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퍼싱 2 미사일
소련을 굴복시킨 중거리 핵미사일
  • 양욱
  • 입력 : 2020.03.20 07:55
    MGM-31C 퍼싱 2 중거리탄도미사일 <출처: 미 육군>
    MGM-31C 퍼싱 2 중거리탄도미사일 <출처: 미 육군>


    개발의 역사

    1970년대에 이르자 소련에 대한 NATO의 핵우위 상황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인계철선' 이론에 따라 바르샤바 조약군의 전진을 막는 임무를 맡았던 퍼싱(Pershing) 1 미사일도 결국 핵억제전력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 막 새로운 주력으로 배치되었던 퍼싱 1A 미사일은 파괴력이 무려 400kt으로 신속대응경보(Quick Reaction Alert; QRA)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했다. 그렇다고 탄두파괴력을 줄일 경우에는, 미사일의 정확성이 떨어져 1발에 적 지휘부 등 핵심표적을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퍼싱 1A는 강력한 핵탄두를 장착했으나 정밀도가 떨어졌다. <출처: 미 육군>
    퍼싱 1A는 강력한 핵탄두를 장착했으나 정밀도가 떨어졌다. <출처: 미 육군>

    이에 따라 1974년 3월 7일 미 국방차관은 퍼싱 II 미사일의 개발을 허가하여, 1975년 퍼싱 1/1A의 개발사였던 마틴 마리에타(Martin Marietta)가 퍼싱 II의 개발계약을 수주했다. 퍼싱2는 5~80kt의 W85 핵탄두를 채용하여 파괴력을 줄였고, 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을 사용하는 MARV(MAneuverable Reentry Vehicle, 기동탄두 재진입체)를 채용하여 명중률을 향상시켰다. 한편 강화표적전용 핵탄두인 W86도 계획되었으나 실제 채용되지는 못했다.

    소련이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인 SS-20을 배치하면서 퍼싱 2는 개발 방향을 변경해야만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이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인 SS-20을 배치하면서 퍼싱 2는 개발 방향을 변경해야만 했다. <출처: Public Domain>

    퍼싱2의 첫 시험발사는 1978년 5월에 실시되었다. 그러나 1978년 소련이 RSD-10 파이오니어 IRBM(NATO명 SS-20 세이버 Sabre)을 선보이자, 퍼싱2는 사거리를 기존의 2배인 1,100마일로 늘려야만 했다. 이를 위하여 미사일 케이싱(casing)에 신형 케블라(Kevlar) 소재를 채용하였으며, 로켓모터도 고에너지 추진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또한 기존의 발사대와 결합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결국 개발기간은 몇년간 더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토마호크의 지상발사형인 그리폰이 등장하면서 퍼싱 2의 개발은 위협받았다. <출처: 미 국방부>
    토마호크의 지상발사형인 그리폰이 등장하면서 퍼싱 2의 개발은 위협받았다. <출처: 미 국방부>

    이렇게 퍼싱 2의 개발이 지연되는 사이에, 퍼싱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상원 군사위원회의 증언 가운데 당시 개발완료를 눈앞에 두었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지상용으로 전환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특히 토마호크는 랜스 발사대에서도 충분히 발사될 수 있으며, 막 개발이 완료되어 양산을 시작한 시스템이었기에 곧바로 실전배치도 가능했다. 결국 1978년 미 국방부는 퍼싱 2의 개발을 속행할 것인가 순항미사일로 교체할 것인가를 놓고 연구를 실시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결국 퍼싱2와 토마호크를 모두 지상용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토마호크를 도입하면 전구내 핵타격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데 반해, 퍼싱 2는 지하관통능력을 갖추어 적의 강화표적에 대한 탁월한 공격능력을 가졌으며, 이는 토마호크로도 대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퍼싱 2의 통제권을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육군이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출처 : 미 육군>
    퍼싱 2의 통제권을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육군이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 <출처 : 미 육군>

    한편 기존의 퍼싱 1A 전력과 퍼싱 2를 누가 운용할 것인가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78년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퍼싱의 통제권을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하여 육군의 연구개발획득 차장이던 키이스(Donald R. Keith, 1927-2004) 중장은 퍼싱의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별도의 조치가 없는 한, 퍼싱은 육군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 맞다고 강변했다. 퍼싱의 2차 임무는 유럽에 주둔한 전구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다른 무기로 대체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퍼싱은 여전히 육군의 통제 하에 남았고, 토마호크 지상발사형만이 공군의 운용무기체계로 지정되었다.

