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마우저 M1871
볼트액션 소총시대를 개막한 마우저 최초의 소총
  • 홍희범
  • 입력 : 2019.10.18 08:47
    M1871소총 <출처: Public Domain>
    M1871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1840년대, 프로이센에서는 문자 그대로 획기적인 소총이 등장했다. 드라이제 니들 건(needle gun: Zündnadelgewehr)이다. 이 총은 세계 최초로 주요국 군대가 대량 채택한 후장식 소총으로, 유럽의 전쟁 양상을 크게 뒤바꿀 수 있는 총이었다. 비록 프로이센에서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비싸고 생산성이 좋지 않은 이 총을 대량으로 배치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이 총이 상당한 수량이 갖춰져 프로이센군의 주력이 된 1860년대부터는 확실히 유럽에서의 전쟁 양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드라이제 니들 건 <출처: Public Domain>
    드라이제 니들 건 <출처: Public Domain>

    드라이제 소총은 특히 1864년의 덴마크와의 전쟁과 1866년의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 후장식 소총이라 연사 속도가 빠른 점도 나름 장점이었지만, 진짜 장점은 발사 속도보다도 엎드리거나 앉는 등 최대한 안전한 자세를 취하거나 엄폐물 뒤에 있을 때에도 전장식 소총 이상의 발사 속도를 유지하면서 사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덕분에 특히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측은 독일과 비교해 거의 3배나 되는 사상자를 얻는 큰 피해를 입으며 패전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프로이센의 우위는 오래지 않아 상쇄되기 시작한다. 1860년대 중반 이후부터 프랑스는 같은 니들건 격발 방식이지만 더 발달한 샤스포(Chassepot) 소총을 채택해 대량 배치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아예 니들건 구조를 버리고 본격적인 탄피를 사용하는 스나이더-엔필드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엄폐한 채 계속 쏠 수 있는 것이 프로이센군의 전매특허는 아니게 된 것이다.

    샤스포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샤스포 소총 <출처: Public Domain>

    1870년에 벌어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승리를 거두고 통일된 독일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그 승리의 이면에는 한동안 프로이센군의 자랑이던 드라이제가 더 이상 자랑이 아니게 되었다는 뼈아픈 사실이 숨어있었다. 비록 프랑스군은 패배했지만 사용된 샤스포 소총은 드라이제보다 최소한 동등하거나 약간 우세했고, 만약 프로이센군이 전술적 실책을 저질렀다면 설령 승리하더라도 더욱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특히 총기 기술의 발전은 1860년대 이후 드라이제 니들건을 빠른 속도로 낙후시켰다. 잘 부러지거나 휘기 쉬운 바늘 같은 긴 공이와 가스 누출이 심한 종이 탄피는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탄약에 비해 아무래도 열세였다. 물론 종이 탄피가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그 저렴함만으로 고집하기에는 성능의 격차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새로운 후장식 장전기구를 갖춘 M1871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새로운 후장식 장전기구를 갖춘 M1871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이미 상당수의 총기 기술자들이 충분히 알고 있었고, 특히 뷔르템베르크 왕국(오늘날의 독일 바덴-뷔르템부르크 주)에 거점을 두고 있던 총기 설계자인 페터 파울 마우저(Peter Paul Mauser)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867년부터 1870년 사이에 드라이제 니들건을 대체할 새로운 총기의 설계를 진행했고, 그가 설계한 새로운 후장 단발식 소총은 1871년에 통일 독일 제국(바바리아를 제외)의 제식 소총이 된다. 이 총이 바로 마우저 Gew71, 혹은 M1871로 불리는 소총이다.


    특징

    마우저 M1871은 세계 최초의 볼트액션식 소총이라고 흔히 불리지만 사실 세계 최초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드라이제 니들건이 그 영예를 차지해야 맞다. 하지만 이 총이 마우저 볼트액션 시리즈의 최초의 소총이자 볼트액션의 형태를 본격적으로 갖춰나가기 시작한 총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높게 평가할만하다.

