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샤스포 소총
드라이제 소총을 위협한 니들건의 완성작
  • 홍희범
  • 입력 : 2020.04.06 09:00
    샤스포 1966년형 보병용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1966년형 보병용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드라이제 니들건의 평가는 처음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비싸고 생산성 낮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주로 받은 덕분에 1850년대 유럽 국가들에서 드라이제 니들건은 거의 보급되지 않았고 미니에탄을 쓰는 전장식 소총이 압도적 주류를 이뤘다. 사실 탄도 성능만으로 따지면 미니에탄을 쓰는 총들도 결코 드라이제에 뒤처지지 않았다.

    드라이제 니들건의 등장으로 유럽은 후장식 소총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처: Public Domain>
    드라이제 니들건의 등장으로 유럽은 후장식 소총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18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여전히 유럽의 주류는 전장식 소총이었으나 슬슬 후장식 소총의 필요성을 느끼는 나라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패전 후유증을 딛고 서서히 유럽의 강국으로 재등장하던 프랑스는 때마침 세력을 급속도로 불리던 프로이센에게 자연스럽게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프로이센의 주력 소총이 니들건이라는 것만으로도 경계심을 불러일으킬만 했지만, 그 총이 서서히 실전에서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경계심은 더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샤스포 소총의 개발자인 앙토완 샤스포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의 개발자인 앙토완 샤스포 <출처: Public Domain>

    이런 가운데 개발이 시작된 총이 바로 샤스포(Chassepot) 소총이다. 발명자 앙토완 알폰스 샤스포(Antoine Alphonse Chassepot, 1833~1905)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샤스포는 1850년대 중반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초기 시제품만 해도 종이 탄피를 쓰는데 더해 뇌관을 따로 바깥에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측면에는 전장식 소총처럼 노출식 해머(Hammer)가 있었고, 뇌관을 바깥에 따로 끼워 격발되는 것도 전장식의 미니에 소총과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오늘날의 볼트액션과 유사한 노리쇠가 따로 있어 이 노리쇠를 후퇴시켜 종이 탄피를 약실에 넣은 다음 노리쇠를 닫는다. 그다음 해머를 뒤로 제치고(코킹하고) 뇌관을 바깥에 끼운 다음 방아쇠를 당긴다. 엎드린 자세에서도 재장전이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 후장식다운 장점이었지만, 노리쇠 조작과 뇌관 장착/해머 코킹이 따로 필요하다는 점은 번거롭고 여전히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었다.

    샤스포 모델1858은 후장식이지만 뇌관을 별도로 격발하는 노출식 해머방식으로 한계가 명백했다. <출처: Conseil des musées>
    샤스포 모델1858은 후장식이지만 뇌관을 별도로 격발하는 노출식 해머방식으로 한계가 명백했다. <출처: Conseil des musées>

    그러나 1863년에 개발된 시제품은 완전히 다른 격발 방식을 채택했다. 바로 프로이센의 드라이제가 개발한 침(바늘) 격발 방식, 즉 니들건 방식이었다. 침 격발 방식을 쓰면 노리쇠는 노리쇠대로 조작하고 또 해머 코킹과 뇌관 설치를 하는 번거로운 조작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재장전 시간이 비약적으로 절약된다(단, 나중에 나오는 볼트액션 소총들과 달리 노리쇠를 열기 전에 손가락으로 공이를 후퇴시키는 번거로움은 있었다). 말 그대로 사수는 탄을 넣는 데만 집중해도 계속 사격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유명한 나폴레옹의 조카)가 프로이센군이 드라이제 소총을 대량으로 장비하기 시작한 정황을 보고 직접 침 격발 방식의 채택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사실 관료주의 아래에서 진행되는 무기 개발이 그렇게 금방 진행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1863년부터 샤스포 소총의 개발과 시험은 꾸준히 진전되었지만, 경쟁작들과 비교해 우수하다는 사실이 점점 입증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료주의적 장애물들을 넘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벌어진 큰 사건은 산더미같이 버티고 있던 관료주의적 장애물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기본형인 샤스포 보병총 <출처: Public Domain>
    기본형인 샤스포 보병총 <출처: Public Domain>

    1866년 초반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를 거두면서 프로이센은 이제 사실상 중부 유럽의 패자로서 군림하게 되었고 수많은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 지역이 프로이센의 깃발 아래 통일 독일로 변모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러자 이웃 프랑스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위협이 된 프로이센군이 오스트리아를 꺾은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드라이제 소총이었다.

