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Mk Ⅲ 발렌타인 전차
영국의 어려웠던 시기를 책임졌던 보병전차
  • 남도현
  • 입력 : 2020.03.27 08:00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발렌타인 전차 < 출처 : (cc) Ieee5392 at Wikimedia.org >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발렌타인 전차 < 출처 : (cc) Ieee5392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영국은 전통의 해군 강국이지만 전차 역사에 엄청난 발자취를 남겼다. 제1차 대전 당시에 최초로 전차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한 각종 전투 기법과 이론을 선도했다. 이후 전간기에는 보병을 가까이서 보호하며 함께 작전을 펼치는 보병전차(Infantry Tank)와 빠른 속도로 전선을 돌파해서 적의 거점을 타격하는 순항전차(Cruiser Tank)로 나누어 기갑전력을 이원화했는데, 이는 당시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 중인 발레타인.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책임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 중인 발레타인.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책임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오늘날 전차로 수행하는 모든 임무를 MBT(주력전차)가 담당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여러 종류의 전차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에도 이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복합장갑, 고성능 엔진 등이 등장하기 전에는 화력, 방어력, 주행력 중 어느 한쪽을 강화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혀 별개의 전차를 따로따로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전차를 기반으로 제작하면 비용이나 기간을 절감할 수 있으므로 이런 방식도 함께 취했다. 특히 시급히 전력화할 필요가 있을 경우 제일 먼저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치가 집권한 후 급속히 전운이 감돌자 서둘러 등장해 영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종횡무진 활약했던 발렌타인 보병전차(Mk Ⅲ Valentine, 이하 발렌타인)도 그렇게 탄생했다.

    발렌타인의 기반이 되었던 Mk I A9. 정작 순항전차로는 실패작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의 기반이 되었던 Mk I A9. 정작 순항전차로는 실패작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은 실패로 끝난 A9 순항전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1936년, 영국 육군은 향후 개발될 전차를 중장갑 저속의 보병전차와 경장갑 고속의 순항전차로 이원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새로운 기준에 따라 배치를 목전에 두었던 Mk I A9 전차가 순항전차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단지 장갑이 얇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된 것이지 주력으로 삼기에는 너무 성능이 미흡해서 125대로 생산을 종료하고 즉시 개량에 나서야 했다.

    그렇게 A9에 장갑을 덧대어 방어력을 늘린 후속 전차가 Mk Ⅱ A10이다. 하지만 A10도 무게만 늘어났지 여전히 여타 성능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작 순항전차 임무를 수행하기가 애매했다. 결국 175대로 양산을 멈추면서 A9, A10을 위해 투입된 자원과 물자들이 그대로 매몰될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독일이 호전적으로 나오며 유럽에 닥친 전쟁의 그림자로 인해 군비 확충이 시급해지자 실패로 끝난 A10이 눈에 들어왔다.

    개량형인 Mk Ⅱ A10도 속도가 너무 느려 순항전차로 데뷔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이를 기반으로 보병전차 개발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량형인 Mk Ⅱ A10도 속도가 너무 느려 순항전차로 데뷔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이를 기반으로 보병전차 개발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침 한창 개발 중인 마틸다 Ⅱ 보병전차의 배치까지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어차피 A10의 주행력이 미흡하니 차라리 방어력을 더욱 강화해서 보병전차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Mk Ⅲ 발렌타인 보병전차가 탄생했다.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은 계획안을 제출한 날이 1938년 밸런타인데이라는 주장과 비커스의 엔지니어 존 발렌타인 카든(John Valentine Carden)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처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런데 번갯불에 콩 볶는 것 같은 개발 과정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발렌타인이 좋은 성능을 발휘하기는 사실 무리였다. 마틸다 Ⅱ를 개발하고 있었기에 만약 전운이 감돌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 육군도 개발이 완료된 후 막상 배치를 놓고 고민이 많았지만 독일의 3호, 4호 전차에 대항할 수단이 부족한 데다 당장 대량 공급이 가능한 보병전차가 발렌타인뿐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량형인 Mk Ⅱ A10도 속도가 너무 느려 순항전차로 데뷔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이를 기반으로 보병전차 개발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 때문에 1942년 이전까지 성능으로는 마틸다 Ⅱ가 좋았지만 수적으로 발렌타인이 주력 보병전차를 담당했다. 한마디로 시대가 등장을 촉진시키고 주인공으로 만든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동시대에 함께 활약한 전차, 특히 맞상대였던 독일 3호, 4호 전차와 비교하자면 뒤지는 성능이었음에도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특징

