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M79 유탄발사기
여전히 분대의 화력을 담당하는 찰리 킬러
  • 양욱
  • 입력 : 2020.01.06 08:46
    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총류탄은 실제 전선에서 잘 활용되지 못했기에 새로운 개념의 무기가 필요했다. <출처: 미 육군>
    총류탄은 실제 전선에서 잘 활용되지 못했기에 새로운 개념의 무기가 필요했다. <출처: 미 육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보병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력은 수류탄이나 총류탄이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수류탄은 사람의 힘으로 던질 수 있는 거리가 너무 짧았고, 총류탄은 원거리에서는 쓸모가 있어도 지근거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흐지부지 잊혀졌는데, 6.25전쟁이 시작되면서 다시금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특히 마샬 보고서(Marshall report)는 유탄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전투 중인 병사들은 특별히 유탄수로 교육받은 경험이 없는 한
    스스로 유탄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로이 레일 미 육군 중령 <출처: 미 육군>
    로이 레일 미 육군 중령 <출처: 미 육군>

    마샬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육군은 1951년말부터 새로운 유탄과 그 발사기의 개발하는 '니블릭 사업(Project Niblick)'을 개시했다. 우선 애버딘 육군시험장의 탄도학연구소(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가 유탄의 개발에 나섰고, 연구 결과 40x46mm 유탄이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40mm 유탄은 가볍지만 최대 400야드까지 날아갔고, 오발이 나더라도 근거리에서는 폭발하지 않았다. 게다가 반동도 약하여 그다지 커다란 발사기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40mm탄을 발사할 유탄발사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당시 유탄발사기의 개발을 맡은 것은 스프링필드 조병창(Springfield Armory)의 로이 레일(Roy Edgar Rayle, Jr, 1916-1997) 중령으로, 그는 M14 소총과 M60 기관총의 개발을 이끌어 육군 최고의 소화기 전문가로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레일과 그의 연구진은 심지어 신호총 크기의 발사기를 만들어 40mm 유탄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 발사기의 경우 정확성에 문제가 있어 채용될 수는 없었다.

    3연장 레일을 장착한 T148 발사기. 사진은 S-3의 개량형인 T148E1이다. <출처: Public Domain>
    3연장 레일을 장착한 T148 발사기. 사진은 S-3의 개량형인 T148E1이다. <출처: Public Domain>

    그리고 1953년경 레일의 연구팀은 드디어 최초로 실전에서 쓸만한 유탄발사기를 내놓았다. T148이란 개발모델명의 신형발사기는 S-3로 불렸다. S-3 발사기는 독특하게도 40mm 유탄 3발을 레일 형태의 탄창에 장전하고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매우 독특한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으로 S-3는 '하모니카 총(harmonica gun)'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S-3는 다소 복잡한 구조로 실전에서 고장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고 규격보다 길이가 긴 유탄은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S-5 발사기는 애초에 S-3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설계였다. <출처: Public Domain>
    S-5 발사기는 애초에 S-3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설계였다.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레일은 S-3보다 좀더 단순한 구조의 발사기를 예비로 내놓았다. S-5로 명명된 이 발사기는 S-3와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하지만 레일식 탄창을 제거하고 오직 약실에 한 발만을 장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의 개발 주력은 역시 S-3였고, 최초에는 포트 베닝(Fort Benning)의 육군 위원회(Infantry Board)도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의견을 같이 했다. 1958년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모델에서 단점들을 개량한 S-6(개발모델명 T148E1)를 선보이면서 양산을 준비했다.

    육군은 복잡한 S-3 '하모니카 총'보다는 단순한 S-5 발사기를 더욱 선호했다. <출처: Public Domain>
    육군은 복잡한 S-3 '하모니카 총'보다는 단순한 S-5 발사기를 더욱 선호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육군 보병위원회는 파격적인 S-3/S-6 발사기보다는 위험성이 낮은 S-5 발사기가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이미 1957년 경에 S-5에 대하여 XM79라는 예비제식명칭을 부여했다. 여전히 레일의 설계팀은 T148 설계가 우수하다고 판단하고 추가적인 개량을 가한 T148E2를 1959년 선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육군은 XM79를 선정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가늠자의 설계 변경이후 육군은 M79의 채용을 결정했다. <출처: Public Domain>
    가늠자의 설계 변경이후 육군은 M79의 채용을 결정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60년 6월 육군 보병위원회는 시험평가 결과 XM79의 가늠자를 교체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는 결국 양산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새로운 조준기는 10월경에 완성되었고, 12월에 후속 시험평가가 성공리에 끝났다. 이에 따라 미 육군 본토사령부(Continental Army Command, 현재 육군 전력사령부 FORSCOM)는 XM79를 이제 실전배치를 결정하고 1960년 12월 15일자로 M79 40mm 유탄발사기로 채용을 결정했다.

