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K-1 IDF 징궈(經國)
족쇄를 달고 태어난 대만의 자체제작 전투기
  • 윤상용
  • 입력 : 2018.07.17 08:30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 후 국공내전(國共內戰)의 패전과 함께 타이완(臺灣)의 타이페이(臺北)로 천도한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중-소 관계에 금이 가면서부터 외교적 입지가 치명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은 625전쟁, 중월(中越)전쟁, 쿠바 미사일 사건 등을 거치며 조금씩 서로에 대해 불만이 누적되다가 1969년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놓고 충돌해 등을 돌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데탕트(détente)’를 표방하며 관계 개선의 손길을 내밀자 중국은 잠시 갈등하였으나, 소련이 지속적으로 중국 내 위구르 족의 반란을 부추기는 움직임이 읽히자 소련과 결정적으로 반목하게 되었고, 지구상에서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는 또 다른 ‘초강대국’인 미국 뿐이라는 계산에 도달했다. 마침 미국 또한 베트남전 때문에 국내 여론이 악화되어 있었고, 이 피로로부터 한숨을 돌리기 위해서는 소련을 계속 견제하되, 군비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계기가 필요했다. 이런 목적으로 미국의 닉슨(Richard M. Nixon) 대통령이 냉전 종식을 표방한 ‘닉슨 독트린’을 선언하자 이해관계가 맞은 미국과 중국은 ‘핑퐁외교’를 통해 1972부터 관계 정상화를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의 수교로 인하여 대만은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국과 중국의 수교로 인하여 대만은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상황에서 곤란하게 된 것은 중화민국이었다. 비록 중국 본토 건너의 외딴 섬에 임시정부를 마련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의 동맹국이자 UN 영구상임이사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대만이지만,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UN 가입이 승인되면서 안전보장이사회 영구상임이사국 자리를 뺏겼다. 이에 대만은 스스로 UN에서 탈퇴했으며, 사실상 이 순간부터 연합국의 일원으로 군림했던 중화민국의 위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중 수교에 따라 미국이 중국이 주장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대만이 중국의 변방지역으로 인정된다면, 중국이 침공을 해오더라도 내전으로 간주되어 더 이상 미국이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대만은 1955년부터 중미공동방어조약(=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상태였지만, 이는 1년 단위로 자동연장 되던 조약이었기 때문에 한쪽 당사자가 연장을 거부하면 자동으로 파기되는 형태였다. 따라서 미-중이 수교한 상황에서 이 조약을 믿을 수도 없었다. 한편 미-중은 포드(Gerald R. Ford) 행정부를 거쳐 카터(Jimmy Carter) 행정부로 이동하며 수교 분위기로 흘러가는 중이었지만, 대만의 안보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형국이 되었다.

    대만공군이 운용하던 F-104G 스타파이터 전투기 <출처: 대만공군>
    대만공군이 운용하던 F-104G 스타파이터 전투기 <출처: 대만공군>

    결국 1979년 1월 1일부로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민국(대만)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정부로 승인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대만의 안보문제를 보장받기 위해 미 의회에 엄청난 로비를 했고, 이에 의회에서 반공 사상, 2차대전 시 중화민국과 ‘연합국’으로 함께 싸운 역사, 중국 정부의 인권 및 종교 탄압 문제 등이 다시 환기되면서 중국과 수교를 하더라도 대만에 대한 보호조치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미 의회는 1955년에 체결한 중미공동방어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기존 미국과 대만의 무역, 국방, 안보를 계속 보장하고 비공식적인 대표부를 유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만관계법(臺灣關係法, Taiwan Relations Act)을 입법했으며, 이는 1979년 4월부터 발효 되었다.

    대만은 국산전투기를 개발하면서 XA-3 공격기를 우선하여 AT-3가 등장했다. <출처: 玄史生/Wikimedia>
    대만은 국산전투기를 개발하면서 XA-3 공격기를 우선하여 AT-3가 등장했다. <출처: 玄史生/Wikimedia>

    이런 환경 속에서 대만은 기존에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노스롭(Northrop)의 F-5와 록히드(Lockheed)의 F-104 스타파이터(Starfighter) 후계기종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대만관계법 때문에 향후 공격 자산은 물론, 미제 무기를 도입하기 어려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총통이던 장징궈(蔣經國, 1910~1988)는 대만 자체기술로 만든 전투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XF-6 ‘음양(陰陽)’ 전투기 계획을 추진했으며, 1980년 8월 28일부로 대만 현지 항공업체인 ‘한상항공공업 고빈유한공사(漢翔航空工業股份有限公司)’, 통칭 AIDC(Aerospace Industrial Development Corporation)에 국산 요격기 개발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AIDC는 기술 성숙도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XA-3 단좌식 공격기(훗날의 AT-3)를 먼저 개발한 후 XF-6 개발로 옮겨가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IDF(indigenous Defense Fighter)의 시제기는 1997년에 12월에 출고됐으며, 1983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
    IDF(indigenous Defense Fighter)의 시제기는 1997년에 12월에 출고됐으며, 1983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

