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F-111 아드바크(Aardvark)
‘톰캣’보다 앞선 가변익기의 선구자
  • 윤상용
  • 입력 : 2018.11.28 11:06
    미 공군 소속의 F-111 아드바크 <출처: 미 공군>
    미 공군 소속의 F-111 아드바크 <출처: 미 공군>

    개발의 역사

    케네디 시절 미군의 국방개혁을 주도했던 맥나라마 국방장관 <출처: 미 국방부>
    케네디 시절 미군의 국방개혁을 주도했던 맥나라마 국방장관 <출처: 미 국방부>

    1960년 5월, 미 중앙정보국(CIA)은 소련 영내를 정찰하기 위해 고고도 정찰기인 U-2를 소련 영공으로 진입시키는 과감한 작전을 실시했다. 하지만 U-2기가 영공 진입 후 격추당하자 미국은 소련이 SA-2처럼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고고도 폭격기를 잡을 수 있는 레이더 유도식 공대지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U-2가 요격당한 고도는 지상에서 18,000m였기 때문에 SA-2의 등장은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고고도에서 비행하면 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것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탐지 면적을 줄이기 위해 동체를 작게 설계한 장거리 초음속 폭격기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고, 가급적 지상에 가깝게 붙어 레이더 탐지 고도 아래에서 비행하며 적 방공망을 제거하는 개념을 연구하게 되었다. 반면 미 해군은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장거리 폭격기 위협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고속으로 비행하는 항모 기반의 장거리 요격기 개념을 도입해 소련의 폭격기를 원거리에서 공대공 미사일로 제거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 1916~2009)는 단일 플랫폼으로 미 공군과 해군의 요구도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통합 플랫폼 개발을 통해 개발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 해군과 공군은 맥나마라 장관의 접근 방식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미 해/공군은 두 개발 사업을 통합하여 진행하도록 압력을 받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요구도를 하나로 통합한 전술전투시험기(TFX: Tactical Fighter Experimental) 사업을 발주하게 되었다.

    보잉이 제안한 TFX 설계안 <출처: Public Domain>
    보잉이 제안한 TFX 설계안 <출처: Public Domain>

    공군과 해군은 서로 상이한 요구도를 수립했지만 양측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은 TFX가 가변익(可變翼: Variable-wing)을 채택하고, 2인승으로 설계할 것이며, 쌍발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2인승’ 부분에 있어서도 공군은 이 기체가 저고도로 적진을 돌파하여 지상 공격을 할 용도였으므로 앞, 뒤로 좌석을 배치한 탠덤(tandem) 배열을 희망한 반면, 해군은 함대 방어용 고고도 요격기를 필요로 했으므로 조종사와 레이더 장교가 나란히 앉아 함께 레이더 디스플레이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좌우배치(side-by-side) 배열을 고집했다. 또한 공군은 기동성을 중시했기 때문에 비행고도에서 마하 2.5로 비행하거나 지상 21m 가량의 저고도에서 마하 1.2로 비행 시 최대 중력 7.33까지 버틸 수 있게 설계하기를 원했으나, 해군은 비행고도에서 마하 2, 고도 17m의 저고도에서 아음속으로 비행 시 6G 정도까지만 견딜 수 있는 설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해군은 장거리 레이더를 장착하기를 희망했으므로 지름 1.2m짜리 레이더 안테나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기수를 크게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양측의 주장이 상충되자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개입하여 공군 측 요구도에 중점을 두도록 했으며, 1961년 9월 1일 자로 미 공군이 TFX의 개발을 주도할 것을 지시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TFX 설계안 <출처: Public Domain>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TFX 설계안 <출처: Public Domain>

    제안요청서(RFP)는 같은 해 10월에 발행되어 보잉(Boeing), 제너럴 다이내믹스, 록히드(Lockheed), 맥도넬(McDonnell),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리퍼블릭(Republic) 사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평가단은 모든 업체의 제안서 요구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평가했으나 입찰을 중단하지 않고 보잉과 제너럴 다이내믹스 두 업체에게만 서류를 보충하고 설계를 개선하도록 요청했다. 심사 위원회는 재심사 후 보잉 측의 제안에서 엔진을 제외하고, 사출 좌석 대신 사출 캡슐(capsule)로 바꾸고, 레이더와 미사일 수납창 설계도 변경하는 조건으로 채택하도록 미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두 업체 모두 변경시킨 설계안을 제출했으나, 1962년 11월, 맥나마라 장관은 공군 및 해군용 형상 간에 공통성이 더 높다는 이유를 들어 제너럴 다이내믹스 측의 설계를 최종 낙점했다. 이에 따라 최종 승자가 된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후 1962년 12월에 TFX 사업 계약서에 서명했다. TFX 기체는 설계 시작부터 제식 명칭을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일단 공군 전략폭격기보다 크기가 작았으므로 B는 제외되었고, 해군이 선호한 “공격기(A)” 형식 기호도 논쟁 끝에 제외되어 결국 전투기를 의미하는 “F”가 붙게 되었다.

