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훈장 이야기
군대문화 이야기(6) 용사의 징표, 용맹의 증거
  • 윤상용
  • 입력 : 2018.06.18 08:37
    2차 세계대전 중 발지 대전투에 참전한 한 병사가 수여받은 동성훈장과 전상장(퍼플하트)의 모습. (미 공군/Senior Airman Apryl Hall)
    2차 세계대전 중 발지 대전투에 참전한 한 병사가 수여받은 동성훈장과 전상장(퍼플하트)의 모습. (미 공군/Senior Airman Apryl Hall)

    프랑스의 황제이자 스스로 프랑스 대육군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는 “병사들은 화려한 색깔의 훈장 하나를 위해 오래, 그리고 열심히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를 위해 죽고 사는 군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훈장이 병사들의 전투의지와 동기를 부여하는 원천 중에 하나라 여겼다. 그는 “내게 부하들을 포상할 수 있는 충분한 수의 훈장만 주어진다면 어떤 전쟁이든 이겨 보일 수 있다” 고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 나폴레옹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의 훈장이 오늘날의 훈장이 되기까지

    군인에게 있어 훈장이 영광스러운 이유는 하나 하나의 훈장 자체가 그의 영웅적인 공적이나 임무의 성공, 개인적인 성취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훈장은 이미 전투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한 고대 이집트 구왕조(B.C. 2686~2181) 때부터 수여한 기록이 있으며, 로마제국의 경우 특별한 장식의 목걸이를 수여하거나 날을 제거한 장식용 창 등을 수여했다. 또한 동양권에서는 교서(敎書)를 수여하거나 훈공 내용을 금속에 새긴 녹권(錄券)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렇듯 훈장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장신구나 하사품을 지급받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며, 오늘날 형태의 “훈장”이 등장한 것은 중세 시절인 17세기 때로 추정된다.

    로마군의 훈장. 직책에 따라 목에 걸거나 갑옷에 붙이는 형식으로 휴대했다. <출처: Roland zh @ wikimedia.org>
    로마군의 훈장. 직책에 따라 목에 걸거나 갑옷에 붙이는 형식으로 휴대했다. <출처: Roland zh @ wikimedia.org>

    ‘훈장(勳章)’은 표창(Decoration), 약장(ribbon), 그리고 메달(medal)의 개념으로 구분된다. 표창은 개인에게 주어진 상훈을 말한다. 이 표창을 상징하는 것이 ‘메달’이며, 통상 금속 재질의 몸체에 화려한 천을 달아 가슴에 패용하도록 제작되어 있다. 하지만 항상 메달을 모두 가슴에 패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물론 온 몸에 주렁주렁 패용하는 국가도 있다), 메달의 알록달록한 천 부분만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축약하여 패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약장(略章)’이다. 물론 예복을 입거나 완전하게 정복을 갖춰 입을 경우에는 메달을 모두 패용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정복을 입거나 근무복을 착용하는 경우에는 무거운 훈장 대신 약장만 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통과 명예로 시작된 훈장

    정확하게 어떤 연유로 오늘날 훈장의 모습이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추측에는 중세 봉건제 시절 평소 신분과 계급 차이를 나타낼 표식을 달기 시작한 것이 훈장의 기원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수여되고 있는 훈장 중 가장 오래된 것 중에는 1792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제정된 ‘비르투티 밀리타리(Virtuti Militari)’ 훈장이 대표적이다. 폴란드의 스타니스와프 2세(Stanisław II, 1732~1798)가 제정한 이 훈장은 왕실이나 지휘관에게 충성심을 보였거나 개인적으로 영웅적 업적을 달성한 이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훈장 제정 불과 3년 뒤인 1795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붕괴된 데다 폴란드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러시아에게 분할 점령되면서 1918년까지 지도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123년동안 수여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점령국 치하에서 패용조차 금지 당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훈장은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제정한 레종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으로, 특정한 신분에 상관없이 전쟁 중 무공을 세웠거나 프랑스를 위해 20년간 헌신한 이에게 수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1813년에 수여된 비르투티 밀리타리 금십자 훈장 (Wikipedia.org)
    1813년에 수여된 비르투티 밀리타리 금십자 훈장 (Wikipedia.org)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또 다른 훈장은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십자훈장(Victoria Cross)과 미국의 명예대훈장(Medal of Honor)도 있다. 1856년 크림전쟁(The Crimean War, 1853~1856)을 계기로 제정된 빅토리아 십자훈장은 영국의 훈장체계에서 가장 높은 순위의 훈장이며, 영국 군인으로써 “적 앞에서” 뛰어난 용기를 증명한 이에게 수여된다. 연대장 이상만이 상신할 수 있고, 수훈자의 공훈을 증명할 세 명 이상의 증인이 확보되어야만 수여가 가능한 빅토리아 십자훈장은 1856년에 제정된 이래 현재까지 1,355명에게 수여되어 왔으며,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에게만 628개가 수여되었고 비교적 최근인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용사에게도 3개가 수여된 훈장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십자훈장 (Nottinghamshire County Council)
    영국의 빅토리아 십자훈장 (Nottinghamshire County Council)

