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4.2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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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2 오스프리 틸트로터 항공기

고정익과 회전익을 결합한 본격 트랜스포머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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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에 걸쳐 완성한 신개념 항공기 V-22 오스프리 틸트로터 항공기<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태평양 상공을 비행중인 MV-22 오스프리 <출처: 미 국방부>

개발의 역사

독수리의 발톱이 꺾이다 –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실패한 ‘이글 클로’ 작전

1978년 1월, 친미 성향의 세속주의 국가이던 이란의 한 일간지에 “이란과 적색, 흑색 식민지화”라는 글이 실리면서 정국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글은 한 이란 정보부 요원이 가명으로 게재했던 글인데, 이 글에서 그는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1902~1989)를 “영국의 간첩”, “미친 인도계 시인”이라고 언급하면서 그가 국가를 신식민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게 팔아먹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글을 본 이슬람 신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키다가 경찰과 충돌했고, 최소 수십 명의 학생이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간 이란 국왕, 일명 “샤(Shah)”의 철저한 세속주의 노선에 불만을 갖고 있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신학생 사망 사건을 도화선으로 삼아 국왕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호메이니의 지휘 하에 모든 시위 세력이 일원화되면서 불과 40일 후인 3월 말까지 55개의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한편 이미 1974년에 암 판정을 받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 국왕은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1978년 봄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대중 앞에 나서지 못했으며, 국가 대 혼란 상황에서 요양을 택해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그는 시위대에게 일련의 이슬람 개혁을 약속했으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결국 1979년 1월 병 치료를 이유 삼아 국외로 떠났으며, 이집트, 모로코, 바하마,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인질로 잡힌 미 대사관 직원들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팔레비 국왕이 미국을 최종 망명지로 택함에 따라 미 정부가 팔레비 국왕의 망명을 받아준 모습이 되자 시위대는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시내 미국 대사관에 난입했다. 그나마 여섯 명의 외교관과 두 명의 CIA 요원은 인근 캐나다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2개월 후 스위스를 통해 미국으로 귀환했지만, 나머지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을 포함한 52명은 인질이 되어 구금 당하고 말았다. 카터(James “Jimmy” Earl Carter, 1924~) 행정부는 바로 이듬해 말인 1980년 11월에 대선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여 사태의 조기 해결을 시도했으나 이란 측과 협상에 진전이 없었으므로 결국 1980년 4월 24일, 대통령 직권으로 이란 내 미국인 인질을 구출하는 ‘이글 클로(Eagle Claw)’ 작전을 재가했다. 사전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시작된 이 작전에는 미 육군, 델타포스(Delta Force), 미 육군 레인저(Ranger), CIA 특수활동국 등이 대거 참여했으며 총 8대의 RH-53D 시 스탤리언(Sea Stallion) 헬기가 동원됐다. 이들 헬기는 ‘데저트 원(Desert One)’으로 명명된 1차 집결지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으나, 비행 과정에서 1대는 유압계통에 문제가 생겼고, 한 대는 로터 블레이드가 깨졌으며, 또 다른 한 대는 모래 폭풍으로 기기 결함이 발생해 오직 5대만 계속 작전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구출작전에 투입된 헬기와 수송기의 충돌이 일어난 처참한 현장 <출처: Public Domain>

작전 계획 상으로는 최소 4대의 항공기만 확보되면 작전 수행이 가능했지만 가용 기체 수가 6대 이하가 되면 작전을 취소하기로 했었으므로, 현장지휘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작전 취소를 건의했고 카터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항공기들이 집결지에서 다시 떠나던 찰나 헬기 한 대가 연료와 탑승 인원이 가득 차 있던 EC-130 수송기와 충돌해 대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항공기 두 대가 폭발하고 8명의 인원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야기됐다. 훗날 이란은 미국의 구출 시도를 와해시킨 모래 폭풍이 이란을 미국으로부터 지켜준 “알라의 뜻”이라 홍보했으며, 카터 대통령은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혀 결국 1980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 후보에게 패했다.