    기본형인 샤스포 보병총 <출처: Public Domain>

    프랑스군은 하루라도 빨리 드라이제를 타파할 신형 소총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그 결과 지지부진하던 시험 평가와 행정 작업은 1866년 상반기 동안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 오스트리아의 패배가 확정된 것이 7월인데, 그 뒤 겨우 6주 만인 8월 말에 샤스포 소총이 프랑스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된 것이다. 얼마나 서둘러 진행이 되었는지, 샤스포가 자신의 총에 대한 프랑스 특허를 취득한 것이 채택으로부터 겨우 3일 전의 일이었다.


    특징

    1866년에 완성된 샤스포 소총은 드라이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총이었다. 사실 드라이제는 이 시점에서 이미 특허 기간도 만료된 총이기도 했고, 적국의 성공한 총을 모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대결 방법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샤스포 소총의 단면도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의 단면도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샤스포는 그냥 단순하게 드라이제를 모방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단 장전손잡이의 각도와 형태가 훨씬 현대적으로 어레인지 됐다. 드라이제의 경우 노리쇠가 닫힌 상태에서도 위로 비스듬하게 장전손잡이가 솟아올라 있어 재장전 조작이 다소 불편했다. 또 장전손잡이가 꽤 긴 편이라 휴대에도 불편했다.

    샤스포의 노리쇠 클로즈업. 드라이제 소총에 비하면 보다 현대적인 볼트액션의 느낌이 든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의 노리쇠 클로즈업. 드라이제 소총에 비하면 보다 현대적인 볼트액션의 느낌이 든다. <출처: Public Domain>

    반면 샤스포의 장전손잡이는 더 작으면서도 잡기 편한 데다 닫힌 상태에서는 90도로 옆으로 누워있어 훨씬 덜 거추장스럽고 재장전 조작도 편했다. 게다가 노리쇠가 닫힌 상태에서의 안정성도 더 개선되었다. 드라이제는 사실상 장전손잡이 맨 아래의 좁은 4각형 지지대 부분이 로킹 러그(폐쇄 돌기) 역할을 해 노리쇠가 지나치게 뒤로 밀리는 것을 막았지만, 드라이제는 이 부분을 사실상 장전구 전체의 길이에 해당하게 연장했다. 이를 통해 노리쇠의 강도와 폐쇄 시의 안정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샤스포 소총의 노리쇠 개방 상태. 노리쇠를 후퇴시키기 전에 먼저 공이(노리쇠 뒤의 부속)를 엄지손가락으로 후퇴시켜 코킹 시킨 다음 노리쇠를 조작해야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의 노리쇠 개방 상태. 노리쇠를 후퇴시키기 전에 먼저 공이(노리쇠 뒤의 부속)를 엄지손가락으로 후퇴시켜 코킹 시킨 다음 노리쇠를 조작해야 했다. <출처: Public Domain>

