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BT 전차
소련 전차의 초석을 놓은 미국의 기술
  • 남도현
  • 입력 : 2020.02.17 08:59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BT 시리즈 최초 양산형 BT-2 < 출처: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 >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BT 시리즈 최초 양산형 BT-2 < 출처: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 >


    개발의 역사
     
    제1차 대전 중반기인 1916년에 등장한 전차는 처음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전과를 남기지 못했다. 기계적 성능이 미흡했던 데다 처음 경험하는 생소한 무기다 보니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병과 기병이 무력화된 지옥의 참호전을 경험하면서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이 동의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나라별로 개발이 꾸준히 이어졌다.

    혁신적인 서스펜션을 개발한 월터 크리스티. 그가 개발한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소련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차에도 영향을 주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혁신적인 서스펜션을 개발한 월터 크리스티. 그가 개발한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소련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차에도 영향을 주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소련도 전차의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던 나라다. 체제가 안정되기 시작한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을 만큼 걸음이 빨랐다. 소련은 지난 제1차 대전에서 제정러시아의 졸전과 내전 당시에 외세의 군사적 간섭을 경험하면서 전차처럼 새로운 무기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러나 기술력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다.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한 서방이 노골적으로 배척을 가해 기술 도입도 어려웠다.

    패전국 독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독일도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전차의 개발과 보유가 금지당한 상황이어서 노하우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미국의 발명가인 크리스티(Walter Christie)가 구세주로 다가왔다. 비록 상업 거래였지만 그의 도움으로 대단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전차를 개발할 수 있었다. T-34를 비롯해 뒤에 등장하는 후속작들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BT 전차(이하 BT)다.

    크리스티가 미 육군에 구매를 제안 한 M1931. 하지만 무관심 속에 채택이 불발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크리스티가 미 육군에 구매를 제안 한 M1931. 하지만 무관심 속에 채택이 불발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크리스티는 전차에게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인물이었다. 1928년에 험지에서 고속 주행이 가능한 혁신적인 크리스티 현가장치(Christie suspension)를 개발하고 이를 채용한 시험 전차인 M1928을 제작했다. 미 육군이 관심을 보이자 성능을 좀 더 개량한 M1931을 만들어 구매를 제안했으나 정작 시험까지 하고도 전차의 가치를 낮게 보던 관계자들이 많아 채택이 불발되었다.

    이때 이를 눈여겨본 소련이 판매를 요청했다. 소련은 도로에서 궤도를 탈거하고 로드휠만으로도 시속 110km의 넘는 최고 속도로 달릴 수 있는 M1931이 거대한 국토의 소련에게 상당히 적합한 전차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당시 소련군은 투하쳅스키(Mikhail Tukhachevsky)가 주창한 종심작전 교리에 따라 돌파의 선봉에 세울 대규모 기갑부대를 구상 중이었기에 적합한 전차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장을 해체한 상태로 차체만 소련으로 넘어와 시험 중인 M1930. 소련은 이를 별도로 BT-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무장을 해체한 상태로 차체만 소련으로 넘어와 시험 중인 M1930. 소련은 이를 별도로 BT-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원래 소련은 커닝햄에서 만든 T1 경전차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1928년 면허생산권을 사기 위해 관계자들이 미국을 방문했다가 M1928을 접하고 난 후부터 교섭 상대를 군말 없이 크리스티로 바꾸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 크리스티는 소련의 제안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였지만 미군이 실망스러운 결정을 내리자 분노하여 원형인 2대의 M1930와 면허생산권을 팔아버렸다.

    정작 자신들은 채택하지 않았으면서도 고급 기술이 적성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정부의 방해가 있자 크리스티는 M1930을 분해한 후 트랙터 명목으로 넘겼다. 그렇게 소련으로 건너 온 M1930은 BT-1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포탑을 설치하고 소련군 사양에 맞춰 일부 구조와 자재를 변경한 BT-2가 하리코프기관차공장(KhPZ)에서 양산에 들어가 1932년부터 배치되었다.

