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8.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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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F-4 팬텀 II

3세대 제트기의 시대를 장식한 3군 통합 전투기의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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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광주 기지에서 이륙 중인 대한민국 공군의 F-4 팬텀 II. <출처: 미 공군/Airman 1st Class Michael Battles>

개발의 역사

1952년, 맥도넬 항공(McDonnell Aircraft)의 창업주이자 CEO인 짐 맥도넬(Jim McDonnell, 1899~1980)은 맥도넬 사의 항공역학 책임자이던 데이브 루이스(Dave Lewis, 1917~2003, 훗날 제네럴 다이내믹스 사의 이사장을 역임)를 항공기 기본설계 관리자로 임명했으며, 사내 자체 연구를 실시해 미 해군이 곧 신형 공격 전투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맥도넬 사는 해군 초음속 제공권 장악용 전투기 입찰을 실주한 직후인 1953년 8월부터 자비를 들여 전천후 공격용 전투기 개발에 돌입했다. 맥도넬은 1953년 9월, 먼저 군으로부터 제안서를 요구 받지 않은 상태로 일명 F3H-G ‘데몬(Demon)’으로 명명된 설계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맥도넬이 개발했다가 1950년에 퇴역시킨 FH-1 팬텀(Phantom)을 설계 바탕으로 삼은 장거리 전투기 겸 공격기였다. 1953년 초, 미 해군은 항모 기반 전투기 입찰을 개시했으나, 이 사업은 챈스-보우트(Chance-Vought)사의 XF8U-1이 수주하면서 패배로 막을 내렸다.