    더미(dummy) 미사일을 장착하고 시험비행중인 F-111A 전투기 <출처: 미 공군>
    더미(dummy) 미사일을 장착하고 시험비행중인 F-111A 전투기 <출처: 미 공군>

    제네럴 다이내믹스는 계약 직후 공군용인 F-111A와 해군용인 F-111B 개발에 착수했으며, 둘 다 공통적으로 프랫 앤 위트니(Pratt & Whitney) 사의 TF30-P-1 엔진을 장착했다. 두 기체는 해군 측의 요구도를 반영하여 좌우배치형 좌석을 채택하고 사출좌석 대신 탈출용 캡슐을 장착했으며, B형에 대해서만 항공모함 엘리베이터에 수납할 수 있도록 전장을 2.59m로 작게 설계하고 비행 시간 연장을 위해 날개 길이를 소폭 늘리기로 했다. 해군 형상으로 개발된 B형은 훗날 F-14에 채택된 전천후 다목적 X밴드 펄스 도플러 레이더인 AN/AWG-9과 AIM-54 피닉스(Phoenix) 미사일을 통합하기로 했으며, 공군용 A형에는 AN/APQ-113 공격레이더와 AN/APQ-110 지형추적레이더를 탑재하여 지상 공격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제네럴 다이내믹스는 함재기를 제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그루먼(Grumman)을 파트너로 선정해 F-111B 제작에 돌입했다.

    CVA-43 코랄 씨(USS Coral Sea) 항모에서 이륙하는 F-111B의 모습 <출처: 미 해군>
    CVA-43 코랄 씨(USS Coral Sea) 항모에서 이륙하는 F-111B의 모습 <출처: 미 해군>

    하지만 F-111B를 함재기로 운영할 예정이던 해군은 요구도를 중도에 변경했고, 특히 근접전(도그파이트)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지는 F-111B는 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1968년에 개발을 중단했다. F-111 시리즈는 30년 이상 운용되면서 A, B형 외에 D, E, F형이 개발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수출 형상인 C형과 폭격기 형상인 FB-111, 전자전기인 EF-111까지 다양한 파생형이 제작되었다. F-111 시리즈는 1976년에 양산이 종료되었으며, 1964년부터 1976년까지 13년 동안 총 563대가 제작되었다.

    CVA-43 코랄 씨(USS Coral Sea) 항모에서 이륙하는 F-111B의 모습 <출처: 미 해군>

    특징

    F-111은 세계 최초로 후퇴형 가변익을 채택했으며, 이를 통해 이륙 시에는 날개를 펼쳐 최대한의 양력을 얻고, 이륙 후에는 날개를 접어 최고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

    F-111은 전술기 가운데 최초로 가변익을 채택하여 고속과 저속에서 모두 우수한 비행성능을 추구했다. <출처: 미 공군>
    F-111은 전술기 가운데 최초로 가변익을 채택하여 고속과 저속에서 모두 우수한 비행성능을 추구했다. <출처: 미 공군>

    F-111D에 장착되는 APQ-130 지형 추적 레이더 <출처: 미 공군>
    F-111D에 장착되는 APQ-130 지형 추적 레이더 <출처: 미 공군>

    F-111에는 지형 추적(terrain-following) 레이더가 장착되었으며, 이 레이더는 항공기 전방 앞의 지형을 직접 탐지하여 매핑(mapping) 한 후 항공기의 비행경로를 계산하여 지형지물과 충돌하지 않게끔 한다. 이는 F-111의 운용 교리가 표면 가까이 붙어 저공비행으로 적 지상 표적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형상의 물체와 충돌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F-111은 야간뿐 아니라 악천후에서도 지상 가까이 비행하며 폭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이때문에 항공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드바크(Aardvark: 땅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F-111은 저공에서도 마하 1.2, 고고도에서도 마하 2.5로 비행이 가능한데다 약 610m 정도만 확보되면 착륙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군용으로 개발한 F-111B의 경우는 미 해군이 기대했던 요구도에 크게 못 미쳤다. 우선 속도부터 마하 1을 넘기기 쉽지 않은 데다 항공기 중량이 45톤에 달해 항모에 수납하기도 부담이 컸고, 무엇보다 기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결국 해군은 개발을 중단하고 F-14의 개발로 선회하게 되었다.