    BT 전차는 기동성을 자랑했으나 화력과 방어력은 취약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BT 전차는 기동성을 자랑했으나 화력과 방어력은 취약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이후 BT-5가 1934년, BT-7가 1935년을 생산을 시작했는데 중공업 분야의 발달에 힘입어 차체 제작이 용접 방식으로 바뀐 것처럼 꾸준히 성능이 개량되었다. 하지만 화력과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일선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고 이는 결국 T-34의 개발을 촉진시켰다. 그런 우려처럼 스페인 내전, 할힌골 전투에서 문제점이 확인되었지만 1941년 독소전쟁 발발 당시에 5,000여 대 가까이 배치되어 T-26과 더불어 소련군 주력 전차 역할을 담당했다.


    특징
     
    Bystrokhodny Tank(고속 전차)의 약자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BT의 특징은 뛰어난 기동력이다. 엔진은 400마력이지만 전차의 무게가 11톤에 불과해서 톤당 35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최신 전차들이 톤당 22~27마력 정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마디로 힘이 넘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BT-5 이후 모델은 야지에서 최고 시속 52km로, 도로에서는 최고 시속 72km의 엄청난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궤도가 탈거된 상태로 전시 중인 BT-5. 이처럼 궤도를 제거하면 포장된 도로에서 최대 시속 110km의 고속으로 주행이 가능하다. < 출처: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 >
    궤도가 탈거된 상태로 전시 중인 BT-5. 이처럼 궤도를 제거하면 포장된 도로에서 최대 시속 110km의 고속으로 주행이 가능하다. < 출처: (cc) Mike1979 Russia at Wikimedia >

    단지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도입한 크리스티 현가장치 덕분에 험로에서도 기동력이 안정적이었다. 또한 포장된 도로를 장거리 이동하거나 무한궤도가 파손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궤도를 벗기고 고무테가 씐 로드휠만으로도 기동이 가능하다. 이때 조향이 가능한 1번 로드휠로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실전에서의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기동력에만 치중하다 보니 장갑은 전차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경사장갑으로 방어력을 늘리려 했지만 가장 두터운 부분도 23mm에 불과해 어지간한 공용화기에 관통 당했다. 이처럼 빈약한 방어력은 BT가 독소전쟁 초기를 기점으로 퇴출 된 결정적 이유다. BT-2의 37mm 구경 주포나 이후 모델의 45mm 구경 주포는 1930년대 기준으로는 충분한 수준이었으나 포구 속도가 떨어져 공격력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좌부터 BT-7, A-20 시험 전차, T-34(1940년 형), T-34(1941년 형). 이처럼 BT는 이후 등장하는 소련(러시아) 전차의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 출처: Public Domain >
    좌부터 BT-7, A-20 시험 전차, T-34(1940년 형), T-34(1941년 형). 이처럼 BT는 이후 등장하는 소련(러시아) 전차의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 출처: Public Domain >

    지금 생각으로는 고속전차라는 개념이 어처구니없는 것 같지만 대표적인 2세대 전차인 레오파르트 1도 부족한 방어력을 기동력으로 극복하려 했을 만큼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진 개념이었다. BT는 비록 전성기가 짧았지만 이때 설계에 반영한 여러 사상은 T-34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T-34의 여파가 현재 최신 러시아 전차에도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히 소련(러시아) 전차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운용 현황
     
    BT는 1932년부터 1941년까지 총 5,556대가 생산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전차로는 많지 않으나 독소전쟁 이전에만 생산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중일전쟁 중이던 중국군에게 30대, 위성국인 몽골군에 15대 그리고 스페인 내전 당시에 공화국군에 공급된 50대를 제외하고 전량 소련군이 사용했다.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시기 직전에 탄생한 전차답게 실전 기록도 많았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에 공급된 BT-5. 실전에서의 결과 실망스러워 소련은 후속 전차의 개발을 서둘렀다. < 출처: Public Domain >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에 공급된 BT-5. 실전에서의 결과 실망스러워 소련은 후속 전차의 개발을 서둘렀다. < 출처: Public Domain >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7년 10월 13일에 BT 역사상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사전 정찰 없이 험준한 산길에서 일렬 종대로 주행하다 기습을 받고 격파 당한 것처럼 운용 방법도 문제가 많았지만 손실이 예상을 벗어날 만큼 심각해서 소련에게 엄청난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상과 달리 계속 주력으로 삼기에 BT가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후속 전차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고 이는 T-34 등판을 촉진시켰다.

