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1호 대전차 자주포
재활용 기갑장비의 선구자
  • 남도현
  • 입력 : 2020.03.09 08:42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기존 전차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대전차포들의 선구자다. < 출처: Public Domain >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기존 전차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대전차포들의 선구자다. <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독일은 전차를 처음 만든 나라는 아니지만 전차 및 기갑부대의 역사를 선도했고 지금도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제2차 대전 초기에 집단화된 대규모 기갑부대를 앞세워 엄청난 전과를 연이어 올리면서 밀리터리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도 독일군 하면 전차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이런 역사는 군사 외적인 분야에도 영향을 주어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전차군단'이라 부를 정도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전성기였던 1941년까지 독일이 개발해서 사용한 전차의 성능이 경쟁국 전차보다 뒤졌다는 사실이다. 전쟁 초기에 독일은 하드웨어인 전차보다 소프트웨어인 작전이 뛰어난 덕분에 연전연승했다. 정작 당대 최고의 명성을 지닌 5호 전차 판터, 6호 전차 티거 등은 독일이 열세로 접어든 전쟁 후반기에나 등장했다. 즉, 전성기를 이끈 전차와 뛰어난 명성을 얻은 전차가 다르다는 의미다.

    1호 전차는 독일 기갑부대의 역사를 선도했지만 전차라기보다는 탱케트 수준의 경량 기갑장비다. < 출처: (cc) baku13 / Wikimedia >
    1호 전차는 독일 기갑부대의 역사를 선도했지만 전차라기보다는 탱케트 수준의 경량 기갑장비다. < 출처: (cc) baku13 / Wikimedia >

    독일은 제1차 대전에서 패하며 오랫동안 전차의 생산과 보유를 금지 당했다. 1930년대 들어 비밀리에 개발에 나섰을 때 관련한 분야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1, 2호 전차를 재군비 선언 직후인 1936년부터 배치했지만 성능이 민망한 수준이었다. 결국 1939년 폴란드 침공전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며 전차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갑전이 벌어질 경우 1호 전차의 7.92mm 기관총이나 2호 전차의 20mm 기관포로 격파할 수 있는 전차는 없다시피 했다. 거기에다가 어지간한 공격을 받으면 쉽게 뚫려나가는 빈약한 장갑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1, 2호 전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기술 습득과 기갑부대 훈련을 위한 것이었기에 독일은 이미 1935년부터 이들을 후속할 전차를 한창 개발하고 있었다.

    1939년 폴란드 전역 당시의 3호 전차. 초기형에 장착된 3.7cm KwK 36 주포로 기갑전을 펼치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 출처: Public Domain >
    1939년 폴란드 전역 당시의 3호 전차. 초기형에 장착된 3.7cm KwK 36 주포로 기갑전을 펼치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 출처: Public Domain >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전차가 제2차 대전 내내 수적으로 독일군의 주력을 담당한 3호, 4호 전차다. 1939년에 공급이 시작되었기에 폴란드 침공전에서는 소량만 투입되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전과를 분석한 결과 초기형 3호 전차의 3.7cm KwK 36 주포와 초기형 4호 전차의 단포신 7.5cm KwK 37 주포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태로 프랑스, 영국과 전쟁을 벌이기는 곤란했다.

    실제로 이후 스톤 전투. 아라스 전투 등에서 곤욕을 치렀다. 공격력을 증강하려면 개량을 해야 했지만 히틀러가 프랑스 침공을 닦달하던 중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당장 전력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대전차포가 기갑부대와 동행하며 함께 작전을 펼치는 것인데, 견인포는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뒤졌다. 따라서 전차와 함께 움직이며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자주화된 대전차포가 필요했다.

    1호 대전차 자주포는 당시까지 등장한 독일 전차들의 기갑전 능력 부족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1호 대전차 자주포는 당시까지 등장한 독일 전차들의 기갑전 능력 부족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이때 3, 4호 전차의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도태될 운명이었던 1, 2호 전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생산된 지 3~5년 밖에 안 된 데다 수적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냥 폐기하기에는 아까운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2선급 전선에 투입을 고려했지만 그렇다고 빈약한 공격력과 방어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용도가 애매해진 이들을 자주포나 지원차량 등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차체가 작지만 포탑을 제거하고 공간을 재배치하면 대구경 포도 탑재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1호, 2호 전차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 무기들이 탄생했다. 기갑부대와 함께하며 적 전차를 요격하는 목적의 '1호 대전차 자주포(Panzerjäger I)'도 그중 하나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노획한 슈코다 4.7cm Pak(t) 대전차포를 1호 전차 차체에 결합한 형태여서 철저히 재활용된 무기이기도 하다.

    슈코다 4.7cm Pak(t) 대전차포. 정작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해 사용되지 못했다. < 출처: (cc) Mark Pellegrini / Wikimedia >
    슈코다 4.7cm Pak(t) 대전차포. 정작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해 사용되지 못했다. < 출처: (cc) Mark Pellegrini / Wikimedia >

    이처럼 사용 용도가 떨어지거나 노획한 무기나 장비를 개조해서 사용하는 행태는 이후 전쟁 내내 만성적인 무기 부족에 시달렸던 독일이 즐겨 사용한 방식이 되었다. 사실 여타 참전국도 마찬가지였으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장기 물량전에 취약했던 독일의 경우는 더욱 빈번했다. 1호 대전차 자주포 제작은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어서 순탄하게 제작되었으나 프랑스 침공 당시에 1개 대대만 실전 투입될 수 있었다.