    M1871은 노리쇠를 열고 약실로 한 발씩 장전하는 단발식이다. <출처: Public Domain>
    M1871은 노리쇠를 열고 약실로 한 발씩 장전하는 단발식이다. <출처: Public Domain>

    M1871은 기본적으로 드라이제 니들건과 비슷해 보이는 면이 꽤 있다. 일단 단발 후장식 소총이라는 특징 그 자체가 그렇고, 볼트액션이라는 특징 그 자체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사용 탄약만 금속 탄피식(11x60mm R) 센터파이어 격발 탄약으로 바꾼 드라이제 니들건이 아닐까 오해하기 쉽다.

    노리쇠가 후퇴한 상태의 M1871/84. 탄피배출구 안쪽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노리쇠가 후퇴한 상태의 M1871/84. 탄피배출구 안쪽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M1871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총이 아니다. 일단 볼트액션이라는 아이디어는 드라이제에게서 빌려온 것이 맞고, 당시에 독일 땅에서 볼트액션식으로 뭔가를 설계하면서 이미 있던 드라이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이제의 구조를 그대로 새로운 탄약에 맞게 치수만 바꾼 것은 아니다. 일단 사용된 탄약의 약실 압력 자체가 더 높고, 또 요구되는 공이의 형태나 길이부터 드라이제와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M1871의 단면도 및 분해도 <출처: Public Domain>
    M1871의 단면도 및 분해도 <출처: Public Domain>

    그래서 마우저는 드라이제에는 없던 “폐쇄돌기(Locking Lug)”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드라이제 니들건은 발사 시 노리쇠가 후퇴되지 않게 막는 역할이 사실상 장전손잡이에만 맡겨져 있었다. 그러나 마우저는 장전손잡이가 달려있는 부분에 길고 굵직한 돌출부를 별도로 설정, 그 부분이 리시버의 홈에 끼워져 후퇴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발사가 이뤄지고 탄피를 배출해야 할 때가 되면 장전손잡이를 들어 올려 노리쇠를 회전시키고, 이때 폐쇄돌기와 리시버의 결합이 풀려 노리쇠가 자유롭게 후퇴할 수 있게 된다.

    M1871/84의 내부. 총열 아래에 있는 탄창으로부터 탄이 들어가며, 노리쇠가 왕복하면서 탄을 위로 올려보내는 엘리베이터(탄창 삽입구 덮개도 겸함)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M1871/84의 내부. 총열 아래에 있는 탄창으로부터 탄이 들어가며, 노리쇠가 왕복하면서 탄을 위로 올려보내는 엘리베이터(탄창 삽입구 덮개도 겸함)가 보인다. <출처: Public Domain>

    M1871만 해도 아직 폐쇄돌기가 하나뿐이라 그대로는 그 뒤로 속속 등장하는 고압의 무연화약 사용탄약에 적응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폐쇄돌기가 따로 필요하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이 총에서 확실히 정착하면서 그 뒤의 다른 총기 개발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M1871/84의 부품 구성도 <출처: Public Domain>
    M1871/84의 부품 구성도 <출처: Public Domain>


    운용과 보급

    M1871은 1872년에 신생 독일제국군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었다. 당시 다른 여러 후보들에 대해 M1871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1869년에 베르더(Werder)라는 후장식 소총을 채택했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독일 제국에 편입된 뒤에도 예산 문제로 새로운 총으로 바꾸지 못하고 기존의 베르더 소총을 독일 제국 육군 제식탄인 11mm탄약으로 바꾸는 개조만 해서 운용했다.

