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09 16:37

글자크기

[무기백과]

F-16 전투기의 운용 현황과 실전 기록

창공과 대지에서 적을 제압한 독사

0 0
F-16은 세계 각 공군의 주력 기종으로 여전히 현역을 지키고 있다. <출처: 미 공군>

F-16 전투기에게 부여된 공식 명칭은 ‘파이팅 팰콘(Fighting Falcon)’이다. 전투기에는 조류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에 따라 1976년 전투기 명칭선발대회가 벌어졌고, 조지프 커델(Joseph A. Kurdell) 하사가 제안한 ‘파이팅 팰콘’이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F-16의 테스트파일럿들은 기체의 날렵한 기동성에 감탄하여 ‘바이퍼(Viper)’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러한 명성은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이어지면서 ‘팰콘’보다는 ‘바이퍼’라는 이름으로 더욱 많이 불렸다.


걸프전까지만 해도 미 공군의 F-16은 주로 범용폭탄으로 목표를 공격했다.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의 F-16

미 공군은 1978년부터 4반세기가 넘도록 무려 2,000대가 넘는 F-16을 도입했다. 최종적으로 도입된 기체는 2,231호기로, 2005년 3월 21일에 미 공군에 인도되었다. 현재 미 공군은 현역과 예비역, 주방위군을 포함하여 1,017대의 F-16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공군은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에서 F-16 전투기를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F-16은 걸프전에서 가장 많이 운용된 항공기였다. 모두 248대의 F-16 전투기가 항공기지 5개소에 전개하여 1만 3,087소티를 비행했으며 모두 1만 1,698개의 표적을 파괴했다. 걸프전 당시에 투입된 F-16 비행대대 가운데 랜턴(LANTIRN) 항법 포드와 타게팅 포드(targeting pod)를 장착한 것은 오직 2개 비행대대에 불과하여 야간 전천후 정밀타격 임무는 제한되었다. 이에 따라 F-16은 주로 주간비행 임무만을 맡았고, 사용 무장도 대부분 범용폭탄으로 적 표적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F-16은 AGM-65 매버릭(Maverick) 공대지미사일도 사용했지만, 전차 킬러인 A-10이 더 많은 매버릭 공대지미사일을 보유하고 활용했다.

특히 F-16은 지상전 개시전의 항공전에서 22개의 킬박스(kill box: 살상지대. 항공·지상 화력을 집중하기 위한 곳이며 적 목표물 집중이 예상되는 곳에 선정함) 가운데 20개소에 배치되었으며, 1개의 킬박스 안에도 언제나 가장 많은 대수가 배치되어 지상타격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동부의 킬박스 지역에서는 스커드(Scud) 사냥 임무를 맡아 421회의 공격을 실시했다. 적 지상군에 대한 공격 임무는 8,258회를 실시했다. 그러나 F-16이 제일 많이 실시한 임무는 ‘킬러 스카우트(killer scout)’, 즉 킬박스 내의 무장정찰 임무였다. 걸프전에서 F-16은 소티당 통상 3.24시간을 비행했고, 임무 가동률은 최대 88.8%에 이르러 가장 높은 대비태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걸프전 중 손실은 모두 8대로, 비전투손실 5대에 전투손실 3대였다. 3대는 모두 지상공격 임무 수행 중 적의 지대공 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미 공군 F-16의 최초 공대공 교전 기록은 1992년에서야 있었다. 걸프전 이후 후세인(Saddam Hussein)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유엔(UN, United Nations: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는 안보리 제재 제688호를 발령하여 북위 33도선 이남에서는 어떠한 이라크 항공기도 비행할 수 없도록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이라크 정부가 유엔 제재를 무시하자, 이를 강제하기 위해 미군은 1992년 8월 27일부터 남부감시작전(Operation Southern Watch)을 실시했다.