    이 상황에서 다시 1982년 미국과 중국이 미-중 3개 합동 성명안(US-China Joint Communiqué: 中美三个联合公报)을 발표하면서 대만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가 금지되어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의 F-16 파이팅 팰콘(Fighting Falcon)이나 노스롭의 F-20 타이거샤크(Tigershark) 구매를 희망한 대만의 요청이 거부됐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기존 XF-6를 F-5의 대체기종 정도로 잡겠다는 계획에서 변경하여 본격적인 고등형 전투기로 개발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스럽게도 1982년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가 대만 보호를 목적으로 한 ‘6개 보장항(Six Assurances)’을 발표하며 대만의 자위적 방어를 목적으로 한 기술이전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대만에 대한 전투기 개발 기술 이전은 가능 해졌지만, ‘방어목적’이라는 강력한 단서가 전투기 설계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F-CK-1 IDF '징궈(經國)'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F-CK-1 IDF '징궈(經國)'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AIDC 사는 1982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IDF(Indigenous Defense Fighter)로 명명된 XF-6 프로젝트를 가동했으며, 사업명도 ‘안상(安翔)’으로 변경했다. 미국의 본격적인 기술이전이 성사됨에 따라 다수의 미국 업체가 연결되면서 크게 4개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응양(鷹揚)’ 사업은 제네럴 다이내믹스사의 기술이전을 통해 동체를 생산하고, ‘운한(雲漢)’ 사업은 개럿(Garrett: 1985년 얼라이드 시그널[Allied Signal]사에 합병되었다가 1999년 허니웰[Honeywell]에 흡수)과 기술제휴로 엔진을 개발하며, ‘천뢰(天雷)’ 사업은 스미스 산업(Smith Industries, 현재의 GE 항공), 리어 애스트로닉스(Lear Astronics: BAE 시스템즈에 합병), 리튼(Litton: 2001년 노스롭-그루먼[Northrop-Grumman]에 합병) 및 마틴-베이커(Martin-Baker)의 기술제휴로 항전장비를 제작하고, 마지막 ‘천검(天劍)’ 사업은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었다.

    2017년 신주(新竹)기지에서 촬영된 IDF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 匿名甲>
    2017년 신주(新竹)기지에서 촬영된 IDF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 匿名甲>

    IDF는 대만의 2대 총통으로 장제스(蔣介石, 1887~1975)의 장남인 장징궈 총통의 이름을 따 ‘징궈’로 명명됐다. 대만은 최초 250대의 IDF ‘징궈’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프랑스가 미라주(Mirage) 2000Ei/Di형을 판매하기로 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게다가 미국까지 이 시기를 전후해 대만이 자체적인 고급 전투기 개발 능력이 있다고 본데다, 프랑스에게 대만 시장을 통째로 빼앗길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그동안 판매를 불허해 온 F-16 블록(Block) 20형 150대를 판매하기로 해 IDF의 판매 대수가 130대로 크게 줄었다. IDF는 1994년 12월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갔으며, AIDC사는 1999년 최종 130번기가 출고되자 IDF의 생산라인을 폐쇄했다. F-16과 미라주 2000의 갑작스러운 도입에 따라 대만 공군 내에서 IDF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긴 하나, 여전히 유사시 대만 영공을 중심으로 한 저고도 방공 임무와 도해(渡海)작전을 실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해군을 함정을 상대하는 대함임무를 맡고 있어 앞으로도 한동안 현역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2017년 신주(新竹)기지에서 촬영된 IDF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 匿名甲>



