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8호 전차 마우스
히틀러의 간섭이 낳은 과유불급
  • 남도현
  • 입력 : 2020.02.19 08:46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8호 전차 마우스. 자폭한 V2의 포탑을 재생해서 노획한 V1 차체와 결합한 것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8호 전차 마우스. 자폭한 V2의 포탑을 재생해서 노획한 V1 차체와 결합한 것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공군의 엄호 하에 집단화된 대규모 기갑부대가 신속히 적의 배후로 파고 들어가 일거에 포위 섬멸하는 독일의 전격전은 제2차 대전 초기에 엄청난 신화를 썼다. 그런데 정작 1939년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만 해도 독일 내에서 전차를 놓고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다. 제1차 대전 후부터 1935년 재군비 선언 전까지 개발 및 보유를 금지 당한 여파로 전선의 주역은 여전히 보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자력으로 기동하는 마우스의 최초 프로토타입 < 출처 : Public Domain >
    자력으로 기동하는 마우스의 최초 프로토타입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연이은 쾌승의 주인공이 되자 의구심은 사라지고 전차는 어느덧 모든 이들이 원하는 무기가 되었다. 특히 히틀러의 관심은 대단했다. 새로운 전차의 개발에 일일이 관여했고 전쟁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핵심 기갑부대의 지휘권을 직접 행사했을 정도였다. 역사상 최대의 초중(超重)전차인 8호 전차 마우스(Panzerkampfwagen VIII Maus, 이하 마우스)도 그러했던 히틀러의 간섭이 낳은 산물이었다.

    모의포탑을 장착한 마우스의 프로토타입인 V1 < 출처 : Public Domain >
    모의포탑을 장착한 마우스의 프로토타입인 V1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 개시 당시에 독일은 소련의 무기 수준을 폄훼하고 있었기에 소련군의 수적 우위를 겁내지 않았다. 그런 예상대로 공군 같은 경우는 일방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T-34, KV-1 같은 소련 전차의 성능이 독일의 3호 전차, 4호 전차를 압도한 것이었다. 직접 이들과 부딪힌 일선 장병들이 가장 많이 놀랐지만 보고를 받은 히틀러도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부포가 마치 동축기관총처럼 보이나 5호 전차 팬터의 주포로도 사용한 75mm KwK다. 이것만으로도 마우스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 출처 :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org >
    부포가 마치 동축기관총처럼 보이나 5호 전차 팬터의 주포로도 사용한 75mm KwK다. 이것만으로도 마우스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 출처 :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org >

    당시 독일은 6호 전차 티거(Tiger)의 실전 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중전차인 티거로 충분히 T-34 등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히틀러는 소련의 강력한 후속 전차가 등장하면 곤란할 것이라 보고 11월 29일, 새로운 전차 개발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때만 해도 만일을 대비한 조치였으나 한 달 후 모스크바 전투에서 패하며 처음으로 독일의 진격이 멈추자 히틀러의 조급함은 고조되었다.

    마우스를 시찰하는 히틀러. 그의 집착과 명령이 없었으면 탄생할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를 시찰하는 히틀러. 그의 집착과 명령이 없었으면 탄생할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설계를 완료하고 7호 전차로 예정된 70톤 급 중전차 프로젝트인 VK70.01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개발이 보류된 상태였음에도 오히려 이보다 더 큰 중량 100톤 급의 VK100.01의 프로젝트가 1942년 3월 시작되었다. 그만큼 히틀러의 집념은 대단했다. 크루프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 개발자로 최종 선정된 포르쉐는 6월 전면 장갑이 최대 120mm인 100톤 규모 전차의 설계안을 제출했다.

    마우스의 전면장갑은 200mm 급으로 두터워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의 전면장갑은 200mm 급으로 두터워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이를 보고 받은 히틀러는 당시 전선의 상황을 고려해 방어력을 좀 더 늘릴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장갑이 150mm로 증가되었고 12.7cm 함포, 12.8cm 고사포, 15cm 곡사포 중 하나를 택하기로 한 주포 이외에 보병 지원을 위한 근접 교전용 부포로 7.5cm KwK L/24를 탑재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량이 140톤으로 증가했다. 1943년 내에 120대 배치를 목표로 했으나 생각보다 개발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독일 뮌스터 박물관에 전시 중 축소 모형. 사람과 대비시켜 마우스의 실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독일 뮌스터 박물관에 전시 중 축소 모형. 사람과 대비시켜 마우스의 실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엔진, 현가장치를 비롯한 많은 부분의 성능도 함께 향상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개발이 난항을 겪자 포탑은 크루프가, 차체는 포르쉐가, 조립은 알케트가 담당하도록 정리되었고 10월부터 대대적인 전면 재설계에 착수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예정보다 1년 늦은 1943년 11월에서야 모의 포탑을 올린 프로토타입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무게가 무려 180톤으로 늘어났다.

