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군사유래사전 (3) 저격수의 기원
도요새 사냥꾼에서 저격수가 탄생하기까지
  • 채수윤
  • 입력 : 2018.03.07 15:46
    길리 수트를 입고 위장한 채 잠복 중인 미군 저격수와 관측수 <출처: 미 육군>
    길리 수트를 입고 위장한 채 잠복 중인 미군 저격수와 관측수 <출처: 미 육군>


    저격수(sniper)는 군사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한 발의 총알로 적을 무력화하고, 적 부대에 공포심을 심어주며, 넓은 적진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소설, 영화, 게임 등에서 저격수를 소재로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격수는 사전적으로는 “일반 보병보다 표적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격소총 등 총기로 적을 정밀 조준해 무력화하도록 훈련을 받은 전문화한 요원”을 가리킨다.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지만 실전에서의 위력은 다원적이고 위력적이다.

    저격수는 효율적이다. 단순히 적의 병력 숫자를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적의 작전에 당장 지장을 줄 수 있는 지휘관이나 통신병, 기관총 등 위력적인 무기체계를 다루는 요원, 적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야전 의무병 등 전술적 가치가 높은 적은 찾아 무력화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저격수가 쏘는 한 발의 총탄은 한 명의 적을 무력화하는 수준을 넘어 질적으로 그 몇 배의 전술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저격수는 고도의 심리전도 수행한다. 저격수는 통상 은폐·엄폐된 위치에 몸을 숨기고 사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장소, 발견하기 힘든 곳에 숨어서 필살의 총탄을 날리는 저격수는 상대측 군인들에게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대단한 압박을 준다.

    저격수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현재 저격수가 사용하는 총기는 정확성과 살상력, 내구력이 뛰어난 첨단 과학기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망원조준경이 부착돼 조준을 용이하게 해준다. 레이저거리측정기를 비롯한 다양한 군사과학 기술이 접목된다. 이 때문에 저격수는 그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인류 과학기술의 발달과 궤를 함께해왔다. 탄생 과정을 포함한 저격수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은 인류 과학기술 발달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과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저격수는 통상 은폐·엄폐된 위치에서 사격을 한다. 저격수가 사용하는 총기에는 대개의 경우 망원조준경이 부착돼 조준을 용이하게 해준다. 저격수는 크게 군사조직·준군사조직 등 군사 분야나 경찰·보안기관 등 법 집행기관에 소속된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국제안보지원군 저격팀. 저격수 옆의 관측수는 레이저거리측정기로 거리를 계측하고 있다. <출처: 프랑스 국방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국제안보지원군 저격팀. 저격수 옆의 관측수는 레이저거리측정기로 거리를 계측하고 있다. <출처: 프랑스 국방부>

    저격수는 사격술과 함께 정찰 기술, 엄폐 및 개인위장술, 야전 전투 기술, 전장 첩보 수집을 위한 지역 수색, 군사적 위장술, 침투술 등을 훈련받는다. 저격수는 저격과 관측 효율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통상 사수(shooter)와 관측수(spotter)가 2인 1팀인 경우가 많다.


    스나이퍼의 어원은 도요새

    영어로 저격수를 의미하는 ‘스나이퍼(sniper)’라는 단어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담겨 있다. 이 단어의 기원을 살펴보면 저격수의 역사가 보인다. 단어의 기원은 17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도 주둔 영국군 병사들이 본국에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스나이프하다(to snipe)’라는 동사가 그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내용 중 가장 오래된 스나이퍼 기원으로 통한다. 이 동사는 당시 “명사수(marksman)들이 도전적인 표적을 맞추려고 사격을 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나이퍼(sniper)’의 어원은 도요새(snipe)에서 비롯한다. <출처: (cc) Gregory ">
    ‘스나이퍼(sniper)’의 어원은 도요새(snipe)에서 비롯한다. <출처: (cc) Gregory "Slobirdr" Smith at wikimedia.org>