    2009년 3월에 진행된 레드 플래그(Red Flag) 연습에 참가한 호주 왕립공군 소속 F-111C의 모습. 테일 넘버 113이 새겨진 이 기체는 1973년까지 미공군이 운용하다가 퇴역시켰던 기체로, 호주공군이 중고로 구입하여 운용한 기체다. F-111은 좌석 배치가 좌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캐노피 또한 좌우로 열린다. <출처: 미 공군/Gary Emery>
    2009년 3월에 진행된 레드 플래그(Red Flag) 연습에 참가한 호주 왕립공군 소속 F-111C의 모습. 테일 넘버 113이 새겨진 이 기체는 1973년까지 미공군이 운용하다가 퇴역시켰던 기체로, 호주공군이 중고로 구입하여 운용한 기체다. F-111은 좌석 배치가 좌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캐노피 또한 좌우로 열린다. <출처: 미 공군/Gary Emery>

    최초의 양산 형상인 F-111A는 조종석이 아날로그로 설계되어 있었으므로 무장체계장교(WSO)는 표적 좌표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돌리면서 위치를 맞춰야 했고, 아직 관성항법(INS) 장치를 사용했기 때문에 조종사는 다음 목표점으로 비행할 시 스톱워치를 이용해 거리와 시간을 역산해야 했다. 아날로그 조종석은 F-111D형부터 전면 디지털식으로 개선되었으며, 디스플레이로는 다목적 중형 모노크롬(monochrome) TV 스크린이 설치되었고, 무장체계장교 자리에는 대형 TV 스크린이 설치됐다. D형에는 디지털 컴퓨터가 설치되어 사전에 입력한 비행경로를 테이프 방식으로 읽어 들일 수 있었다.

    F-111A(좌)와 F-111F(우)의 조종석 모습. <출처: (좌) 미 공군 / (우) John Rossino, Lockheed-Martin Code One>
    F-111A(좌)와 F-111F(우)의 조종석 모습. <출처: (좌) 미 공군 / (우) John Rossino, Lockheed-Martin Code One>

    F-111의 또 다른 특징은 조종사의 사출이 사출 좌석(Ejection Seat) 방식이 아니라 사출용 캡슐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F-111의 각 조종석은 1,360kg 캡슐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종사가 사출을 시도하게 되면 기수 전면부만 동체에서 분리된 후 27,000 파운드 추력의 로켓이 점화되어 동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된다. 낙하 시에는 대형 낙하산이 개방되어 캡슐 전체를 감속시키며, 지상에 도달하게 되면 에어쿠션이 바닥에 펼쳐져 완충한다. 이 에어쿠션은 만약 캡슐이 물 위에 떨어질 경우에도 부력이 발생하여 물 위에 뜨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추가 에어백을 터트리거나 조종석에 설치된 펌프로 공기를 더 집어넣어 부력을 늘릴 수도 있다.

    F-111A의 탈출 모듈(">
    F-111A의 탈출 모듈("캡슐")의 모습. F-111은 사출할 경우 동체 좌석 부위가 통째로 분리된 후 낙하산으로 지상에 내려오게 된다. <출처: 미공군/Ken LaRock>

    F-111은 폭탄을 동체 내부에 수납할 수 있는 내부 무장창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폭탄을 장착하거나 20mm M61A1 기관포, 혹은 외장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다. 폭탄을 장착할 경우 내부 무장창 내에 두 발의 340kg 급 M117 재래식 폭탄을 넣거나 한 발의 핵폭탄을 수납할 수 있으며, 해군용으로 개발했던 F-111B형은 이곳에 두 발의 AIM-54 피닉스 미사일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기관포를 설치할 경우 최대 2,084발의 탄약을 적재할 수 있었으나 F-111의 임무 성격상 폭탄 대신 기관포를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F-111에는 페이브 트랙 표적획득체계를 장착하여 정밀타격이 가능해졌다. <출처: Public Domain>
    F-111에는 페이브 트랙 표적획득체계를 장착하여 정밀타격이 가능해졌다. <출처: Public Domain>

    내부 무징창에 수납된 페이브 트랙 표적획득장치<출처: Public Domain>
    내부 무징창에 수납된 페이브 트랙 표적획득장치<출처: Public Domain>

    F-111C에는 AN/AVQ-26 페이브 트랙(Pave Track) 표적 획득체계가 회전식 거치대에 들어가 내부 무장창 안에 수납되었다. 이렇게 내부 무장창에 장착한 이유는 필요에 따라 페이브 트랙을 밖으로 꺼내놓았다가 사용하지 않을 시에는 보호를 위해 무장창 안으로 넣기 위해서였다. 페이브 트랙에는 전방 관측 적외선(FLIR) 센서와 광학 카메라, 레이저 거리 탐지/지시기가 통합되어 F-111이 뒤에 따라올 항공기에게 레이저 유도폭탄의 투하지점을 찍어줄 수 있다.