게리 노스 중령은 미 공군 최초로 공중전 승리를 기록했다. 사진은 2011년 4성 장군이 되어 자신이 탑승했던 기체로 다시 비행에 나선 노스 대장의 모습이다. <출처: 미 공군>

작전 수행 도중 같은 해 12월 27일 드디어 교전이 벌어졌다. 이라크군 소속의 MiG-25 1대가 북위 33도를 남하하여 비행금지구역을 넘어왔다. 마침 공중급유를 마치고 합류하던 F-16 편대가 임무를 맡았는데, 편대장인 게리 노스(Gary L. North) 중령[콜사인(call sign) ‘노르도(Nordo)’]이 F-16D[기체 콜사인 ‘벤지41(Benji41)]에 탑승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노스 중령은 AWACS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해당 지역으로 투입되었는데, 일단 비행금지구역을 넘어온 적기가 교전 없이는 복귀할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교전 허가를 받은 후 약 3해리 지점에서 AIM-120A 암람(AMRAAM)을 발사하여 MiG-25를 산산조각 냈다. 이는 미 공군 최초의 F-16 공중전 승리였고, AIM-120A 암람의 첫 실전 발사이기도 했다. 게리 노스 중령은 이후 대장까지 진급하여 태평양공군 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했다.

F-16 전투기의 실전 기록 영상

F-16은 이후부터 하나둘씩 격추 기록을 늘려갔다. 노스 중령의 승전 이후 수개월 만인 1993년 1월 17일 이라크 북부에서 안식 제공 II 작전(Operation Provide Comfort II)을 수행하던 크레이그 스티븐슨(Craig Stevenson) 중위[콜사인 ‘트리거(Trigger)’]의 F-16C[기체 콜사인 ‘데빌01(Devil01)’]가 MiG-23을 역시 AIM-120A 암람으로 격추했다.

라이트 대위가 동구권의 공군 장교들에게 F-16 전투기의 특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미 공군>

1994년 2월 24일 보스니아 바냐루카(Banja Luka) 인근에서 미 공군 F-16은 본격적인 공중전을 벌였다.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비행금지작전(Operation Deny Flight)을 수행하던 F-16C 편대가 비행금지를 어기고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하던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공군 소속 J-21 야스트렙(Jastreb) 전투기 6대 및 J-22 전투기 2대와 교전했다. 로버트 라이트(Robert G. Wright) 대위[콜사인 ‘윌버(Wilbur)’]의 F-16C[기체 콜사인 ‘블랙03(Black03)’]는 우선 AIM-120A 암람으로 5,000피트 상공으로 접근하던 J-21 1대를 격추했다. 잔여 편대는 수백 피트로 고도를 낮추고 탈출하려고 했으나, 다시 라이트 대위가 AIM-9M 사이드와인더(Sidewinder)로 J-21 2대를 추가로 격추했다. 그의 윙맨(wingman: 대장 호위기의 조종사)이던 스콧 오그래디(Scott F. O'Grady) 대위도 AIM-9M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여 적기 1대의 꼬리날개를 대파했다. 한편 인근을 비행하던 또 다른 편대도 교전에 합류하여 스티븐 앨런(Stephen L. Allen) 대위[콜사인 ‘요기’(Yogy)’]의 F-16C[기체 콜사인 ‘나이트25(Night25)’]가 역시 AIM-9M 사이드와인더로 J-21을 격추했다.

스콧 오그래디 대위는 보스니아에 추락한 후 무려 6일간 지상에서 도피탈출을 감행하여 귀환에 성공했다. <출처: 미 공군>

한편 1995년 6월 2일에는 스콧 오그래디 대위가 보스니아 믈콘이치 그라드(Mrkonjić Grad) 인근에서 세르비아군 SA-6 대공미사일에 격추되었다. 리드맨(leadman)인 라이트 대위가 오그래디의 낙하산을 목격하지 못한 데다가, 지상에 내린 오그래디는 안전한 퇴출을 위해 무려 5일간이나 무전교신 없이 지상을 이동했으므로, 한동안 미군과 나토 사령부는 오그래디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6월 8일 새벽 오그래디의 무전교신 시도가 성공하자, 키어사지 강습상륙함(USS Kearsarge, LHD-3) 에서 제24해병원정대 소속 해병 51명으로 구성된 전술항공구조팀(TRAP, Tactical Recovery of Aircraft and Personnel)이 CH-53 편으로 급파되어 오그래디 대위를 구출해왔다. 이 사건은 미군의 SERE[Survival(생존), Evasion(회피), Resistance(저항) and Escape(탈출)] 성공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생환 후 언론 브리핑 중인 스콧 오그래디 대위. 왼쪽에는 그의 동료인 로버트 라이트 대위가 앉아 있다. <출처: 미 공군>

또한 1999년 코소보 항공전에서도 F-16은 중심에 있었다. 5월 2일 세르비아에서 F-16CG가 SA-3 미사일에 격추되었지만 조종사는 곧바로 회수되었다. 5월 4일에는 폭격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F-16C 편대에 MiG-29가 교전을 시도하자, 마이클 겍지(Michael Geczy) 중령[콜사인 ‘도그(Dog)’]의 F-16CJ가 AIM-120A 암람으로 MiG기를 격추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미 공군 F-16의 마지막 공대공 전투 기록이다.