    40mm 유탄발사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무기였다. <출처: Public Domain>
    40mm 유탄발사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무기였다. <출처: Public Domain>

    양산은 1961년 1/4분기가 되어서야 서서히 시작되었다. 개발을 담당한 것은 스프링필드 조병창이지만, 양산은 민간업체들이 담당했다. 생산능력을 갖춘 스프링필드 조병창이 M79의 생산에서 제외되자, 조병창의 민간고용자들은 분노했다. 생산을 맡은 제조사들은 액션 매뉴팩쳐링(Action Manufacturing Company, Philadelphia), 익조틱 메탈(Exotic Metal Products, Pasadena), 칸나르(Kanarr Corporation of Kingston), TRW(Thompson Ramo Woolridge of Lyndhurst) 등이었다.

    M79는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그 성능과 무기체계로서의 유용성이 입증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79는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그 성능과 무기체계로서의 유용성이 입증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79는 아예 새로운 개념의 무기체계였기 때문에 미 육군은 시간을 들여가면서 조심스럽게 배치에 나섰다. 마침 시작된 베트남전쟁은 M79의 능력을 평가하기 적절한 시험장이었다. 엄청난 열기와 습기가 총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한 후 1964년 M79는 일부의 재질변경 등을 통해 소규모로 개량되었다. 그리하여 1965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된 이후 1971년까지 10년간 모두 35만 정의 M79 유탄발사기가 생산되었다.


    특징

    M79 유탄발사기의 5가지 구성부 <출처: 미 육군>
    M79 유탄발사기의 5가지 구성부 <출처: 미 육군>

    총기 자체의 특성으로 볼때 M79는 매우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M79는 대구경 중절식의 단축형 단발총이라고 볼 수 있다. 총기 자체의 무게도 2.7kg이므로 가벼운 편이고, 전체 길이는 73cm로 휴대도 편리하다. 총기는 크게 총열부(barrel group), 개머리판(stock assembly), 총몸뭉치(receiver group), 전방부(forend assembly), 그리고  조준부(sight assembly)로 나뉜다.

    M79의 총열. 강선이 파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thetruthaboutguns.com>
    M79의 총열. 강선이 파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thetruthaboutguns.com>

    우선 40x46mm 유탄을 사용하며, 총열은 48인치(약 1.2m)당 1회전의 비율로 6조 우선으로 강선이 파여있다. 이렇게 강선을 따라 회전하면서 유탄이 발사되는데, 30m가 넘어야 안전장치가 풀리며 폭파된다. 총열의 재질로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하는 덕에 무게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총열의 길이는 14.5인치로, 400m까지 유탄을 날리기는 충분한 길이이다.  (참고로 M203 유탄발사기는 총열 길이가 12인치이다.)

    <출처: Public Domain>
    <출처: Public Domain>

    총몸은 전형적인 중절식 총기이다. 장전을 위해 약실을 열면 장전레버가 공이치기를 후퇴시키게 된다. 약실일 열려면 개머리판 윗쪽의 래치를 우로 돌리면 된다. 이렇게 약실이 열리면 탄피차개도 같이 작동하면서 앞서 사용한 탄피를 꺼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가늠자는 75m에서 375m까지 25m 단위로 조정이 가능하다. 375m의 사거리로 발사하는 경우 총기는 32도의 상향각으로 발사된다. 근거리에서는 가늠자를 펼치지 않고서도 사격할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개머리판은 원래 목재로 만들어졌지만, 베트남전 등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카본파이버 재질로 바뀌었다. 개머리판 끝에는 고무패드가 장착되는데 반동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애초에 M79 자체가 반동이 작아 다루기 편하며 명중률도 높다. 이는 40mm 유탄의 특성에 의한 것인데, 유탄 자체가 빠른 속력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발사가 편리하도록 장약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탄을 발사할 때의 총구초속은 247fps 정도로 느린 편이다.

    <출처: Public Domain>


    운용 현황

    M79 유탄발사기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개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1965년 정규군 부대인 제101 공수사단과 제173 공수여단이 베트남에 배치되면서 유탄수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M79는 4~5인으로 구성된 사격조마다 한 정이 배치되었고, 사수는 소총 등의 화기가 주어지지 않고 예비로 권총이 지급되었다.