    F-111은 최대 14.3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F-111은 최대 14.3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F-111은 비행 안정성이 우수했기 때문에 훌륭한 폭격용 플랫폼으로 평가받았으며, 냉전 시기 F-111의 운용 목적 중 하나는 저고도 침투를 통한 핵 폭격이었으므로 F-111 조종사들은 의무적으로 핵무기 투하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냉전 기간 중 양 진영의 대결이 핵 전쟁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으므로 실제 핵을 투하할 사례는 없었다. 이 임무는 곧 B-1이나 B-52가 인수하게 되었다.
    F-111에는 비공식적으로 '아드바크'라는 별칭이 붙어있었으나 이 명칭이 공식화 된 것은 1996년 7월 27일, 미 공군이 주관한 F-111 퇴역행사 때였다. 미 공군은 F-111을 1967년부터 1996년까지 총 29년 간 운용했으며, EF-111 전자전기는 1998년에 전량 퇴역했다.

    F-111은 최대 14.3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운용 현황

    F-111A는 베트남전에 최초로 실전 배치되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출처: f-111.net>
    F-111A는 베트남전에 최초로 실전 배치되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출처: f-111.net>

    F-111은 1968년 베트남 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됐으며, 총 6대의 F-111A가 우선 전개됐으나 절반에 달하는 3대가 불과 55회의 임무를 못 넘기고 추락했다. 특히 3대의 추락이 모두 수평안정날개 문제로 야기됐기 때문에 미 공군은 잔여 기체를 모두 베트남에서 철수시킨 후 1억 달러를 들여 수리에 들어갔다. F-111이 다시 전선에 돌아온 것은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 폭격 작전인 1972년 라인백커 작전(Operation Linebacker) 때였으며, 이때 야간 폭격에 투입된 아드바크는 저공으로 적지에 침투해 광범위한 지역을 훑으며 베트남 군의 방공망과 활주로를 파괴함으로써 뒤따라오는 B-52의 위험을 최소화했다. 특히 아드바크는 이때 호위 전투기나 전자전기, 공중급유기 같은 타 폭격기들이 필요로 할 지원 기체를 전혀 이용하지 않아 전폭기로써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해 보였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투입된 F-111은 4,000회가 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단 여섯 대만이 격추당해 미군의 투입 항공기 중 가장 낮은 손실률을 기록했다. 북베트남 군은 저공에서 초음속으로 접근하는 F-111을 거의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으며, 이는 걸프전 때까지도 F-111의 기본 전술로 자리 잡았다.

    F형이 투입되면서부터 F-111은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했다. <출처: 미 공군>
    F형이 투입되면서부터 F-111은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했다. <출처: 미 공군>

    F-111은 베트남 전쟁 종전 뒤인 1975년에도 인도차이나반도에 전개되어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Khmer Rouge)가 나포한 컨테이너 함 S.S. 마야게즈(Mayaguez)를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사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미 공군 항공기가 훈련 비행 중이던 두 대의 F-111이었으므로 이들은 곧장 해역으로 급파됐으며, 이들은 마야게즈함을 나포한 후 캄보디아로 끌고 가고 있던 크메르 루주의 경비함을 격침했다.

    리비아 폭격을 위해 영국의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서 이륙 중인 F-111 <출처: 미 공군>
    리비아 폭격을 위해 영국의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서 이륙 중인 F-111 <출처: 미 공군>

    1986년, 리비아의 공작원들이 베를린에서 라 벨(La Belle)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두 명의 미군이 사망하자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1911~2004) 대통령은 F-111을 리비아에 전개해 무아마르 알-카다피(Muammar al-Qaddafi, 1942~2011)의 트리폴리 저택을 폭격하는 엘도라도 계곡 작전(Operation Eldorado Canyon)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 이륙한 18대의 F-111은 리비아 영공을 방어하는 25개의 SAM 포대를 피해 트리폴리 시내로 진입했으며, EF-111 레이븐(Raven) 전자전기가 리비아군의 네트워크 망을 무력화시킨 가운데 F-111이 카다피의 숙소를 폭격했다. 이 작전 당시 유럽 각국이 트리폴리 폭격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에서 이륙한 F-111은 스페인을 경유해 리비아를 폭격했으며, 왕복을 하는 동안 총 6회의 재급유를 실시했다. 이는 아직까지도 역사상 실시된 최장거리 폭격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F-111 한 대가 SAM 포대에 의해 격추당해 조종사들이 전사하고, 4대는 항전장비 문제로 무장이 발사되지 않는 고장을 겪었으며, 한 대는 귀환 중 엔진 과열로 스페인에 불시착했다. 또한 7대는 목표물에서 벗어나게 폭탄을 투하해 민가에 떨어지고 그 중 한 발은 프랑스 대사관 바로 옆에 비껴서 떨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카다피 자신은 공습 직전에 이탈리아 총리의 통보를 받고 피신하여 화를 면했다. 이 작전 이후 카다피는 반미 기치를 강화하며 록커비(Lockerbie) 사건 등 수많은 테러행위를 자행하게 됐지만, 일단 엘도라도 계곡 작전 자체는 리비아 수도 내의 카다피 저택을 폭격함으로써 미국의 능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리비아 폭격을 위해 영국의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서 이륙 중인 F-111 <출처: 미 공군>