    특징

    IDF ‘징궈’는 쌍발엔진이라는 점과 엔진 인렛(inlet) 흡입구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외양 자체는 F-16과 상당히 흡사하다. IDF에는 APG-67 레이더에 기반한 GD-53 레이더가 장착되어 있으며, 실제 성능도 두 레이더가 흡사하다. 해당 레이더는 펄스-도플러 방식으로 총 15개 모드를 갖추고 있으며, 이 중 8개가 공대공, 7개가 공대지로 구성되어 있다. 기체가 하방탐지 중일 때는 약 39km까지 탐지되며, 상방탐지를 실시할 시 57km까지 내다볼 수 있다. 또한 IDF에는 개선형 레이더 경고 수신기(IRWR: Improved Radar Warning Receiver)가 장착되어 있다.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얇고 긴 외양과 달리 IDF에는 두 발의 엔진이 장착되어 있으며 최고 속도로는 음속을 돌파해 마하 1.2까지 낼 수 있으나, 엔진 추력이 낮은 편인 것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장착된 6,100 파운드급 F125-70 터보 팬 엔진은 징궈의 업그레이드 형인 C/D형부터 개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DF 개발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엔진이었는데, 앞서 말한 대만관계법 때문에 GE의 F-404나 프랫 앤 위트니(Pratt & Whitney)의 F100 같은 최신엔진은 미국의 수출허가(E/L)가 나오지 않았고, 판매가 가능한 GE J85나 J79엔진은 신형기체와 성능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업체와 유럽업체 대부분이 IDF 사업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대만은 유일한 대안으로 개럿과 공동 투자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개발사업에는 개럿과 AIDC 외에 스웨덴 볼보(Volvo), 이탈리아의 피아지오(Piaggio)까지 가세했으나, 사업 중반에 볼보와 피아지오가 철수함에 따라 AIDC와 얼라이드 시그널(개럿을 흡수) 둘이서만 합작사인 ITEC (International Turbofan Engine Company)사를 설립해 민수용 엔진을 군수용으로 전환한 TFE-1042-70을 개발하여 IDF에 탑재시켰다. 미국은 이 사업 간 중국을 의식하여 미국 업체의 참여를 가능한한 최대로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자 노력했으며, IDF의 공세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FADEC(Full-Authority Digital Engine Control)을 장착하여 특정 고도 이하의 속도에 제약을 걸었다.

    F-CK-1A의 조종석. <출처: Wikimedia Commons/Jozef Tóth>
    F-CK-1A의 조종석. <출처: Wikimedia Commons/Jozef Tóth>

    동체 설계도 미국의 수출 통제 때문에 제네럴 다이내믹스는 최소 설계 컨설팅 작업에만 참여하고 이후 개발, 생산, 마케팅에는 전혀 참가하지 않았으나 이 마저도 대만관계법 문제 때문에 설계 상에 여러가지 제약이 가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IDF의 항속거리로, ‘징궈’의 항속거리는 유사등급의 기체인 KAI T-50 골든이글(Golden Eagle)에 비해 59%에 불과하며 전투반경은 129km~166km 정도다. 심지어 외장탱크 없이 애프터버너를 사용한다면 실제 전투 가능 시간은 3분 미만에 불과하다. 이는 중화민국 공군(대만 공군)이 중국 본토 내륙까지 선제공격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한 조치로, IDF가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자국 영공에 대한 무장 정찰 임무와 필요 따른 제한적인 중국 본토 해안지역 타격 수준이다. IDF는 기본적으로 F-5보다 비행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F-104보다 가속성이 높고, F-5보다 선회반경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비행 중인 F-CK-1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비행 중인 F-CK-1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징궈에는 동체 하부에 2개, 각 주익 아래에 1개, 그리고 윙팁(wingtip)에 1개씩을 포함하여 총 6개의 하드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징궈는 대만이 자체 개발한 무장 위주로 통합하고 있다.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텐첸(天劍)-I은 적외선 시커(seeker)로 표적을 추적하며, 최대 사거리 약 5km에 달한다. 텐첸-II는 능동형 레이더 유도방식으로 약 22kg의 탄두를 장착하고 최대 60k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공대함 공격용 무장으로는 능동 및 수동 레이더 유도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텐첸-IIA 공대함 대방사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 대함 공격용도로는 텐첸-IIA 외에도 이스라엘의 ‘가브리엘(Gabriel)’ 미사일에 대응하는 슝펑(雄風)-II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으며, 슝펑-II는 최대 사거리 80km에 최대 225kg 반(半) 철갑 고폭탄두를 장착한다.


    운용 현황

    DC-3 항공기와 비행 중인 중화민국 공군 제 427 비행단 소속 IDF <출처: 중화민국 공군/Military News Agency>
    DC-3 항공기와 비행 중인 중화민국 공군 제 427 비행단 소속 IDF <출처: 중화민국 공군/Military News Agency>

    IDF 징궈는 수출이 추진된 적이 없기 때문에 대만이 유일한 운용 국가이며, 현재 중화민국 공군에서 6대의 시제기를 포함한 131대를 운용 중이다. 최초 IDF의 적으로 상정했던 적기는 중국 AVIC의 젠(歼)-8(J-8)이었으나, 엔진 성능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기체가 가벼운 편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J-8은 처음부터 F-16 및 미라주 2000 등급의 기체로 간주됐기 때문에 90년대 말부터 실제 F-16과 미라주 2000이 도입되자 징궈의 위상도 함께 낮아졌다.