    M79 유탄발사기는 강력한 화력을 제공하며 찰리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M79 유탄발사기는 강력한 화력을 제공하며 찰리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군은 M79 유탄발사기의 유용성에 열광했다. 블루퍼(Blooper), 썸퍼(Thumper), 썸퍼건(Thumper gun), 소대장의 야포(platoon leader's artillery) 등 다양한 별명이 붙었지만, M79의 강력한 위력을 대변하는 별명은 '찰리 킬러(Charlie killer)로, 말 그대로 베트콩(Charlie)을 섬멸하는 무기라는 뜻이었다.

    M79는 지근거리에서는 교전이 불가능 경우도 있었고, 단발의 한계까지 겹쳐 대안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M79는 지근거리에서는 교전이 불가능 경우도 있었고, 단발의 한계까지 겹쳐 대안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한계도 역력하여, 단발식임에 따라 연속적인 발사가 어려웠고, 30m까지는 탄환의 신관이 해제되지 않아 교전이 불가능함으로써 근거리 교전이 많았던 소총분대에서는 유탄수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근거리 전용의 특수유탄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병사들이 늘쌍 이를 가지고 다니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유탄수들이 유탄대신 그냥 M16 소총을 들고 전투에 나가는 일도 빈번했다.

    M203은 소총과 결합되는 방식으로 이후 유탄발사기 운용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출처: 미 육군>
    M203은 소총과 결합되는 방식으로 이후 유탄발사기 운용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출처: 미 육군>

    이렇게 전투에서 유탄발사기의 한계점이 발견되자, 소총 아래에 유탄발사기를 장착하는 방안이 제시되어 XM148이나 M203 발사기가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M79를 대체하는 유탄발사기로 M203이 1969년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M79는 일선에서 교체되었다. M16소총과 결합되는 M203은 대성공이었고, M79는 육군 예비군이나 주방위군 용으로 돌려지면서 일선에서 사라졌다.

    이라크 라마디 지역에서 M79 유탄발사기로 교전 중인 실팀 대원들 <출처: 미 국방부>
    이라크 라마디 지역에서 M79 유탄발사기로 교전 중인 실팀 대원들 <출처: 미 국방부>

    그러나 M79가 일선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테러 전쟁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미 육군 그린베레나 해군 실팀은 M79를 다시 찾게 되었다. 총기의 경향변화로 총열아래 유탄발사기를 장착하는 방식보다 별도로 휴대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는데다가, M79가 M203보다 거의 2배의 거리를 정확히 발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티어1 부대에서는 M79를 개조하여 총열과 개머리판을 짤래낸 '파이럿 건(pirate gun)'을 운용하기도 했다.


    파생형

    S-3 (T148) : 3연장 유탄발사기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개발한 시제모델로 개발모델명은 T148. 레일식 탄창에 유탄을 3발 장착하며 발사후 레일을 밀어가며 약실에 장전하는 방식이다.

    S-3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S-3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S-5 (XM79) : T148을 간략화한 모델로 단발식 유탄발사기. 애초에 S-3 사업에 대한 예비설계안으로 개발되었으나, 육군은 오히려 S-5를 선호했으며, 추후에 XM79로 재명명되었다.

    S-5 / X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S-5 / X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S-6 (T148E1) : T148의 성능을 보완한 발사기로 모델명은 T148E1이다.

    S-6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S-6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M79 : XM79를 양산화한 모델. 1961년부터 양산되어 35만정이 생산되었다. 똑같은 사양으로 한국에서는 KM79 유탄발사기가 만들어졌으며, 남아공 밀코어(Milkor)에서도 유사모델이 생산되었다.

    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M79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차이나레이크 유탄발사기 : 미 해군 차이나레이크(China Lake) 연구소에서 만든 유탄발사기로 베트남전 당시 SEAL팀에 의해 운용되었다. 만들어진 것은 극소수로 50정 이하로 알려진다.

    차이나 레이크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차이나 레이크 유탄발사기 <출처: Public Domain>

    파이럿 건 :  M79 유탄발사기의 단축모델. 총열과 개머리판을 잘라내어 대형 권총처럼 휴대가 가능토록 한 모델. 기존의 조준경을 제거하고 초소형 도트사이트를 장착하였으며, 분실방지끈을 장착했다.

     
    M79 파이럿 건 <출처: Public Domain>


    제원

    작동방식 : 중절 장전식
    구경 : 40×46mm 유탄
    길이 : 73.1 cm
    총열길이 : 36.83 cm (14.5 in)
    중량 : 2.7kg (장전시 2.93kg)
    권장발사율 : 6발/분
    유효사거리 : 350 m
    최대사거리 : 400 m
    조준기 : 조정식 가늠자


    저자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WMD 대응센터장으로 국방전략과 정책을 분석하는 한편,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신안산대 경호경찰행정학과의 겸임교수로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각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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