    BT 전차는 할힌골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BT 전차는 할힌골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BT는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대승을 이끈 기동전의 주역이 되면서 잠시 소련군 지휘부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러일전쟁 당시의 구식 교리를 신봉하는 일본군이었다는 점과 방어력이 화염병에도 쉽게 격파 당했을 만큼 취약하다는 점은 애써 간과했다. 곧이어 벌어진 폴란드 침공전에서는 단지 무주공산을 점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니 특별한 교전 사례는 없다시피 했고 핀란드 침공전에서의 활약도 미미했다.

    독소전쟁 개전 초기인 1941년 6월 격파된 BT-7과 전사한 전차병을 살펴보는 독일군 < 출처: Public Domain >
    독소전쟁 개전 초기인 1941년 6월 격파된 BT-7과 전사한 전차병을 살펴보는 독일군 < 출처: Public Domain >

    하지만 1941년 발발한 독소전쟁에서는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살육 당했다. 경험 많은 독일군과 맞서면서 방어력이 취약한 BT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던 3호, 4호 전차였음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소련은 BT를 전량 퇴출시켜 극동으로 보내 2선급 전력으로 활용했다. 이후 전쟁 말기에 만주침공전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사실 1941년을 기점으로 전차로서의 가치는 사라졌다.


    파생형

    BT-1 : 크리스티로부터 구매한 2대의 M1930에 부여한 제식명

    BT-1 < 출처: Public Domain >
    BT-1 < 출처: Public Domain >

    BT-2 : 37mm 구경 주포를 탑재한 최초 양산형

    BT-2 < 출처: Public Domain >
    BT-2 < 출처: Public Domain >

    BT-3 : BT-2의 설계도를 미터법으로 변환해 제작한 양산형
     
    BT-4 : 병렬 기관포탑을 장착한 시험 전차
     
    BT-5 : 방어력과 화력을 향상시킨 개량형

    BT-5 < 출처: Public Domain >
    BT-5 < 출처: Public Domain >

    BT-5TU : 무전기가 탑재된 지휘전차
     
    RBT-5 : 420mm 로켓 두발을 장착한 시험 차량
     
    BT-5PKh : 잠수 주행이 가능하도록 방수 구조에 스노클링을 탑재한 시험 전차
     
    PT-1 : BT-5를 기반으로 한 수륙양용 시험 전차
     
    BT-6 : BT-5를 용접으로 제작한 시험 전차
     
    BT-7 : 엔진, 주행 장치 등이 개량된 최종 양산형

    BT-7 < 출처: Public Domain >
    BT-7 < 출처: Public Domain >

    BT-7TU : 무전기가 탑재 된 지휘전차
     
    BT-7-2 : 경사 장갑 형 포탑으로 변경한 개량형
     
    BT-7A : 76.2mm 구경 전차포를 탑재한 화력 강화형

    BT-7A < 출처: Public Domain >
    BT-7A < 출처: Public Domain >

    BT-7M : 디젤엔진 탑재 개량형
     
    OT-7 : 화염방사전차
     
    BT-SV : BT-7에 경사 장갑 포탑을 결합한 시험 전차
     
    BT-42 : 노획 BT-7 차체를 이용한 핀란드 자주포

    BT-42 < 출처: Public Domain >
    BT-42 < 출처: Public Domain >

    BT-43 : 노획 BT-7 차체를 이용한 핀란드 장갑차


    제원(BT-5)
     
    - 생산업체: KhPZ
    - 중량: 11.5톤
    - 전장: 5.58m
    - 전폭: 2.23m
    - 전고: 2.25m
    - 장갑: 6~23mm
    - 무장: 45mm 모델 32 전차포×1
               7.62mm DT 기관총×1
    - 엔진: M-5 가솔린 엔진 400마력(298kW)
    - 추력 대비 중량: 35마력/톤
    - 서스펜션: 크리스티
    - 항속 거리: 200km
    - 최고 속도: 72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BT 전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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