    그 어원은 야생조류인 도요새(snipe)라는 명사에서 비롯한다. 도요새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에 위장 능력도 뛰어나 사냥꾼에게 잘 발각되지 않는다. 깃털 중 햇빛에 노출된 부분은 어두운 색, 노출되지 않은 부분은 밝은색의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은폐가 잘 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을 눈치 채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비행 패턴이 상당히 불규칙하고 변화무쌍하다. 이 때문에 사냥꾼이 총기를 조준해서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영어에서 ‘도요새 사냥을 가다(Going on a snipe hunt)’라는 관용구는 ‘쓸데없는 심부름’이나 ’불가능한 임무‘를 뜻한다. 미국에서는 여름 캠프나 보이 스카우트(Boy Scout) 같은 그룹에서 요구하는 ’통과의례‘를 가리키기도 한다. 도요새 사냥만큼이나 ‘하기 힘들거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18세기 당시 수준의 수렵용 총기로는 도요새를 제대로 사냥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다른 조류 사냥과 구분되는 ‘도요새 사냥(snipe shooting)’이라는 용어가 별도로 있었을 정도였다. 그 약칭이 ‘스나이핑(sniping)’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도요새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사냥꾼을 ‘스나이퍼(sniper)’로 부르게 된 것이라는 추론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스나이퍼(sniper)는 ‘사격술(marksmanship)과 위장술(camouflaging)에 대단히 뛰어나며 고도로 숙련된 사냥꾼’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했다. 이는 나중에 ‘사격의 명수(sharpshooter)'나 '숨겨진 곳에서 저격을 하는 사수'를 가리키는 용어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길리 수트를 입은 저격수 <출처: Public Domain>
    길리 수트를 입은 저격수 <출처: Public Domain>

    ‘스나이퍼’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20년대다. 1822년 ‘사격의 명수’를 가리키는 ‘샤프슈터(sharpshooter)’라는 단어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 용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샤프슈터라는 단어는 19세기 영어권에서 “활이나 총 등 뭔가를 발사하는 무기를 잘 다뤄 정밀 사격이 가능한 사격의 명수”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1801년 영국 신문에 ‘샤프 슈터(sharp shooter)’라는 형태로 등장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는 독일에서 ‘뛰어난 사수’ 또는 ‘저격수’라는 의미로 1781년에 처음 사용되었던 ‘샤르프쉬체(Scharfschütze)’)라는 단어를 그대로 번역해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용하는 스나이퍼(sniper)라는 단어는 1822년 처음 사용되었지만 명사수나 저격수를 가리키는 ‘샤프슈터(sharpshooter)', '마크스맨(marksman)’ 등의 단어와 상당 기간 함께 사용되었다. 스나이퍼라는 용어가 널리 정착해 일반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다.


    저격수와 관측수는 2인3각

    군대나 경찰에서 저격 임무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저격수가 담당하게 된다. 저격이 이뤄지는 상황은 상당히 다양하나, 공통적인 것은 저격수가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적절한 위치로 이동해서 매복하고 조준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적은 총탄으로 목표물인 범죄자나 적을 확실하게 무력화하는 것이 저격이다.

    저격수와 관측수는 2인3각으로 함께 움직인다. 사진은 독일에서 훈련 중인 미 공군 저격팀이다. <출처: 미 국방부>
    저격수와 관측수는 2인3각으로 함께 움직인다. 사진은 독일에서 훈련 중인 미 공군 저격팀이다. <출처: 미 국방부>

    저격수는 기본적으로 관측수를 동반해서 함께 움직인다. 저격수가 저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관측수[영어로는 스포터(spotter), 포스트(post), 또는 옵서버(observer)]가 한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것이다. 관측수의 기본 임무는 장거리 사격에서 탄착점을 관측하고 사수에게 수정을 지시하는 것이다. 관측수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전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처리하기도 한다. 관측수는 저격수의 기술을 지닌 인력이 담당한다. 그래야 의사소통이 잘 이뤄질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역할을 교대로 맡아 부담을 나눌 수 있다. 관측수는 경험이 많은 저격수가 담당하며 저격수에게 사격을 지시하고 탄착점을 살펴 조준 수정 정도를 계산한다.

    변칙적인 경우로 저격수에 범용기관총 사수와 소총 사수가 3인 1조로 활동한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의 사례가 있다. 이는 저격수가 주의력을 유지하는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저격용 소총의 부족한 화력을 보완해주는 측면도 있다. 저격용 소총은 대개 장전한 실탄이 한 발 또는 몇 발에 지나지 않은 데다 연발사격 능력도 없는 경우가 많아 화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3인 1조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매우 유효한 전술로 평가된다.