미 공군 F-16 전투기들은 주로 AIM-120 암람을 사용하여 격추 기록을 세웠다. <출처: 미 공군>

한편 F-16은 9·11 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했다. 9·11 테러 당시 피랍되어 워싱턴 DC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을 요격하는 임무를 F-16 2대로 구성된 1개 편대가 맡았다. 이 기체들은 DC 방위군 공군 제121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 당시 비무장 상태로 랭리(Langley) 공군기지에서 긴급출격했다. 유나이티드 93편은 결국 워싱턴 DC에 도착하지 못하고 도중에 추락했으나, 당시 F-16 조종사들은 피랍기가 워싱턴 DC로 접근할 경우 스스로 피랍기에 부딪쳐서 접근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DC 방위군 소속의 F-16 전투기들이 펜타곤 초계비행 중이다. 9·11 테러 당시에는 비무장의 F-16 전투기들이 긴급발진하여 여객기를 저지하려고 대기하기도 했다. <출처: 미 공군>

F-16 전투기들은 10월 7일 미국의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실시 첫날부터 작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장기간 체공할 수 있는 B-52와 같은 폭격기들과는 달리 F-16은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Al Udeid) 공군기지 등에서 출격해야만 했으므로 체공시간에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F-16은 조종사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8시간 동안 체공하면서 지상의 특수부대를 도와 알카에다(Al-Qaeda)와 탈레반(Taliban)을 공격하기도 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지상을 장악하고 공군기지들을 접수한 이후부터 원정비행대대가 6개월 단위로 파병되어 본격적인 활약을 했다. F-16에게 아프가니스탄은 CAS(Close Air Support: 근접항공지원) 임무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특히 특수부대 등 지상의 작전요원들이 지정하는 목표를 얼마나 빨리 잘 제거할 수 있느냐가 목표였다. 이는 F2T2EA[Find-Fix-Track-Target-Engagement-Assessment, 우리 군은 이를 ‘킬체인(kill chain)’으로 표현함]의 임무 사이클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는데, 일부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F-15E보다 F-16이 이러한 임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F-16은 킬체인 작전에서 가장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는 기체이기도 했다. 특히 2006년에는 김선일 씨 참수사건 등 수많은 테러의 원흉이던 알자르카위(al-Zarqawi)를 F-16C 편대가 정밀타격으로 제거하기도 했다. <출처: 미 공군>

F-16은 어이지는 이라크 전쟁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다. 특히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보다 상대적으로 F-16 발진 기지들로부터 가까웠으므로,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 초부터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석권한 이후에는 주로 대분란전 임무를 수행했다. F-16은 초계비행을 하면서 지상의 요청에 따라 교전 중인 반군이나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를 설치하는 테러범을 폭격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2006년 6월 7일에는 F-16 편대가 특수부대의 요청에 따라 GBU-12 레이저유도탄과 GBU-38 JDAM을 지상에 떨구어 당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의 수장인 아부 무삽 알자르카위(Abu Musab al-Zarqawi)를 사살하기도 했다.

F-16은 2011년에는 리비아에 대한 오디세이 새벽 작전(Operation Odyssey Dawn) 등 다양한 임무에서 활약했다. 독일의 슈팡달렘(Spangdahlem) 공군기지와 이탈리아의 아비아노(Aviano)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F-16C 전투기들이 아비아노에 모여 출격하여 주요 목표를 제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F-16의 최대 운용국이다. <출처: 이스라엘 방위군(IDF)>