    또 다른 개선은 가스 누출의 최소화였다. 사실 이는 신형 탄약의 도입으로 인한 불가피한 부분이었다. 프랑스군은 11mm라는 소구경 탄약(당시 기준으로는)을 도입했는데, 탄두 지름 자체는 11.5mm였지만 이것이 11mm 지름의 총강(총열 내부)으로 밀려 들어가서 ‘쥐어짜지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약실 압력도 증가하고 탄속도 늘어나지만, 반면 약실 압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누출되는 가스가 외부에 위험 요소가 될(=사수의 부상 가능성이나 총기의 파손 가능성이 늘어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샤스포의 고무 패킹의 작동 원리. 사격하면 가스 압력에 의해 부풀어 올라 가스 누출을 최대한 막아준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의 고무 패킹의 작동 원리. 사격하면 가스 압력에 의해 부풀어 올라 가스 누출을 최대한 막아준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의 노리쇠 앞부분. 앞의 주둥이 모양 부품이 공이가 튀어나가는 부분이다. 그 뒤에 보이는 검은 부품이 고무 패킹.
    샤스포의 노리쇠 앞부분. 앞의 주둥이 모양 부품이 공이가 튀어나가는 부분이다. 그 뒤에 보이는 검은 부품이 고무 패킹.

    그래서 샤스포는 노리쇠 앞 부분에 고무로 된 패킹(일종의 두터운 O링)을 설치했다. 고무로 빈틈을 완전히 막아 후방으로의 가스 누출을 거의 차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탄속이 드라이제보다 거의 30% 가까이 증가했고, 아주 유능한 사수가 사격한다면 약 800m 밖의 표적에 대한 사격도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사거리를 기록했다.

    분해된 샤스포의 노리쇠. 바늘같이 긴 공이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분해된 샤스포의 노리쇠. 바늘같이 긴 공이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탄약도 기본 구조는 드라이제와 거의 같았다. 뇌관이 설치된 받침대(Sabot)에 감싸진 탄두를 추진 장약이 들어있는 종이 탄피로 감싼 구조였다. 사실 1866년이면 이미 영국과 미국은 현대적인 금속 탄피 사용 탄약을 실용화시킨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왜 종이 탄피를 고수했을까.

    샤스포 소총탄의 치수가 적힌 도면. 탄피가 종이이지만 드라이제와 달리 탄피의 바닥에 뇌관이 있어 공이가 비교적 짧아도 격발이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탄의 치수가 적힌 도면. 탄피가 종이이지만 드라이제와 달리 탄피의 바닥에 뇌관이 있어 공이가 비교적 짧아도 격발이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종이 탄피는 재료들만 제대로 공급되면 야전 부대의 병사들도 직접 조립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시대까지만 해도 화약과 탄두를 포함한 탄약포를 필요하면 일선 병사들이 조립하는 경우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고(대부분은 후방에서 생산되어 올라왔지만) 프랑스 육군 수뇌부는 전시에 소모될 막대한 양의 탄약을 후방의 공장에서만 완전히 조립해야 하는 금속 탄피의 공급이 원활할지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해 종이 탄피는 당연히 더 가벼워 휴대량도 많고, 또 탄피가 배출되지 않으므로 사격 후 뒤처리가 쉽고 자원 낭비가 없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최대의 가상 적국인 프로이센군이 여전히 종이 탄피를 고수하는 이상 프랑스가 굳이 금속 탄피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졌다.

    샤스포 소총의 탄약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의 탄약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 종이 탄피를 고집하면서 결국 노리쇠에 고무 패킹을 추가해야 했고, 이 고무 패킹은 공이 자체와 함께 소모품으로서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이 고무 부품의 공급이 장기전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샤스포 소총의 탄약 <출처: Public Domain>

    재미있는 점은 샤스포의 생산과 배치에 당시의 프랑스가 해외 식민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쉽게 대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고, 이 때문에 다른 나라였다면 소모품으로 고무가 들어가는 샤스포의 설계는 변경되거나 채택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넓은 고무나무 재배지를 식민지를 통해 확보할 수 있던 프랑스에 이는 비교적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제국주의가 총기의 설계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배치와 실전

    샤스포 소총의 생산과 실전 배치는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1860년대 초반부터 프로이센이 미국식 대량 생산 기법을 도입한 조병창을 몇 개나 설치하고 드라이제 소총의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프랑스도 단기간에 이를 앞지르기 위해 애를 썼다.