    2010년 10월 미국 조지아 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스나이퍼 경연대회에 참가한 미 육군팀 <출처: 미 국방부>
    2010년 10월 미국 조지아 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스나이퍼 경연대회에 참가한 미 육군팀 <출처: 미 국방부>

    저격수와 관측수는 은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이동 흔적이 적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이를 활용해 이들에게 정찰 임무를 부여할 수도 있다. 적 배후를 은밀하게 이동하며 적정을 파악해 본부에 전달하는 한편, 목표물을 무력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항공 지원이나 포격을 요청할 수 있으며 심지어 순항미사일을 비롯한 정밀유도무기체계의 표적 설정이나 유도 임무도 맡을 수 있다.


    일발필살의 저격용 소총

    저격용 소총은 통상 군용이나 민수용 라이플(rifle) 양산품에서 정밀도가 좋은 것을 골라서 망원조준경을 추가 장비로 부착한 것을 사용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처음부터 저격 전문 총기로 개발된 제품도 존재한다. 정밀도 문제 때문에 종래에는 일발필살(一發必殺)을 노린 볼트액션(bolt-action) 방식의 라이플이 주로 이용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격 정밀도를 희생하고라도 제2탄을 신속하게 발사할 수 있는 반자동 방식의 라이플 제품이 늘고 있다.

    미군이 사용했던 M24 저격총은 민수용 레밍턴 M700 볼트액션 소총에 바탕한다. <출처: Public Domain>
    미군이 사용했던 M24 저격총은 민수용 레밍턴 M700 볼트액션 소총에 바탕한다. <출처: Public Domain>

    반자동 방식의 M110 저격소총 <출처: Knight's Armament Company>
    반자동 방식의 M110 저격소총 <출처: Knight's Armament Company>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사이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부 국가에서 자동소총을 저격용으로 사용하는 구상을 한 적도 있다. 연속적으로 지근탄을 쏘는 것으로 제압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에서 소총수에게도 다양한 자동화기를 지급하면서 이런 구상은 폐지되었다.


    나의 존재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위장은 저격수의 생명

    군사작전에 나선 저격수는 몸을 숨기기 위해 고도의 위장 기술이 요구된다. 눈에 띄기 어려운 색깔의 옷이나 위장복을 입고 그 위에 더해서 식물을 잔뜩 붙인 길리 수트(ghillie suit)를 추가로 걸치거나 아예 식물을 온몸에 감는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길리 수트는 나뭇잎이나 줄기, 모래, 눈 등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든 위장복의 하나다. 주로 올이 굵은 삼베, 직물, 노끈 등으로 만들며 잔가지나 나뭇잎 등을 겉에 덧붙여 주변 환경과 구분이 되지 않게 해 적 경계병의 눈을 피하는 효과가 있다. 군이나 경찰의 저격수는 물론 민간 사냥꾼이나 자연 전문 사진작가, 영상작가가 사격이나 촬영 목표물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려고 착용한다.

    길리 수트를 입은 미 해병 저격수 <출처: 미 국방부>
    길리 수트를 입은 미 해병 저격수 <출처: 미 국방부>

    길리 수트는 저격수를 입체적으로 감싸 관측자가 주변 환경과 구분하기 힘들게 하는 효과도 있다. 제대로 제작한 길리 수트의 가장자리는 바람이 불 때 주변의 풀잎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관측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부 길리 수트는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소재로 만들기도 하며, 반대로 착용자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바람을 막아주는 털실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복장을 군사적으로 사용하면 적에게 ‘언제 어디서 저격수가 갑자기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도 있다. 길리 수트는 주로 군에서 사용하며 경찰이나 경비 분야에서는 위장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참호전에서 머리 부분만을 위장한 영국군 저격수 <출처: Public Domain>
    참호전에서 머리 부분만을 위장한 영국군 저격수 <출처: Public Domain>

    길리 수트는 스코틀랜드의 사냥터 관리인들이 휴대용 은닉도구로 개발한 것이 그 기원으로 알려졌다. 이를 처음 사용한 부대는 영국군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연대 소속의 기마의용병 부대였던 로뱃 정찰대(Lovat Scouts)다. 1899년 10월~1902년 5월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 과정에서 편성된 로뱃 정찰대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에 영국군의 첫 정규 스나이퍼 부대로 개편되었다.


