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발터 PP / PPK 개발사 및 특징
007도 사랑한 현대 권총의 선구자
  • 양욱
  • 입력 : 2017.11.03 15:52
    발터 PPK 380ACP 구경 자동권총 <출처: public domain>
    발터 PPK 380ACP 구경 자동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칼 발터 바펜파브릭(Carl Walther Waffenfabrik: 칼 발터 총기제작사)은 원래 튀링엔 주의 첼라-멜리스(Zella-Mehlis)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첼라-멜리스는 튀링엔에서도 가장 유명한 금속가공단지 중 하나로, 1400년대 중반에 시작하여 이미 1593년에 총포제작자 길드가 형성되었다. 1860년에 태어난 칼 발터(Carl Walther)는 26살의 나이에 첼라-멜리스에 총기제작소를 차렸다. 이것이 칼 발터 바펜파브릭(이하 발터 사로 표기)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발터의 총기제작소 규모는 아주 영세해서 발터와 그 밑에 수련공 한두 명 정도가 전부였다.

    창업주인 칼 발터(왼쪽)와 발터를 일군 장본인인 프리츠 발터(오른쪽) <출처: Carl Walther GmbH>
    창업주인 칼 발터(왼쪽)와 발터를 일군 장본인인 프리츠 발터(오른쪽) <출처: Carl Walther GmbH>

    20세기 초가 되면서 발터의 아들인 프리츠(Fritz), 게오르크(Georg), 에리히(Erich)가 가업을 돕기 시작했다. 1907년에는 장남 프리츠가 6.35mm 자동권총을 설계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6.35mm(25ACP 탄환) 권총인 FN ‘베이비 브라우닝(Baby Browning)’을 보고 따라한 습작이었다. 그런데 이런 권총이 시장에서 인기를 끈다는 것을 파악한 발터 부자는 본격적으로 독일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08년에는 프리츠의 설계를 완성시킨 완제품인 ‘모델1’을 선보였다. 이후 발터 사는 천천히 하지만 착실히 성장하여 15명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1909년에는 매우 잘 가다듬어진 독자적 설계의 ‘모델2’가 등장하면서 발터 사는 드디어 총기회사로 입지를 굳혔다. 모델2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권총이 되었다.

    첼라-멜리스의 발터 사 전경 <출처: Carl Walther GmbH>
    첼라-멜리스의 발터 사 전경 <출처: Carl Walther GmbH>

    1910년에는 모델3와 모델4가 등장하면서, 발터 사는 최초로 7.65mm(32ACP) 탄환을 사용하는 권총을 선보였다. 1913년 모델5를 선보일 즈음해서는 기술력도 향상되고, 회사 규모도 커져 직원이 75명이나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발터 사는 급성장하게 된다. 비록 이 시기에 나온 모델6는 성공작은 아니었지만, 대전 중반에는 직원 수가 500명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면서 휴전협상에 따라 발터 사는 DWM이나 마우저(Mauser)와 같은 총기회사들과 함께 문을 닫아야만 했다.

    발터의 최초 제품인 모델1(왼쪽)과 제1차 세계대전 후 신모델인 모델8(오른쪽) <출처: Public Domain>
    발터의 최초 제품인 모델1(왼쪽)과 제1차 세계대전 후 신모델인 모델8(오른쪽) <출처: Public Domain>

    칼 발터는 1915년 사망했지만, 아들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1920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허락 하에 다시 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간만에 등장한 것이 모델8이었다. 모델8은 기존의 분해결합 방식과는 달리 방아쇠울을 아래로 잡아당겨서 슬라이드를 분해하는 새로운 컨셉의 권총이었다. 이듬해인 1921년에는 마우저의 베스텐타셴피스톨레(westentaschenpistole)에 대항하여 모델9을 선보였다. 그러나 발터 사가 만든 모델 1부터 모델9까지의 권총들은 유럽의 다른 총기회사들이 만든 모델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1929년 드디어 발터 사가 자신들의 기술력을 온전히 담은 새로운 권총을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발터(Walther) PP였다.

    1929년 처음 등장한 발터 PP는 당시로서는 디자인이 획기적이었으며,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더블액션 자동권총이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29년 처음 등장한 발터 PP는 당시로서는 디자인이 획기적이었으며,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더블액션 자동권총이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PP는 폴리차이 피스톨레(Polizei Pistole), 즉 경찰용 권총이라는 뜻으로, 유럽의 경찰시장을 겨냥하여 만든 새로운 컨셉의 자동권총이었다. PP는 처음 발매되면서 32ACP(7.65mm) 탄환을 사용하는 모델만이 발매되었으나, 점차 380ACP(9mm 쇼트) 탄환을 사용하는 모델도 만들어졌다. PP는 이름 그대로 경찰용으로 생산되었는데, 사실 최초에 32구경탄 모델로 만들어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과다 관통으로 범인 이외의 시민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하여 당시 유럽 경찰들은 권총탄환으로 32구경탄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관례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볼버(revolver)처럼 약실에 탄환이 장전된 상태로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발사될 수 있도록 더블액션(double action) 격발기구를 채택했다. 당연히 PP는 경찰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상당수가 팔려나갔다.

