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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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카를 자주구포

그 시절의 벙커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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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진압 작전 당시 포탄을 발사하는 지우(Ziu)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프랑스는 제1차 대전에서 승리했지만 워낙 많은 피해를 입은 데다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전쟁 재발 방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컸다. 그래서 미국 같은 여타 승전국들이 우려를 표했을 정도로 독일을 혹독하게 옥죄는데 앞장섰다. 이렇게 독일은 프랑스가 주도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았다. 특히 군비와 관련된 부분은 가히 국권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다.

당연히 프랑스의 이런 행보는 독일의 복수심만 자극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결국 1935년 나치가 재군비를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대외 팽창에 나서자 누구나 새로운 전쟁을 예견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그런데 히틀러가 아무리 호전적이라도 쉽게 도발을 감행할 수 없을 만큼 프랑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여전히 전통의 육군 강국이었고 강력한 마지노선(Maginot Line)이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거대한 600mm 구경의 포탄. 2.5m 두께의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다. < (cc) Bundesarchiv >

만일 독일이 마지노선을 정면 돌파한다면 제1차 대전을 능가하는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었다. 1940년에 독일은 마지노선이 설치되지 않은 아르덴 산악 지대로 우회하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프랑스를 굴복시켰지만 전쟁 전에는 정면 돌파도 궁리해야 했다. 독일은 어지간한 공격으로 마지노선 파괴가 어렵다고 보고 라인메탈(Rheinmetall AG)에 지시해 오늘날의 벙커버스터(Bunker Buster)같은 공성용 무기의 제작에 착수했다.

당시 기술력으로 필요한 엄청난 파괴력을 내려면 포탄의 크기가 클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발사체도 커야 했다. 문제는 포가 커질수록 이동에 제약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에 라인메탈은 차대 위에 포를 탑재해 열차편으로 옮긴 후 전선에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1936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새로운 거포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무기공학자이자 포병대장인 카를 베커의 이름을 따서 카를 자주구포(Karl-Gerät, 이하 카를)로 명명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공성용으로 사용된 13인치 구포. 카를도 구경은 크지만 이처럼 포신이 극단적으로 짧은 형태다. < Public Domain >

견고하게 축성된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카를은 포탄을 최대한 고각으로 쏘아 올려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방법으로 사격을 한다. 최초 생산형은 7구경장에 불과할 만큼 포신이 극단적으로 짧고 구경은 크다. 이런 특유의 모양과 공성전에 특화된 용도 때문에 카를은 구포(臼砲)를 의미하는 Mortar로 분류된다. 그런데 Mortar가 박격포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해서 종종 박격포로 표기하는 자료가 많다.

박격포가 통상적으로 보병이 휴대하는 전장식 경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단 카를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고 후장식에다 탄두와 장약을 분리하므로 쉽게 구분이 된다. 개발을 완료한 카를은 1941년 총 7문이 제작되어 실험용을 제외하고 6문이 실전 배치되었다. 이들에게는 아담(Adam), 에바(Eva), 토르(Thor), 오딘(Odin), 로키(Loki), 지우(Ziu)라는 이름이 각각 부여되었다.

사격 훈련 중인 지우 < (cc) Bundesarchiv >


특징
자주포지만 무게가 124톤에 이르러 움직임이 상당히 둔했다. < Public Domain >

카를의 차체는 다임러-벤츠에서 제작한 강력한 수냉식 12기통의 MB 503A 가솔린엔진이나 MB 507C 디젤엔진으로 구동되지만 중량이 124톤에 이르러 최고 속도가 시속 10km에 불과하고 주행 거리도 최대 60km 정도다. 자주포 임에도 사전에 진지 및 도로의 구축이 잘되어 있어야 하고 연약 지반에서는 이동과 사격이 불가능한 것처럼 운용상의 제약 사항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단지 자력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뿐이지 신속히 옮겨 다니며 사격을 가하는 개념의 자주포는 아니다. 실제로 이동은 거대 화물 운송용으로 별도 제작된 슈나벨(Schnabel) 화차에 의존한다. 사실 카를뿐 아니라 현대의 최신 자주포도 장거리 이동은 열차나 트레일러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거리가 540mm 장포신형도 최대 10km 밖에 되지 않아 철도가 부설되지 않은 지역에서의 작전이 불가능하다.