    저격수의 전술적 가치

    군 작전을 수행할 때 저격수의 기본 임무는 아군을 위협하는 고위험 목표를 무력화하는 일이다. 아군을 노리는 적 저격수의 존재를 사전에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카운터 스나이퍼(counter sniper)’ 임무를 비롯해 아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대전차무기나 기관총 사수를 제거하는 임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가 어려운 고급 지휘관을 제거해 적의 지휘계통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현장과 본부 간의 소통을 담당하는 통신병을 무력화해 통신계통을 마비시키고, 의무병을 사살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 등도 저격수의 주요 임무에 포함된다.

    저격수는 고위험 목표를 무력화하는 정밀타격수단이 된다. 사진은 1944년 이탈리아 전선의 미군 저격수가 M1903A4 저격총을 장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저격수는 고위험 목표를 무력화하는 정밀타격수단이 된다. 사진은 1944년 이탈리아 전선의 미군 저격수가 M1903A4 저격총을 장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저격수가 장교나 통신병, 위생병을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저격수가 부대원의 상하관계를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작전 중 장교와 사병이 서로 같은 제복을 입는다든지 상급자에 대한 경계를 생략하는 등의 기만작전이 흔하게 벌어진다. 과거 장교의 특성이던 쌍안경, 권총, 지도 등 고유의 소지품이나 장비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숨기기도 한다. 베트남전 이후 미군은 군 계급장의 재질을 장교와 병사의 구분 없이 동일하게 통일해 저격수가 멀리서 쉽게 계급을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저격수는 적 병사들을 심리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해 공포감을 심어줌으로써 적의 공격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단 한 명의 저격수 때문에 1개 부대의 작전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를 노려 적을 사살하기보다 부상을 입혀 다른 부대원들의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하고 부상병 부축과 운송에 귀중한 자원을 쓰게 하는 등의 작전을 펼칠 수도 있다.

    저격수는 시가지 등 폭격이 곤란한 곳에 은신하므로 제거하기 어렵다. 사진은 시가지에서 저격 중인 캐나다군 저격수의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저격수는 시가지 등 폭격이 곤란한 곳에 은신하므로 제거하기 어렵다. 사진은 시가지에서 저격 중인 캐나다군 저격수의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이 때문에 저격 공격을 받은 부대는 신속하게 저격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제거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격수는 강력한 위장으로 위치를 숨기고 있어 위치를 알아내기가 곤란하다. 이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보다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해 그 주변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박격포나 야포의 포격, 또는 공중 폭격을 대규모로 가해 저격수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군사용어로 ‘점 공격’이 아닌 ‘면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저격수가 시가지 등 폭격이 곤란한 곳에 은신하고 있는 경우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저격수 제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부대의 작전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저격수는 적의 적개심이나 혐오감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포로가 된 경우 학대나 즉결처분 대상이 되기가 쉽다.

    소총 기술의 발달이 저격수 탄생 이끌어

    저격수 운용에는 정확도가 높은 총기가 필수적이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총기나 나타나면서 비로소 저격수가 탄생할 수 있었다. 강선총포인 라이플(소총)이 개발되기 전의 화기는 총신 내부에 강선이 없는 활강총포(滑腔銃砲, smoothbore)였다. 활강총포는 장거리에서 명중률이 낮았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가장 인기 높았던 활강총포인 샤를빌(Charleville) 머스킷 1776년 모델 <출처: Public Domain>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가장 인기 높았던 활강총포인 샤를빌(Charleville) 머스킷 1776년 모델 <출처: Public Domain>

    총기의 높은 명중률은 강선총포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강선총포는 총열 안쪽에 나선형의 강선(rifling)이 파여 있어 이로 인한 요철 때문에 발사되는 총알이나 포탄에 회전이 생기게 된다. 총구나 포구를 벗어난 총탄이나 포탄은 이 회전 덕분에 요동 없이 안정적으로 비행해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하게 된다.

