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A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개발사
미국 폭격기 전력의 정점에 선 최강의 스텔스 폭격기
  • 양욱
  • 입력 : 2017.11.24 13:25
    B-2A 스피릿 폭격기 <출처: Airman 1st Class Jazmin Smith / 미 공군>
    B-2A 스피릿 폭격기 <출처: Airman 1st Class Jazmin Smith / 미 공군>


    개발의 역사

    레이더 대 스텔스

    드넓은 창공에서 항공기를 탐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레이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레이더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레이더에 대한 의존도 역시 급격히 증가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비커스(Vickers) 웰링턴(Wellington) 폭격기에 레이더를 장착하고 적 폭격기 편대나 V-1 미사일을 탐지하면서 세계 최초의 공중조기경보기를 운용하기도 했다. 또한 냉전 직후 등장한 2세대 전투기부터는 6·25 전쟁의 경험과 진보한 항전 기술을 바탕으로 전투기마다 레이더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레이더 만능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 웰링턴 폭격기는 공중관제 레이더를 장착하고 폭격기편대 탐지 임무를 맡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제2차 세계대전 시 웰링턴 폭격기는 공중관제 레이더를 장착하고 폭격기편대 탐지 임무를 맡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항공기 탐지에서 레이더가 중요해지자, 사람들은 반대로 레이더가 탐지하지 못하게 항공기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1950년대 후반에 미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중앙정보국)는 노후한 U-2 정찰기를 교체하기 위해 신형 기체 개발에 나섰다. 정찰 관련 예산은 미군 내에서도 한계가 있다 보니 CIA가 자금을 지원하며 개발을 주도했다. CIA는 고고도 정찰기이면서 레이더 탐지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당시 록히드(Lockheed) 사의 켈리 존슨(Clearance "Kelly" Johnson)이 이끌던 ‘스컹크 웍스(Skunk Works)’ 설계팀은 레이더가 탐지할 수 없는 고도로 날자는 발상 하에 7만~8만 피트 상공을 마하 3.2 정도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A-12 '옥스카트(OXCART)‘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A-12 옥스카트 정찰기를 기반으로 하여 레이더 반사면적(RCS, Radar Cross Section)을 줄이기 위해 수직미익에 경사각을 주고, 특정 부분에 합성소재를 사용하고, 표면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도료를 칠해 제1세대의 초보적 스텔스(stealth) 항공기인 SR-71 블랙버드(Black Bird)를 탄생시켰다.

    A-12 옥스카트 정찰기 <출처: CIA>
    A-12 옥스카트 정찰기 <출처: CIA>

    2세대 스텔스로의 진화

    한편 적 레이더망을 돌파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특히 1970년대에 미국은 유럽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NATO 사이에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NATO의 전술기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이에 따라 촘촘한 소련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적 항공기들이 이륙하기도 전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필요성을 충족시킬 만큼 기술이 성숙했다고 판단한 미 국방부의 국방과학위원회(Defense Scientific Board)는 1974년 적에게 보이지 않는 ‘스텔스 공격기’를 개발하도록 권유했다.

    이에 따라 1975년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국방고등연구기획국)는 록히드, 노스럽(Northrop), 맥도널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 3개사를 비밀리에 불러 XST(Experimental Survivable Testbed: 실험용 생존성 테스트베드) 사업에 제안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1976년 3월 제1차 사업에서 록히드가 선정되어 ‘해브 블루(Have Blue)’ 비행실증기가 만들어졌다. 해브 블루는 추후에 F-117로 제작되어 양산되었다. 그러나 DARPA는 노스럽의 기술도 높이 평가하여 제2차 사업은 노스럽에 맡겼다.

