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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새로운 개념의 전차

1965년 서독은 야심만만하게 개발한 레오파르트(Leopard) 1 전차의 배치를 시작했다. 냉전 시기에 서방을 대표하는 2세대 전차인 레오파르트 1은 이후 개량을 거듭해 현재도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서독은 양산에 들어간 직후부터 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전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소련이 T-64 전차의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알음알음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T-64는 차원이 다른 전차였다. 냉전 시기에 소련군을 제일 먼저 막아야 할 위치에 놓인 서독의 우려도 컸지만, 사실 서방의 맹주 노릇을 하던 미국은 더 고민이 많았다. 그때까지 미국은 소련과 장군멍군식으로 상대가 신예 전차를 내놓으면 즉시 대항마를 선보이며 치열하게 경쟁해왔으나 주로 기존 전차를 개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T-64는 그렇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에 서독과 미국은 1970년대 배치를 목표로 T-64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등장이 예상되는 모든 소련 전차를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차를 함께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1963년 협정 체결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KPz 70(미국명 MBT-70)이다. 새로운 복합장갑, 미사일 발사도 가능한 152mm 건런처(gun launcher), 헌터킬러(hunter-killer), 레이저거리측정기(LRF, Laser Range Finder), 유압식 현수장치, 1,500마력 엔진 등이 장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당장 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표가 높다 보니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고, 각각 야드파운드법과 미터법을 주장하며 설계 규칙도 통일하지 못했을 만큼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했다. 결국 공동개발을 통해 시간 및 비용을 절감하려던 생각과 달리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양산을 하더라도 대당 제작비가 M60 전차의 다섯 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되자 1971년 프로젝트가 전격 폐기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서독은 KPz 70 프로젝트에서 터득한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각각 개별적인 전차 개발 사업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은 현존 최강의 전차로 평가받는 M1 에이브럼스(Abrams)를 개발했고, 서독도 그와 쌍벽을 이루는 명성을 자랑하는 고성능 전차를 만들어냈다. 서방 최초로 실전에 배치된 제3세대 전차이자 베스트셀러인 레오파르트(Leopard) 2가 바로 그것이다.

혁신 대신 개량

서독 당국은 KPz 70의 폐기가 확실해지던 1970년에 크라우스-마파이(Krauss-Maffei) 사에게 신예 전차의 개발을 의뢰했다. 이후 KPz 70 프로젝트를 통해 터득한 여러 기술도 응용하게 되지만 일단 신예 전차의 기반이 된 것은 1967년 레오파르트 1 성능 개량의 일환으로 개념 연구를 진행한 ‘페어골데터 레오파르트(Vergoldeter Leopard: 금 도금 레오파르트)’였다. 1969년 ET로 명명된 2대의 실험 차량이 제작되었고 1971년 정식 제식명이 레오파르트 2로 부여되었다.

너무 혁신적이어서 어려움을 겪은 KPz 70을 교훈 삼아 개념 연구용으로 제작한 ET는 전반적으로 레오파르트 1을 확대한 형상이었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부품과 기술을 바탕으로 추후 성능 확장을 염두에 두고 넉넉하게 제작했다. 예를 들어 처음 장착한 MB 872 Ka-500 엔진은 1,250마력을 낼 수 있었지만 개량을 하면 1,500마력까지도 힘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1975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서독은 기존 전차포를 탑재한 2K와 폐기된 KPz 70처럼 건런처를 주무장으로 선택한 2FK를 놓고 고심을 하다가 전자를 양산형으로 선택했다. 개발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건런처가 미래 지향적이었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전차포가 주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바른 결정이었다.

1972년부터 시제용으로 차체 16량과 포탑 17문이 제작되어 각종 실험에 들어갔다. 10문은 라인메탈(Rheinmetall) 사가 제작한 105mm 활강포를 장착했지만, 7문은 소련의 125mm 활강포에 대항하기 위해 한창 개발 중이던 120mm 활강포를 탑재해서 실험했다. 오늘날 최강의 전차포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고 서방측 제3세대 전차의 표준 무장이 된 120mm 활강포가 이렇게 레오파르트 2를 통해 데뷔하게 되었다.

표준을 세우다

하지만 처음부터 120mm 활강포의 채택이 쉬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동력과 교량 통행을 염두에 두고 서독군은 레오파르트 2의 무게를 50톤 이하로 상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약 하에서 120mm 구경의 주포를 얹기 위해 포탑의 구조를 변경했고, 이로 인해 신형 광학식 거리측정기를 장착해야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성능이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결국 무게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73년 벌어진 제4차 중동전쟁은 서독뿐 아니라 당시 전차를 개발 중이던 모든 이에게 엄청난 전훈을 안겨주었다. 대전차미사일과 로켓에 의해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맥없이 파괴되면서 방어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었다. 레오파르트 2는 동구권 125mm 활강포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복합장갑을 채택했지만, 이보다 방어력을 더 늘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허용 무게가 60톤으로 상향되면서 장갑을 늘려 방어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주포 발사 시 충격력 흡수가 더욱 용이하게 되어 공격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레오파르트 2는 비록 무게가 늘어났지만 톤당 마력 27.2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엔진 덕분에 오히려 레오파르트 1보다 기동력이 좋아졌다. 이처럼 새롭게 정립된 레오파르트 2의 공격력, 방어력, 그리고 주행력은 제3세대 전차와 이전 전차를 구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물론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신형 전차들은 레오파르트 2 초기형의 성능을 상회하지만, 1970년대를 기준으로 따진다면 레오파르트 2는 가히 전차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고 할 만하다.

이렇게 개발과 실험을 끝낸 레오파르트 2는 1977년 발주되어 1979년 10월 25일 독일연방군 기갑학교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배치되었다. 1992년 3월 2A4를 마지막으로 양산을 끝내고 추후 레오파르트 3로 예정된 후속 전차를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냉전 종식으로 인한 여건 변화 등으로 말미암아 개량을 해서 조금씩 제작을 계속하고 있고 해외에도 수출 중이다.

레오파르트 2는 1979년 최초 양산된 초기형과 2016년 프로토타입이 공개된 2A7V는 전혀 다른 전차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장기간 제작·개량되면서 변신을 거듭했다. 후기형으로 갈수록 성능이 좋아진 것은 당연하지만 기본 플랫폼이 40여 년 전에 개발된 것이어서 최근에는 더 이상의 성능 향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최근 등장한 다른 3.5세대 전차들과 비교해 우위를 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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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