    1982년 11월 2차 시험발사에서 퍼싱 2는 발사에 성공했다. <출처: 미 육군>
    1982년 11월 2차 시험발사에서 퍼싱 2는 발사에 성공했다. <출처: 미 육군>

    요구조건이 수정된 퍼싱 2의 본격적인 개발은 그 이후인 1979년 2월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퍼싱 2의 연구개발사업은 무려 57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퍼싱 2는 애초에 1985년 양산을 목표로 했으나, 당시 브라운 국방장관(Harold Brown, 1927~2019)은 1983년까지 초도운용능력을 확보하도록 지시했다. 재설계된 퍼싱 2는 1982년 7월 처음으로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첫 시험발사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1983년 9월까지 17회의 추가발사를 통해 초도작전능력을 검증했고, 퍼싱 2는 1983년 12월 작전운용능력을 인증받았다. 퍼싱 2는 MGM-31C로 제식분류명을 부여받았으며 이후 모두 380발이 제작되었다.


    특징

    퍼싱 2 미사일의 구성 <출처: 미 육군>
    퍼싱 2 미사일의 구성 <출처: 미 육군>

    퍼싱 2는 핵탄두를 탑재하는 기동재진입탄두식 2단 고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기존의 이동식발사대만으로도 작업을 통해 추진체를 1단으로 구성하여 발사할 수도 있었다. 추진체계 가운데 1단은 미사일을 상승시켜 탄도궤적에 올리는 역할을 한다. 1단 구성일 때는 2단을 제외하고 1단 로켓모터 앞에 곧바로 탄두부의 재진입체가 결합된다. 1단은  4개의 미익(2개 고정, 2개 가변)이 달려있으며, 가변노즐을 장착하여 피칭/요잉을 제어한다. 2단 추진체는 목표한 사거리에 도달하기 위한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므로, 사거리에 따라 연소시간이 달라진다. 1·2단 추진체는 모두 표피에 금속이 아니라 경량의 케블라 소재로 되어 있다. 고체연료는 퍼싱 1과는 달리 고에너지 추진제로 변경되었으며, 허큘리스(Hercules Inc.)에서 제작을 담당했다.

    퍼싱 2의 1단 로켓모터(좌)와 2단 로켓모터 (우) <출처: 미 육군>
    퍼싱 2의 1단 로켓모터(좌)와 2단 로켓모터 (우) <출처: 미 육군>

    재진입체(reentry vehicle, RV)는 유도제어부(guidance and control/adapter, G&C/A), 탄두부, 레이더부의 4개 구획으로 구분된다. 우선 유도제어부는 싱어 키어폿(Singer Kearfott)의 종말유도장치를 장착하며, 추진엔진을 장착하여 공기밀도가 높을 때 필요한 추력을 제공한다. 또한 유도제어부 측면에 조정면(air vane)이 장착되어 표적으로의 비행을 제어한다. 어댑터도 유도제어부에 있어 재진입체와 2단 또는 1단추진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재진입체가 미사일과 분리될 때, 어댑터도 추진체와 함께 재진입체에서 분리된다.

    퍼싱 2의 액티브 호밍 레이더(좌)와 유도제어부(우) <출처: 미 육군>
    퍼싱 2의 액티브 호밍 레이더(좌)와 유도제어부(우) <출처: 미 육군>

    레이더는 재진입체의 제일 앞 쪽에 장착되며, 레돔 결합부, 레이더 유닛, 안테나 유닛으로 구성된다. 퍼싱 2에 장착되는 레이더는 레이더파를 목표로 보내어 탐지하는 액티브 호밍(active homing) 방식으로 굿이어 에어로스페이스(Goodyear Aerospace)에서 제작했다. 유도장치와 레이더의 작용으로 퍼싱 2의 원형공산오차는 무려 30m로 줄어들었는데, 당대의 탄두미사일로서는 상당한 명중률을 자랑했다.