    록히드 ‘해브 블루’ 기술실증기 <출처: DARPA>
    록히드 ‘해브 블루’ 기술실증기 <출처: DARPA>

    DARPA가 계획하고 있던 핵심 사업들 가운데 ‘어설트 브레이커(Assault Breaker)’가 있었다. 이 사업의 목표는 중부 유럽에서 소련의 전차부대가 밀려올 경우, 제2파에 대하여 정밀유도무기를 집중적으로 투하하면서 진격을 막는 것이었다. DARPA는 이를 위해 공중에서 레이더로 전차와 미사일 등을 추적하면서도 적의 가시선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항공기를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BSAX(Battlefield Surveillance Aircraft-Experimental)라고 불렀다. 바로 이 BSAX의 개발이 1976년 12월 노스럽에 할당된 것이다. 이에 따라 노스럽은 ‘태싯 블루(Tacit Blue)’ 비행실증기를 개발했다.

    태싯 블루에서 전략폭격기로

    태싯 블루는 해브 블루보다 개발이 훨씬 더 어려웠다. 우선 지상감시를 위해 사용하는 측면감시 LPI(Low Probability of Intercept: 저피탐) 레이더를 개발하여 장착해야만 했고, 전장을 감시하는 기체의 임무 성격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해브 블루는 공격용 기체로 목표물로 정면으로 침투하여 짧은 시간 내에 타격을 하면 그만이었지만, 태싯 블루는 상공에 오랜 기간 체공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레이더로부터 감시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브 블루는 정면의 스텔스 성능만 충분하면 되었지만, 태싯 블루는 모든 각도에서 스텔스 성능이 보장되어야만 했다.

    노스럽 ‘태싯 블루’ 기술실증기 <출처: 미 공군>
    노스럽 ‘태싯 블루’ 기술실증기 <출처: 미 공군>

    개발은 쉽지 않았지만, 노스럽은 둥근 동체와 평면의 하부에 경사진 수직미익을 더한 형상을 만듦으로써 레이더 반사면적(RCS)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독특한 형상이 된 태싯 블루는 노스럽 안에서는 ‘고래(whal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래’는 1982년 초도비행을 실시했고, 시험비행은 성공리에 끝났다. LPI 레이더의 개발과 통합도 성공적이었고, 설계는 양산이 가능한 정도까지 성숙해갔다. 그러나 레이더유도방식의 미사일을 유도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펜타곤은 종말유도에서는 다른 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즉, 대형 레이더를 보잉 707 항공기에 실어 원거리에서 표적의 위치 확인만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E-8 조인트 스타스(Joint STARS)가 만들어졌다. 결국 태싯 블루는 1985년에 사업이 취소되었고, 프로토타입 기체는 그룸 레이크(Groom Lake)에 보관되었다가 1996년 비밀이 해제되면서 라이트-패터슨(Wright-Patterson) 공군기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태싯 블루의 시험비행 장면 <출처: 미 공군>
    태싯 블루의 시험비행 장면 <출처: 미 공군>

    그러나 태싯 블루라는 기체를 만들어냄으로써 노스럽은 공군의 차기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회사로 인정받았다. 미 공군은 1970년대 중반 B-1의 양산이 취소되자 새로운 폭격기를 개발하기로 했는데, 새 폭격기에는 스텔스 기술을 적극 채용하기로 했다. 카터(Jimmy Carter) 행정부에서 선진기술폭격기(ATB, Advanced Technology Bomber) 개발사업이 승인되어 1979년부터 시작되었다. 애초에는 록히드의 설계안이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록히드의 독점을 우려한 미 공군은 노스럽을 사업에 끌어들였다.

    노스럽의 독특한 설계안

    당시 유일하게 스텔스 기술을 보유한 록히드와 노스럽은 또다시 ATB 사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양사의 접근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록히드의 설계안은 지금까지 상세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해브 블루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망 없는 다이아몬드(Hopeless Diamond)’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기역학적으로 한계가 많은 기체였다. 그러나 록히드는 이미 F-117을 개발하여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내놓을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미 성숙한 기술을 바탕으로 저렴하게 양산이 가능했다.