    아드바크는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이 시작되자 1991년 1월 17일부로 이라크에 전개됐으며, 다국적군이 진격하기 전 먼저 저공으로 적지에 침투하여 이라크 군의 방공망과 주요 군사 시설을 격파했다. 또한 EF-111은 전자전을 수행하여 이라크 군의 방공 레이더를 무력화함으로써 다국적 공군의 공습 작전 간 위협을 제거해주었다. 통칭 ‘걸프전(Gulf War)’ 기간 중 미군은 66대의 F-111F와 18대의 F-111E를 전개하여 5,000회 이상의 임무를 소화시켰다. 걸프전 기간 중 F-111F의 임무 실패율은 3.2회당 1회 꼴이었으며, 66대의 F-111F가 전쟁 기간 중에 투하된 GBU-15 및 GBU-28 벙커버스터를 포함한 레이저 유도폭탄의 80%를 투하했다. 미 공군은 66대의 F-111F외에도 18대의 F-111E형을 전개했으며, 이들 기체는 약 1,500대의 이라크 군 전차와 장갑차를 제거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F-111은 1991년 걸프전에서 저공침투와 정밀타격능력을 자랑하면서 5천 소티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미 공군>
    F-111은 1991년 걸프전에서 저공침투와 정밀타격능력을 자랑하면서 5천 소티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미 공군>

    걸프전 중 제임스 덴턴(James A. Denton) 대위가 조종한 EF-111 레이븐 한 대는 다소 엉뚱한 격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이 기체는 F-15E와 F-15C의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새벽을 틈타 어둠 속에서 적지로 저공 침투하고 있었는데, 이때 이라크공군 소속 미라주(Mirage) F1 한 대가 뒤에 따라붙어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를 떨쳐내기 위해 기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채프(chaff: 미사일 교란을 위해 살포하는 금속조각)를 뿌렸다. 이에 이라크 공군 미라주 F1은 EF-111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같이 저공비행을 하며 좌우로 기체를 움직이다가 조종사가 순간적으로 상황 인지력을 잃는 바람에 지상에 충돌하고 말았다. 이 전공으로 제임스 덴턴 대위와 전자전 장교로 동승하고 있던 브렌트 브랜던(Brent Brandon, 1960~) 대위는 모두 공군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을 수여 받았으나, 미라주 F-1을 격추한 공적은 이들 뒤에서 F-15C로 추격하고 있던 로버트 그레이터(Robert Greater) 대위의 기록으로 등록됐다. 이 기록은 비무장 상태의 전자전기가 적기를 '사실상' 격추한 유일무이한 사례로 꼽힌다.

    걸프전에 투입된 EF-111 레이븐은 전자전기로 맹활약했으며, 공중전에서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다. <출처: 미 공군>
    걸프전에 투입된 EF-111 레이븐은 전자전기로 맹활약했으며, 공중전에서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다. <출처: 미 공군>

    F-111은 걸프전을 끝으로 1998년에 전량 퇴역했다. 미 공군은 F-111을 잘 활용했지만 가변익 구조 때문에 유지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높았고, 아드바크의 단거리 폭격 임무는 이미 도입된 F-15E 스트라이크 이글로, 장거리 폭격은 B-1 랜서(Lancer)로 대체가 가능했기 때문에 퇴역을 결정했다.

    2009년 레드 플래그 연습에 참가 중인 왕립 호주공군 소속 F-111C형의 모습. 호주는 F-111을 2010년에 전량 퇴역시켰기 때문에 이는 호주공군 F-111C의 마지막 레드 플래그 참가였다. <출처: 미공군/Gary Emery>
    2009년 레드 플래그 연습에 참가 중인 왕립 호주공군 소속 F-111C형의 모습. 호주는 F-111을 2010년에 전량 퇴역시켰기 때문에 이는 호주공군 F-111C의 마지막 레드 플래그 참가였다. <출처: 미공군/Gary Emery>

    F-111은 미국 외에는 유일하게 오스트레일리아가 도입하여 F-111C를 운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역시 2010년 10월부로 F-111을 전량 F/A-18E/F 슈퍼 호넷(Super Hornet)과 임무 교대를 시킨 후 퇴역 처리했다.