맥도넬 사의 F3H-G/H 모크업 <출처: 미 해군>
1954년 10월 18일, 맥도넬 사는 미 해군으로부터 YAH-1 시제기 2대에 대한 가계약서(LOI: Letter of Intent)를 받았으며, 1955년 5월 26일에 4명의 해군 장교가 방문하여 완전히 처음부터 달라진 새로운 요구도를 설명했다. 미 해군은 이미 A-4 스카이호크(Skyhawk)를 지상공격기로, F-8 크루세이더(Crusader)를 근접전용 기체로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이와 별도의 전천후 함대 방어용 요격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또한 미 해군은 함대 방공 전투기에 강력한 레이더 장착을 원했으므로 후방석을 늘려 레이더를 관리할 레이더 요격장교(RIO: Radar Interception Officer)를 태우기를 원했다. 아울러 신형 기체는 항모에서 이착함이 가능해야 하며, 기총 대신 공대공 무장을 장착하여 사거리가 최대 250 해리(海里)까지는 도달해야 했고, 전투정찰을 실시하다가 필요하면 공중전을 치를 수 있어야 했다.
YAH-1의 모크업 <출처: Public Domain>
이에 함재기 사업에서 물러설 의향이 없던 맥도넬 사는 기존 설계를 전천후 전폭기로 개조하면서 하드포인트를 11개로 늘렸다. 또한 단좌식에 45도 가량 후퇴한 주익을 채택하면서 기체명도 F3H-G에서 YAH-1으로 재지정했다. YAH-1으로 재지정된 기체에는 기총을 제거하고 스패로우(Sparrow) 미사일을 장착했으며, 양쪽으로 갈라진 엔진 흡입구(inlet)를 채택해 속도와 고도에 관계없이 엔진의 성능을 최적화 해 최고속도를 마하 2를 상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최고 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최초 설치를 계획한 J-65 엔진 대신 추력이 큰 J-79로 변경하기로 했는데, 이는 엔진 제조사인 GE가 최초 예상보다 J-79의 성능이 높게 나왔으므로 1955년부터 납품이 가능하게 되었기에 변경했던 것이다. 이 단계에서 문제로 지적된 것은 수평 미익이었는데, YAH-1에는 F-101 부두(Voodoo)에서도 나타났던 피치 업(Pitch up) 문제를 막기 위해 동체 아래쪽에 낮게 23도 하반각으로 설치했다. 이 문제는 이후 F-4 개발에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페튜션트 리버(Patuxent River) 해군항공기지에서 시험평가중인 YF4H-1 <출처: 미 해군>
1955년 5월, YAH-1으로 명명되어 있던 사업 명이 변경되어 F4H-1으로 변경되었으며, 쌍발 엔진에 후퇴익을 갖추고, 수평 미익에 하반각이 없는 대신 15도 가량 아래로 처진 실제 크기의 목업(mock-up: 모형)이 완성되었다. 미 해군은 NASA의 풍동시험(風洞試驗) 시설에서 이 목업으로 초음속 성능과 안정성, 그리고 통제 특성을 테스트했다. 하지만 시험 결과 초음속 비행 시 측면 방향 안정성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맥도넬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개 구조물에 12도의 기하학적 하반각을 넣었고, 수직 미익의 크기도 크게 늘렸다. 이 때부터 F4H-1의 주 임무는 미사일을 중심으로 무장한 전투기가 되었으며, F4H-IP로 제식번호를 지정한 카메라 장착형 정찰기도 함께 계획되었다. F4H-1은 기본적으로 맥도넬이 미 해군과 협업하는 형태로 개발했기 때문에 전천후 함대 방어용 전투기로 발전했으나, 최초에 개념을 잡았던 공격능력도 그대로 유지가 됐기 때문에 훗날 미 공군 전술 항공 사령부(TAC)도 주력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1958년 5월 27일 초도비행 중인 YF4H-1 시제기 <출처: Public Domain>
1955년 7월, 미 해군은 시험기로 제작한 XF4H-1 두 대와 사전 양산용인 YF4H-1 다섯 대를 주문했으며, 기체 명은 FH-1의 명칭을 승계하여 “팬텀(Phantom) II”로 명명했다. 팬텀 II는 1958년 5월 27일자로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유압계통 문제로 랜딩기어의 이탈 문제가 발생하긴 했으나 비행 자체는 매끄럽게 완료됐다. 맥도넬 사는 시험비행 후 엔진 공기 흡입구를 재설계하여 엔진 흡입구에서 경계층을 전환시키기 위한 분할 판을 추가했다.
XF8U-3 크루세이더(Crusader) III의 시험비행장면 <출처: 미 해군>
미 해군은 본격적인 입찰 구도로 들어가면서 1955년 8월에 챈스-보우트 사에도 전천후 전투기를 제안하도록 요청했으며, 챈스-보우트는 F8U-I에 신형 J-75 엔진을 장착한 단좌식 전천후 전투기인 XF8U-3 크루세이더(Crusader) III를 입찰했다. 미 해군은 두 기종의 시험 평가를 실시한 후 조종사의 작업 부하량이 높다는 단점을 보고 두 후보 기종 중 복좌식을 선택해 1958년 12월 17일부로 F-4H를 입찰한 맥도넬 사가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J79-GE-8 엔진이 이 때까지 완성이 안됐으므로 일단 최초 양산기종은 J79-GE-2 및 -2A 엔진을 장착했으며, 1959년부터는 항모 적합성 시험을 시작해 1960년 미 해군의 인디펜던스(USS Independence) 항모에서 완료했다.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면서 레이더 또한 업그레이드되어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AN/APQ-72로 교체됐으며, 필연적으로 레이더가 커짐에 따라 기수 설계도 변경됐다. 캐노피 또한 전체적인 시계를 넓히는 한편, 후방석의 폐쇄성을 해결하기 위해 재설계됐다.
AIM-7 스패로우와 AIM-9B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F-4B 함상전투기 <출처: 미 해군>
한편 미 공군 또한 동일 시기에 차기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콘베어(Convair)의 F-106 델타 다트(Delta Dart)와 F-4를 검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2009) 국방장관의 지시로 미 공군, 해군, 해병대의 3군이 공통 플랫폼을 운용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맥도넬 사의 F-4B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미 공군은 우선 미 해군의 F-4B 두 대를 빌려 일시적으로 F-110A “스펙터(Spectre)”로 명명한 후 테스트를 실시해 공군의 자체적인 요구도를 수립했으며, 요격기 능력에 중점을 둔 해군과 달리 공군은 전폭기의 능력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1962년 9월, 맥나마라 장관은 해군용 형상에는 F-4B, 공군용 형상에는 F-4C라는 제식번호를 붙였으며, F-4C는 1963년 5월 1963년 5월 27일자로 초도 비행을 실시하여 마하 2를 돌파했다.
미 공군의 F-4C 전투기 <출처: MSgt. Paul J. Harrington / 미 공군>
F-4는 20세기 최고의 전투기 중 하나로 손꼽히며, 2차 세계대전 후 제작된 서방 제트기 중 가장 많은 수가 양산된 베스트셀러다. 특히 5,100대가 넘는 팬텀의 판매 이력은 2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전쟁시기가 아닌 전후 시기에 수립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팬텀은 공중전뿐 아니라 해상 위의 전투 능력도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수많은 군사전략가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최초부터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팬텀 II는 합동타격 전투기(JSF: Joint Strike Fighter) 사업보다 수십 년 먼저 3군(해군, 공군, 해병대)이 공통적으로 채택하여 미군 사상 첫 3군 공통 플랫폼이 되었다. F-4 팬텀 II는 총 11개국이 운용하며 베트남 전쟁, 3, 4차 중동전쟁, 이란-이라크 전쟁뿐 아니라 걸프전을 통해 그 우수성을 검증 받았다.
대한민국 공군 F-4 소개영상 <출처: 대한민국 공군 유튜브 채널>