    노스럽은 이미 1940년에 1인승 전익기 N-1M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Public Domain>
    노스럽은 이미 1940년에 1인승 전익기 N-1M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노스럽은 달랐다. 태싯 블루의 성과를 제쳐놓고 완전히 밑바닥부터 다시 설계했다. 바로 여기서 등장한 것이 전익기(flying wing) 설계였다. 사실 노스럽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전익기를 만들기 시작하여 실험기체인 N-1M을 1940년에, N9M은 1943년에 선보였다. 실험기의 성과에 만족한 노스럽은 육군항공대의 B-29 폭격기를 대체할 차기 폭격기로 시제전익기를 대형화시킨 XB-35 폭격기의 개발에 나섰다. XB-35는 폭 52m의 거대한 기체로 무려 33톤의 폭탄을 실을 수 있었다. 물론 전익기 개발은 노스럽만 한 것이 아니어서, 독일도 제트 추진 전익기 시제 모델인 Ho 229를 만들어냈지만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XB-35의 개발도 마찬가지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야 개발이 완료되었다.

    XB-35 폭격기 <출처: 미 공군>
    XB-35 폭격기 <출처: 미 공군>

    XB-35는 1946년이 6월 25일 성공리에 초도비행을 마쳤다. 초도기는 이중 반전 프로펠러(contra-rotating propeller)로 추진했지만, 시제 2호기는 단일 프로펠러 추진 방식을 사용했다. 미 육군은 사업을 더욱 키워 시제기 13대를 추가로 주문했고, 시험이 성공하면서 B-35를 최대 200대 생산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그러나 제트폭격기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업은 갑자기 취소되었다. 대신 XB-35에 제트엔진 8개를 장착한 YB-49 개발사업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트엔진으로 교체하면서 장거리 폭격기로서의 이점이 사라졌고, 1948년에는 시험기체가 실속으로 추락하면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결국 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미 공군은 사업을 취소시켜버렸다.

    YB-49 폭격기 <출처: 미 공군>
    YB-49 폭격기 <출처: 미 공군>

    이러한 역사를 가진 전익기 설계를 노스럽은 40년 만에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스럽의 전익기 설계가 록히드의 설계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아, 노스럽이 ATB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새로운 폭격기는 B-1A의 후속 기종이기에 제식분류명은 B-2로, 이름은 ‘스피릿(spirit)’으로 정해졌다.

    B-2의 화려한 등장과 좌절

    B-2의 양산은 1982년부터 시작되었다. B-2 사업은 F-117과는 달리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알려졌음에도 매우 높은 보안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노스럽 직원이 B-2의 기술을 소련에 팔려는 시도를 하다가 FBI의 수사로 무산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B-2는 1988년 11월 22일 캘리포니아 주 팜데일(Palmdale)의 제42공군생산기지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최초의 공개 시험비행은 1989년 7월 17일에 실시되었다.

    초도비행 중인 B-2 폭격기 <출처: 미 공군>
    초도비행 중인 B-2 폭격기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은 애초에 B-2A 132대를 생산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리 냉전이라도 예산상의 제약으로 그 수는 75대로 축소되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의 등장으로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1991년 결국 소련까지 몰락하자, B-2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핵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는데 과연 선제타격에나 쓰일 B-2 스텔스 폭격기를 그렇게 많이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의회의 집요한 국방예산 삭감요구에 따라, 결국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미국 대통령은 1992년 연두교서에서 B-2의 생산대수를 20대로 대폭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B-2의 생산량은 대폭 감축되었다. 1996년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가 20대의 생산을 완료하고 성능이 개량된 B-2A 블록 30을 1대만 더 추가로 생산함으로써 B-2A는 21대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B-2A에 대한 의회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는데, 미 하원의원인 로드 블라고예비치(Rod Blagojevich)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모든 부품을 금으로 만들었을 때의 가격보다 세 배나 비싸다. 가격이 무려 23억 달러나 한다.”