    2009년 레드 플래그 연습에 참가 중인 왕립 호주공군 소속 F-111C형의 모습. 호주는 F-111을 2010년에 전량 퇴역시켰기 때문에 이는 호주공군 F-111C의 마지막 레드 플래그 참가였다. <출처: 미공군/Gary Emery>


    파생형

    F-111A:

    F-111A의 출고식 장면 <출처: 미 공군>
    F-111A의 출고식 장면 <출처: 미 공군>

    F-111 초기 생산 형상. 전면 아날로그 조종석으로 설계됐다. 최초 F-111A는 TF30-P-1 엔진을 사용했으나, 대부분의 A 형상은 12,000파운드 급 TF30-P-3 엔진을 장착하여 운용 고도에서 마하 2.3까지 도달했다. A형의 최대 이륙중량은 42,000kg, 자체 중량은 20,500kg였으며, 항전장비로는 GE 사의 AN/APQ-113 공격 레이더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 사의 AN/APQ-110 지형 추적 레이더가 결합되어 장착되었다. 항법장비로는 리튼(Litton) 사의 AJQ-20 관성항법장비(INS)가 설치됐다. 총 158대가 양산됐으며, 이 중 17대는 사전 제작 형상이었다. 추후 42대는 EF-111A 레이븐(Raven) 전자전기(電子戰機)로 개조되었다. 사전 제작 형상 17대 중 3대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수해 테스트 용도로 활용했으며, 13호기는 1970년대~80년대에 진행된 아음속 항공기 기술 및 고급 전투기 기술 통합 사업용으로 운용됐다.

    F-111B:

    시험비행중인 F-111B <출처: 미 해군>
    시험비행중인 F-111B <출처: 미 해군>

    함대방공(FAD: Fleet Air Defense)용 형상으로, 미 해군의 주문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함상 운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으나 개발이 취소됐다. B형은 항모에서 이함하여 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접근하는 소련 장거리 폭격기를 요격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제네럴 다이내믹스 사는 함재기를 개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루먼(Grumman) 사 와 합작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B형은 제작 과정에서 탈이 많았던 데다 해군이 근접전을 할 수 있도록 요구도를 중간에 변경했기 때문에 결국 개발이 취소됐다. 결국 F-111B를 대신하기 위해 그루먼의 F-14 톰캣(Tom Cat)이 개발되었으며, F-111B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던 TF-30 엔진과 AIM-54 피닉스(Phoenix) 공대공미사일, AWG-9 장거리레이더는 모두 F-14에 탑재되었다.

    F-111C:

    2009년 레드 플래그 연습에서 청군 소속으로 비행 중인 왕립 호주공군 F-111C의 모습. <출처: 미공군/Gary Emery>
    2009년 레드 플래그 연습에서 청군 소속으로 비행 중인 왕립 호주공군 F-111C의 모습. <출처: 미공군/Gary Emery>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용 수출 형상. 기본적으로는 F-111A 설계를 따르고 있으나 F-111B의 길어진 주익을 채택했고, 랜딩기어가 강화됐다.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은 총 24대를 주문했지만 기체 인도가 지연되다가 1973년에 가서야 납품이 완료됐다. 앞선 A/B형에 비해 중력한도(G)가 낮았지만 F-111의 임무 성격상 이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부 기종은 1979년~1980년대에 RF-111C 정찰기로 개조됐으며, 호주공군은 미공군이 운용하던 F-111A 4대를 별도로 도입해 C형 사양으로 개조해 운용하기도 했다. 호주공군은 1990년대에 C형에 대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실시하여 통합 디지털 항전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신형 적외선 표적체계, 비행 통제 컴퓨터 등을 장착했다. 호주공군은 해당 기종을 2010년 12월까지 운용하다가 전량 퇴역시켰다.

    F-111D:

    1980년 레드플랙 훈련에 참가중인 F-111D <출처: 미 공군>
    1980년 레드플랙 훈련에 참가중인 F-111D <출처: 미 공군>

    F-111A의 업그레이드 형상으로, 앞선 형상들에 비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신형 마크(Mark) II 항전장비와 강력해진 엔진, 향상된 엔진 흡입구 기하구조 설계가 적용되었으며, 초기형 디지털식 조종석(Glass Cockpit)이 채택되어 조종석과 후방 조종석에 다목적 모노크롬 TV가 설치됐다. 또한 두 대의 지형 추적 레이더(TFR)가 설치됐으며, 비행 간 둘 중 한 대를 공격레이더 지원용으로 활용해 최대 20해리까지 탐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항법장비로는 여전히 관성항법(INS) 체계를 썼지만 도플러 항법체계가 추가되어 정확성이 높아졌다. 첫 기체는 1967년에 주문이 들어가 1970년부터 실전 배치됐으며, 1972년 초도운용 능력(IOC)을 선언했다. 총 96대가 제작되었으며, 미 제27전술전투비행단이 운용했다. 대부분의 기체는 1991년~1992년 사이에 퇴역했다.