이스라엘의 F-16

이스라엘은 F-16 개발 초기부터 F-16에 눈독을 들여, 애초에 이스라엘에서 250대를 면허생산할 계획까지도 세웠다. 그러나 미국이 면허생산에 난색을 표명하자 1975년에 도입 목표 대수가 150대로 줄어들었고, 결국 1978년에 F-16A/B 75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에 F-16을 판매하는 피스 마블(Peace Marble) 사업은 초도도입분을 1981년 중반에 인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구매예정국가 중 하나였던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샤(Shah) 왕조가 몰락하면서 F-16 160대의 대(對)이란 판매가 취소되는 바람에 이스라엘은 예정보다 빨리 1980년 7월 2일부터 F-16 블록10 기체들을 인도받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F-16A/B형에 네츠[Netz, 헤브루어로 ‘매(hawk)’라는 뜻]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세계 최초의 F-16 실전 기록을 세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스라엘군이었다. 우선 1981년 4월 28일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의 Mi-8 히프(Hip) 헬기 2대를 F-16으로 격추함으로써 처음으로 공중전 격추 기록을 세웠다. 이스라엘군은 사이드와인더 등 공대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고 알뜰하게도 20mm 기관포로 헬기들을 격추했다. 또한 1981년 7월 14일 이스라엘군 F-16A가 시리아군 MiG-21을 격추함으로써 최초의 전투기 간 공대공 교전 승리 기록을 세운 것도 이스라엘군이었다.

게다가 F-16으로 최초로 타격 임무를 성공한 것도 이스라엘군이었다. 이스라엘군은 1981년 6월 7일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을 실시하여 이라크의 오시라크(Osiraq) 원전을 공격했다. F-15A 6대의 호위 아래 F-16A 8대가 Mk 84 2,000파운드 범용폭탄으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여 원전시설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최초의 공대공 교전 승리도 이스라엘군이 기록했다. <출처: 이스라엘 방위군(IDF)>

이스라엘은 이후 시리아를 상대로 대규모 항공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군은 1982년 6월 제1차 레바논 전쟁에 돌입하면서 베카(Beqaa) 계곡에 시리아가 설치한 지대공미사일 포대들의 제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F-16 전투기들은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무려 44대 격추 기록을 세웠는데, 그 대상은 대부분 MiG-21이나 MiG-23이었다. 또한 다목적 전투기로서 공대공 임무뿐만 아니라 폭격 임무도 훌륭히 수행해냈다.

이스라엘은 애초에 F-16 150대를 도입하기로 했었는데, 레바논 전쟁으로 F-16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75대를 추가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피스 마블 II 사업이 실시되어 후속 모델로는 F-16C/D형(블록30)이 선정되었고, 1987년 2월 9일부터 F-16C 3대가 이스라엘에 도착하면서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군은 F-16C/D형에는 바락[Barak: '번개(lightning)‘를 뜻함]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또한 1991년부터는 피스 마블 III 사업으로 F-16 C/D 블록40이 30대 추가 도입되었다. 한편 1991년 걸프전에서 이스라엘이 보여준 인내심에 대한 보답으로 1994년에 미국은 피스 마블 IV 사업을 통해 F-16A/B 중고기 50대를 이스라엘에 제공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중고기를 재제작하여 전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90년대 중반에는 애초에 목표했던 250대에서 20대 부족한 230대의 F-16 전력을 운용하게 되었다.

F-16I는 자국의 임무에 따라 이스라엘제 항전장비를 장착하고 있으며 컨포멀 연료탱크를 장착하여 독특한 외관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출처: Tomás Del Coro at flickr>

한편 1997년부터 이스라엘군은 타격 임무를 수행할 전천후 기체를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스라엘군은 우수하지만 고가인 F-15I를 대신하여 저렴하지만 효율성 높은 F-16 블록52+를 1999년에 선정했다. 이에 따라 피스 마블 V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기체 102대가 2004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이스라엘군에 공급되었다. 이 기체는 F-16I 수파[Sufa: ‘폭풍(storm)’이라는 뜻]로 명명되었으며, 특히 F-16I는 항전장비의 절반 가량이 이스라엘 제품이며 IAI가 제작한 컨포멀 연료탱크(CFT, Conformal Fuel Tank: 기체외부통합형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등 기존의 블록52와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F-16I는 최근 시리아군의 SA-5 미사일에 격추되기도 했다. <출처: 이스라엘 방위군>