‘이글 클로’ 작전의 교훈을 발판으로 삼은 신개념 항공기의 개발

미군은 이후 “이글 클로” 작전의 실패가 안겨준 교훈을 곱씹으며 향후 특수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다수의 전투 병력을 탑승시킬 수 있으며,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항공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이글 클로’ 작전 바로 이듬해인 1981년 부로 합동 군 수직이착륙 시험기(JVX: Joint-service Vertical Take-off/Landing Experimental) 사업을 출범했으며, 이 사업은 미 육군이 주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JVX 사업에 가장 큰 기대를 건 것은 미 해병대로, 이미 강습 작전을 실시하면서 대형 수직이착륙 수송기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핵보유국이 늘어난 상황이었으므로 미 해병대는 적국의 전술 핵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되었는데, 밀집된 병력에 적의 핵무기 한 발만 떨어지면 전 부대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으므로 유사시 빠른 속도로 병력을 분산시킬 이동 수단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미 해병대는 다수의 병력을 공중 수송 수단으로 최대한 빠르게 분산시키는 방안을 연구했으며, 그 해결책이 바로 JVX였던 것이다. 비록 미 국무부와 미 해군은 프로펠러를 “꺾어(tilt)” 헬기와 프롭기를 합친다는 JVX의 개념에 반대 의사를 보였으나, 미 의회가 JVX 개발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으므로 결국 JVX 사업은 본격적으로 막을 열게 되었다.

1960년대 개발되었던 LTV사의 XC-142 틸트윙 항공기 <출처: NASA>
JVX 사업은 1983년부터 미 해군과 해병대가 이끌게 되었으며, 사업에는 미 육군과 해군, 해병 뿐 아니라 공군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JVX 사업의 정보요청서(RFI)가 발행되자 이에 관심을 표명한 업체는 아에로스파시알(Aérospatiale, 現 에어버스), 벨(Bell) 헬리콥터, 보잉-버톨(Boeing-Vertol), 그루먼(Grumman, 現 노스롭-그루먼), 록히드(Lockheed, 現 록히드-마틴), 웨스트랜드(Westland, 現 레오나르도)였다. 미 해병대는 1982년 12월에 제안요청서(RFP)를 발행하면서 업체 간 컨소시엄 구성을 권장했으므로 보잉-버톨과 벨이 공동으로 벨 XV-15 시제기의 확대 형상을 1983년 2월 17일 자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들 외에는 아무도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보잉-버톨/벨 컨소시엄이 1983년 4월 26일 자로 미 정부와 기본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벨 XV-15 시제기가 1980년 10월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출처: NASA>

JVX 항공기는 1985년 1월 15일 자로 V-22라는 제식번호와 “오스프리(Osprey: 물수리 새)”라는 명칭이 주어졌으며, 3월까지 총 6대의 시제기가 양산됐다. 벨과 보잉은 업무를 분장하면서 벨은 날개, 엔진실, 로터, 구동체계, 미익, 측면 개폐문 및 롤스-로이스 엔진의 생산과 통합 및 최종 조립을 맡았으며, 보잉은 동체, 조종석, 항전장비, 비행통제체계 개발을 맡았다. 오스프리는 각 군별로 요구도가 달랐기 때문에 각자 형상에 따라 제식번호를 다르게 붙여 해병대용은 MV-22, 공군용은 CV-22로 명명했다. 사실 통상적으로 제식번호를 붙일 땐 VM/VC로 붙이는 게 일반적이나, CV로 번호를 붙일 경우 미 해군 항모 식별기호(CV)와 헛갈릴 수 있으므로 앞뒤를 바꾸어 붙였다. V-22의 실용 개발은 1986년부터 시작됐으며, 같은 해 3월 자로 벨-보잉 컨소시엄은 미 해군과 V-22 양산 계약을 17억 1,400만 달러에 체결했다.

