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베이커 라이플
강선이 가져온 승리
  • 홍희범
  • 입력 : 2020.03.02 08:44
    베이커 라이플 <출처: RI Auctions>
    베이커 라이플 <출처: RI Auctions>


    유럽에서 총기의 강선은 이미 15세기 경에는 그 효과가 인지됐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일부 수렵용 혹은 사격경기용 총기들에 강선이 실용화되었던 것이다. 총열에 회전이 가해지면 명중률과 사거리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이처럼 예상외로 일찍부터 알려졌으나, 이것이 군용으로 실용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치륜식 라이플. 강선을 총에 사용한다는 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용화되었지만 군용 총기에 적용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16세기에 만들어진 치륜식 라이플. 강선을 총에 사용한다는 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용화되었지만 군용 총기에 적용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문제는 비용과 발사 속도였다. 강선을 파는 작업은 산업혁명 이전에는 상당한 인건비와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보니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여기에 강선이 효과를 보려면 총탄이 강선과 단단하게 맞물려야 한다. 그런데 총구에서 탄을 밀어 넣는 전장식 총기에서 이러면 장전 속도가 느려지고, 당연히 발사 속도 역시 느려진다. 결국 군용으로의 대량 운용은 효과가 적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초기 강선총, 즉 라이플도 운용에 따라 실전에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18세기 후반에 입증됐다. 바로 미국 독립전쟁이다.

    미국에는 18세기 초~중반부터 ‘켄터키 라이플’ 혹은 ‘펜실베이니아 라이플’이라고 불린 강선총이 적잖이 만들어져 수렵용으로 사용되었다. 주로 독일에서 이민 온 총포 기술자들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판매한 이 총들은 기존의 활강식(강선이 없는) 머스켓들보다 더 긴 사거리와 명중률 -사거리 측면에서는 거의 두 배- 를 자랑했다.  물론 탄환이 총열에 빽빽하게 맞물려야 하는 만큼 재장전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개척민들은 최대한 재장전도 하지 않고 사냥감을 잡고 싶어 할 만큼 탄약을 아끼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당초 이들 미국제 강선총들은 구경도 일반적인 군용 활강 머스켓들보다 작게 해서 사용되는 납을 아끼도록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라이플(현대에 만들어진 레플리카) <출처: Public Domain>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라이플(현대에 만들어진 레플리카) <출처: Public Domain>

    이 총들은 1770년대의 독립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발사 속도가 느려 대규모의 정규군 부대가 운용하기에는 부적합했지만, 소규모로 조직되어 ‘쏘고 도망가는’ 성격의 게릴라 부대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영국군의 상식으로는 교전이 어려운 원거리에서 지휘관 등을 쏘고 도망가는데 켄터키 라이플은 딱 안성맞춤이었다. 한마디로 현대적인 ‘저격’ 개념에 가까운 운용이 이뤄진 것이다. 한 영국군 장교는 “미국 놈들의 라이플 사수는 200보 거리에서도 원하는 곳은 어디든 맞춘다... 저놈들이 우리를 박살 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도 이에 대응할 무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실은 당시로는 최첨단의 소총이 있었다. 바로 퍼거슨 라이플(Ferguson Rifle)이다. 총 자체로만 보면 이 총은 정말 획기적인 총이었다. 강선이 있을 뿐 아니라, 장전을 약실로 하는 후장식(Breech loading)이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퍼거슨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영국군의 패트릭 퍼거슨 소령이 고안한 이 총은 약실 뒤쪽이 나사식 마개로 막혀있고, 방아쇠울을 돌려 이 마개를 열 수 있다. 마개를 열면 약실이 열리고, 사수는 총구로부터 탄과 화약을 넣는 게 아니라 약실로 직접 넣은 뒤 마개를 닫으면 됐다. 이러면 강선총의 효과를 살리면서도 재장전 속도가 충분히 빠를 뿐 아니라 엎드려 쏘면서 재장전이 가능했다. 실제로 1분에 6~10발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발사 속도가 발휘되기도 했다.

    퍼거슨 라이플의 구조 <출처: Public Domain>
    퍼거슨 라이플의 구조 <출처: Public Domain>

    이 총 자체는 100정이 생산되어 시험적으로 운용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생산성이었다. 일반 머스켓의 4배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4개 업체가 이 총의 생산에 동원되었는데도 6개월간 100정을 만드는 데 애를 먹을 정도였다. 영국군이 쓰던 브라운 베스 머스켓이라면 같은 기간 동안 어렵지 않게 만 단위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베이커 라이플은 영국군 최초로 강선을 채용한 제식소총이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은 영국군 최초로 강선을 채용한 제식소총이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이 총의 운용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100정만 납품되어 시험 운용된 것으로 끝났지만, 퍼거슨 라이플은 ‘적’인 미국 독립군의 켄터키 라이플과 함께 라이플(강선총)이 나름 전술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영국군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1800년에는 마침내 영국군 최초의 ‘제식’ 강선총인 베이커 라이플이 등장하게 된다.