    강선총포가 등장하면서 명중률이 높아져 저격도 가능하게 되었다. <출처: MatthiasKabel at German wikipedia>
    강선총포가 등장하면서 명중률이 높아져 저격도 가능하게 되었다. <출처: MatthiasKabel at German wikipedia>

    게다가 머스킷 소총을 비롯한 활강총포에는 둥근 탄환만 장착할 수 있었지만, 라이플에는 탄도 궤도의 안정성 덕분에 뾰족한 탄환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라이플의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5세기 후반 강선총포가 발명되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대형 포에만 적용되었다. 강선총포를 적용한 라이플은 18세기 전반에 등장했다. 라이플이 더욱 발달해 명중률이 높아지면서 비로소 저격수가 등장했다.


    초기 형태 저격수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미국 독립전쟁

    초기 형태의 저격수가 등장한 최초의 전쟁은 18세기 후반인 1775~1783년에 벌어진 미국 독립전쟁이다. 1777년 9~10월 벌어진 뉴욕 주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서 대륙군(식민지 민병대)은 500명 이상의 저격수를 동원했다. 지휘관인 대니얼 모건(Daniel Morgan)의 이름을 따서 ‘모건 소총부대’로 불렸던 이 부대는 사격 솜씨가 좋은 병사를 뽑아 구성했으며 전술적으로 영국군 장교와 포병을 골라서 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모건 소총부대는 저격 임무를 수행하여 독립전쟁 승리에 기여했다. 사진의 중앙 오른쪽에 흰색 제복을 입은 것이 지휘관인 모건 대령이다. 그림은 영국군 존 버고인(John Burgoyne) 장군의 항복 장면을 묘사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의 1821년 작품이다. <출처: Public Domain>
    모건 소총부대는 저격 임무를 수행하여 독립전쟁 승리에 기여했다. 사진의 중앙 오른쪽에 흰색 제복을 입은 것이 지휘관인 모건 대령이다. 그림은 영국군 존 버고인(John Burgoyne) 장군의 항복 장면을 묘사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의 1821년 작품이다. <출처: Public Domain>

    이를 통해 영국군 지휘부를 혼란에 빠뜨리고 포병들이 제대로 작전에 임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효과를 노렸다. 저격수들은 정밀 사격을 위해 라이플에 총검을 부착하지 않아 적의 공격에 취약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총검을 부착한 머스킷을 운용하는 부대와 함께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저격수들은 나무 뒤에 숨어 초기 모델의 라이플로 200야드(약 182.88m) 이상 떨어진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대륙군 저격수 티모시 머피(Timothy Murphy)는 이 전투에서 300야드(약 274.32m)[400야드(약 365.76m)라는 기록도 있다] 거리에서 영국군 지휘관인 사이먼 프레이저(Simon Fraser) 장군을 사살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대륙군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저격수인 티모시 머피 <출처: Public Domain>
    대륙군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저격수인 티모시 머피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당시에는 등 뒤에서 적을 사살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1777년 9월 11일에 벌어졌던 펜실베이니아 주 브랜디와인 전투(Battle of Brandywine)에서 영국군 장교 패트릭 퍼거슨(Patrick Ferguson)은 훤칠한 키에 위엄 있는 외모를 지닌 대륙군 장교가 자신의 라이플 조준선에 들어왔음에도 그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이유로 총을 쏘지 않았다. 나중에 퍼거슨은 그 키 크고 위엄 있는 외모의 대륙군 사령관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신사적인 저격수의 한 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꾼 것이었다.


    나폴레옹에 맞선 영국군 저격수들

    19세기 초반인 1803~1815년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영국군은 명사수로 이뤄진 특수부대를 구성해 운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군대가 명중률이 낮은 활공총기인 머스킷을 사용했지만, 눈에 띄는 녹색 제복을 입은 영국군 ‘그린 재킷츠(Green Jackets)’ 부대는 라이플의 역사에서 유명한 베이커 라이플(Baker rifle)을 사용했다.

    19세기 저격수들이 사용했던 베이커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19세기 저격수들이 사용했던 베이커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은 영국의 총기제작자인 이즈키엘 베이커(Ezekiel Baker)가 제작한 영국산 라이플로, 1800년 영국군 최초의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 전장식이지만 강선 총구를 갖춘 베이커 라이플은 장전 속도는 느렸지만, 명중률은 당시 어떤 소총보다 높았다. 이런 성능을 바탕으로 이 라이플을 사용하는 그린 재키츠 부대는 영국군의 엘리트 부대로 통했다. 어떤 전투에서도 최전방에 서서 정확한 사격으로 진격해오는 적을 저지했다.