    11mm 탄약. 흑색화약에 의한 오염을 조금이라도 지나가면서 닦아내기 위해 종이가 탄두 아래에 감겨있다. <출처: Public Domain>
    11mm 탄약. 흑색화약에 의한 오염을 조금이라도 지나가면서 닦아내기 위해 종이가 탄두 아래에 감겨있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M1871을 비롯한 볼트액션 단발식 소총들은 연사 속도라는 면에서만 보면 당시의 다른 후장식 소총들 -마티니-헨리나 레밍턴 롤링블록- 에 비하면 약간 불리해 보이는 면이 있다. 노리쇠를 탄 전체의 길이만큼 앞뒤로 왕복시켜야 하는 데다 장전손잡이를 들어 올리는 동작까지 추가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내구성도 높고, 탄피 배출 등의 작동도 가장 확실하게 이뤄지는 편인데다 야전에서의 분해 정비성도 좋은 편이다.

    M1871 예거 라이플. 경보병(예거)를 위해 약간 짧게 만들어진 총이다.
    M1871 예거 라이플. 경보병(예거)를 위해 약간 짧게 만들어진 총이다.

    M1871은 당시 세계적으로 공업 제품 수출을 크게 늘려가던 독일의 제품답게 빠르게 여러 나라로 퍼져갔다. 특히 당시 막 독립해 무기를 필요로 하던 중남미 여러 나라들을 위시해 오스만튀르크, 샴 왕국(오늘날의 태국), 세르비아, 남아프리카, 중국 등에 상당수가 수출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실전은 마우저와 영국의 긴 악연(?)의 시작일 수 있는데, 당시 남아프리카에 수립된 보어인(네덜란드계 백인 이민) 정부는 독일로부터 비밀리에 다수의 M1871을 지원받아 1차 보어 전쟁(1880~1881) 당시 활용했다. 이것이 마우저 소총이 영국군을 상대로 불을 뿜은 첫 번째 전쟁이었지만, 그 뒤로 약 70여 년간 마우저는 주로 영국군의 적으로 대를 이어(?) 불을 뿜게 된다. 당시 아프리카의 전쟁이라면 빈약한 무장의 원주민을 상대하던 정도만 생각하던 영국군에게 본격적인 현대 소총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백인 군대와의 전쟁은 큰 피해를 안겨줬는데, 비록 당시 영국이 가진 마티니-헨리 소총과 M1871 사이의 성능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수백 미터의 사거리를 가진 현대적인 후장식 소총을 현지 지형에 익숙하고 사격술이 능한 보어인들이 사용하면서 게릴라전을 구사하자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제1차 보어전쟁에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한 보어인 게릴라들 <출처: Public Domain>
    제1차 보어전쟁에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한 보어인 게릴라들 <출처: Public Domain>

    이 전쟁에서 벌어진 전투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보어인 군대가 겨우 40여 명 전사한데 반해 영국군은 거의 10배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때 영국은 보어 측에 유리한 평화조약을 맺어 사실상 패전했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흐른 뒤 결국 2차 보어 전쟁을 일으켜 승리는 했지만 ‘영국판 베트남 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큰 피해를 입고 국제적으로도 큰 비난을 받게 된다.

    Kar1871 기병총(카라비너). 기병을 위해 길이를 더 짧게 하고 장전손잡이도 아래로 꺾었다. <출처: Public Domain>
    Kar1871 기병총(카라비너). 기병을 위해 길이를 더 짧게 하고 장전손잡이도 아래로 꺾었다. <출처: Public Domain>

    M1871이 게릴라전에 동원된 또 다른 사례는 1916년의 아일랜드 무장 봉기이다. 당시 아일랜드 독립 세력은 1914년에 독일로부터 1,500정의 M1871을 밀반입했는데, 이 총들이 1916년의 아일랜드 부활절 무장 봉기에 동원되어 사용된 것이다. 비록 부활절 봉기 그 자체는 진압당했지만, 이때 아일랜드인들의 여론이 독립을 찬성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결국 아일랜드 독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도 마우저 1871 소총이 일부 사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도 마우저 1871 소총이 일부 사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특히 중국에 대한 수출은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1876년부터 마우저로부터 다수의 M1871을 수입해 사용했으며 1888년부터 독일군이 M1871이나 M1871/84(후술)를 보다 발달된 M88(Gew88)로 교체하자 안 쓰게 된 이 총들을 중국이 사들이면서 이래저래 100만 정 이상이 중국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 총들은 청나라를 통해서든 독일을 통해서든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마우저 1871 소총으로 무장한 대한제국군 <출처: Public Domain>
    마우저 1871 소총으로 무장한 대한제국군 <출처: Public Domain>

