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권 논란'에도, 수사 지휘하는 靑

청와대가 기무사 계엄령 문건 수사의 전면에 나서면서 월권(越權)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문건의 위법성과 관련자 사법 처리 문제와는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이 군 특별수사단 구성과 문건 제출을 직접 지시하고, 청와대가 문건을 공개한 것은 법적 권한 밖이거나 수사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 문건'과 관련해 인도를 방문 중이던 지난 10일 특별 명령을 통해 독립된 특별수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16일에는 이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건을 제출하라고 했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기무사 문건의 첨부 자료인 '계엄대비 계획 세부자료'를 추가 공개했다.

이에 대해 허영 경희대 석좌 교수는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지만 수사단 구성을 포함한 군령권 행사는 국방부 장관을 통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패싱하고 직접 수사를 지시하는 건 월권"이라고 했다. 또 "서류 제출 지시와 함께 수사 관련 문건을 직접 발표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도 제기된다. 서정욱 변호사는 "청와대 발표는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적절한 행위"라며 "청와대든 국방부든 수사에 개입하는 자체가 직권남용"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월권 논란에 대해 사안이 중대해 군 통수권자로서 나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건 내용을 소개했을 뿐이지 문건 자체의 위법 여부를 판단한 게 아니다"며 "수사는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청와대의 발표 자체는 위법적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다만 정치적 의도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선 것은 핵심 문건들을 누락한 송영무 국방장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靑 보고않고 넉달 뭉갠 송영무

송영무 국방장관이 계엄 문건을 기무사로부터 보고받은 지 4개월여 만에 청와대에 늑장 제출한 배경을 두고 의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송 장관은 올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8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과 함께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도 보고받았다. 송 장관은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6월 28일 8쪽짜리 문건은 청와대에 제출했다. 하지만 67쪽짜리 문건은 1쪽 분량으로 요약해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계엄 관련 문건을 제출하라는 지시가 나온 이후인 7월 19일에야 67쪽짜리 세부 문건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송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에서 청와대 보고 누락 이유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계엄령 문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엄청난 고뇌를 했다. 패럴림픽이 막 끝나서 남북회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였고 정상회담도 앞에 있었고 6·13 지방선거에 폭발력이 너무 큰 것이어서 염려됐다"고 밝혔다. "(그 판단에) 후회 없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도 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6월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어서 공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정무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 발표나 수사는 하지 않더라도 왜 청와대에 4개월이나 구체적인 보고를 늦췄는지는 의문이다. 송 장관은 6월 미·북 정상회담과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송 장관이 스스로 기무사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보고를 미뤘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지방선거 이후에도 기무사 댓글 및 세월호 사건 관여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돼 즉각적인 조치가 어려웠다"고 했다.


계엄 주무 아닌데, 문건 만든 기무사

기무사가 위수령·계엄 주무 부서가 아님에도 '계엄 문건'을 작성하게 된 경위를 놓고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수령·계엄 관련 업무는 합동참모본부에 주무 부서인 '계엄과'가 있어 관련 규정을 발전시키고 훈련도 하고 있다. 기무사의 경우, 계엄 시 기무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돼 있긴 하지만 주무 부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무사 문건은 합참 계엄과에서 통상의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되는 '계엄실무편람'의 내용과 전혀 상이함을 확인했다"고 밝힌 것도, 합참을 제친 기무사가 모종의 의도를 갖고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는 개연성을 부각시키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기무사 측은 "지난해 2월 국방부 회의에서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이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 전 장관은 당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수령 폐지 관련 질의를 받고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 검토를 맡겼었다. 한 전 장관은 회의에서 해당 보고서가 너무 개념적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조 전 사령관이 '우리도 (위수령·계엄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고 나서자 한 전 장관이 기무사에 작성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한 달 뒤 조 전 사령관이 한 전 장관에게 검토 문건을 보고했지만, 한 전 장관은 "이런(계엄이 필요한) 상황은 안 일어날 것"이라며 논의 종결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한 전 장관 측은 "당시 청와대나 총리실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밝혔다. 작년 2~3월 기무사가 계엄령 문건 작성을 위해 구성했던 태스크포스(TF)에는 당시 기무사 3처장이었던 소강원 현 참모장을 비롯, 영관급 장교와 군무원 등 15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