    마우스의 중량은 무려 180톤을 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의 중량은 무려 180톤을 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정작 완성된 다음부터 상황이 애매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직전에 있었던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 기갑 전력이 심각하게 소모되면서 마우스 같은 초중전차보다 당장 한 대의 보통 전차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우스의 제작과 운용에 너무 많은 자원이 소모되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 기갑총감 하인츠 구데리안 등이 양산을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실험 중인 마우스. 기대가 컸지만 단점이 많아 결국 2대의 시제품을 끝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실험 중인 마우스. 기대가 컸지만 단점이 많아 결국 2대의 시제품을 끝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냥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투입한 노력이 아까웠기에 히틀러는 방어용 이동 진지로 전용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탄력적으로 방어에 이용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워낙 이동 속도가 느려서 차라리 진지를 구축하고 벙커를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결국 1944년 개발 중단을 지시했다. 그렇게 사상 최대의 초중전차는 본격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특징

    마우스의 장갑 구성도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의 장갑 구성도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가 초중전차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까지 존재한 모든 대전차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력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복합장갑, 반응장갑 같은 기술이 실용화되기 전이어서 방어력을 늘리려면 필연적으로 장갑이 두터워졌다. 가장 두터운 포탑 전면이 220mm였는데 35도의 경사장갑을 고려하면 350mm 정도의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빈약한 포탑 상부나 차체 하부도 M4의 전면 장갑 수준인 60mm에 이를 정도였다.

    차체 후면의 장갑도 150mm에 이르렀는데 이는 티거 전차의 전면 장갑보다 두터운 수준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차체 후면의 장갑도 150mm에 이르렀는데 이는 티거 전차의 전면 장갑보다 두터운 수준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우스는 만재했을 때 200톤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게에 비해 크기가 큰 편이 아니다. 현재 미국의 주력인 M1 에이브럼스와 비교하면 전고가 1.2m 정도 높기는 하나 전장, 전폭은 약간 더 나가는 정도다. 그만큼 장갑이 두텁다는 뜻이고 엔진과 관련 장비의 크기가 커서 실내 공간이 더욱 좁아져 탄약 적재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6명의 승무원이 근무하기에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폭이 1m 가까이 되는 광폭 궤도를 장착했지만 무게가 너무 무거워 연약 지반에 빠져 기동이 불능 되는 경우가 빈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폭이 1m 가까이 되는 광폭 궤도를 장착했지만 무게가 너무 무거워 연약 지반에 빠져 기동이 불능 되는 경우가 빈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엔진의 성능이 떨어져 최대 속도가 시속 20km 불과한 데다 고장도 수시로 발생했고 하이브리드 방식이어서 유지 보수도 어려웠다. 거기에다 연비도 몹시 나빠 야지에서 60km 정도만 움직일 수 있다. 1m 정도의 광폭 궤도를 사용했음에도 너무 무거워 연약 지반에서 수시로 돈좌되었다. 55구경장 128mm KwK 44 주포는 당대 최강이었지만 극악의 기동력 때문에 효과적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운용 현황
     
    마우스는 모의 포탑을 올린 프로토타입(V1)과 시제 전차(V2)를 포함해 총 2대만 제작되고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설령 계획대로 진행되었어도 130대 정도만 양산될 예정이었다. 만일 실전 결과가 좋다면 추가 제작이 이루어졌겠지만 제2차 대전 전체로 볼 때 의미 있는 수량을 차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대가 많아 양산은커녕 6대 분의 자재가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개발을 포기해야 했다.

    내부폭발로 포탑이 분리된 마우스 전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내부폭발로 포탑이 분리된 마우스 전차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특히 개발이 완료된 1944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수세로 전환했기에 기동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선에 투입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마우스는 단지 강하다는 장점보다는 실용적인 무기로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단점이 너무 많았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히틀러의 입김으로 말미암아 개발이 시작되었고 흐지부지 막을 내린 것이었다.

    영국군이 점령한 시설에 남아 있는 마우스 부품. 4대의 차체와 6대의 포탑이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개발이 종료되어 종전 당시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영국군이 점령한 시설에 남아 있는 마우스 부품. 4대의 차체와 6대의 포탑이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개발이 종료되어 종전 당시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패전 직전인 1945년 4월, 베를린 방어전에 V2가 투입되었으나 정작 실전은 겪지 않았다. 소련군이 접근하자 노획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군이 자폭 처리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한마디로 마우스는 개발에 쏟은 노력에 비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과유불급의 전차였다. 이후 소련이 부서진 V2 포탑을 재생해 노획한 V1 차제에 얹어 연구 목적으로 사용했고 이는 현재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노획된 후 소련으로 보내지기 위하여 V1 차체와 V2 포탑을 결합한 마우스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노획된 후 소련으로 보내지기 위하여 V1 차체와 V2 포탑을 결합한 마우스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V1 : 포탑의 개발이 늦어져 실험을 위해 동일한 중량의 모의 포탑을 올린 프토로타입

    V1 < 출처 : Public Domain >
    V1 < 출처 : Public Domain >

    V2 : 크루프에서 개발한 포탑을 장착한 완성형 프로토타입

    V2 < 출처 : (cc) DJ Vador at Wikimedia.org >
    V2 < 출처 : (cc) DJ Vador at Wikimedia.org >



    제원
     
    - 도입 연도: 1944년
    - 중량: 188톤(만재 207톤)
    - 전장: 10.2m
    - 전폭: 3.71m
    - 전고: 3.63m
    - 장갑: 60~220mm
    - 무장: 55구경장 128mm KwK 44 포×1
               36.5구경장 75mm KwK 44 포×1
               7.92mm MG34 기관총×1
    - 엔진: V1 : MB509 V12 가솔린 엔진 1,080마력(805kW)
               V2 : MB517 V12 디젤 엔진 1,200마력(895kW)
    - 추력 대비 중량: 6.4마력/톤
    - 서스펜션: 코일스프링
    - 항속 거리: 160km(포장도로) / 62km(야지)
    - 최고 속도: 2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8호 전차 마우스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