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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서거 뒤 좌절된 자주국방 불길 되살려야"
노무현 정부 첫 국방장관 조영길, 12년 집필 '자주국방의 길' 출간
"군대 마구 줄이는 게 국방개혁? 지도력 갖추고 가치관 바로 세워야"

입력 : 2019.06.01 02:31

"자주국방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주권과 생존의 과업입니다. 후배들이 자주국방의 불씨를 되살려주길 기대하며 책을 썼습니다."

최근 저서 '자주국방의 길'(플래닛미디어)을 펴낸 조영길(79) 전 국방장관은 지난 29일 경기도 성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조 전 장관은 갑종 172기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2군사령관, 합참의장 등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40년간 군 생활을 해 정호근 전 합참의장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을 가장 오래 한 군인으로 꼽힌다. 군 전략 수립 등 전략기획과 전력증강 계획 수립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

‘자주국방의 길’을 펴낸 조영길 전 국방장관은 “자주국방을 하지 않으면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자주국방의 길’을 펴낸 조영길 전 국방장관은 “자주국방을 하지 않으면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조 전 장관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윤성민·조성태·이양호 전 국방장관 등이 "후배들을 위해 조 장관이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런 자료가 자꾸 쌓이는 것이 우리 군의 지적 자산을 늘려가는 것"이라며 강력히 권유한 데 따른 것이었다. 12년 동안 주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국내외 자료들을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다녔다. 미국 자료는 구글 검색을 직접 했다고 한다. 2년 전엔 다리를 다쳐 몇 달간 병원 신세를 지는 등 몇 차례 집필이 중단되는 고비도 넘겼다.

그는 책의 상당 부분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자주국방 노력에 할애했다. 1970년대 초반 수도권 고수방어 및 반격 개념이 처음으로 반영된 한국군 극비 독자 전쟁계획인 '태극72계획', 1974년 반격 개념을 포함해 전면 수정된 유엔군사령부의 새 한국 방어 작전계획인 '5027-74' 등의 수립 배경과 세부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박 대통령의 자주국방 노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1979년 10·26 서거에 대해 '자주국방에만 매달리던 사람들에겐 거친 풍랑을 헤쳐가던 작은 배가 갑자기 선장을 잃어버린 것과도 같았다'며 '언제 누가 다시 그 희망의 불길을 피워 올릴 수 있을 것인가'라고 애도했다.

2003년 10월 1일 국군의날 경축연에 참석한 노무현(오른쪽) 대통령과 조영길(그 왼쪽) 국방장관.
2003년 10월 1일 국군의날 경축연에 참석한 노무현(오른쪽) 대통령과 조영길(그 왼쪽) 국방장관. /연합뉴스

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핵개발을 했는데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죽는다는 것을 안다"며 사실상 불가능할 것임을 시사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의 국방정책과 국방개혁에 대해서도 70여쪽을 할애해 공과를 평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병력 감축 계획 등 국방개혁 2020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불과 10여쪽 분량인 결론 부분(꺼지지 않는 불꽃―다시 새로운 비상을 향해)을 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자주국방은 우리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숨죽이고 살아온 지정학적 숙명에 대한 도전"이라며 "역사적 교훈을 살려 자주국방을 하지 않으면 강대국 사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 30여년간 맹렬히 타오르던 자주국방의 불길이 꺼져가고 있다며 '이는 결코 외세의 간섭이나 견제 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문제로 국가 지도력의 결핍, 군인의 본분과 가치관의 혼란 등 두 가지를 꼽았다.

"군인들이 앞장서서 군대를 마구 줄이고 군의 전력 구조를 해체하면서 그것이 국방개혁이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군대라는 토양이 황폐해지면 자주국방은 영원히 그 뿌리를 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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