    특징

    베이커 라이플의 원형이 된 독일의 예거 라이플 중 하나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의 원형이 된 독일의 예거 라이플 중 하나 <출처: Public Domain>

    “패턴 1800 보병용 라이플”로도 불린 베이커 라이플은 개발자인 에제키엘 베이커(Ezekiel Baker)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처음 개발한 ‘독자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그의 총은 당시 독일 하노버에서 만들어진 예거(Jaeger: 사냥꾼) 라이플을 강하게 참고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강선총이 가장 먼저 만들어져 사용된 곳 중 하나이고, 특히 에센 지역에서는 아예 강선총으로 무장한 소규모 부대가 조직되어 운용되기도 했다. 영국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미국 측이 운용한 비슷한 성격의 게릴라들의 효과를 뼈저리게 느끼고는 가장 근처에 있던 비슷한 것을 참고한 것이다- 영국군은 아예 베이커에게 하노버제 예거 라이플을 참고품으로 한 자루 빌려주기까지 했다.

    퍼거슨 라이플의 조작법을 그린 당대의 일러스트 <출처: Public Domain>
    퍼거슨 라이플의 조작법을 그린 당대의 일러스트 <출처: Public Domain>

    이렇게 해서 개발된 베이커 라이플은 일단 수석식(부싯돌식) 격발 장치를 갖춘 전장식 소총이라는 면에서는 당시의 활강식 머스켓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강선이 있다는 점이 우선 가장 큰 차이였고, 또 총열 길이가 짧은 편이었다. 초기형도 32인치(약 812mm)로 당시 기준으로는 짧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30인치(약 765mm)로 더 짧아졌다. 또 구경도 초기형은 영국군 제식인 브라운 베스와 같은 .75구경이었으나 나중에 .653구경으로 줄었다.

    베이커 소총은 강선을 채용하여 30인치라는 짧은 총열으로도 충분히 교전할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소총은 강선을 채용하여 30인치라는 짧은 총열으로도 충분히 교전할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처럼 총열 길이와 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은 강선의 등장으로 굳이 총열 길이가 아주 길 필요도 없고, 구경도 상대적으로 클 필요가 없어진 데다 이것을 장비하는 병사들이 백병전을 벌이기보다는 적과 늘 거리를 두면서 싸우는 척후병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총열 길이를 좀 줄여서라도 무시 못 할 수준의 기동성을 유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베이커 라이플은 안정된 파지를 위하여 방아쇠울 뒤쪽에 손잡이 형태를 취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은 안정된 파지를 위하여 방아쇠울 뒤쪽에 손잡이 형태를 취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총의 또 다른 특징은 방아쇠울이었다. 기존의 다른 소총(머스켓)들과 달리 베이커 라이플의 방아쇠울은 뒤쪽이 손잡이 형태로 되어있다. 이는 보다 안정된 파지가 요구되는 사격용 총기로서의 특징을 잘 반영한 것으로, 원형이 된 독일의 예거 라이플을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개머리판에도 다른 총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바로 뚜껑 달린 보관함인 패치박스이다.

    퍼거슨 라이플 개머리판의 수납함 <출처: Public Domain>
    퍼거슨 라이플 개머리판의 수납함 <출처: Public Domain>

    패치박스는 천 조각이나 가죽 조각(Patch)을 담는 공간이다. 라이플은 강선에 탄이 완전히 밀착해야 효과적이지만, 그 정도로 타이트한 지름의 납 탄환은 총구로부터 밀어 넣는 것이 지극히 어렵거나 자칫 총열 중간에 걸려버릴 수 있다. 그래서 총구 지름보다 좀 작은 납탄에 천이나 기름을 먹인 가죽을 감싼 것이다. 사실 많은 경우 탄환에 기름 먹인 가죽을 미리 감싼 다음 아예 꿰매어 미리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가죽을 감싸지 않은 일반 납탄만 있을 때에도 필요하면 강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개머리판에 미리 천이나 가죽을 준비해 둔 것이다.