    구한말 우리나라는 일시적으로 독일(프로이센) 식으로 군대를 훈련시키고 장비도 그에 맞게 도입한 일이 있다. 마우저 M1871도 이런 과정에서 상당수가 도입되었는데, 당시 도입된 수량이 적지 않은 데다 당시 정부에서 탄약 국산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총의 탄약이 중요한 국산화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우저 1871 소총으로 무장한 대한제국군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처럼 탄약의 국산화가 추진될 정도로 나름 숫자가 많이 갖춰진 총이었지만 당시의 대한 제국은 지금처럼 군용소총 제식화를 통한 효율화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 국가가 아니었다. 이 총 외에도 미국의 레밍턴 롤링블록, 스나이더 엔필드 등 여러 종류의 잡다한 총들이 들어오면서 결국 운용의 효율화는 이루지 못했고 덕분에 외형상 상당한 병력과 전력을 갖춘 군대임에도 실제로는 일본의 국권 침탈과 군대 해산을 막을 전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파생형

    M1871/84

    M1871의 대표적인 파생형. 1880년대가 되자 유럽 각국 군대는 단발에서 연발로 소총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1884년에 독일도 마우저 M1871에 탄창을 부착해 연발화한 M1871/84를 개발해 이를 일선에 실전 배치했는데, 이는 스위스에 비하면 한발 느린 것이지만 당시의 경쟁국인 프랑스나 영국, 러시아에는 한발 앞서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M1871의 연발화 버전인 M1871/84 <출처: Public Domain>
    M1871의 연발화 버전인 M1871/84 <출처: Public Domain>

    M1871/84는 M1871의 총열 아래에 튜브형 탄창을 설치해 총 안에 약실 내 1발+탄창 8발=총 9발을 운반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든 총이었다. 비록 튜브형 탄창이라는 한계로 인해 그 뒤에 나온 소총들처럼 클립을 이용해 여러 발을 한 번에 장전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당시만 해도 연발 기능은 적이 근접했을 때만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탄창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탄창 차단기(Magazine Cut off)를 사용해 기존의 단발식 소총처럼 약실에 한 발씩 장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겼기 때문에 전투 중에 급하게 여러 발을 재장전할 필요는 크지 않다고 여겨졌다.

    터키가 구입한 M1887. M1871/84의 터키 수출형이다. <출처: Public Domain>
    터키가 구입한 M1887. M1871/84의 터키 수출형이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 총은 거의 등장 직후에 구식화 되어버린다. 1886년에 프랑스가 신형 르벨 소총을 등장시키면서 먼저 연발총으로서의 우위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용 탄약이었다. 마우저는 여전히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11mm 구경의 탄약을 사용한 반면 르벨은 새로운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8mm 탄약을 채택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소총들을 순식간에 구식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위에서 본 M1887. <출처: Public Domain>
    위에서 본 M1887. <출처: Public Domain>

    이로 인해 독일군은 다급히 새로운 무연화약 사용 소총을 개발해 1888년부터 새로운 5연발 볼트액션 소총인 M1888(Gew88)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년 만에 구식화 되었어도 M1871/84는 2선급 부대나 민병대 등에게 지급되어 1차 세계대전까지 사용되었다. 또 일찍 퇴역한 이 총들의 상당수는 중국이나 베네수엘라 등 많은 나라들에 수출되기도 했다. 또 터키는 1887년에 이 총에 9.5mm마우저(9.5x60mm)탄을 장전하는 버전인 M1887을 수입, 마우저의 마지막 흑색화약 사용 소총이 되기도 했다.

    위에서 본 M1887. <출처: Public Domain>


    제원(기본형)

    길이 1.35m
    무게 4.5kg
    총열 길이 855mm
    사용탄 11x60mm R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마우저 M1871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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