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미라주4000 전투기
F-15의 라이벌이 되고자 했던 미라주 시리즈의 종착지
  • 윤상용
  • 입력 : 2020.02.18 08:27
    미라주 4000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미라주 4000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미라주 시리즈의 성공으로 전투기 분야의 명가가 된 다쏘(Dassault)는 특히 명작으로 등장한 미라주 2000을 바탕으로 하여 엔진 출력을 두 배로 늘리고 성능을 향상시킨 신형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특히 경량형 전투기보다는 미국의 F-15나 소련의 Su-27에 필적할 제공권 장악용 전투기 반열에 미라주를 올리려는 시도였다. 이에 다쏘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새로운 신기술을 도입한 항공기 시험에 매진했으며, 이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설계는 충분히 검증된 설계인 미라주 2000에서 파생된 ‘미라주 4000’ 설계안이었다. 쌍발엔진으로 설계하여 출력을 대폭 높인 미라주 2000은 스네크마(SNECMA: 현재의 샤프란)의 M53-2 터보 팬(Turbo fan) 엔진을 채택했으며, 동체 전방에는 기체 안정성을 위해 카나드(canard: 귀날개)를 채택해 미라주 2000과 다른 외양적 특징을 가지게 됐다. 미라주 4000은 전반적으로 동체가 2000에 비해 많이 커졌으므로 미국의 F-15 이글(Eagle)과 유사한 크기가 되었으며, 실제 항속 거리나 전폭기로서의 능력도 유사하게 목표로 잡혔다.

    1981년 파리 르부르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Acroterion/Wikimedia Commons)
    1981년 파리 르부르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Acroterion/Wikimedia Commons)

    다쏘는 한 대의 미라주 4000 시제기를 완성하여 1979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중량을 가볍게 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 복합재를 사용해 수직 미익을 제작했다. 전반적으로 첨단 소재를 사용해 중량을 많이 낮춘 미라주 4000은 은 추력 대비 중량이 1:1을 넘어설 정도로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했다. 미라주 4000은 6차 시험 비행 때 고도 15,200m까지 도달했으며, 불과 3분 50초 만에 마하 2에 도달했다. 다쏘는 1987년 6월 파리 르부르제(Le Bourget) 에어쇼에 출품했으며, 미라주 시리즈의 독창적인 삼각 날개 설계를 자랑하면서 해외 구매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가장 관심을 보였던 곳은 미국으로부터 F-15 이글을 도입하려 했으나 미 정부가 수출허가(Export License, E/L)를 내주지 않아 도입을 못하고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였다. F-15를 대체할 수 있는 서방 국가의 전투기라는 사실은 이글의 대안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한 카드였으므로 사우디 측은 당장 100대의 기체 구입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단, 문제는 미라주가 아직 실전 배치가 된 적이 없는 데다 여전히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사우디 측은 구매를 조건으로 개발비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고, 이에 다쏘는 프랑스의 몽드마르상(Mont-de-Marsan)에서 기체 시험을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륙 중인 미라주 4000. 1982년 9월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륙 중인 미라주 4000. 1982년 9월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하지만 프랑스의 앙드레 지로(Andre Giraud, 1925~1997) 국방장관은 이 합의에 불만을 가졌다. 왜냐하면 사우디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미라주 4000 대신 향후 프랑스 공군이 도입을 희망하고 있던 라팔(Rafale) 쪽에 관심을 가져 향후 라팔의 양산 단가를 떨어뜨리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속적으로 미라주 4000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심지어 행여라도 미라주 4000이 양산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프랑스 정부가 지원할 일은 없을 것임을 못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쏘는 미라주 4000의 긴 항속 거리와 기동성, 탑재 중량 등을 볼 때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당장 프랑스 공군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은 미라주 4000은 해외 시장에서도 설 자리가 좁아졌다.

    파리 상공을 비행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Musee Air Espace)
    파리 상공을 비행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Musee Air Espace)

    우선 미라주 4000에 관심을 보였던 이란은 1979년에 발생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서방 무기 도입을 거부했고, 최초에 미라주 4000에 관심을 보였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영국의 토네이도(Tornado) 쪽에 더 관심을 두었다. 모든 개발이 끝났을 무렵 다쏘는 프랑스 정부에 미라주 4000의 판매를 다시 한번 타진했으나, 이번에는 지나치게 높은 기체 단가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결국 그 어느 국가도 도입을 희망하지 않으면서 가격 조건이 완화되지 않자 관심을 보이던 해외 국가들의 발길이 모두 끊기고 말았다. 결국 다쏘는 1995년을 전후해 미라주 4000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라팔과 함께 비행중인 미라주4000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라팔과 함께 비행중인 미라주4000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단 한 대가 제작된 미라주 4000은 프랑스 파리의 항공우주박물관(Musée de l'Air et de l'Espace)으로 이관되었으며, 다쏘는 미라주 4000으로 발생한 경영상의 손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미라주 4000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은 다쏘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된 삼각 전투기인 라팔(Rafale)에 추후 적지 않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팔과 함께 비행중인 미라주4000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특징