    가죽이 씌워진 베이커 라이플용 탄환 <출처: Public Domain>
    가죽이 씌워진 베이커 라이플용 탄환 <출처: Public Domain>

    발사 속도는 사실 베이커 라이플의 장점이 절대 아니었다. 가죽으로 감싼 탄을 쓸 경우 힘을 줘서 탄을 쑤셔 넣어야 했기 때문에 영국군의 제식인 브라운 베스 머스켓에 비해 절반(최대 1분에 2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하면 라이플 사수도 일반 보병처럼 속사를 해야만 할 때가 있고 그럴 때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가죽을 두르지 않은 일반 납탄을 쏠 수도 있지만, 라이플 사수의 강점은 사거리와 명중률을 살리는 일종의 저격이었다. 베이커 라이플의 사거리와 명중률은 브라운 베스의 2~3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영국군의 테스트에서는 300야드(약 270m)에서 1.8m 지름의 원형 표적에 12발을 쏴서 그중 11발이 명중했다.

    베이커 라이플에는 기다린 대검이 장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에는 기다린 대검이 장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에도 대검은 지급되었다. 이것도 독일 예거 라이플의 대검과 유사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머스켓 대검은 창날처럼 생긴 꼬챙이형이 대세였으나 짧은 총열에 착검하는데다 필요하면 착검하지 않고도 쓰게 하기 위해 베이커 라이플에는 23.5인치(14cm)의 길쭉한 대검이 지급되었다. 길이만 길 뿐 아니라 독립된 손잡이와 날이 있는 ‘짧은 장검’ 같은 스타일이었다. 라이플 사수도 완전히 독립된 작전을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일반 보병처럼 대열을 갖추고 싸울 가능성이 무시할 수 없었기에 고안된 것이다.

    베이커 라이플에는 기다린 대검이 장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은 아무래도 생산량이 적고 생산 속도도 느린 편이었다. 앞서 언급한 퍼거슨 라이플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38년에 걸친 생산 기간 동안 생산량은 22,000정을 조금 넘는 정도로, 연평균 600정에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애당초 전군 제식 화기가 아니라 일부 특화된 부대에만 지급되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강선을 파는 작업이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시대였다. 이 총의 생산에 관여한 업체는 20곳이 넘고(‘업체’라기보다는 ‘공방’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완성품 업체도 여러 곳이었으며 개발자인 에제키엘 베이커 자신의 공방은 1805년부터 10년간 겨우 712정을 납품, 납품 업체 중 10위권에도 못 드는 수준이다.


    실전 운용

    이 총은 보병 전원에게 지급하는 총이 아니라 특화된 일부 병력에게만 지급하는 것이었다. 전선에서 본대에 앞서 배치되는 척후병들이 이 총의 장점을 살려 적에게 일종의 게릴라식 기습 공격을 가할 수도 있고, 또 본격적인 전투 시에도 일종의 저격병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군은 아예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라이플 연대”를 여럿 창설해 운용했다. 개중에는 영화나 소설 등으로 지금까지 영미권에서 유명한 제95 라이플 연대도 포함되어 있다.

    1803년도의 영국군 라이플 연대원을 그린 그림. 당시의 화려한 군복과는 대조적인 녹색 군복을 입고 있으며 머리의 깃털도 모자의 윤곽을 가리는 효과가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1803년도의 영국군 라이플 연대원을 그린 그림. 당시의 화려한 군복과는 대조적인 녹색 군복을 입고 있으며 머리의 깃털도 모자의 윤곽을 가리는 효과가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라이플 연대는 현대적인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정규군과는 사뭇 다른 전술과 장비, 심지어 규율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점에서 특수부대의 먼 조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특수한 총기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군복이 녹색이었다. 적에게 쉽게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통신 수단이 없어 지휘통제의 범위가 좁은 데다 사격이 시작되면 금방 연기로 전장이 뒤덮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아주 눈에 잘 띄는 색으로 옷을 입었다. 하지만 라이플 연대는 은-엄폐가 더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녹색 옷을 입은 건데, 이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옷을 입고 라이플로 원거리 사격을 가해 영국군을 괴롭힌 미국 민병대에게서 배운 교훈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라이플 연대는 장교와 부사관이 혼연일체로 움직이는 독특한 부대였다. <출처: Public Domain>
    라이플 연대는 장교와 부사관이 혼연일체로 움직이는 독특한 부대였다. <출처: Public Domain>

    내무 생활에서도 라이플 연대는 일반 부대와는 크게 달랐다. 일반 정규군 부대에서 병사는 장교 및 부사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했으며 사소한 규정 위반이나 불복종도 태형으로 처벌받기 일쑤였다. 또 장교와 장교가 아닌 인원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반면 라이플 연대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정이 적용되었고,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못지않게 대원 개개인의 창의력도 중요시됐다. 심지어 이 부대의 장교는 사병 및 부사관과 함께 식사했다! 지금도 영미권 국가들에서 장교 식당은 분리되어 있지만, 1800년대의 장교는 절대다수가 귀족이었다. 그야말로 신분이 다른 존재였는데 병사 및 부사관과 겸상을 한다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차이였다.