    샤스포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 병사.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 병사. <출처: Public Domain>

    먼저 프랑스군은 정부가 운용하던 4개 조병창들의 설비와 생산 공정을 서둘러서 현대화시켰고, 그 결과 생산량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것만으로 프로이센에게 한참 뒤처진 소총의 현대화를 감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프랑스 국내는 물론 영국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민간 업체들과도 하청 계약을 맺었다. 이는 샤스포가 현대적인 생산 개념을 받아들여 부품의 규격화가 비교적 잘 된 편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 1868년 무렵에는 프랑스 육군 정규군 보병연대 거의 대부분이 샤스포로 무장했고, 1870년까지 프랑스군에 납품된 샤스포의 숫자는 약 120만 정에 달했다. 이는 드라이제가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룬 생산 기록을 초과하는 것인데, 물론 드라이제도 실제 생산량의 대부분은 1860년대 이후에 이룬 것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불과 3년(실제 양산이 시작된 것은 1867년이니) 안에 120만 정을 생산한 것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만만찮은 결과였다.

    샤스포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 병사. <출처: Public Domain>

    그리고 1867년에 처음 샤스포가 치른 실전에서 이 총의 능력은 입증됐다. 1867년 11월 3일에 프랑스군이 이탈리아에서 바티칸 측과 연합해 가리발디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으로부터 로마를 지키기 위한 전투(멘타나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가리발디 측을 그야말로 도륙했다. 많이 잡아 봐야 1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이탈리아군은 이 전투에서 1,100명의 사상자와 1,000명 가까운 포로가 발생했다. 반면 방어군이던 프랑스-교황 연합군은 다 합쳐 봐야 180명 정도의 사상자만 나왔고, 그나마도 프랑스군 사상자는 38명에 불과했다.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나 미국 등에서 수입한 구식 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반면 프랑스군은 최신형인 샤스포로 무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드라이제 소총으로 무장한 프로이센군이 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트리아군을 유린한 것보다 어떻게 보면 더 치명적이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샤스포를 채택한 결정이 옳았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샤스포의 생산과 배치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샤스포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가리발디 측을 상대로 일방적 승리를 거두었다.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가리발디 측을 상대로 일방적 승리를 거두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1870년의 보-불 전쟁, 즉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는 패전하고 만다. 사실 소총의 성능으로 따지면 프랑스의 샤스포가 드라이제보다 근소한 우위였다. 하지만 프로이센군이 더 잘 훈련된 병력과 수뇌부를 가지고 있는 데다 더 우수한 전술을 적용할 만큼 실전 경험도 더 많았다. 무엇보다 프로이센군은 후장식 소총을 거의 30년간 사용하면서 자기들이 쓰는 총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군은 샤스포를 겨우 3년 쓴 상황이었고 상당수의 부대는 1~2년 사이에야 샤스포를 지급받은 실정이었다. 게다가 전쟁은 소총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포병 등 다른 요소들까지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소총 성능의 근소한 우위가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었다.

    결국 보-불 전쟁이 끝난 지 겨우 3년 뒤인 1874년, 프랑스군은 샤스포를 포기하고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현대적 단발 소총인 그라(Gras)를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그라 소총도 기본은 샤스포에서 발전된 것이어서 샤스포의 기본 설계가 우수했음을 증명하는 셈이 됐다. 또 독일도 보-불 전쟁이 끝난 직후에 제식으로 채택한 마우저 M71에는 샤스포와 흡사한 노리쇠 디자인과 11mm 구경을 도입, 비록 적국이었지만 샤스포의 성능적 우위가 있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셈이 되었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프랑스군은 우수한 샤스포 소총으로 프러시아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출처: Public Domain>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프랑스군은 우수한 샤스포 소총으로 프러시아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출처: Public Domain>