    F-111E:

    에글린 공군기지에 전시된 F-111E 기체 <출처: Greg Goebel>
    에글린 공군기지에 전시된 F-111E 기체 <출처: Greg Goebel>

    F-111D형이 항전장비 문제로 인도가 지연되자, 공백 기간을 막기 위해 단순화하여 제작했던 형상. 엔진 흡입구 설계가 개선되었으나 A형의 TF30-P-3 엔진과 마크 I 항전장비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무장 적재 관리 체계 등 소소한 부분이 일부 향상됐다. E형은 1968년에 첫 주문이 들어가 1969년~1971년 사이에 인도되었으며, 초도 운영 능력은 1969년에 선언됐다. E형의 초도 비행은 1969년 8월 20일에 실시했으며, 총 94대가 제작되었다. E형 역시 전량 영국 어퍼 헤이포드(Upper Heyford)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20전술전투비행단에 배치됐으며, 해당 기체 일부는 1990년~1991년 ‘사막의 방패(Desert Storm)’,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에 투입됐다. 1990년대에 일부 기체 엔진을 TF30-P-109로 업그레이드 했으나, 대부분의 E형은 1995년경 미공군 항공 정비 및 재생본부(AMARC: Aircraft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Center)로 이관됐다.

    F-111F:

    오하이오 주 데이튼(Dayton, OH)시에 위치한 미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F-111F형. <출처: 미공군>
    오하이오 주 데이튼(Dayton, OH)시에 위치한 미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F-111F형. <출처: 미공군>

    F-111 시리즈의 최종 형상. 미공군 전술 공군사령부(TAC: Tactical Air Command) 요청으로 제작되었으며, 비용을 낮췄으나 더 현대화된 마크 IIB 항전장비가 설치됐다. 엔진으로는 TF30-P-100 엔진이 설치됐으며, 1970년에서 1976년 사이에 총 106대가 양산됐다. TF30-P-100 엔진은 총 25,100파운드 급으로 F-111A/E형보다 35%가량 출력이 향상됐으며, 엔진 노즐 또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하여 항력을 최소화했다. 의외로 조종석에는 다목적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지 않았으나, 대신 디지털 컴퓨터가 장착되어 비행 경로 관리 등을 처리했다. “페이브 트랙(Pave Track)” 레이저 표적획득체계가 내장되도록 설계했다. F형은 1985년~1986년 사이에 기골 보강 작업에 들어가면서 엔진 또한 전량 TF30-P-109로 교체했다. 이때 대부분의 기체에는 AVQ-26 페이브 트랙(Pave Track) 전방 관측 적외선(FLIR) 및 레이저 지시체계가 설치됐으며, 이를 통해 정밀 레이저 유도식 무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모두 다 내부 무장창에 수납했다. F-111F 최종 기체는 1996년에 퇴역했으며, 해당 기종은 전량 맥도넬-더글러스(McDonnell-Douglas: 1997년 보잉에 합병) F-15E 스트라이크 이글(Strike Eagle)과 교체됐다.

    F-111K:

    F-111K의 개념도 <출처: 제너럴 다이내믹스>
    F-111K의 개념도 <출처: 제너럴 다이내믹스>

    영국 덕스포드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TSR-2와 F-111의 모습. <출처: f-111.net>
    영국 덕스포드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TSR-2와 F-111의 모습. <출처: f-111.net>

    1965년, 영국 왕립공군이 브리티시 항공(BAC)의 TSR-2 전술폭격/정찰기 사업을 취소하면서 1967년경 약 50대를 주문한 형상. 최초 K형은 영국-프랑스 공동 개발로 진행되던 가변익 요격전투기 개발사업(AFVG: Anglo-French Variable Geometry)이 완료되면 AFVG 기체와 교체할 예정이었다. K형은 F-111A를 기본설계로 삼았으나 B형의 날개를 채택했으며, 랜딩기어, 항법장비, 화력통제장비 등이 교체되고 영국에서 자체 공급한 임무장비가 설치됐다. 또한 동체 중앙 하부에 외장 연료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게 했으며, 무장창이나 탈착식 재급유 파이프 등이 추가됐다. 하지만 영국은 1968년 화폐 평가절하 때문에 기체 가격이 대당 3백만 파운드로 뛰자 주문을 전량 취소했다. 취소 당시 두 대의 F-111K가 최종 조립 단계에 있었으므로 이 두 대만 끝까지 완성됐으며, 결국 미 공군이 인수하여 YF-111A로 명명된 후 시험비행용 기체로 운용했다.