    베이커 라이플로 저격을 하고 있는 샤프슈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베이커 라이플로 저격을 하고 있는 샤프슈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스나이퍼라는 용어에 앞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던 샤프 슈터(sharp shooter)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당시 영국군 부대의 활약을 보도한 1801년 6월 23일자 《에딘버러 애드버타이저(Edinburgh Advertiser)》의 기사였다. 샤프 슈터는 1781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샤르프쉬체(Scharfschütze)’라는 단어의 영어 번역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남북전쟁은 저격수의 전쟁

    최초의 장거리 저격용 소총은 19세기 중반에 디자인되었다. 영국의 엔지니어이자 기업인인 조지프 휘트워스 경(Sir Joseph Whitworth, 1803~1887년)이 1854~1857년에 설계한 휘트워스 라이플이 그것이다. 유효사거리가 800~900야드(약 731.52~822.96m), 최대사거리가 1,500야드(1,371.6m)에 이르렀다. 당시로서는 사거리가 대단히 긴 저격용 소총이었다.

    장거리 발사가 가능했던 휘트워스 소총 <출처: Public Domain>
    장거리 발사가 가능했던 휘트워스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휘트워스 라이플은 비용 문제로 영국군에는 팔리지 못하고 프랑스군과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남부연맹 측 군대, 즉 남군에 납품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 모두에서 저격수를 운용했다. 남북전쟁은 저격수의 전쟁이었다. 당시 1864년 5월 9일 스포트실베이니아 코트 하우스 전투(Battle of Spotsylvania Court House)에서 북군의 존 세지위크(John Sedgwick) 장군이 1,000야드(약 914.4m)의 거리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세지위크 장군은 “이 정도 거리라면 코끼리도 제대로 맞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직후 총탄을 맞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군의 주력인 포토맥군 소속의 저격수를 그린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의 1862년 작품 <출처: Public Domain>
    북군의 주력인 포토맥군 소속의 저격수를 그린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의 1862년 작품 <출처: Public Domain>

    비슷한 시기인 1853~1856년 벌어졌던 크림 전쟁(Crimean War) 당시 소총에 부착할 수 있는 광학조준경이 설계되었다. 이 덕분에 저격수들은 과거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광학기술을 이용한 망원조준경의 등장은 저격 전술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탁 트인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에 최초의 저격수 부대 등장

    1899~1902년에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군과 네덜란드계 보어인 양측 모두 탄창과 무연화약을 쓰는 최신형 라이플을 사용했다. 영국군은 리-메트퍼드(Lee–Metford) 라이플을, 보어인들은 독일제 마우저(Mauser) 라이플을 사용했다. 탁 트인 대지가 많은 남아프리카의 지형 특성상 저격수는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이 사용한 리-메트퍼드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제2차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이 사용한 리-메트퍼드 라이플 <출처: Public Domain>

    이 전쟁에서 1899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연대 산하에 설치된 영국군 최초의 저격수 부대인 로뱃 정찰대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 부대는 제2차 보어전쟁에서 명성을 얻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뱃 경이 이 부대를 조직해 미국 출신의 영국군 정찰부대 지휘관이던 프레더릭 러셀 버넘(Frederick Russell Burnham)에게 맡겼다. 버넘은 로뱃 정찰대를 “절반은 여우이고 절반은 산토끼”라고 표현했다. 영국군 저격수들은 보어인 상대와 마찬가지로 사격과 야전 활동, 독도, 감시, 그리고 군사 전술에 뛰어났다. 이들은 저격수들이 최초로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전투력과 전술을 강화한 군 부대 소속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산악훈련 중인 로뱃 정찰대원들 <출처: Public Domain>
    캐나다에서 산악훈련 중인 로뱃 정찰대원들 <출처: Public Domain>