‘오스프리’의 위기 – 육군의 이탈과 행정부의 반대

첫 V-22는 1988년 5월,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는 가운데 출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이때부터 V-22 사업이 난항을 겪기 시작했는데, 우선 미 육군이 당장 도입할 항공 자산에 예산 배분을 하면서 사업에서 빠져버렸다. 1989년에는 JVX 사업의 진행 여부가 상원 표결에 붙여져 간발의 차이로 취소를 면했으나 미 국방부는 미 해군에 V-22 개발을 위한 추가 지출을 중단하도록 지시했으며, 특히 딕 체이니(Dick Cheney, 1941~) 국방장관이 V-22 사업에 반대했기 때문에 사업을 취소시킬 목적으로 수차례 JVX 예산을 타 사업으로 전용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여러 연구 조사 결과 같은 운용비를 지출한다는 조건 하에선 V-22가 가장 전투 효과와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가 나옴에 따라 의회는 체이니의 시도를 중단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3년에 출범한 빌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가 이 사업을 지지했기 때문에 예산이 다시 융통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YV-22A 오스프리 시제기의 시험비행장면 <출처: NASA>
MV-22의 시제기 6대는 1989년 3월 19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나 이때에는 로터를 위로 향해 이륙 및 비행을 하는 ‘헬기 모드’로만 비행했다. ‘고정익’ 항공기 모드로 첫 비행을 실시한 것은 반 년 뒤인 9월 14일이었으며, 이듬해 말인 1990년 12월에는 미 해병 강습상륙함인 와스프(Wasp)에서 첫 해상 비행 시험을 마쳤다. 하지만 1991년 6월에 시제기 4번 기가 비행통제체계의 배선 연결 실수로 추락한 것에 이어 1992년에는 5번 기가 엔진 고장으로 추락해 한동안 오스프리의 비행이 중단됐다. 1993년 4월에는 자체 중량을 줄이고 생산 절차와 양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벨-보잉이 V-22의 설계를 일부 변경한 후 V-22B로 명명했다.
1989년 시제기의 초도비행 등 오스프리 30년사 영상<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V-22는 1993년 6월에 가서야 비행을 재개했으며, 일정이 밀린 상태로 시험 비행 절차를 마친 후 1994년 6월 미 국방부와 설계 개발 제작(EMD: Engineering, Manufacturing, Development) 계약을 체결했다. 오스프리는 1997년까지 계속 다양한 시험을 실시했으며, 실용 개발이 끝난 기체 4대는 1997년 초부터 시험 비행에 들어가 2월 5일까지 EMD 비행을 마쳤다. V-22의 저율초도생산(LRP: Low-Rate Initial Production)은 1997년 4월에 계약이 체결되어 1999년 5월 27일부터 미 해병대에 인도가 시작됐으며, 1999년 4월에는 M777 자주포를 견인하여 수송하는 시범에 성공하여 유틸리티 항공기 용도로써의 성능을 입증했다.

20년에 걸쳐 완성한 신개념 항공기의 첫걸음

하지만 2000년 초부터 두 건의 심각한 추락 사고가 발생하면서 23명의 해병대원이 사망하여 다시 비행이 금지됐으며, 결함이 있거나 불안정한 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재설계에 들어가 2005년 6월에 겨우 최종 운용 평가를 통과했다. 이때 미 해군 항공체계 사령부(US Navy Air Systems Command) 측은 추락 사고를 야기했던 치명적인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되었다고 판정을 내렸다. 미 해군 항공체계 사령부는 2011년 경부터 최고 속도를 올리고, 헬기 모드 시 실용 상승 한도를 높이며, 수송 능력 향상을 위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주문했으며, 벨과 보잉은 2012년까지 업그레이드 작업을 실시하여 최고 속도를 460km/h에서 500km/h로, 헬기 모드 시 실용 상승 한도는 3,000m에서 3,700m로 늘리고 수송 능력도 개선했다.