특징
미 공군 할로먼(Holloman) 공군기지에서 촬영된 F-4 팬텀 II. <출처: 미 공군>

F-4B에 장착되는 AN/APQ-72 펄스-도플러 레이더 <출처: Oren Rozen / Wikimedia>
F-4는 최초 미 해군의 요구에 맞춰 함대 방공용으로 개발된 항모 탑재용 복좌식 전투기이며, 이를 위해 조종사의 임무 부담을 줄이고자 전방석에는 조종사를, 후방석에는 레이더 요격장교(RIO)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팬텀 II에는 고급 펄스-도플러(Pulse-Doppler) 레이더가 설치되었으며, 동체 전 부위에 티타늄이 광범위하게 쓰인 점도 독특한 점이었다. 또한 동체 크기 자체가 큰데다 최대 이륙중량은 27,000kg에 달하는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속도는 무려 마하 2.23에 달하며, 상승률도 초당 210m를 올라갈 정도로 중량대비출력이 우수하다. 그 덕분에 팬텀 II는 조종사가 원할 때 적과 교전에 들어가거나 교전을 해제하는 것이 용이한 기체로 평가 받는다.
F-4 팬텀 II는 다양한 무장을 운용할 수 있어 당대 최고의 전폭기였다. <출처: 미 해군>
F-4는 무장능력도 뛰어나 하드포인트 9개에 총 8,480kg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미사일을 이용한 전투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공대공, 공대지, 유도, 무(無) 유도, 열핵(熱核) 미사일까지 모두 통합이 가능하다. 
B-83 열핵폭탄을 투하하는 F-4C 팬텀 II <출처: 미 공군>
팬텀 II의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민첩성인데, 이는 시계 밖(BVR: Beyond the Visual Range)에서 레이더 유도식 미사일을 운용하는 대부분의 항공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팬텀은 조종성이 매우 뛰어날 뿐 아니라 비행영역선도 한계에서도 비행이 쉬운 기체로 평가된다. 특히 F-4E형부터는 주익에 리딩 엣지 슬랫(Leading edge slat)이 추가되어 최고속도에서도 높은 받음각의 기동성이 크게 향상됐다. F-4의 또 하나의 문제로 꼽혔던 것은 J79 엔진이 검은 스모크를 다량으로 방출해 적의 눈에 띄기 쉽다는 점이었으나, 이 문제는 F-4S형부터 장착한 J-79-GE-10A가 무연(無煙) 연소기를 장착하면서 개선됐다.
F-4 팬텀의 조종석 계기 모습. <출처: 미 국방부/J.M. Eddins Jr.>
F-4는 현대의 요격기들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기관총을 내장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흐름 자체가 미사일을 이용한 교전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였고, 기총을 동체에 장착할 경우 발사 반동이 레이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내장시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내장 기관총이 없다는 문제는 오랫동안 중요한 문제로 지적됐는데, 기본적으로 이는 사실상 근접전 능력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 초창기에는 열 추적이나 레이더 유도식 미사일의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기총의 사용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상쇄하기 위해 미군은 교전수칙을 변경하여 대부분의 경우 장거리 미사일로 우선 공격하도록 했지만, 어쨌든 피아식별을 위해서는 일정 거리 이상 접근이 불가피했고, 적에게 접근하고 나서는 팰콘이나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쏘기엔 이미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팬텀은 레이더 성능에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관총까지도 희생했다. <출처: 미 해병대>
결국 1965년부터 미 공군은 F-4C형에 SUU-16 20mm M61A1 기관총 포드를 설치해 운용했지만, 미 공군의 F-4C 조종석에 컴퓨터로 탄도 계산이 지원되는 표적 조준기가 없어 어림짐작으로 사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일부 미 해병대용 F-4 형상은 두 개의 기관총 포드를 설치하여 두 포드의 탄도 궤적이 한 지점에서 교차하도록 하여 적중률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 시 발생하는 항력 때문에 외부에 설치한 기총은 필히 적중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F-4E형부터는 20mm M61A1 기관총을 동체 내에 내장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미 공군과 달리 해군은 교전능력보다는 장거리 방공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므로 동체 내에 기총을 장착시키지 않았다. 이 문제는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반도체와 레이더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도 미사일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초음속 기체 간의 전투에서 기총으로 교전을 벌이는 빈도 자체가 크게 낮아져 대부분의 전투기가 최소한의 자위(自衛)용도 정도로만 기총을 운용하게 되었지만, 이 문제는 베트남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심각한 논란을 낳았다.
SUU-16 건포드를 시험중인 F-4 팬텀 II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팬텀 II는 개발과정에서 다양한 기록을 수립했으며, 팬텀이 최초로 기록을 수립하거나 깬 분야는 다음과 같다.