    탄생 과정에서 보듯이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임시적인 무기였다. 전선에서 원해도 1호 전차가 단종되었기에 추가 공급하는 데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4.7cm Pak(t) auf PzKpfw 35R(f)처럼 노획한 프랑스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유사 자주포도 등장했다. 하지만 1941년 이후 등장한 전차들의 방어력이 4.7cm Pak(t)로 격파하기 어려울 만큼 향상되자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1호 전차가 단종되어 추가 공급이 어렵기도 했지만 전차들의 방어력이 증가하면서 1943년 이후 도태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1호 전차가 단종되어 추가 공급이 어렵기도 했지만 전차들의 방어력이 증가하면서 1943년 이후 도태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특징

    1호 대전차 자주포는 포탑을 제거한 1호 전차 차체에 체코슬로바키아 슈코다에서 제작한 4.7cm KPÚV vz. 38 대전차포 포신을 결합했다. 별개의 장비를 결합하는 것이었으나 균형을 잡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 기술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어 개발은 쉽게 이루어졌다. 1호 전차보다 무게가 1톤 정도 늘어나면서 작전 반경이 100km 정도 줄어들었지만 이동 속도 등은 크게 차이가 없다.

    포방패가 있으나 오픈탑 구조여서 방어력이 취약하다. < 출처: Public Domain >
    포방패가 있으나 오픈탑 구조여서 방어력이 취약하다. < 출처: Public Domain >

    독일군에서 4.7cm Pak(t)로 재명명된 4.7cm KPÚV vz. 38 대전차포는 500m 거리에서 69mm 장갑을 관통하는 수준이어서 1930년대 개발된 대부분의 전차들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다. 정작 개발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용되지 못했고 1호 대전차 주포로 이용되며 명성을 날렸다.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차체에 보통 74발의 AP탄과 10발의 HE포탄을 탑재했다. 용도가 다르지만 공격력에서는 3호 전차보다 강력했다.

    2차 생산분은 프랑스 전역의 전훈을 바탕으로 7면으로 꺾인 포방패를 장착했다. < 출처: (cc) MWAK / Wikimedia >
    2차 생산분은 프랑스 전역의 전훈을 바탕으로 7면으로 꺾인 포방패를 장착했다. < 출처: (cc) MWAK / Wikimedia >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전면에 13mm 장갑으로 제작된 5면 포방패가 부착되었다. 이후 실전을 겪으며 2차 양산분은 7면으로 꺾인 포방패를 사용했으나 기본적으로 오픈탑이어서 방어력을 기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주포의 성능이 1943년을 넘어서면서 부족하게 되지만 1호 대전차 자주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좋은 편이어서 이후 전차 차체를 이용한 자주포를 개발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운용 현황

    육군으로부터 총 202대 생산을 지시받은 알케트(Alkett)는 프랑스 침공 전까지 132대를 제작했고 그중 99대가 4개 대전차대대에 공급되었다. 이중 전쟁 개시 당시에 훈련을 마친 제521대전차대대만 전투에 참여했는데, 중전차 요격에 생각보다 좋은 전과를 올렸다. 이런 결과에 고무되어 나머지 3개 대대도 훈련이 끝난 후 즉각 추가 투입되었으나 6주 만에 전쟁이 종결되면서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전쟁 초기에 적 전차를 요격하는데 좋은 전과를 올렸다. < 출처: Public Domain >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전쟁 초기에 적 전차를 요격하는데 좋은 전과를 올렸다. < 출처: Public Domain >

    이후 2차분으로 70대가 추가 생산되었고 북아프리카 전선과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에 공급된 1호 대전차 자주포는 영국의 마틸다 전차를 연속으로 3대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의 주력인 T-34, KV 등을 격파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후 보병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차적으로 소모되고 퇴역하면서 1943년 이후 전사에서 사라졌다.

    아프리카 군단에서 사용 중인 모습 < 출처: Public Domain >
    아프리카 군단에서 사용 중인 모습 < 출처: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Panzerjäger I : 1호 대전차 자주포

    Panzerjäger I < 출처: Public Domain >
    Panzerjäger I < 출처: Public Domain >

    4.7cm Pak(t) auf PzKpfw 35R(f) : 프랑스 르노 35R 차제에 4.7cm Pak(t) 장착 자주포

    4.7cm Pak(t) auf PzKpfw 35R(f) < 출처: Public Domain >
    4.7cm Pak(t) auf PzKpfw 35R(f) < 출처: Public Domain >



    제원

    생산 업체: Alkett
    도입 연도: 1940년
    중량: 6.4톤
    전장: 4.42m
    전폭: 2.06m
    전고: 2.14m
    무장: 4.7cm Pak(t) 대전차포 1문
    엔진: 마이바흐 NL 38 Tr 6기통 수랭식 가솔린 엔진 100마력(75kW)
    추력 대비 중량: 16.6마력/톤
    서스펜션: 판스프링
    항속 거리: 약 14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1호 대전차 자주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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