    미라주 4000은 미라주 III부터 이어지는 삼각익(三角翼) 미라주 시리즈 중 하나이며, 미라주 2000부터 삼각익과 카나드의 조합이 미라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쏘는 미라주 III의 지나치게 높은 접근 속도(180kts)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설계를 시도했으며, 대표적인 것이 밀란(Milan) 항공기에 시도했던 수납식 “노즈 핀(nose fins)”이었다. 다쏘는 ‘밀란’ 항공기 자체는 실패했으나 이 기술을 순차적으로 미라주 4000과 미라주 III NG(Next-Generation)에 적용했다.

    비행 중인 미라주 4000의 모습. 미라주 4000은 고정식 카나드에 쌍발엔진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기존 미라주 시리즈와 차별화된다. (출처: Dassault Aviation)
    비행 중인 미라주 4000의 모습. 미라주 4000은 고정식 카나드에 쌍발엔진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기존 미라주 시리즈와 차별화된다. (출처: Dassault Aviation)

    미라주 4000에 설치된 카나드는 기동성 향상을 위해 설치한 고정식이며, 만약 비행통제시스템이 작동 불능이 된 경우에는 탈착 시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카나드가 분리되어 버리면 일반적인 항공기 형상이 되기 때문에 안정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구조다.

    후면에서 본 미라주 4000. 미라주 4000은 미라주 2000과 유사한 설계이나, 기본적으로 쌍발엔진이 설치된 점이 다르다. (출처: Roland Turner / Wikimedia Commons)
    후면에서 본 미라주 4000. 미라주 4000은 미라주 2000과 유사한 설계이나, 기본적으로 쌍발엔진이 설치된 점이 다르다. (출처: Roland Turner / Wikimedia Commons)

    미라주 4000은 다목적 전투기 용도로 개발되었으며, F-15와 마찬가지로 제공권 장악뿐 아니라 지상 표적 타격까지 목표로 두고 있다. 통상적인 항공역학 구조는 미라주 2000과 유사하나 비행통제면과 쌍발엔진(M53-5 엔진) 구조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또한 동체가 커진 만큼 내장 연료탱크 또한 미라주 2000의 세 배에 달해 항속 거리나 전투 범위가 크게 차이 난다. 미라주 4000은 동체 배면 및 주익 하부에 2,500리터 외장 연료탱크를 세 개까지 추가로 장착할 수 있다.

    미라주 4000의 배면. 미라주에는 11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Musee Air Espace)
    미라주 4000의 배면. 미라주에는 11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Musee Air Espace)

    미라주 4000에는 RDM 레이더가 장착되었으나 최초 계획에서는 양산 시 더 고급화된 RDI 레이더로 교체할 예정이었다. 기본 무장으로는 두 정의 DEFA 30mm 기관포가 설치되어 있으며, 무장 장착을 위해 11개의 하드포인트가 동체 및 주익 하부에 설치됐다. 미라주 4000은 조합에 따라 2개의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8개의 단거리 공대공 유도 미사일, 4개의 공대지 유도 미사일, 250kg 폭탄이나 듀랜달(Durandal) 관통폭탄, 18발의 벨루가(Beluga) 클러스터 폭탄, 혹은 14개의 250kg 유도 폭탄을 조합에 맞춰 장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라주 4000의 배면. 미라주에는 11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Musee Air Espace)
    미라주 4000의 배면. 미라주에는 11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Musee Air Espace)

    미라주 4000과 라팔은 크기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만, 미라주 4000의 형상 설계나 카나드의 위치 및 각도, 주익의 리딩에지(leading edge) 위치 등 다양한 요소가 라팔에 그대로 이어져 적용됐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미라주 2000에서 시작된 항공기 기술과 경험이 미라주 4000으로 검증된 후 라팔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미라주 4000의 배면. 미라주에는 11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Musee Air Espace)


    운용 현황

    미라주 4000은 1979년 3월 9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슈퍼 미라주 4000”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시제기 단 한 대만 제작된 미라주 4000은 양산이 사실상 무산된 이후에도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디지털 비행통제시스템 시험용 테스트베드 항공기로 사용됐다.