● 급상승기록: 1959년 12월 6일, 미 해군의 로렌스 플린트(Lawrence Flint, Jr.) 중령이 XF4H-1 2번기로 14,330m 고도에서 마하 2.5로 급상승을 실시, 45도 각도로 27,430m까지 올라간 후 엔진을 정지시키고 잔여 추력만으로 30,040m에 도달했다. 플린트 중령은 기체가 다시 중력으로 21,300m까지 하강한 후 엔진을 재점화하여 귀환했다.

최고상승기록을 갱신한 XF4H-1 2번기와 플린트 중령 <출처: 미 해군>
● 비행 간 평균 최고속도: 1960년 9월 5일, F-4H-1 한 대가 500km 길이로 제한된 비행코스에서 평균 1,958.16km/h로 비행기록을 수립했다. 1960년 9월 25일에는 F4H-1F가 100km 길이의 제한 비행코스에서 평균 2,237.37km/h로 비행을 실시했다.
최고속도를 기록한 YF4H-1(기체번호 142260) 기체가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이륙 중이다. <출처: 미 해군>
● 최단시간 내 미대륙 횡단: 미 해군은 1961년 5월 24일, 미 해군항공대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팬텀 II의 미 대륙 횡단 비행을 실시했고, 리처드 고든(Richard  F. Gordon Jr.) 대위와 레이더 요격장교인 바비 영(Bobbie Young) 대위가 몇 차례 공중급유를 실시하면서 2시간 47분 만에 미 대륙을 횡단해 미 항공 레이스 트로피인 ‘벤딕스(Bendix) 트로피’를 수상했다. 벤딕스 항공 레이스는 1962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벤딕스 트로피를 수상했던 리처드 고든은 이후 NASA로 자리를 옮겨 아폴로 12호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출처: NASA>
● 왕복구간 평균 최고 기록: 1961년 11월 22일, 미 공군의 로버트 로빈슨(Robert B. Robinson) 중령이 물 분사(water injection) 장치를 설치한 팬텀 II로 비행을 실시해 왕복 32.2km 구간을 평균 2,585.086km/h로 비행하며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저공비행중인 F4H-1F <출처: 미 해군>
● 최단시간 급상승 기록: 1962년 초부터 팬텀 II로 여러 차례 기록이 수립됐으며 처음에는 3,000m까지 34.523초, 두 번째는 6,000m까지 48.787초, 세 번째는 9,000m까지 61.629초, 네 번째는 12,000m까지 77.156초, 다섯 번째는 15,000m까지 114,548초, 여섯 번째는 20,000m까지 178.5초, 일곱 번째는 25,000m까지 230.44초, 여덟 번째는 30,000m까지 371.43초에 도달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미 공군 F-4 팬텀 II 퇴역 비행 <출처: 유튜브 채널>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