    B-2는 단 21대만이 만들어져 가장 비싼 폭격기가 되었다. <출처: 미 공군>
    B-2는 단 21대만이 만들어져 가장 비싼 폭격기가 되었다. <출처: 미 공군>

    21대가 생산된 B-2A 스텔스기 중에 1982년에 발주된 6대는 이른바 초도양산형으로, 에드워즈(Edwards) 공군 기지의 제412시험비행단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비행시험을 실시했다. 그동안 6대는 양산 사양으로 차례차례 변경되었고, 이것들을 포함해서 1990년까지 생산된 16대를 블록 10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1992년에 생산한 1대와 1993년에 생산한 것 중 최초 2대가 재래식 무기 운용 능력을 강화한 블록 20이며, 마지막 2대는 LO(저관측, 즉 스텔스) 성능향상형 블록 30이다. 현재는 블록 10/20의 B-2A가 모두 블록 3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미군 폭격 전력의 정점

    B-2는 단 21대만이 만들어져 가장 비싼 폭격기가 되었다. <출처: 미 공군>

    이처럼 B-2A는 겨우 21대이지만 부대와 기지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미 공군의 핵심 전력으로 떠올랐다. 또한 블록 10에서 블록 20을 거쳐 블록 30까지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B-2A는 핵폭탄이나 AGM-129 ACM(신형 순항미사일)을 운용하는 핵폭격기에서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 통합직격탄)과 JSOW(Joint Stand-Off Weapon: 통합 장거리 무기), JASSM(Joint Air-to-Surface Stand-off Missile: 통합 공대지 장거리 무기)을 운용할 수 있는 다기능 중(重)폭격기로 진화했다.

    F-117과 달리 B-2는 완전한 스텔스 성능으로 여전히 현역을 지키고 있다. <출처: 미 공군>
    F-117과 달리 B-2는 완전한 스텔스 성능으로 여전히 현역을 지키고 있다. <출처: 미 공군>

    우선 B-2A는 1999년 코소보 항공전에서 최초로 여러 개의 표적에 대한 공격임무를 수행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9·11 테러 이후에는 대테러 전쟁의 일선에 투입되어 지구를 반 바퀴 이상씩 돌면서 범지구적 타격 능력(global strike)을 과시했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침공에서는 개전 초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핵심 표적을 무력화시키면서 스텔스 전략폭격기의 위력을 한껏 과시했다. B-2A는 이후 B61-11 핵 벙커버스터탄이나 GBU-57 슈퍼벙커버스터탄 등을 운용하는 유일한 기체로서, 특히 핵위협을 고조시키는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체로 자리 잡았다.

    B-2는 막강한 폭장 능력과 스텔스 능력이 더해져 현재 미 공군에서 가장 강력한 폭격기다. <출처: 미 공군>
    B-2는 막강한 폭장 능력과 스텔스 능력이 더해져 현재 미 공군에서 가장 강력한 폭격기다. <출처: 미 공군>

    현재 B-2A는 2008년 사고로 1대가 추락하여 모두 20대가 운용 중이다.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은 여러 차례 B-2의 추가 생산을 공군에 제안했지만, 워낙 비싼 가격으로 늘 논의 단계에서 끝났다. 그러는 와중에 B-2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져 업그레이드가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2008년 레이더 개수사업 이후에 2014년부터는 운용주기를 10년 연장하는 현대화 사업이 실시되어 2050년대까지 사용할 계획이다.

    기존의 폭격기 삼총사를 대체할 B-21 폭격기의 예상도 <출처: 미 공군>
    기존의 폭격기 삼총사를 대체할 B-21 폭격기의 예상도 <출처: 미 공군>

    물론 B-2를 대체할 차기 폭격기 LRS-B(Long Range Strike Bomber)로 B-21 레이더(Raider)가 2025년부터 일선에 등장할 예정이다. 노스럽이 생산을 담당할 예정인 B-21은 B-2의 특징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B-21 전력은 우선 낡은 B-52부터 시작하여 B-1과 B-2의 순으로 교체해나갈 예정이다. 따라서 B-2가 활약할 날은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B-2의 특징, 운용 현황 등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컨설팅과 교육, 훈련을 제공하는 민간군사서비스(PrivateMilitary Service) 기업인 AWIC(주)의 대표이사다. 또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이자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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