    그들은 “저격하고 곧바로 달아난다. 살아남아 다른 날에 또 저격하기 위해서다”를 모토로 삼았다. 그들은 위장 능력이 뛰어난 길리 수트를 착용한 최초의 군 부대였다. 제2차 보어 전쟁이 끝난 뒤 이 부대는 최초의 저격수 부대로 공식 편제되었다. 당시 저격수는 스나이퍼(sniper)가 아닌 샤프슈터(sharpshooter)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사실, 강선총구를 지닌 라이플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저격수라는 보직이 제대로 확립되기 전에도 ‘요인 저격’이라는 군사 임무는 존재했다. 일본에서는 1598년 벌어졌던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사가 저격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 작전 지휘관이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휘하의 조총 사수가 배 뒤에 숨어 이순신 장군을 노려 저격했다는 주장이다. 양측이 교전 중 날아온 유탄에 맞았다는 조선측 기록과는 다른 주장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선총포가 도입되기 전 활공총포를 이용한 저격 활동이 된다. 조총은 당시 일본에서는 ‘다네가시마 댓포(種子島鐵砲)’로 불렸는데 1543년 포르투갈인이 일본 남부 다네가시마(種子島)를 통해 전래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불이 붙은 화승을 점화구에 갖다 댐으로써 총알을 발사하는 화승식 전장 소총이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말기인 16세기 1527년 5월 부르봉 공작 샤를 3세(Charles III, Duke of Bourbon)가 로마 성벽에서 저격을 당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Charles V, Holy Roman Emperor)는 교황 클레멘스 7세(Pope Clement VII)가 경쟁자였던 프랑스 왕국을 지원하자 부르봉 공작 샤를 3세에게 군대를 맡겨 교황령인 로마로 진군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하얀 망토를 걸쳤던 부르봉 공작은 5월 6일 로마 성벽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 금세공인, 군인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는 자신이 저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강선총포가 없어활공총포인 아쿼버스(arquebus)가 사용되었다. 아쿼버스도 조총처럼 화승총이다. 화승총은 1470년 무렵 독일에서 개발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부르봉 공작은 화승식 활공총포를 이용한 저격으로 목숨을 잃은 드문 경우로 볼 수 있다. 조총도 아쿼버스급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서양에서는 화승식을 거쳐 부싯돌을 이용하는 수발총(燧發銃, flint lock) 방식이 등장했다.

    당시 지휘관의 전사로 규율이 무너진 신성로마제국 군대는 로마에 들어가 약탈을 했으며 교황청을 경비하던 스위스 근위병 500명을 전멸시켰다. 스위스 근위병은 ‘총성의 서약’을 어길 수 없다며 최후까지 싸웠다. 그 뒤 교황청은 지금까지도 스위스 근위병에게 경비 업무를 맡기고 있다. 교황청 스위스 근위병들은 이를 기려 매년 5월 6일 신입 근위병의 충성 서약을 실시한다.

    영국에서는 17세기 잉글랜드의 의회파와 왕당파가 1642~1651년에 벌였던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 당시 의회파 군사지도자인 2대 브루크 남작 로버트 그리빌(Robert Greville, 2nd Baron Brooke, 1607~1643)이 스나이퍼의 의도적인 총격에 숨진 최초의 인물로 통한다. 그리빌은 스트래트퍼드셔(Staffordshire) 리치필드(Lichfield)에 있는 리치필드 성당(Lichfield Cathedral)에서 숨어서 그를 노린 한 남자의 총격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의회파가 구성한 신모델군(New Model Army)은 전장식 활공총포인 머스킷을 사용했다. 머스킷 총구로부터 화약과 총알을 차례로 넣고 조준·발사한 뒤 총신 내부를 소제하고 다시 장전·발사하는 과정을 그림 등으로 교육하는 자료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그리빌은 머스킷에 의해 사살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여명기를 거친 뒤 강선총포가 등장하면서 저격수는 비로소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저격수는 이처럼 인류사와 과학기술사, 그리고 군의 역사와 보폭을 함께해왔다.

    캐나다에서 산악훈련 중인 로뱃 정찰대원들 <출처: Public Domain>


    저자 소개

    채수윤
    영국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영국과 중국을 오가며 현대 중국학을 연구했다. 러시아와 발칸 지역을 비롯한 동유럽의 분쟁사와 대외 관계사, 서유럽 국가 지도자들의 위기관리 리더십, 중국 현대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왔다. 중세와 근대, 현대의 분쟁사와 무기체계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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