CH-46 시나이트(Sea Knight) 헬기와 비행 중인 MV-22 오스프리의 모습. 2015년 8월, CH-46의 퇴역 기념식이 거행된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촬영됐다. <출처: 미 해병대>
미 국방부는 2005년 9월 28일 자로 완전 가동 생산 승인을 내렸으며, 최초 연간 11대 양산으로 일정이 잡혀있던 것을 2012년까지 24대~48대로 늘렸다. 미군은 총 458대 도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 해병대가 360대, 미 공군이 50대, 미 해군이 48대를 주문했으며, 항공기 평균 단가는 개발비를 포함하여 1억 1천만 달러로 책정됐다. 기체 가격은 양산이 본격화 됨에 따라 2014년 경 약 7,30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미 해군 항공체계 사령부는 2010년 한 차례 4,200만 달러로 노후 항전체계와 네트워크를 교체하는 업그레이드 계약을 체결했으며, 2014년에는 레이시온(Raytheon) 사가 상황인지/우군 추적장비를 포함한 항전체계 교체를 실시했다. 미 해병대는 2009년 말 V-22 블록 C형 업그레이드 계약을 체결해 2012년 2월부터 기체를 인도받았으며, C형에는 신형 레이더, 임무 관리 및 전자전 장비가 추가됐다. 현재 미 해병대는 총 16개 비행대대에서 360대를 도입 중이며, 공군은 5개 비행대대에서 총 50대를 도입 중이다. 미 해군은 2018년에야 약 44대 도입 계약을 체결해 2020년부터야 기체를 인도받을 예정에 있다.
V-22 소개 영상 <출처: 보잉 유튜브 채널>


특징

오스프리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회전익의 장점과 연료 소모가 효율적이고 빠르고 오래 비행할 수 있는 고정익 항공기의 장점을 결합한 항공기이다. 오스프리는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간 틸트로터(tilt-rotor) 항공기이며, 미 연방항공청(FAA: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은 V-22 시리즈를 ‘파워드 리프트(Powered Lift)’ 항공기로 분류했다. 통상 이륙 시에는 로터를 하늘로 향해 이륙한 후, 고도가 확보되면 12초 안에 90도로 로터를 전방 회전시켜 방향을 전환한다. 반면 착륙 시에는 약 45도 가량 프로펠러를 다시 틸트시켜 감속을 한 후 착륙하게 된다.