    발렌타인은 보병전차지만 16톤에 불과해서 중(重)전차는 아니다. A10 순항전차를 기반으로 급하게 제작되었기에 단지 무늬만 보병전차라 할 수 있다. 비록 1930년대에 개발된 주요 전차들의 크기가 그 정도 수준이기는 했어도 T-34, 3호, 4호 전차를 소련이나 독일도 중전차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설령 영국군이 발렌타인을 보병전차로 운용했어도 체급상으로는 중형전차, 혹은 경전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발렌타인은 보병전차이기는 하나 무게가 19톤에 불과해 중형전차나 경전차로 구분된다.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은 보병전차이기는 하나 무게가 19톤에 불과해 중형전차나 경전차로 구분된다.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당시의 기술력을 고려한다면 전차의 무게는 곧바로 방어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비록 최대 60mm에 이르는 전면 장갑은 맞상대였던 3호 전차보다 두터웠으나 보병을 가까이서 보호하며 함께 작전을 펼치는 이동 벙커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전고가 낮은 점이 방어나 매복에 유리했지만 그만큼 승무원의 활동 공간이 좁아서 전투할 때 애로점이 많았다.

    QF 2-파운더 포를 작동하는 모습. 실내가 대단히 협소해서 승무원이 원활히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QF 2-파운더 포를 작동하는 모습. 실내가 대단히 협소해서 승무원이 원활히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초기형에 탑재된 2파운더 포는 대보병전투용으로는 그럭저럭 쓸 만했지만 1940년대가 되자 화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아무리 보병 전차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당연히 기갑전을 치러야 했으므로 후기형에 와서는 영국 전차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QF 75mm 전차포나 QF 3inch 곡사포로 화력이 강화되었다. 그 외 특이 사항으로 기존 전차를 기반으로 개발되었기에 기계적 신뢰성이 좋았고 야전에서 정비하기 쉬워 가동률이 좋았다.


    운용 현황

    발렌타인은 1940년부터 양산이 개시되어 1944년까지 총 8,275대가 생산되었다. 영국에서 6,855대, 캐나다에서 1,420대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현재까지 영국이 개발한 전차 중 최대의 생산량이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영국의 전차 역사에서 발렌타인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사이프러스에서 있었던 우발적 충돌에 등장한 적이 있기는 하나 제2차 대전에만 활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43년 1월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점령한 직후의 영국군 기갑부대 소속 발렌타인 < 출처 : Public Domain >
    1943년 1월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점령한 직후의 영국군 기갑부대 소속 발렌타인 < 출처 : Public Domain >

    양산을 시작했을 때는 영국이 독일에게 쫓겨 본토로 후퇴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최초의 실전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루어졌다. 1941년 11월 크루세이더 작전을 시작으로 1943년 5월 독일이 항복한 튀니지 전투까지 활약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전과는 신통치 않았다. 때문에 1944년 노르망디 상륙 후 충분한 신형 전차들이 공급된 이후에 벌어진 서부전선에서는 후방의 2선급 전차로 활약했다.