이스라엘의 F-16은 이후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이나 2008년 가자 전쟁에 참가하면서 반군의 공격 원점에 대한 정밀폭격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왔다. 특히 2차 레바논 전쟁에서도 3대의 격추 기록을 추가한 바 있다. 최근 F-16은 주로 하마스(HAMAS) 등의 로켓 공격을 사전에 제거하는 킬체인 임무나 하마스가 빈번히 보내는 드론(drone)에 대한 대응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편 2018년 2월 10일에는 이스라엘군 F-16I가 시리아군이 발사한 SA-5 개몬(Gammon)[S-200 두브나(Dubna)의 나토명]) 대공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이 기체는 당시 시리아 내부의 이란 드론 정찰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으며, F-16 편대를 공격하기 위해 시리아군은 미사일을 무려 27발이나 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도 F-16의 초기도입국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파키스탄 공군의 F-16BM이다. <출처: (cc) Asuspine at wikipedia.org>

파키스탄의 F-16

파키스탄도 F-16의 초기도입국으로, 1981년 피스 게이트(Peace Gate) I 사업을 시작하여 1983년부터 F-16A/B 40대를 도입했다. 이후 1983년 피스 게이트 II 사업으로 34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1988년 피스 게이트 III 사업으로 11대, 1989년 피스 게이트 IV 사업으로 60대 등을 추가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핵개발로 인해 미국 정부와 불화가 생기면서 금수조치가 발령되었다. 이에 따라 피스 게이트 III/IV 사업으로 제작된 F-16 28대는 세계 최대의 비행기 무덤으로 알려진 네바다 주의 AMARC에 보관되다가 미 공군과 해군의 가상적기로 활용되었다. 한편 파키스탄은 대테러 전쟁 이후로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자 2006년 블록52 18대를 추가 구매하기로 결정하면서 피스 게이트III/IV 사업에서 대금 지급을 마쳤던 A/B형 28대도 인수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블록52 18대는 2010년 모두 파키스탄 공군에 전달되었다. 이외에 중간수명연장(MLU, Mid-Life Upgrade) 사업을 통해 기존의 A/B형 기체들을 업그레이드했다.

파키스탄은 2010년부터 F-16C/D 블록52형을 도입했다. <출처: 미 공군>

파키스탄의 F-16 전투기들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특히 1980년대 후반 파키스탄의 F-16 전투기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한 Su-22, MiG-23, Su-25 등 10대의 아프가니스탄 항공기들을 격추시켰다. 2002년에는 인도군이 발진시킨 서처(Searcher) II 무인정찰기가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하자 이를 격추하기도 했다. 2008년 카르길 분쟁(Kargil War)에서도 F-16은 초계 임무를 수행하면서 인도 공군을 견제하는 주력으로 활약했다. 한편 최근에는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접경지역의 탈레반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투하하는 폭탄의 80% 가량이 정밀유도폭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에 참가한 터키 공군의 F-16 <출처: 미 공군>

터키의 F-16

미국과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은 F-16을 운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터키다. 터키는 세 차례의 피스 오닉스(Peace Onyx) 사업을 통해 이미 1987년부터 240대의 F-16을 도입하여 운용해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7년에는 F-16 블록52+ 30대를 추가로 발주하여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도입을 완료했다. 터키의 F-16은 모두 TAI(Turkish Aerospace Industries: 터키항공우주산업)에서 면허생산하고 있다.

터키가 도입한 F-16D 블록52+ <출처: Aldo Bidini at jetphotos.com>

터키도 F-16으로 다양 실전 기록을 남겼다. 우선 1992년 그리스와의 에게 해 분쟁에서 터키 공군 F-16이 그리스 공군의 미라주(Mirage) F1을 격추했으나, 1995년에는 그리스의 미라주 F1에게 F-16이 격추당함으로써 최초의 공중전 패배 기록을 터키 공군이 남기게 되었다. 한편 1996년에는 터키 공군 F-16D가 그리스의 영공을 침범했다가 그리스 공군 미라주 2000이 발사한 R550 매직(Magic) II 미사일에 격추되기도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터키는 그리스와 F-16으로 서로 공중전을 벌이기도 했다. 2006년 5월 23일 터키 공군의 RF-4 정찰기와 이를 호위하던 F-16 편대를 그리스 공군 F-16 편대가 요격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특히 양측 F-16 전투기들끼리 서로 도그파이트(dogfight)를 시작하다가 두 전투기가 충돌하면서 추락하여 터키 공군 조종사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리스 공군 조종사는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터키 공군 F-16은 러시아의 Su-24를 격추시켜 양국은 한동안 외교 분쟁과 무역 보복으로 시끄러웠다. <출처: 미 공군>