    아이로니컬하게도, 샤스포 소총이 가장 큰 활약을 보인 전투는 적국 상대가 아니라 자국 프랑스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보-불 전쟁의 패전으로 나폴레옹이 폐위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자 수도 파리에는 사회주의 좌파가 주도하는 혁명 정부, 일명 파리 코뮌이 수립된다. 하지만 신생 정부군도 사회주의 혁명은 받아들일 수 없어 파리를 포위한 뒤 진압 작전을 펼쳤는데, 이 과정에서 양측은 다 합쳐 약 3만 명을 학살하게 된다. 그리고 샤스포로 주로 무장한 정부군은 구식 전장식 소총이 다수를 차지하던 시민군에게 화력의 우위를 점유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이 프랑스로부터 적지 않은 양의 샤스포를 수입해 운용한 바 있다. 총 자체의 성능과 구조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또 프랑스로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초기에 받은 영향도 있어(프랑스 군사고문관이 다수 일본에 파견) 샤스포 소총이 대량으로 보급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와 메이지 신정부 수립, 그 과정에서 프랑스가 아닌 프로이센(독일)의 영향력이 일본 육군에 더 강해진 점, 금속 탄피를 쓰는 스나이더-엔필드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실질적 주력 소총이 된 점 등의 이유로 1870년대가 되면 샤스포는 드라이제에게도 밀리는 신세가 된다. 사실 일본군으로서는 종이 탄피를 쓰는 드라이제와 샤스포는 습한 일본 환경에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두 총 모두 2선 급 화기로 취급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샤스포 소총을 바탕으로 무라타 소총을 개발할 정도로 샤스포의 영향은 컸다. <출처: Public Domain>
    일본은 샤스포 소총을 바탕으로 무라타 소총을 개발할 정도로 샤스포의 영향은 컸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188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은 샤스포의 탄약을 국산화하는 등 다른 총들과 함께 어떻게든 전력으로 유지하려 애썼고, 특히 일본 최초의 국산 소총인 무라타 소총의 개발 과정에 샤스포가 끼친 영향은 제법 크다.


    파생형

    * 1866년형 보병총: 가장 기본형. 길이 1.3m, 총열 80cm.

    샤스포 1866년형 보병총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1866년형 보병총 <출처: Public Domain>

    * 1866년형 아프리카 기병총 : 북아프리카 식민지 주둔군을 위해 만들어진 버전. 보병총과 기본 제원은 같으나 멜빵 고리의 위치를 바꿔 말을 탄 상태에서도 편하게 등에 맬 수 있게 했다. 1869년에 생산되었으나 다음 해에 기병총이 정식으로 등장하면서 12,000정만 생산되고 끝났다.

    * 1866년형 기병총 : 기병대용으로 길이를 줄인 버전. 길이가 1.18m로 줄어들고 총열도 70cm로 줄어들었다. 방아쇠울 등의 일부 부품도 철제가 아닌 황동제. 기병용이라 착검 장치도 없다. 장전손잡이도 아래로 꺾여있어 말 위에서의 조작성을 높였다. 1870년부터 생산.

    샤스포 1866년형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1866년형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 1866년형 국가헌병대 기병총 : 국가헌병대(Gendarmerie)용의 소총. 국가헌병대는 소속은 군이지만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법 기관으로, 현재도 존속한다. 이들은 임무 상 도보 행동과 기마 행동을 모두 하며 적군과 백병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병총을 기본으로 지급했다. 기본 기병총과 거의 같지만 폭동 진압도 임무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착검이 가능하다.

    샤스포 기병총. 이 버전은 국가헌병대용 기병총이다.<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기병총. 이 버전은 국가헌병대용 기병총이다.<출처: Public Domain>

    * 1866년형 포병 단총(무스퀘통:Mousqueton) : 길이를 99cm로 줄이고 총열도 51cm로 줄인 단축형. 187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총으로, 그로부터 몇 달 뒤에는 샤스포를 대체할 그라(Gras) 소총이 채택되었다. 이름 그대로 포병의 호신 화기로 개발된 총이다.

    샤스포 포병 단총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포병 단총 <출처: Public Domain>



    제원

    1866년형 보병총. 괄호 안은 기병총
    길이: 1.305m(1.175m)
    총열 길이: 805mm(700mm)
    무게: 4.1kg(3.5kg)
    구경: 11mm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샤스포 소총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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