    재진입체에 결합되는 W85 핵탄두 <출처: 미 육군>
    재진입체에 결합되는 W85 핵탄두 <출처: 미 육군>

    탄두부는 원추형의 알루미늄 구조물로 내용코팅이 되어 있다. 탄두 내부에는 W85 핵탄두가 장착되는데, 파괴력은 퍼싱 1의 1/5 수준인 5~80kt으로 파괴력을 가변식으로 사전 지정할 수 있으며, 무게는 약 400kg 정도이다. 탄두는 형태가 원통형이며, 크기는 직경 33cm에 길이가 1.1m이다. W85는 B61 핵폭탄의 탄두를 기본으로 개발되었는데, 이후 INF 협정으로 퍼싱 2가 폐기된 이후에 새롭게 생산되는 B61 핵폭탄의 탄두로 재활용되었다.

    퍼싱 2의 비행경로 <출처: 미 육군>
    퍼싱 2의 비행경로 <출처: 미 육군>

    퍼싱2는 점화하자마자 수 밀리초만에 각도를 꺾기 시작하여 표적과의 거리를 계산하면서 사전 지정된 비율에 따라 점차 탄도를 그린다. 1단 로켓모터가 연소를 마치면 퍼싱 내장 컴퓨터(Pershing airborne computer; PAC)가 분리를 명령하면서 1단이 분리되자마자 2단이 점화한다. 2단은 역시 PAC의 명령에 따라 표적에 대한 방향과 속도를 수정하면서 탄도비행의 궤도를 조절하며, 2단의 연소까지 끝나면 상승단계는 종료된다. 상승단계가 끝나면 2단도 분리되어 재진입체가 홀로 비행하게 되는데, 이때 추진엔진이 작동하면서 외기권에서의 비행을 통제한다. 다시 대기권으로 하강하면서 조정면이 미세조정을 통하여 표적으로 비행을 제어하며, 표적에 명중시킨다.

    M983 HEMTT 트럭과 퍼싱 2 미사일을 기립한 M1003 발사대 <출처: 미 육군>
    M983 HEMTT 트럭과 퍼싱 2 미사일을 기립한 M1003 발사대 <출처: 미 육군>

    지상장비는 역시 차량에 탑재하여 이동되는데, 특히 이동식발사대는 퍼싱 1과 동일한 트레일러 방식이다. 사실 SALT(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II 협정으로 인하여 발사대를 늘리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퍼싱 1의 M750 발사트레일러를 개조하여 퍼싱 2용의 M1003 발사대로 만들었다. 견인차량도 M757 트럭에서 M983 HEMTT(Heavy Expanded Mobility Tactical Truck, 고기동성 대형 전술 트럭)로 교체되었고, 발사통제소를 운반하기 위한 5톤 트럭도 배치되었다. M983트럭은 30kW 발전기를 운전석 캐빈 뒤에 장착했으며, 통제소 운반트럭은 30kW 발전기를 트레일러에 수납하여 견인하였다.

    M983 HEMTT 트럭과 퍼싱 2 미사일을 기립한 M1003 발사대 <출처: 미 육군>


    운용의 역사

    퍼싱 2는 1983년 12월부터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출처: 미 육군>
    퍼싱 2는 1983년 12월부터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출처: 미 육군>

    퍼싱 2는 1983년 12월부터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제56 야전포병여단이 퍼싱 2를 수령하면서 1983년 12월 15일 초도작전능력(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IOC)을 검증받았고, 최초의 퍼싱 2 대대가 유럽에 배치를 완료한 것은 1984년 6월 30일이었다. 유럽에서의 완전작전능력(full operational capability; FOC) 검증은 IOC 검증 2년만인 1985년 12월 13일에 성공리에 완료되었다. 퍼싱 2는 기존의 퍼싱 1A와 함께 현역을 지키면서 유럽 핵억제전력의 중핵으로 기능했다.

    퍼싱 2는 퍼싱 1A와 함께 유럽 핵억제력으로 주력으로 활약했다.
    퍼싱 2는 퍼싱 1A와 함께 유럽 핵억제력으로 주력으로 활약했다.

    그리하여 1985년까지 야전포병 미사일대대는 모두 12개였는데, 퍼싱 대대 4개와 랜스 대대 8개가 미 육군에 배속되었으며, 육군 예비역이나 주방위군 부대에는 배속되지 않았다. 미 본토의 포트 실(Fort Sill)에 배속된 3개의 대대를 제외하면, 모든 대대가 유럽에 배치되어 NATO회원국들을 지키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특히 퍼싱 1A와 2는 유럽지상군 총사령관의 통제 하에 있었지만, 특히 퍼싱 2는 사거리가 증가됨과 동시에 정밀도까지 높아져서 육군에게 결정적인 화력을 제공했다.