한편 시리나 내전이 발생한 이후로 터키 공군의 F-16은 또다시 활발하게 작전을 실시하여, 시리아 공군의 헬기, MiG-23 전투기, 무인기 등 다양한 기체들이 터키 공역을 침범할 때마다 이들을 격추해왔다. 그리고 2015년 11월 24일에는 터키 공역을 침범하여 시리아 공습을 감행하던 러시아군의 Su-24 전폭기를 터키 공군 F-16이 격추한 바 있다.


미국 다음으로 F-16C/D를 운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사진은 대한민국 공군이 1980년대 도입한 F-16C/D 블록32다. <출처: 미 공군>

대한민국도 주요 F-16 운용국 중 하나다. 대한민국은 애초에 F-16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도입하고자 했으나, 카터(Jimmy Carter) 행정부와 박정희 정권의 불화 등으로 도입이 빈번히 좌절되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MiG-23 도입과 88 올림픽의 성공 개최 등을 명분으로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에게 강력히 요청하여 1981년 F-16C/D형 36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피스 브릿지(Peace Bridge) I 사업을 통해 FMS(Foreign Military Sales: 대외군사판매) 방식으로 1986년부터 F-16C/D 블록32 기체가 도입되었다. 한편 1988년 사업을 마치면서 환율 차이로 사업 비용이 남게 되자 2인승 D형 4대를 추가 도입하여 모두 40대의 블록32 기체를 도입하게 되었다. 도입된 F-16에는 ‘필승 보라매’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우리 군에서는 이들 기체를 통상 ‘F-16 PB’라고 부른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미국 이외에 최초로 F-16C/D 전투기를 운용하는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F-16C/D 블록52를 무려 120대나 양산했다. <출처: 미 공군>

한편 대한민국은 1983년 차세대 전투기 120대의 구매 및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1985년 제3차 방위력 개선 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부각되면서 KFP(Korean Fighter Program: 한국형 전투기 사업)로 재명명되어 시작되었다. 정부는 F-16과 F/A-18을 최종 후보 기종으로 압축하고 1989년 12월에 F/A-18을 최종 기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최종 계약 과정에서 기체 가격 상승으로 전체 사업비가 무려 24%나 상승함에 따라 사업은 취소 위기를 맞았다가, 1991년 3월 사업 기종을 F-16으로 바꿈으로써 KFP의 최종 승자는 F-16C/D 블록52가 되었다. 도입되는 기체는 KF-16으로 명명되었다.

레드 플래그 훈련에 참가한 KF-16 전투기 <출처: 미 공군>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삼성항공이 주 사업자가 되어 국내 면허생산이 추진되었다. KF-16은 12대가 직도입, 36대가 조립생산, 나머지 72대가 기술도입 면허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짐으로써 1999년까지 120대가 인도되었다. 또한 전력 공백을 메우는 한편 국내 항공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99년부터는 KF-16 20대를 추가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2004년까지 모든 기체의 도입을 마쳤다. 또한 KF-16 사업에 대한 절충교역으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은 대한민국의 T-50 초음속 훈련기에 대한 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한편 F-16PB와 KF-16은 도입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선 F-16PB는 2012년부터 성능 개량 사업을 시작하여 2016년 말까지 30여 대에 AIM-120과 JDAM 운용 능력을 부여하고 링크16을 장착했다. 개수된 기체는 F-16PBU로 불린다.

AIM-120 암람을 발사하는 KF-16 전투기. KF-16은 현재 바이퍼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출처: 미 공군>

KF-16 전체에 대한 업그레이드 사업은 2012년 BAE 시스템즈(BAE Systems)가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인해 사업은 취소 위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사업자 재선정 과정을 통해 2016년 말에 F-16의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이 선정되었다. KF-16 업그레이드 모델은 2023년까지 APG-83 AESA 레이더, IFF Mode 5, 링크16 등을 장착함으로써 F-16의 최신형인 F-16V 바이퍼(Viper)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2017년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 훈련에 참가한 대한민국 공군 KF-16 전투기의 공중급유 훈련 영상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며,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