    한편 미국 최초의 훈장은 남북전쟁 중인 1861년 에드워드 타운센드(Edward D. Townsend, 1817~1893) 중장이 윈필드 스콧(Winfield Scott, 1786~1866) 미 육군 총사령관(1903년 육군참모총장직 신설과 함께 폐지)에게 제정을 건의했던 ‘용맹훈장(Medal of Valor)’ 이다. 하지만 ‘훈장’ 제도 자체가 유럽식 전통이라 생각한 스콧 장군은 이를 거부했다. 이듬해 그가 은퇴하자 기드온 웰즈(Gideon Wells, 1802~1878) 해군장관이 해군 훈공표창을 위해 ‘용맹훈장’을 채택했으며, 같은 해 말 링컨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면서 정식 상훈 제도의 일부가 되었다. 미 육군은 한 해 뒤인 1862년 상원 군사위원장 헨리 윌슨(Henry Wilson, 1812~1875) 의원의 입안으로 “명예대훈장”을 제정했으며, 1863년부터 육군장관이 6명의 미 연방군(북군) 자원병들에게 수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가 정착했다. 명예대훈장은 용맹훈장과 통합되어 1915년부터 해군, 해병대, 해안수비대원까지 수여대상이 확장되었으며, 1956년에는 갓 창군한 미 공군까지 수여대상이 되면서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대통령 자유대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의회 황금훈장(Congressional Gold Medal)과 더불어 미군 최고 등급의 훈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인 제임스 맥클러한(James McCloughan) 씨에게 명예 대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미 육군/Eboni Everson-Myart)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인 제임스 맥클러한(James McCloughan) 씨에게 명예 대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미 육군/Eboni Everson-Myart)

    그 밖에 대표적인 훈장으로는 사르디니아 왕국이 제정하여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에서 수여하고 있는 군사 용맹 황금훈장(Medaglia d’oro al Valore Militare), 1812년에 제정된 에스파니아 왕국의 산 페르난도 십자훈장(Real y Militar Orden de San Fernando),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1813년 프러시아 왕국 때 제정한 독일 철십자 훈장(Eisernes Kreuz), 1815년에 제정된 네덜란드 빌헬름 무공훈장(Militaire Willems-Orde)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의 독특한 모양과 표식, 다양한 색상의 리본을 더하여 특징을 갖는다.

    상처 입은 용사들을 위로하는 ‘전상장’

    훈장 중에는 다른 훈장들과 수여 성격이 약간 다른 훈장도 있다. 대부분 국가의 훈 포장 제도에 포함되어 있는 전상장(戰傷章)이 그것으로, 이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경우에 주어지는 특수한 성격의 훈장이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미군의 퍼플하트(Purple Heart) 훈장이다. 이 훈장의 기원은 미국이 독립하기 전인 대륙군(Continental Army) 시절에 수여된 전공휘장(Badge of Military Merit)으로, 이는 1782년 8월에 단 한 차례 수여되었을 뿐이지만 사실상 일반 병사에게 수여된 세계 최초의 훈장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전공휘장은 처음 세 명의 병사들에게 수여된 후 20세기까지 단 한번도 수여되지 않아 미국의 건국 이후 서류 상으로만 존재하는 훈장으로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찰스 서머럴(Charles Summerall, 1867~1955) 미 육군참모총장은 1927년 해당 훈장을 되살리려 시도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 철회했고, 서머럴 장군의 후임 총장이 된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이 1932년에 전공휘장을 부활시켰으나 아예 훈장의 디자인과 명칭까지 전부 변경했다. 마침 이 해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초대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이었기 때문에 훈장에는 그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으며, 충성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의미로 “보라색 심장(퍼플하트)”을 훈장의 명칭으로 삼았다. 퍼플 하트는 상징성을 담아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2월 22일에 첫 수여식을 거행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전투 임무 수행 중 부상을 입은 이에게 수여되고 있다.