    독일군에게 노획된 소련군의 발렌타인 전차 < 출처 : Public Domain >
    독일군에게 노획된 소련군의 발렌타인 전차 < 출처 : Public Domain >

    랜드리스 형식으로 약 3,800대 정도가 소련에 공급되어 동부전선에서도 활약했다. 받기는 했지만 이미 소련은 성능이 더 좋은 전차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어서 그다지 발렌타인을 내켜 하지 않았다. 때문에 주로 2선급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의외로 일선에서는 보병을 가까이서 지원하는 용도로 화력이나 방어력이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처럼 발렌타인은 전쟁 중반기까지는 그럭저럭 쓸 만한 전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련에 랜드리스로 공급되는 발렌타인의 출고 장면을 지켜보는 영국 제조업체 관계자들 < 출처 : Public Domain >
    소련에 랜드리스로 공급되는 발렌타인의 출고 장면을 지켜보는 영국 제조업체 관계자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발렌타인 I : 초도 양산형

    발렌타인 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I : AEC A190 디젤엔진 장착, 외부 연료 탱크 증설

    발렌타인 I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II : 주포 위치, 후방 돌출 부분을 개량한 포탑 장착

    발렌타인 II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II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V : II를 기반으로 미국제 GMC 6004 디젤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한 개량형
     
    발렌타인 V : III를 기반으로 미국제 GMC 6004 디젤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한 개량형
     
    발렌타인 VI : 캐나다 퍼시픽사 면허 생산형

    발렌타인 VI < 출처 : (cc) Balcer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VI < 출처 : (cc) Balcer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VII : VI를 기반으로 전면 장갑을 일체 주조 방식으로 바꾼 개량형
     
    발렌타인 VIIA : VII를 기반으로 연료탱크, 궤도, 헤드라이트 등을 개선한 개량형

    발렌타인 VIIA < 출처 : (cc) Mzajac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VIIA < 출처 : (cc) Mzajac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VIII : III를 기반으로 QF 6-파운더 포를 장착한 개량형
     
    발렌타인 IX : V를 기반으로 QF 6-파운더 포를 탑재한 개량형

    발렌타인 IX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IX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X : 신형 포탑과 엔진을 탑재하고 용접으로 제작된 개량형
     
    발렌타인 XI : QF 75mm 포와 GMC 6004 디젤엔진을 탑재한 개량형. 지휘차로만 사용

    발렌타인 XI < 출처 : (cc) Simon Q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XI < 출처 : (cc) Simon Q at Wikimedia.org >

    발렌타인 DD : III, III을 수륙양용으로 개조한 파생형

    발렌타인 DD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DD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OP / Command : 지휘차
     
    발렌타인 CDL : 탑조등 탑재 실험작
     
    발렌타인 스콜피온 : 도리깨식 지뢰 제거용 실험작

    발렌타인 스콜피온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스콜피온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AMRA Mk Ib : 롤러식 지뢰 제거용 실험작

    발렌타인 AMRA Mk Ib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AMRA Mk Ib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스네이크 : 지뢰 지대 개척차
     
    발렌타인 가교차 : 포탑을 제거하고 접이식 교량 부착

    발렌타인 가교차 < 출처 : Public Domain >
    발렌타인 가교차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 업체: 빅커스 암스트롱 외
    중량: 16톤
    전장: 5.41m
    전폭: 2.629m
    전고: 2.273m
    장갑: 8~65mm
    무장: QF 2-파운더 ×1 (Mk I–VII)
             QF 6-파운더 ×1 (Mk VIII–X)
             QF 75mm ×1 (Mk XI)
             QF 3-인치×1 (Mk IIICS)
             7.92mm 기관총×1
    엔진: AEC A189 가솔린 (Mk I)
             AEC A190 디젤 (Mk II, III, VI)
             GMC 6004 디젤 (Mk IV, V, VII–XI)
    추력 대비 중량: 12.4마력/톤
    서스펜션: 비커스 슬로우 모션
    항속 거리: 140km
    최고 속도: 24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Mk Ⅲ 발렌타인 전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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