    95 라이플 연대는 웰링턴 휘하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여러 차례 교전해 큰 전과를 올렸다. <출처: Public Domain>
    95 라이플 연대는 웰링턴 휘하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여러 차례 교전해 큰 전과를 올렸다. <출처: Public Domain>

    라이플 연대는 여러 전장에서 상당한 전공을 세웠지만, 특히 앞서 언급한 95 라이플 연대는 웰링턴 휘하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여러 차례 교전해 큰 전과를 올렸고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도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정규군과 달리 대규모 대열을 이루지 않고 소규모로 분산해 이동하는 척후병 역할을 맡은 이들은 라이플의 강점을 살려 프랑스군 척후 부대를 미리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사거리와 명중률을 살려 프랑스군의 지휘관이나 포병을 저격하는 역할도 맡았다.

    누워 쏴 자세로 사격하는 라이플 연대원의 모습. 의외로 정밀 사격에 효과적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누워 쏴 자세로 사격하는 라이플 연대원의 모습. 의외로 정밀 사격에 효과적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들이 참전한 모든 전투가 승전은 결코 아니었지만, 하다못해 패배할 때에도 이들의 역할은 중요했다. 예를 들어 1809년에 영국군이 스페인 전선에서 후퇴 중일 때 이들은 쫓아오는 프랑스군의 속도를 늦추는 데에 무시 못 할 역할을 했다. 한 전투에서 95연대의 1대대 소속 사수인 토마스 플런켓(Thomas Plunkett)은 프랑스군의 오귀스트 콜베르 준장을 원거리에서 저격해 사살했는데, 그 거리가 얼추 500m는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총에 맞은 준장을 돕기 위해 다가간 부관도 명중시켜 이것이 단순한 운이 아님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 사거리는 원래 설정된 유효사거리의 거의 두 배는 되는 수준이지만, 그만큼 이 총의 잠재력과 당시 영국군 라이플 사수들의 실력이 어떤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페인 전선에서 영국군은 베이커 라이플로 적 지휘관을 저격하면서 적군을 교란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출처: Public Domain>
    스페인 전선에서 영국군은 베이커 라이플로 적 지휘관을 저격하면서 적군을 교란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출처: Public Domain>

    영국군은 강선총이 보편적으로 지급될 때까지 라이플 연대 및 라이플 여단을 운용했고, 이 때문에 베이커 라이플의 생산과 운용은 예상외로 길었다. 1837년에야 생산이 중단됐지만, 1840년대 초반까지도 실전에서 운용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물론 브라운 베스 머스켓은 백 년 넘게 주력으로 운용됐으니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말이다.


    파생형

    퍼거슨 라이플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퍼거슨 라이플과 대검 <출처: Public Domain>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진 데다 아직 현대적인 부품 규격화가 제대로 되기 전이다 보니 시기별, 제조사별로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지만, 크게 나눠 세 가지 버전이 있다. 처음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총열 길이가 32인치(약 813cm)에 달하고 구경도 0.75인치(19mm)에 달했지만, 오래지 않아 이것은 30인치(약 76cm)로 짧아지고 구경도 0.653인치(약 16.5mm)로 줄어든다.

    기병용 베이커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기병용 베이커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그 외에도 방아쇠울의 형태, 격발 기구의 형태 등에 따라 또 몇 가지로 나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베리에이션은 베이커 기병용 라이플이다. 총열 길이를 20인치(약 50cm)까지 줄인 것인데, 원래 기병에게는 총열이 짧은 기병총을 주는 관례가 있었고 이들에게 짧은 총을 준다면 기왕지사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여주는 강선총이 낫지 않겠냐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베이커 라이플의 생산 및 공급 우선순위는 라이플 연대로 위시되는 보병 병과의 라이플 부대들에 집중되었고, 생산량도 수백 정 단위를 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원(표준 보병용 베이커 라이플)

    무게 : 약 4.08kg
    길이 : 1.162m
    총열 길이 : 762mm
    구경 : 16.5mm(15.9mm도 존재)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베이커 라이플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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