수직 이륙 후 비행을 위해 틸트 중인 오스프리의 모습. <출처: 미 공군>
오스프리는 전투 수행, 전투 지원 수행, 전투 근무 지원 수행,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병력과 물자를 모두 나를 수 있는 다목적 항공기로 설계됐다. 오스프리는 외관에서 볼 수 있듯 동체 양옆에 장착된 로터를 어떤 방향으로 꺾느냐(tilt)에 따라 고정익/회전익의 특성이 바뀐다. 이륙 시 프로펠러를 모두 상향시키고 있으면 회전익 항공기의 로터 역할을 하여 수직 이착륙이나 호버링(hovering)이 가능하며, 공중에서 고도가 확보될 때 프로펠러를 전방으로 꺾으면 고정익 항공기의 터보프롭 엔진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활주 공간을 크게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회전익의 편리함을 살리되, 연료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최고 속도에서 한계가 분명한 회전익의 약점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반면 오스프리의 최대 단점은 틸트 기동 간의 불안정성으로 꼽힌다. 두 축의 로터만 가지고 공중에서 틸트 기동을 실시하는 것이 문제인데, 틸트 간 고도가 충분치 않거나, 균형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을 경우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송을 위해 날개를 동체와 평행으로 회전시켜놓은 MV-22의 모습. <출처: 미 해병대/Public Domain>
오스프리의 동체 43%는 복합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항모 수납을 위해 로터 날개는 90초 안에 동체와 평행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 또한 오스프리는 필요에 따라선 수직이륙을 한 후 헬기처럼 계속 프로펠러를 상향시켜 비행할 수도 있다. 오스프리에 장착된 엔진은 영국 롤스-로이스(Rolls-Royce) 제 AE 1107C 엔진이며, 구동 샤프트(drive shaft)를 통해 중앙의 공통 기어박스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만일의 경우 엔진 하나가 멈추더라도 한쪽의 출력으로 다른 쪽 엔진까지 돌리기 위한 설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스프리는 한 개의 엔진 만으로는 비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만약 중앙의 기어박스가 고장 난 상황이라면 반드시 엔진을 모두 정지시킨 후 비상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미 해군은 획득 비용 문제 때문에 AE 1107C 엔진의 대안을 물색했으며, 현재 제네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사의 GE38 엔진을 후보로 올려놓고 있다. V-22에는 기본적으로 3중 중첩 방식의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비행통제체계가 설치되어 있으며, 컴퓨터를 통해 피해 통제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 부위를 고립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미 공군용 CV-22B 오스프리의 조종석 모습. <출처: 미 공군/Don Popp>
오스프리의 조종석은 디지털 좌석으로 되어 있으며, 조종석 계기는 대형 다목적 디스플레이(MFD) 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조종사 사이에는 한 장의 대형 중앙 디스플레이 기기(CDU)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 곳에는 디지털 지도나 FLIR 영상 등이 표시된다. 항법체계로는 TACAN, VOR, ILS, GPS, INS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동체에는 기내 여압 처리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약 3,000m 이상 고도에 올라가게 되면 반드시 기내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
후방 램프(lamp)로 병력을 수납 중인 미 공군 소속 CV-22 오스프리. 오스프리는 완전무장한 병력을 24명까지 탑승시킬 수 있다. <출처: 미 공군/Chief Master Sgt. Gary Emery>
V-22에는 기본 무장이 장착되어 있지 않으나, 필요에 따라서는 7.62mm x 51mm NATO M240 기관총 한 정이나 12.7mm M2 기관총을 램프 도어에 설치할 수 있다. 기체 하부에는 IDWS(Interim Defense Weapon System)이라 명명된 기관총 터렛(turret)을 설치할 수 있으며, 이는 TV 카메라와 FLIR 이미지를 통해 표적을 획득하고, 기내에 탑승한 포수가 원격으로 사격을 통제할 수 있다. V-22는 기본적으로 장거리 수송 용도로 운용하므로 무장보다는 수납 공간이 중요하다. 하지만 필요 시에는 AGM-114 헬파이어(Hellfire) 미사일, AGM-176 그리핀(Griffin) 미사일, 합동 공대지미사일(AGGM), GBU-53/B SDB II 등을 운용할 수 있다. 이들 무장은 동체의 하드포인트에 설치할 수 있다.
F/A-18 호넷에 공중급유 중인 오스프리 틸트로터기 <출처: Bell Boeing Photo>
OV-22는 기본적으로 공중급유 능력도 갖추고 있어 수직/단거리 이착륙 항공기 위주로 운용하는 미 해병대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전망이다. 오스프리는 343km/h~460km/h 사이의 속도에서도 공중급유가 가능하도록 설계됐으며, 최대 5,400kg의 연료 탱크를 탑재할 수 있다.
미 해병대용 MV-22 소개 영상 <출처: 보잉 유튜브 채널>

운용 현황
이라크에서 이륙 전에 연료주유 중인 MV-22 오스프리 <출처: 미 국방부>
올 해로 초도비행 30주년을 맞이한 오스프리는 좁은 착륙 공간에도 병력을 내려놓을 수 있고, 우수한 수송 능력도 갖춘 항공기 도입을 원했기 때문에 미 해병대가 개발과 획득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특히 AV-8 해리어(Harrier) II+ 퇴역 후부터 도입할 F-35B 라이트닝(Lightining) II와 병행으로 비행하며 수송 능력을 발휘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공중 급유기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체의 도입을 희망했기 때문에 항속 거리가 긴 틸트로터 기의 도입을 원했다. 수송 능력과 공중급유 능력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 당시 “아시아 피벗(Asian Pibot)” 정책이 힘을 실으면서 중요해졌다. 해병대의 구상은 F-35B가 무장만 가득 싣고 연료는 다소 부족한 상태로 강습상륙함에서 이함하고, 뒤따라 이함한 V-22가 연료를 채운 채 따라붙어 필요에 따라 F-35B에게 공중급유를 실시하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특히 F-35B가 리프트 팬(Lift Fan) 때문에 연료 적재량이 적은 형상이므로 작전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 개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V-22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조기 경계경보 자산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어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직 이륙 중인 MV-22 오스프리. <출처: 미 해병대/Public Domain>
오스프리는 2축 틸트로터 항공기의 내재적인 취약성 때문에 비교적 사고가 자주 발생해왔다. 현재까지 동체가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인 사고는 42건이 발생했으며, 실전 배치 이후부터는 총 7건의 사고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최근 들어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는 줄어드는 편이지만, 사고 이력 자체가 많기 때문에 안전성이 의문시되는 것은 사실이다.
2014년 10월 1일 페르시아만에서 작전하던 오스프리의 사고장면 <출처: 미 해병대>