    1931년에는 PP의 컴팩트 모델인 PPK가 등장했다. PPK는 폴리차이 피스톨레 크리미날렌(Polizei Pistole Kriminalen), 즉 형사용 권총의 준말로, 총기를 외투 속에 은닉하는 형사를 위한 권총이라는 말이다. PP의 인기는 PPK로 이어졌다. PPK는 총열과 프레임을 0.5인치 정도 줄인 모델로, 장탄수는 PP보다 1발이 줄어든 6발이었다. 그러나 PPK는 휴대가 간편하여 더욱 각광받았다.

    PP의 단축형인 PPK는 원래 사복경찰용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치 독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권총이 되었다. 사진은 나치당 고위 간부들에게 지급된 PPK 권총이다. <출처: Public Domain>
    PP의 단축형인 PPK는 원래 사복경찰용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치 독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권총이 되었다. 사진은 나치당 고위 간부들에게 지급된 PPK 권총이다. <출처: Public Domain>

    1933년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면서 신생 독일 육군의 제식권총으로 9mm 파라블럼탄을 사용하는 루거(Luger) P08 권총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해군과 공군 장교들, 그리고 육군의 고위장교들의 제식권총으로는 PPK가 채택되었다.) 또한 독일의 사복경찰이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Gestapo), SS 친위대, 나치당 간부들에게도 PPK가 지급되었다. 특히 나치당 간부들은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인그레이빙(engraving: 금속판에 예리한 도구로 디자인을 새겨 만드는 판화기법)으로 휘향찬란하게 장식된 PPK를 지급받기도 했다. 이러한 행태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북한으로, 백두산 권총의 인그레이빙도 PPK의 사례를 따라한 것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8년, 독일은 제식권총을 루거 P08에서 발터 P38로 교체했다. 이로 인해 발터 사는 PPK에 더하여 엄청나게 많은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치는 강제동원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함부르크(Hamburg)에 위치한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수용소의 일부분인 노이엔가메(Neuengamme) 캠프 안에 총기 생산시설을 만들었다. 노이엔가메에는 주로 정치범이나 소련과 폴란드의 포로들을 수용했는데, 나치는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발터 권총을 만들게 했다.

    PP·PPK 권총을 언급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다. 히틀러는 1939년 자신의 50세 생일에 PP 권총을 선물받았다. 히틀러의 PP 권총은 니켈 도금에 금으로 장식되었으며, 상아손잡이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약자인 ‘A H’가 새겨졌다. 이 권총은 1980년대 초에 한 경매에 등장했는데, 당시 1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10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히틀러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생일선물인 PP가 아니라 PPK였다. 베를린 함락 직전 히틀러는 발터 모델8과 PPK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치욕적인 패배를 앞두고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선택한 권총은 바로 발터 PPK였다.

    히틀러의 50세 생일선물이었던 PP 권총(왼쪽) / 히틀러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쇼파 위에 PPK가 놓여 있다.(오른쪽) <출처: Public Domain>
    히틀러의 50세 생일선물이었던 PP 권총(왼쪽) / 히틀러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쇼파 위에 PPK가 놓여 있다.(오른쪽) <출처: Public Domain>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은 또다시 총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총기생산금지 조치는 1951년에서야 해제되었는데, 냉전이 가열되면서 서독을 무장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장남 프리츠 발터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설계도면만 챙긴 후에 소련 치하의 첼라-멜리스에서 빠져나와, 1953년 서독의 울름(Ulm)에 새 공장을 세웠다. 이후 발터 사는 서독 육군을 위한 권총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운용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PPK의 면허생산권을 다른 회사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52년에는 프랑스의 마뉘랭(Manurhin) 사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초로 PPK를 생산하기도 했다. 발터 사는 1957년에서야 울름의 새 공장에서 PPK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다.

    울름에 있는 발터 본사 <출처: eimer Elektrotechnik GmbH>
    울름에 있는 발터 본사 <출처: eimer Elektrotechnik GmbH>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에서 재생산된 PPK(왼쪽)와 최신 사양의 PPK(오른쪽) <출처: Carl Walther GmbH>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에서 재생산된 PPK(왼쪽)와 최신 사양의 PPK(오른쪽) <출처: Carl Walther GmbH>

    냉전 기간 동안 PPK는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생산되었다. 수많은 회사들이 PP나 PPK를 면허생산 혹은 불법복제생산을 했고, 아르헨티나의 베르사(Bersa), 스페인의 아스트라(Astra), 스위스의 SIG 등에서 PPK를 바탕으로 변형 권총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동구권의 표준권총으로 자리 잡은 소련의 마카로프(Makarov) 권총도 사실은 PPK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PPK를 선호하게 된 것도 결국은 냉전의 영향 때문이었다.