    퍼플하트 훈장의 케이스. 훈장과 약장, 핀까지 모두 세트로 지급된다. <출처: Lcpl. Jeffrey A. Cosola / 미 해병대>
    퍼플하트 훈장의 케이스. 훈장과 약장, 핀까지 모두 세트로 지급된다. <출처: Lcpl. Jeffrey A. Cosola / 미 해병대>

    흥미로운 사실은 퍼플하트가 2차 세계대전 말엽에 150만 개 이상 제작되어 오늘날까지 수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태평양 전쟁 말, 일본 본토 진공이 임박해지면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일본 본토 침공 계획인 “다운 폴(Downfall)” 작전을 입안했다. 이 계획은 오키나와(沖縄)에서 규슈(九州)를 점령하는 ‘올림픽(Olympic)’ 작전, 그리고 혼슈(本州)의 간토(關東) 지방에 상륙한 후 도쿄(東京)까지 진격하는 ‘코로넷(Coronet)’ 작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미 미군은 오키나와 전투 과정에서 처절하게 최후까지 싸우는 일본 군인과 민간인을 목격했기 때문에 일본 본토 전투는 끔찍하고도 처절한 유혈극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군은 아군 전투병력만 50만에서 150만 명 이상이 손실될 것으로 예측했으며, 일본 민간인은 500만에서 1,000만 명까지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갑자기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날린 후 일본을 향해 남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 시점에서 일본의 후방은 사실상 비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그냥 놔둘 경우 소련이 먼저 일본을 점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미국은 소련 남하 전 일본의 항복을 강요하기 위해 ‘다운폴’ 작전을 취소하고 원자탄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1945년 8월에 터진 두 발의 원자탄과 함께 일본이 항복하면서 기나긴 전쟁이 종결되었다.

    1945년 미군이 입안했던 '다운폴' 작전 계획도. (Public Domain)
    1945년 미군이 입안했던 '다운폴' 작전 계획도. (Public Domain)

    앞서 말했듯 미군은 만약 ‘다운폴’ 작전을 강행할 경우 전사자만 최대 150만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사전에 1,506,000개의 ‘퍼플하트’를 제작해 뒀었다. 이 훈장은 이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발생한 부상자들에게 계속 수여되어 왔으나 아직까지도 2차 세계대전 말에 제작한 수량을 전부 소진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약 7~8만개 가까이가 남아있다. 인류 최대의 비극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처절한 전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훈장 속의 명예가 낳은 비극

    각각의 훈장은 수여에 필요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명예 대훈장은 우선 동료 혹은 타인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 경우를 가장 높게 평가하며, 미군의 기본 복무 정신인 ‘전사의 기풍(Warrior Ethos)’이 강조하는 4대 덕목을 지키면서 공훈을 세운 이를 추천할 수 있다. ‘전사의 기풍’이 강조하는 4대 덕목은 ‘임무를 우선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절대로 쓰러진 동료를 두고 가지 않는다’이다. 명예 대훈장은 수훈 대상자에 대한 상신이 올라가면 철저하면서도 꼼꼼한 검증과정을 거쳐 수여하게 되며, 반드시 미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2차 세계대전 중 상사로 참전하여 명예대훈장을 수여받은 브루스 크랜들(Bruce P. Crandall) 씨가 미 참전용사의 날 행사에 초청받아 행사 상석인 육군참모총장(좌, 레이먼드 오디어노 대장) 옆에 착석 중인 모습. 명예대훈장 수훈자는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행사에서 상석에 자리를 마련받는다. (미 국방부/Staff Sgt. Teddy Wade)
    2차 세계대전 중 상사로 참전하여 명예대훈장을 수여받은 브루스 크랜들(Bruce P. Crandall) 씨가 미 참전용사의 날 행사에 초청받아 행사 상석인 육군참모총장(좌, 레이먼드 오디어노 대장) 옆에 착석 중인 모습. 명예대훈장 수훈자는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행사에서 상석에 자리를 마련받는다. (미 국방부/Staff Sgt. Teddy Wade)

    이 훈장을 수여 받으면 월 1,200달러의 연금과 평생 항공기, 열차 등의 교통수단이 무료가 되고, 군 복지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계 자손 한 명을 사관학교에 특례 입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명예 대훈장의 진정한 가치는 국가가 수훈자에게 보여주는 존경과 예우에 있다. 이 훈장의 수여자는 대통령 취임식을 비롯한 주요 국가 행사에 초청받을 뿐 아니라 계급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상석에 자리를 마련 받는다. 또한 수훈자가 사망하게 되면 알링턴(Arlington) 국립묘지에 묻히게 될 뿐 아니라 비석에는 명예 대훈장 수훈자임을 표시하는 표식이 새겨진다.

