더라고 통칭되지만 차체에 따라 크게 프랑스에서 노획한 로렌(Lorraine) 37L 보급 차량을 이용한 마르더 I, 일선에서 퇴출된 독일 2호 전차를 기반으로 한 마르더 Ⅱ, 점령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 중인 38(t) 전차 차체를 채택한 마르더 Ⅲ로 크게 구분이 된다. 차체가 상이한 만큼 당연히 각 형별로 주행 성능도 차이가 있다.

    노획한 소련 F-22 사단포를 개조한 PaK 36(r) 대전차포.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노획한 소련 F-22 사단포를 개조한 PaK 36(r) 대전차포.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마르더의 기본 임무는 적 전차 요격이다. 따라서 공격력은 순전히 탑재된 주포의 성능으로 결정된다. 독일의 기본 대전차포라 할 수 있는 PaK 40을 기본으로 했으나 물량이 부족해 노획한 소련제 76mm F-22 사단포를 개조한 7.62cm PaK 36(r)도 장착했다. 두 대전차포 모두 1000m 사거리에서 HEAT탄을 사용하면 100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으므로 제2차 대전 중반기까지 등장한 모든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르더 I은 프랑스에서 노획한 로렌 37L 보급 차량을 차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사진은 모리스 뒤프란 박물관에 전시된 로렌 37L의 차대이다. < 출처 : (cc) Duch.seb at Wikimedia.org >
    마르더 I은 프랑스에서 노획한 로렌 37L 보급 차량을 차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사진은 모리스 뒤프란 박물관에 전시된 로렌 37L의 차대이다. < 출처 : (cc) Duch.seb at Wikimedia.org >

    원칙적으로 무기는 보급이나 정비 등을 고려해 최대한 종류를 단순화하거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여러 기존 무기들을 재활용한 마르더는 이런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 목표로 했던 1941년 내에 소련 정복이 좌절된 데다 오히려 전쟁이 격화되자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더구나 독일은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산업 구조로 말미암아 전성기 당시에도 고질적인 무기의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마르더는 무기 재활용의 모범 사례라 할 만했다.

    포신에 수많은 격파 마크를 기록한 마르더 Ⅱ. 재활용 무기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포신에 수많은 격파 마크를 기록한 마르더 Ⅱ. 재활용 무기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앞서 언급처럼 마르더의 차체는 초창기 전차나 견인용 트랙터 장비였기에 크기가 작다. 가뜩이나 작은 공간에 중량의 대구경 대전차포를 장착하면서 기동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르더에게 공격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전차와 함께 기동하며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기동력이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오픈 탑 구조로 설계되었고 극히 일부에만 장갑을 둘러 방어력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소련의 코카서스까지 진출한 무장친위대 소속 마르더 Ⅱ. 독일 2호 전차 차체에 소련제 7.62cm PaK 36(r) 대전차포를 결합한 모델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소련의 코카서스까지 진출한 무장친위대 소속 마르더 Ⅱ. 독일 2호 전차 차체에 소련제 7.62cm PaK 36(r) 대전차포를 결합한 모델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르더가 처음 투입된 1942년까지만 해도 독일이 공세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에 이런 개발 사상은 그럭저럭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1943년 들어서면서부터 수세로 몰린 독일이 지연전을 펼치면서 방어력 부족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때문에 일선에서는 장갑을 덧대는 방식으로 자체적으로 방어력을 늘렸다. 주로 거점에 매복해서 작전을 펼쳤으나 독일의 전차 수량이 부족해지면서 기갑전에도 자주 동원되었다.


    운용 현황

    마르더는 독립대대 단위로 편성되어 기갑, 보병사단 예하에서 작전을 펼쳤다. 북아프리카 전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서부전선에서도 사용되었으나 주로 연일 대규모 기갑전이 일상이 되어버린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마르더는 적 보병의 공격에도 쉽게 격파당할 만큼 방어력이 취약해서 배치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자주포라는 이점 덕분에 동일 구경의 견인식 자주포보다 상당히 운용 효율성이 뛰어났다.

    1944년 노르망디에 배치된 제21기갑사단 소속 마르더 I. 하지만 대부분의 마르더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4년 노르망디에 배치된 제21기갑사단 소속 마르더 I. 하지만 대부분의 마르더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3년 쿠르스크 전투 이후 소련이 기갑전력에서 독일을 압도하게 되면서 전차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대전차포의 역할이 커졌다. 판처파우스트(Panzerfaust)처럼 보병이 휴대 가능한 대전차무기까지 대거 동원되어야 했다. 이때부터 마르더를 비롯한 대전차 자주포들은 배치와 기동이 좋은 장점을 살려 경우에 따라 구축전차(Panzerjäger) 역할까지도 담당했다. 때문에 종종 마르더를 구축전차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미 육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르더 Ⅲ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미 육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르더 Ⅲ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적 전차 요격이라는 임무만 놓고 본다면 양자의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외곽에서 지원하는 대전차자주포와 종종 기갑전도 벌이는 구축전차는 개념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독일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전쟁 말기에 이르러 마르더는 그런 구분대로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앞으로 튀어나와 적 전차를 막는 임무뿐만 아니라 보병을 근접에서 지원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약했다.

    미 육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르더 Ⅲ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변형 및 파생형

    마르더 I (Sd.Kfz. 135)

    마르더 I < 출처 : Public Domain >
    마르더 I < 출처 : Public Domain >

    생산 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2년
    생산 대수: 170대
    중량: 8.2톤
    전장: 5.38m
    전폭: 1.88m
    전고: 2m
    무장: 7.5cm Pak 40
    엔진: Delahaye 103TT 가솔린 엔진 69마력(51.5kW)
    추력 대비 중량: 8.4마력/톤
    항속 거리: 140km
    최고 속도: 35km/h

    마르더 Ⅱ(Sd.Kfz. 131 / Sd.Kfz.132)

    마르더 Ⅱ < 출처 : Public Domain >
    마르더 Ⅱ < 출처 : Public Domain >

    생산 업체: FAMO
    도입 연도: 1942년
    생산 대수: 863대
    중량: 10.8톤
    전장: 6.36m
    전폭: 2.28m
    전고: 2.2m
    무장: 7.5cm Pak 40
    엔진: Maybach HL62 TRM 6기통 가솔린 엔진 138마력(103kW)
    추력 대비 중량: 12.8마력/톤
    항속 거리: 190km
    최고 속도: 40km/h

    마르더 Ⅲ (Sd.Kfz. 138 / Sd.Kfz.139)

    마르더 Ⅲ < 출처 : Public Domain >
    마르더 Ⅲ < 출처 : Public Domain >

    생산 업체: ČKD
    도입 연도: 1942년
    생산 대수: 1,736대
    중량: 10.67톤
    전장: 4.65m
    전폭: 2.35m
    전고: 2.48m
    무장: 7.62cm PaK 36(r), 7.5cm Pak 40
    엔진: Praga Typ TNHPS/II 수랭식 6기통 가솔린 엔진 125마력(92kW)
    추력 대비 중량: 14.1마력/톤
    항속 거리: 20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마르더 대전차 자주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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