    한편 PPK의 인기는 엉뚱하게도 세계 최고의 총기시장인 미국에서 제동이 걸렸다. 1968년 미 의회가 총기규제법을 통과시키면서 수입되는 소형 권총의 크기와 무게에 대한 기준을 강화했다. 문제는 PPK가 해당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PP의 프레임에 PPK의 총열을 채용한 PPK/S 모델이 등장했는데, 이는 총기규제법상으로 수입이 가능한 모델이었다. 또한 총기규제법은 미국 국내에서 생산된 총기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았으므로, 발터 사는 이 점을 이용해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인터암스(Interarms)라는 회사에 PPK에 대한 면허생산권을 주어 1978년부터 인터암스 사가 PPK를 미국에서 생산하게 했다. 인터암스 사는 1990년대 중반까지 PPK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PK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James Bond)가 사용하는 권총으로 PPK가 선정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 PPK가 생산된 것도 사실 그러한 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2002년부터는 미국 권총의 명가인 스미스 & 웨슨(Smith & Wesson) 사가 PPK의 설계권을 사들였다. 손이 큰 사람은 PPK의 슬라이드에 손을 ‘씹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 점이 불만으로 지적되곤 했는데, 스미스 & 웨슨 사는 권총손잡이 부분을 재설계한 모델을 2002년부터 발매하면서 PPK를 부활시키고 있다.

    PPK 권총은 007의 총기로 선정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출처: MGM/UA Entertainment Company>
    PPK 권총은 007의 총기로 선정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출처: MGM/UA Entertainment Company>


    특징

    발터 PP와 PPK는 단순 블로우백(blowback)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애초에 32구경탄과 9mm 쇼트탄을 채용하여 상대적으로 반동이 약한 탄환을 사용했으므로, 브리치락(breech lock) 구조를 활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PP와 PPK는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더블액션 기구를 채용한 권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슬라이드에 안전장치를 겸하는 디코킹 레버(decocking lever)를 장착하여, 레버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안전하게 더블액션 상태로 준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발터 P-38에 그대로 채용되었으며, 스미스 & 웨슨 모델39나 베레타(Beretta) 92F와 같은 자동권총에도 그대로 채용되었다.

    PPK 권총의 내부 작동 구조 <출처: Public Domain>
    PPK 권총의 내부 작동 구조 <출처: Public Domain>

    안전장치가 작동되면 트리거바(trigger bar: 방아쇠지렛대)가 해체되고 방아쇠가 기능하지 않고, 공이치기도 뒤로 밀린 상태로 잠긴다. 또한 약실장전표시기(loaded chamber indicator)가 장착되어 있어 공이치기 위쪽의 슬라이드 끝부분에 조그만 핀이 튀어나오면 약실에 탄환이 장전되어 있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만들어진 PP나 PPK에는 약실장전표시기가 생략된 경우도 있다.

    약실에 탄환이 있는 경우 표시기가 튀어나온다. <출처: Public Domain>
    약실에 탄환이 있는 경우 표시기가 튀어나온다. <출처: Public Domain>

    총기의 분해·결합 방식도 독특하다. 프레임과 결합되는 부분의 방아쇠울이 슬라이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방아쇠울을 아래로 잡아 내리면 슬라이드가 분해되는 방식이다. 이는 원래 발터 사가 1920년 개발한 모델8에 최초로 채택했던 방식인데, PP와 PPK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별도의 슬라이드 고정핀이 필요하지 않아서 부품의 수도 줄어들고 강성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슬라이드와 프레임을 서로 꽉 맞게 잡아주어 사격의 정밀도도 높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식은 마카로프 권총에도 그대로 채용되었다.

    방아쇠는 더블액션이나 싱글액션(single action) 어느 쪽에서도 부드러운 편이다. 특히 32구경탄 모델이 9mm 쇼트탄 모델보다 방아쇠가 상대적으로 가볍다. 하지만 소형 권총치고는 방아쇠 당김이 꽤나 무거운 편으로, 더블액션에서 방아쇠 무게가 3.4파운드고 싱글액션에서는 방아쇠 무게가 6파운드이다. 특히 손잡이가 작은 소형 권총을 당길 때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방아쇠 무게를 2~3파운드 정도 줄이는 커스텀 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총기 분해 방법

    1. 안전장치를 걸고 약실을 비우고 탄창을 제거한 상태에서 방아쇠울을 아래로 잡아당긴다.
    2. 방아쇠울을 내리면서 다시 프레임으로 결합되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고정시킨다.
    3. 이 상태로 슬라이드를 맨 뒤까지 잡아당긴 후에 뒷부분을 살짝 들어주면 프레임과 슬라이드가 들린다.
    4. 리코일 스프링(recoil spring)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슬라이드를 천천히 앞으로 당기면서 프레임과 슬라이드를 분리한다.

    발터 PP / PPK 개발사 및 특징

    * 발터 PP/PPK의 운용 현황, 파생형, 제원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컨설팅과 교육, 훈련을 제공하는 민간군사서비스(PrivateMilitary Service) 기업인 AWIC(주)의 대표이사다. 또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이자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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