미 해병대

미 해병대는 2005년 6월부터 제263 해병중형헬기대대(HMM-263)가 MV-22로 기종 전환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말에 미 제2 해병기동원정군(II-MEF: Marine Expeditionary Force)이 첫 MV-22를 수령하여 HMM-263에 배치하며 부대명도 제266 해병중형틸트로터비행대대(VMM-266)로 개명했다. 미 해병대는 MV-22의 초도 운용 능력(IOC)을 2007년 6월에 선언했으며, 같은 해부터 대부분의 CH-46 시 나이트(Sea Knight)와 교체를 시작했다. MV-22는 2007년 9월부터 이라크로 전개된 와스프(USS Wasp, LHD-1) 강습상륙함에 포함되었으며, 안바르(Anbar) 주에 배치되어 정찰 임무를 소화했다. 놀랍게도 틸트 비행 시의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오스프리는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는데, 2009년까지 여러 차례 휴대용 대공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단 한 대도 적에게 격추되지 않았다.

미 해병대의 MV-22 오스프리 틸트로터기 <출처: Bell Boeing Photo>
하지만 미 회계감사원(GAO)은 2009년 기준으로 MV-22의 임무 소화율이 평균 57~68% 밖에 되지 않으며, 특히 임무를 모두 완수한 사례는 6%도 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이는 MV-22의 상황 인지 능력이 약하고, 정비 유지가 복잡하며, 함상 작전과 수송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지적됐다. 오스프리는 2009년 1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시된 코브라 앵거(Operation Cobra’s Anger) 작전에 처음 투입되어 헬만드(Helmand) 주에 1,000명의 해병대원과 약 150명의 아프간 군 병사를 투입하는 실전 임무를 소화했으며,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이 완료되자 MV-22 한 대가 투입되어 빈 라덴의 시신을 수습해 와 바다에 매장했다.
대한민국 해병이 훈련차 한국에 도착한 오스프리에서 내려서 전투하는 훈련 중이다. <출처: 미 국방부>

최근에는 미 태평양 해병사령부(MARFOR-PAC) 소속 MV-22 오스프리 4대가 CH-53, AH-1Z, UH1-Y 헬기 등과 함께 하와이에서부터 한국으로 전개되어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편제 상 해당 기체는 하와이에 주둔 중인 미 제 1 해병비행단 예하 제 363 해병 중형 틸트로터 비행대대(VMM-363) 소속으로 추정되며, 해당 부대는 한반도 유사시 하와이에서부터 직접 해병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시키는 임무를 소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공군

장거리 특수전 임무를 위해 설계된 미 공군 CV-22B의 공중급유 영상<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미 공군은 2006년 11월부터 기체를 인수하기 시작하여 제58 특수작전비행단(58th SOW)이 첫 CV-22를 인도받았다. CV-22는 예하 8 특수작전비행대대가 운용을 시작했으며, 총 6대의 오스프리는 2009년 3월 16일 자로 초도운용능력(IOC)을 선언했다. 미 공군은 온두라스 구호 작업에 CV-22를 최초 투입하여 약 20,000kg의 인도적 구호 물자를 투하했다. 미 공군은 2013년 12월 남 수단에서 미국인들을 퇴거시키기 위해 오스프리 3대를 투입했다가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무장이 안 되어 있던 CV-22는 적 공격으로 4명의 조종사가 부상을 당하고 기체가 손상을 입자 작전을 취소하고 우간다의 엔테베로 퇴거했다. 3대의 CV-22는 총 119발의 총격을 받아 비행통제체계 일부와 유압계통, 연료계통이 파손되었으므로 800km 떨어진 우간다로 비행하는 동안 계속 공중급유를 실시했다. 이 사건 후 미 공군은 CV-22 하부에 장갑판을 설치했다.
기동중인 미 공군의 CV-22B 오스프리 <출처: 미 국방부>