    위에서 내려다 본 IDF의 비행 모습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위에서 내려다 본 IDF의 비행 모습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한때 징궈의 뒷좌석에서 화력통제장비를 제거하고 실전 전투기 적응용 훈련기(LIFT: Lead-In Fighter Trainer)로 개조하자는 안이 나왔으나, 교육훈련용 기체로 적합하지 않은데다 개조를 가하고 나면 유사시 실전기로 쓸 수가 없다는 단점 때문에 계획 자체가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징궈는 최초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한 경량형 전투기로 설계된 데다 연료 효율성도 높지 않고, 심지어 탑재중량과 항속거리, 전투 가능 시간의 제약이 커 차라리 이들 기체를 교육훈련용으로 전환하고, 전력 공백을 막을 실전기로는 중고 F-16C/D 형 등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 중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IDF의 비행 모습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파생형

    F-CK-1 A/B ‘징궈(經國)’

    IDF의 최초 형상. 단좌형인 FSD A1형은 1989년 5월 28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복좌형인 SFD B1형은 1990년 7월 10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1992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갔으며, 최초 중화민국 공군은 256대에 대한 소요를 제기했으나 1991년까지 총 130대만 양산되었다. 2011년 한 차례 중기 수명연장 사업을 실시했다.

    이륙 중인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이륙 중인 IDF <출처: 중화민국 국방부/중화민국 공군>

    F-CK-1 C/D ‘웅잉(雄鷹)’

    F-CK-1 A/B형을 개조하여 더 출력이 큰 엔진을 장착하고, 개선된 항전체계와 랜딩기어, 화력 통제 체계를 장착하며 스텔스(stealth) 설계를 일부 반영한 형상. 천검-II 공대공 미사일의 추가 장착과 미션 컴퓨터 개선, 능동형 피아식별장치(AIFF), 지형 참조 레이더도 개선했다. AIDC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두 대의 시제기가 제작되었으며, 연료량도 추가 771kg를 탑재할 수 있게 변경됐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중량 문제 때문에 스텔스 동체 개발은 제외시켰다.

    2007년 공개된 F-CK-1C/D 웅잉 <출처: Chang-Song Wang / Wikimedia.org>
    2007년 공개된 F-CK-1C/D 웅잉 <출처: Chang-Song Wang / Wikimedia.org>

    2007년 3월 첸수이비엔(陳水扁) 총통이 F-CK-1D형의 시험비행에 참관했으며, 2009년 말에는 대만 국방부와 AIDC가 약 4년에 걸쳐 $5억달러로 71대의 F-CK-1A/B를 C/D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계약했다. 2011년까지 총 71대의 A/B 형이 업그레이드되었으며, 2015년 경부터 타이중(臺中)에 위치한 제 427 대만 전투비행대대 소속 56대의 A/B형을 업그레이드 실시 중이다.



    제원

    - 종류: 다목적 전투기
    - 제조사: 대만 AIDC (Aerospace Industrial Development Corporation)
    - 승무원: 1명
    - 전장: 14.48m
    - 전고: 4.42m
    - 날개길이: 9m
    - 날개면적: 24.2㎡
    - 자체중량: 6,500kg
    - 총 중량: 9,072kg
    - 최대이륙중량: 9,526kg
    - 추진체계: 6,100 파운드 추력 허니웰(Honeywell)/ITEC F125-70 터보팬 엔진 X 2 (애프터버너 시 9,500 파운드)
    - 최고속도: 마하 1.8
    - 항속거리: 1,100km
    - 전투반경: 70~90해리
    - 실용상승한도: 16,800m
    - 추력대비중량: 1.01
    - 내부무장: 20mm M61A1 6연장 개틀링 기관포 X 1
    - 무장:
    ㄴ 텐첸(天劍) I 단거리 적외선 유도식 공대공 미사일 x 4
    ㄴ 텐첸 II 중거리 레이더 유도식 공대공 미사일 X 4
    ㄴ 천검(天劍) II 레이더 유도식 공대공 미사일 x 4
    ㄴ 만검(萬劍, 완첸) GPS 유도식 공대지 순항 미사일
    ㄴ 웅풍(雄風, 슝펑) 공대함 미사일
    - 항전장비: GD-53 X밴드 펄스 도플러 레이더
    - 대당가격: 약 $2,500만 달러(A형) /3천만 달러(B형)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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