    미국은 유럽에 퍼싱 대대 3개를 배치했다. <출처 : Public Domain>
    미국은 유럽에 퍼싱 대대 3개를 배치했다. <출처 : Public Domain>

    퍼싱 2의 등장은 소련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고, 미국과 INF(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맺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INF 조약은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중거리 핵미사일 전량폐기하는 조약으로, 사거리 500km 이상 5,500km 미만의 핵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자는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결국 1987년 12월 8일 조약에 조인했고, 미 상원은 1988년 5월 27일 조약을 승인했다. 이렇게 퍼싱2는 유럽의 실전 배치를 완료한 지 2년 만에 폐기의 대상이 되었다.

    퍼싱 2는 미소 사찰단의 감시 아래 1991년 5월까지 모두 해체되었다. <출처: 미 국방부>
    퍼싱 2는 미소 사찰단의 감시 아래 1991년 5월까지 모두 해체되었다. <출처: 미 국방부>

    INF 조약에 따라 미 육군은 1991년 5월 31일까지 퍼싱 2 미사일의 추진체, 발사기, 훈련기, 재진입체 등을 폐기해야만 했다. 대상이 된 퍼싱 2는 모두 234발이었다. 이에 따라 퍼싱 미사일의 추진체는 롱혼 육군 조병창과 푸에블로 정비창에서 지상고정 연소 후에 파쇄되었고, 소련의 사찰팀과 미국의 현장 감시기구 인원들이 무력화절차를 감시했다. 마지막 퍼싱 2 미사일이 1991년 5월에 해체됨으로써 조약은 모두 이행되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SS-20과 퍼싱 2 미사일 <출처: NuclearAnthro / Twitter>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SS-20과 퍼싱 2 미사일 <출처: NuclearAnthro / Twitter>

    조약에 따르면 오직 15개의 미사일과 발사대만이 비군사화를 거친 후에 박물관 등에 전시되도록 허락되었다. 이에 따라 육군은 퍼싱 2를, 공군은 그리폰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을 전시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현재 퍼싱2의 미사일과 발사관은 오클라호마의 포트 실 야전포병 박물관, 뉴멕시코의 화이트샌드(White Sand) 미사일사격장,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Cape Canaveral)의 동부시험사격장, 알라바마주 헌츠빌의 알라바마 우주로켓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미사일만 전시되어 있는 곳은 버지니아주 햄프턴의 랭리 공군기지이다. 한편 퍼싱 2의 미사일과 발사관 2개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Air and Space Museum)에 기증되었는데, 스미소니언은 오직 1세트만 남겨놓고, 다른 세트는 소련의 SS-20 미사일과 교환하여 전시하고 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SS-20과 퍼싱 2 미사일 <출처: NuclearAnthro / Twitter>


    파생형

    MGM-31C 퍼싱 2 : 퍼싱 1과 1A를 대체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로 1983년 실전배치되었다. 모두 380여발이 생산되었다.

    퍼싱 2 미사일

    MGM-31D 퍼싱 2 RR : 퍼싱 2를 1단 미사일로 개조한 모델로 RR은 Reduced Range의 준말이다. 2발을 수납하는 발사대에서 운용할 계획이었으나, 계획취소로 양산되지 못했다.

    퍼싱 2 미사일

    퍼싱 3 : 퍼싱 2에서 발전한 4단 장거리 미사일. 발사중량은 무려 11톤으로 계획되었으며, LGM-118 MX 피스키퍼를 교체할 계획이었으나 제안단계에서 중단되었다.


    제원

    대분류 : 중거리 탄도미사일 (MRBM; Medium-range Ballistic Missile)
    세부분류 : 지상 이동발사식 고체연료 2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길이 : 10.61 m
    직경 : 1.02 m
    발사중량 : 7,462 kg
    탑재탄두 : W-85 위력가변형 핵탄두 (5~80 kT)
    추진체계 : 2단 추진, 고체연료
    사거리 : 1,770 km
    속도 : 마하 8 이상


    저자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퍼싱 2 미사일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다. 현재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신안산대 경호경찰행정학과의 겸임교수로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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