전선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용 화차에 탑재된 카를 < Public Domain >

수평 발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가 없고 애초부터 고각으로 공격하도록 설계되어 최소 55도에서 최대 70도의 앙각 사이에서 사격이 이루어졌다. 장전이 0도에서만 이루어지므로 포신을 내리고 재장전 후 목표물을 다시 조준하고 사격하는데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포신은 최초 600mm 구경이었고 1943년 사거리 연장을 위해 3문을 구경을 축소한 대신 포신을 늘린 카를 041(Karl-Gerät 041)으로 개조했다.

2.5m 두께의 콘크리트 관통이 가능한 600mm 구경 포탄은 사용 목적에 따라 크게 최대사거리가 4,320m인 2,170kg 고강도 콘크리트 관통탄(Schwere Betongranate)과 최대사거리가 6,440m인 1,700kg 저강도 콘크리트 관통탄(Leichte Betongranate)으로 나뉜다. 카를 041은 구경이 540mm로 줄었지만 포구 속도가 빨라져 1.250kg 저강도 콘크리트 관통탄을 최대 10,0600m까지 날려 3~3.5m 두께의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다.

사거리가 6,440m인 1,700kg 저강도 콘크리트 관통탄 < (cc) Anubis85 KH at Wikipedia.org >


운용현황
Zugkanone (80-cm-Kanone) and Thor of the Wehrmacht knocking out Maginot line and Sevastopol
카를이 완성된 것은 1940년 5월이어서 정작 프랑스 침공전에서는 사용될 수 없었다. 1941년 독소전쟁 개전 직후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요새와 리비우 공격에 최초로 투입되었지만 독일이 쾌속 진군하던 시기여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인상적인 전과는 이듬해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있었다. 독일군이 8개월이 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을 만큼 이곳은 마지노선을 능가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세바스토폴 전투 당시 발사 준비에 들어간 토르(Thor) < Public Domain >
이에 독일군은 당시 독일이 보유한 포병 전력을 이곳에 대거 투입해 요새를 완전히 날려 버릴 계획을 세웠다. 이때 2문(오딘과 토르)의 카를이 동원되어 무시무시한 화력을 선보였고 결국 요새를 점령했다. 이후 900여 일 간 벌어진 레닌그라드 전투, 1944년에 있었던 바르샤바 봉기 진압처럼 여러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패전 직전 자폭 등으로 파괴되었고 소련군이 노획한 1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에 카를에 의해 피격당하는 건물 < (cc) Sylwester Braun at Wikimedia.org>


변형 및 파생형
 
칼 041 : 11.55구경장 540mm 구경 포신으로 환장한 후기형. 사거리와 관통력은 좋아졌지만 파괴력은 줄어들었다.
방열한 사격 540mm 구경 장포신 카를 041 < Public Domain >


제원

러시아 쿠빙카 군사박물관에 보관 중 현존하는 유일 카를 자주구포인 지우. 마킹은 아담(Adam)으로 되어 있지만 아담은 전쟁 중 파괴되었다. < (cc) Kastey at Wikimedia.org>

- 제작: 라인메탈
- 전장: 11.157m
- 포신: 4.2nn
- 전고: 4.38m
- 전폭: 3.16m
- 중량: 45톤
- 무장: 600mm 구경 주포 1문
- 엔진: 다임러-벤츠 MB 503A 가솔린엔진 또는 MB 507C 디젤엔진(580마력)
- 톤당 마력: 4.8마력/톤
- 현가장치: 토숀바
- 항속거리: 60km
- 최고속도: 10km/h
- 사거리: 6,440m (600mm 1,700kg 저강도 콘크리트 관통탄)
- 발사속도: 10분당 1발
- 승무원: 21명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