    FB-111A / F-111G:

    편대비행중인 FB-111의 모습 <출처: 미 공군>
    편대비행중인 FB-111의 모습 <출처: 미 공군>

    미 공군 전략 공군사령부(SAC)에서 운용하기 위해 개발한 전략폭격기 형상. B-52가 퇴역하게 될 경우 차기 폭격기 도입 전까지 운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1965년 입찰을 통해 컨베이어(Convair) 사의 B-58 허슬러(Hustler) 및 B-52 초기 형상을 제치고 선정됐다. 미 공군은 최초 263대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1969년 예산 문제 때문에 수량이 76대로 축소됐다. 첫 양산 기체는 1968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1969년부터 인도가 시작되어 1971년에 납품이 완료됐다. FB-111A는 폭격에 특화되었기 때문에 보잉이 개발한 AGM-69 단거리 공격미사일(SRAM)을 내부 무장창에 두 발 수납할 수 있었으며, 주익 아래에 추가로 4발을 더 장착할 수 있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핵무기도 투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FB-111A는 총 16,100kg까지 무장을 장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FB-111A는 B-1B 랜서(Lancer) 폭격기가 도입되면서 잉여자산으로 분류됐으며, 결국 대부분 다 전술 용도로 개조되어 F-111G로 명칭이 재지정됐다. 총 34대가 1989년에 개조되었으나, 미공군 전략공군사령부가 해체되면서 해당 형상은 모두 다 미공군 전투사령부(ACC)로 이관됐다. FB-111A는 1991년에, F-111G는 1993년에 전량 퇴역했다. 이후 호주공군이 F-111C형을 보충하기 위해 퇴역한 F-111G형 15대를 추가로 도입했으나 2007년에 퇴역했다.

    AGM-69 SLAM을 투하하기 위해 내부폭탄창을 개방한 FB-111 <출처: Public Domain>
    AGM-69 SLAM을 투하하기 위해 내부폭탄창을 개방한 FB-111 <출처: Public Domain>

    EF-111A 레이븐(Raven):

    미공군에서 운용한 EF-111 ">
    미공군에서 운용한 EF-111 "레이븐(Raven)" 전자전기. <출처: 미공군>

    미 공군이 앞서 운용한 더글러스(Douglas) 사의 EB-66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기종. 그루먼(Grumman) 항공이 미 공군의 F-111A 42대를 전자전 사양으로 개조했다. 미 공군은 1998년까지 EF-111A를 운용하다가 전량 퇴역시켰다. 미익 부분이 돌출되어 있어 타 형상과 구분된다.

    미공군에서 운용한 EF-111 "레이븐(Raven)" 전자전기. <출처: 미공군>


    제원 (F-111F 기준)

    - 종류: 요격기/전폭기/전략폭격기
    - 제작사: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 승무원: 2명(조종사/무장통제장교)
    - 전장: 22.4m
    - 날개 길이: 19.2m(펼친 경우)/9.75m(접은 경우)
    - 전고: 5.22m
    - 날개 면적: 61.07㎡(펼친 경우)/48.77㎡(접은 경우)
    - 자체 중량: 21,400kg
    - 적재 중량: 37,600kg
    - 최대 이륙중량: 45,300kg
    - 영양력 항력 계수: 0.0186
    - 항력 면적: 0.87㎡
    - 종횡비: 7.56(펼친 경우)/1.95(접은 경우)
    - 추진체계: 17,900 파운드 급 프랫 앤 위트니(Pratt & Whitney) TF30-P-100 터보팬 엔진 X 2
    - 최고 속도: 마하 2.5
    - 페리 범위: 5,950km (외장 연료탱크 추가 시)
    - 상승률: 131.5m/s
    - 날개 하중: 615.2kg/㎡(펼친 경우)/771kg/㎡(접은 경우)
    - 추력 대비 중량: 0.61
    - 양항비: 15.8 
    - 기본 무장: 20mm M61A1 벌컨(Vulcan) 6연장 개틀링 기관포 x 1(무장창 수납)
    - 장착 무장: 
    ㄴ AGM-69 SRAM 열핵 공대지 미사일(FB-111A)
    ㄴ AGM-130 스탠드오프(Standoff) 폭탄
    ㄴ Mk.82/Mk. 83/Mk. 84/Mk. 117 무유도식 폭탄
    ㄴ 클러스터 폭탄
    ㄴ BLU-109 강화표적 관통탄 
    ㄴ GBU-10/12/28 페이브웨이(Paveway) 레이저 유도식 관통탄
    ㄴ GBU-15 전자광학 폭탄
    ㄴ B61/B43 핵폭탄 
    - 대당 가격: 1천30만 달러(F-111F 기준, 1973년)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F-111 아드바크(Aardvark)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했으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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