2014년 7월에는 동부 시리아에서 미국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델타포스(Delta Force) 대원들과 전개됐으며, 적지에 투입되어 성공적으로 적 반군을 제거했지만 인질들은 다른 곳으로 끌려간 후였으므로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미 공군은 향후 CV-22를 HH-60G 페이브호크(Pave Hawk)를 대체하여 전투 수색구조(CSAR: Combat Search and Rescue) 용도로 활용할 예정이다.

미 해군

C-2 그레이하운드를 대체하는 함상수송배달 임무기체인 CMV-22 <출처: 미 국방부>

한편 JVX 사업에 처음부터 참여한 미 해군은 정작 V-22 도입에 소극적이다. 해군은 최초 48대의 HV-22를 도입하여 C-2 그레이하운드(Greyhound) 항공기와 교대시켜 함상 수송배달(COD: Carrier On-board Delivery) 임무를 소화시킬 예정이었다. 미 해군은 2016년에 가서야 해당 기체에 CMV-22B라는 제식번호를 부여했으며, 최초 48대 도입 계획을 수정해 44대만 계약했다. CMV-22는 2018년부터 양산을 시작하여 2020년부터 인도를 시작할 예정이며, 미 해군은 초도 물량 39대분 계약을 2018년 6월에 체결했다. CMV-22B의 초도운용능력(IOC)는 2021년을 예상하고 있으며, 실전 배치는 2020년대 중반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일본 자위대의 MV-22 <출처: Twitter @TheAviationist>

현재까지 미군 외에 일본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가 2012년부터 조어도(혹은 센카쿠)와 남서제도 문제 때문에 V-22 도입을 희망해왔다. 자위대는 방어 중심의 군 특성 상 해외 원정 작전 수행 능력이 부족한 편인데, 사실상 해외 영토인 두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수송 자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총 5대의 V-22 도입 계약을 체결하여 2017년 8월에 첫 기체를 인도받았으며, 당초 계획에는 2018년 9월부터 규슈 서단의 사가현(佐賀県)에 MV-22 다섯 대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반대가 심해 아직 기지 설치 자체가 보류 중인 상태다.

기타 국가

그 외에도 이스라엘이 2009년경 V-22 도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틸트로터 기술이 미성숙한데다 CH-53 같은 수송헬기에 비해 임무 제한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2017년에 도입 계획을 백지화했으며, 대한민국도 2015년에 V-22 도입에 잠시 관심을 보였지만 더 이상 도입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2012년에 잠시 V-22 도입을 놓고 협상을 했지만 2015년 11월 어거스타 웨스트랜드(Augusta Westland) 사의 틸트로터 항공기인 AW609를 대신 도입했다. 현재 도입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인 국가는 2015년부터 관심을 표명한 인도로, 도입이 성사될 경우 약 6대까지 도입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해병대 홍보 영상: ‘혼란의 소리를 향해’ <출처: 미 해병대 OCS>


파생형

V-22A: 사전 양산 실용 개발 항공기로, 비행 시험용으로 활용했다. 해당 기체는 1993년에 재설계를 한 후부터 비공식적으로 ‘A형상’이라 불렸다. 총 3대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 웨스트 체스터(West Chester, PA)의 미 헬리콥터 박물관 및 교육센터에 전시 중이다.