    제레미 부르다 제독 (미 해군/Public Domain)
    제레미 부르다 제독 (미 해군/Public Domain)

    이렇듯 훈장의 진정한 가치는 훈장에 포함된 ‘명예’에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명예’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미 제 25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제레미 마이클 부르다(Jeremy Michael Boorda, 1939~1996) 제독(대장)은 일개 수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해군 최고 자리인 해군참모총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980년경 한 행사에 약장을 패용한 정복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이것이 15년도 더 지나서 갑자기 문제가 되었다.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로 뉴스위크(Newsweek)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데이비드 핵워스(David Hackworth, 1930~2005) 기자가 부르다 제독의 옛 사진 한 장에서 그가 실제로 수훈 받지 않은 약장을 패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문제의 훈장은 미 해군/해병 공로훈장(Navy/Marine Corps Commendation Medal)과 해군/해병 근무유공훈장(Navy/Marine Corps Achievement Medal)으로, 당시 사진에서 부르다 제독은 두 약장 위에 ‘실제 전투 행위에 참전하여 수여 받았음’을 표시하는 “V”자(“Valor”의 머릿 글자) 핀을 달고 있었다.

    직접적인 전투 임무로 훈장을 수여받았음을 의미하는 V자 핀이 추가된 미 해군/해병 공로훈장의 모습. (미 해군성/Public Domain)
    직접적인 전투 임무로 훈장을 수여받았음을 의미하는 V자 핀이 추가된 미 해군/해병 공로훈장의 모습. (미 해군성/Public Domain)

    사실 부르다 제독은 이미 핵워스 기자가 문제의 사진을 지적하기 1년 전부터 해당 약장에서 V자 핀을 떼고 착용해왔지만, 어쨌든 그는 과거에 ‘허위로 명예를 도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결국 군 최고 지휘관이 명예를 사칭했다는 비난에 시달리던 부르다 제독은 1996년 5월 16일, 자신의 가족과 공보장교 앞으로 각각 유서를 한 통씩 남긴 후 집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가 사망한 후 이 문제는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던 엘모 줌월트(Elmo Zumwalt, 1920~2000) 제독의 지시와 군 상훈규정이 충돌해 생긴 문제로 밝혀졌다. 베트남 전 당시 줌월트 제독은 부르다에게 해당 훈장을 수여하면서 V자 핀을 포함시키라고 지시했으나, 이는 수여자의 지시로 붙는 것이 아니라 상훈 규정상 ‘직접적인 전투행위에 참가하여 공훈을 세웠다’는 증명서가 붙어야 수훈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구한말에 정착한 훈장제도와 오늘날의 훈장제도

    한국에서 처음 제정된 현대적인 훈장 상훈 제도는 1900년 4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제정한 훈장 조례(勳章條例)다. 서양의 군사제도를 도입한 대한제국은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 서성대훈장(瑞星大勳章),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 태극장(太極章), 자응장(紫鷹章), 팔괘장(八卦章)의 6단계 제도를 제정했으며, 각 훈장은 표훈원(表勳院)에서 대상자를 집계하여 매년 1월과 7월 의정관 회의를 거쳐 수여했다. 하지만 대한제국군 자체가 1907년에 해산되었고, 3년 뒤인 1910년에는 대한제국 자체가 국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실제 훈장 수훈자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짧게 제도가 시행되던 기간 중에 이 훈장을 수여 받은 이에는 한일병탄의 주역인 이완용(1858~1926)이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가쓰라 다로(桂太郞, 1848~1913) 등이 포함되어 있어 힘없던 대한제국의 어두운 말로를 상징하고 있다.

    미 공군의 정복용 약장이 정리되어 있는 모습. 약장은 무거운 훈장을 대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미 공군/Airman 1st Class Brooke P. Doyle)
    미 공군의 정복용 약장이 정리되어 있는 모습. 약장은 무거운 훈장을 대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미 공군/Airman 1st Class Brooke P. Doyle)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무궁화 대훈장, 국민훈장, 건국훈장, 보국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산업훈장 등 12개 5등급 훈장제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각각의 훈장은 국가원수나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 사회 각 분야에서 뚜렷한 공적을 세운 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이, 국가를 위해 무공을 세운 이, 국가 공무를 수행하면서 공훈을 남긴 이,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수여된다.

    대한민국의 무공훈장: 왼쪽부터 높은 순으로 태극, 을지, 충부, 화랑, 인헌의 순서이다. <출처: 국방부>
    대한민국의 무공훈장: 왼쪽부터 높은 순으로 태극, 을지, 충부, 화랑, 인헌의 순서이다. <출처: 국방부>

    훈장 자체는 그저 쇳조각과 천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므로, 실제 훈장 자체의 재산가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일례로 명예 대훈장의 경우 실제 훈장의 제작 가격은 약 $30달러에 불과해 한화로 환산하면 약 3만 2천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훈장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도 크다. 작은 훈장 위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훈장이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영예롭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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