    미라주 2000, 미라주 III, 미라주 V와 비행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Musee Air Espace)
    미라주 2000, 미라주 III, 미라주 V와 비행 중인 미라주 4000. (출처: Musee Air Espace)

    다쏘는 처음부터 미라주 2000을 베이스로 삼아 냉전 시기 동안 소련과 교전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기체를 설계했다. 미라주 4000은 양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무장 통합을 해본 적이 없으나,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총이나 무장 조합을 볼 때 비교적 준수한 성격의 전투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측면에서 본 미라주 4000의 모습. 1982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간 촬영된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측면에서 본 미라주 4000의 모습. 1982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간 촬영된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다쏘는 처음부터 프랑스 공군보다는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시작했으며, 가장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하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짐과 동시에 프랑스 정부가 미라주 4000 개발에 지원할 의사가 없음을 표명함에 따라 양산 단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사라졌고, 이 때문에 기체 단가가 높게 책정되자 사우디는 1993년에 파나비아 UK사의 토네이도 IDS 2차 배치(batch) 분 48대를 대신 도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90년대 중반에는 사우디 공군이 120대가 넘는 F-15C/D형을 도입함에 따라 사실상 미라주 4000을 도입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외에도 팔레비 왕조 시절의 이란 정부에서 F-14의 상위 전투기로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도입을 고려했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전복됨에 따라 무산됐다.

    측면에서 본 미라주 4000의 모습. 1982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간 촬영된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측면에서 본 미라주 4000의 모습. 1982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준비간 촬영된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다쏘는 프랑스 공군에도 미라주 4000의 도입을 타진한 듯 하나, 프랑스 공군은 미라주 2000 추가 도입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편 다쏘는 1979년 말부터 독일 MBB 및 영국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ritish Aerospace, 現 BAE 시스템즈)와 “유럽 합동 전투기사업(ECA: European Collaborative Fighter)”에 참여함에 따라 사실상 미라주 4000의 추가 개발 및 판매 활동을 접었다. 하지만 ECA 사업은 참여 국가의 요구도가 상이함에 따라 1981년에 중단되었으며, 다시 1983년부터 ‘미래 유럽전투기 사업(FEFA: Future European Aircraft)”으로 변경되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서독, 영국이 유럽형 범용 전투기 개발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결국 또다시 요구도 문제로 충돌함에 따라 1984년 부로 결렬되고 프랑스가 사업에서 빠졌다. 이에 FEFA 사업에 계속 남은 스페인, 영국, 서독, 이탈리아는 EF-2000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을 개발했으며, 프랑스는 도태 시기가 다가온 세페카(SEPECAT) 재규어, 미라주 F1 등을 대체할 시험 전투기 사업(ACX: Avion de Combat expérimental)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면서 미라주 4000의 기술을 그간 ECA/FEFA를 위해 개발해오던 항공기 설계에 반영했다. 이는 결국 1986년에 처음 탄생하여 2001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간 라팔(Rafale)의 개발로 이어졌다.


    파생형

    미라주 4000/슈퍼 미라주 4000: 단 한 대의 시제기만 제작되었으며, 1995년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이관된 후 보관 중에 있다. 최초에는 복좌식 형상도 개발 계획이 있었으나 양산이 무산됨에 따라 제작된 적은 없다.

    2009년 2월, 파리 르부르제 에어쇼에 야외 주기 전시된 미라주 4000 시제기. (출처: Pline/Wikimedia Commons)
    2009년 2월, 파리 르부르제 에어쇼에 야외 주기 전시된 미라주 4000 시제기. (출처: Pline/Wikimedia Commons)



    제원

    종류: 전투기 시제기
    제조사: 다쏘-브레게(Dassault-Breguet, 現 다쏘)
    승무원: 1명
    전장: 18.7m
    전고: 5.8m
    날개 길이: 12m
    날개 면적: 73㎡
    최대 연료량: 16,100kg(전투중량)
    추진체계: 14,500파운드급 SNECMA M53-2 애프터버너 터보 팬 엔진 x 2
    최고 속도: 마하 2.3
    최대 유지 속도: 마하 2.2
    접근 속도: 260km/h
    항속 거리: 2,000km
    전투 범위: 1,850km(외장 연료 장착 시)
    실용 상승 한도: 20,000m
    상승률: 305m/s
    고도 도달 시간: 15,000m까지 3분
    날개 하중: 220kg/㎡
    기본 무장: 2 x 30 mm DEFA 기관포(분당 125발)
    하드포인트: 11개, 총 8,000kg
               ㄴ 2,500리터 외장 탱크 x 3
               ㄴ FLIR 포드
               ㄴ 정찰용 Recce Pod
               ㄴ 레이저 표적지시 포드
               ㄴ 로켓 포드 x 4
               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x 2
               ㄴ 고급 공대공미사일 x 8~14
               ㄴ 공대지 미사일 x 4
               ㄴ 250kg 폭탄 x 27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미라주4000 전투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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