V-22A 오스프리 시제3호기 <출처: Bell Boeing Photo>
CV-22B: 미 특수전 사령부(USSOCOM) 지원을 위해 도입한 미 공군용 형상. 장거리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주익에 추가 연료 탱크가 장착되고 AN-APQ-186 지형추적 레이더가 추가됐다. 또한 AN/APQ-211, AN/AAQ-24 네메시스(Nemesis) 지향성 적외선 대응체계 등도 설치됐다. 주익에 내부 추가 연료가 들어가면서 최대 연료가 2,230 리터 가량 증가했으며, 필요 시 승객 석에 최대 약 1,628리터 연료탱크를 집어넣을 수 있다. CV-22는 MH-53 페이브 로우(Pave Low) 헬기와 교대했다.
공중에서 틸트 중인 블록(Block) B/10 CV-22가 벨 헬리콥터 공장에서 비행 중 항공기 모드에서 헬기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출처: Bell Helicopter>
MV-22B: 미 해병대용 형상 해병대는 V-22 개발을 이끈 군이었으며, 이에 따라 해병대용은 병력, 물자의 강습 수송을 실시할 수 있고, 함정 및 원정 지역 해안 활주로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해병의 CH-46E와 CH-53D와 교체했다.
미 해병 소속 MV-22의 모습. <출처: 미 공군/R.J. Oriez>
CMV-22B: 미 해군용 형상으로, 항모 수송(COD: Carrier On-board Delivery) 용도로 채택했다. MV-22B와 유사하나 장거리 연료체계가 더해졌고, 고주파 무전기와 비상 방송장비가 설치되었다.
CMV-22B <출처: Public Domain>

EV-22: 조기 경보 통제용 형상 안으로, 영국 왕립해군이 현재 운용 중인 항모탑재형 시킹(Sea King) ASaC.7 헬기 대체용으로 연구를 실시했었다.
HV-22: 미 해군에서 도입을 검토했던 형상으로, 함대 군수지원 수송 뿐 아니라 전투 수색 및 구조와 특수전 부대의 침투 및 회수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미 해군은 2001년 MH-60S를 해당 목적의 항공기로 채택했다.
SV-22: 대잠전(對潛戰)용 형상안으로, 미 해군이 S-3 바이킹(Viking)과 SH-2 시스프라이트(Sea Sprite) 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1980년대에 연구했던 형상이다.


제원

- 종류: 틸트로터 항공기
- 제조사: 보잉-벨
- 승무원: 4명(조종사, 부조종사, 비행 엔지니어 2명)
- 탑승 인원: 무장 병력 최대 24명
- 전장: 11.6m
- 전고: 6.73m(프로펠러 수직 틸트 시), 5.46m (지상에서 안정장치까지)
- 전폭: 25.78m(로터 길이 포함); 19.2m (로터 제외)
- 로터 지름: 11.6m
- 디스크 면적: 212㎡
- 날개 면적: 28㎡
- 자체 중량: 15,032kg
- 탑재 중량: 21,500kg
- 최대 이륙 중량: 27,400kg
- 최대 수직 이륙 중량: 23,859kg
- 최대 활주 이륙 중량: 25,854kg
- 추진체계: 5,586 kW (6,150마력) 롤스-로이스(Rolls-Royce) 앨리슨 AE1107C 터보샤프트 엔진 X 2 
- 최고 속도: 509km/h (해수면 고도); 565km/h (고도 4,600m)
- 스톨 속도: 204km/h (항공기 모드)
- 순항 속도: 446km/h (해수면 고도)
- 전투 반경: 722km 
- 페리 범위: 3,590km (추가 내부 연료탱크 추가 시)
- 임무 범위: 양륙 사전 강습 작전 시 200~230 해리, 지상 강습 작전 시 50~69해리
- 실용 상승 한도: 7,620m
- 상승률: 11.8m/s
- 활공비: 4.5:1
- 회전면 하중: 102.23kg/㎡
- 출력 대비 중량: 427 W/kg
- 기본 무장: 7.62mm M240 기관포 X1 혹은 12.7mm M2 브라우닝 기관포 (탈착식)
         7.62mm GAU-17 미니건 X1(하부 중앙 장착/탈착식/원격 조종 방식-옵션)
-  대 당 가격: 7,210만 달러 (MV-22, 2015년 플라이어웨이 비용)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