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7A 글로브마스터 III
전술·전략수송기의 장점을 고루 갖춘 팔방미인
  • 윤상용
  • 입력 : 2017.09.15 13:43
    미 공군 C-17 수송기 0025기가 미 항공우주국(NASA)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Dryden Flight Research Center)에서 비행 중인 모습 <출처: Jim Ross, 미 항공우주국(NASA)>
    미 공군 C-17 수송기 0025기가 미 항공우주국(NASA)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Dryden Flight Research Center)에서 비행 중인 모습 <출처: Jim Ross, 미 항공우주국(NASA)>


    개발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미국은 1960년대에 이르면서 사실상 서방세계 전체를 지휘하며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과 첨예한 대결을 치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미군은 전 세계를 작전지역으로 하여 전쟁 억제를 위한 전투력을 투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물자와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수송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군은 기존에 장거리 수송 능력에 중점을 둔 전술수송기와 전장에 바로 긴급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전략수송기를 별도로 나누어 운용했으나, 작전지역과 환경이 전 세계로 넓어지게 되면서 항속거리가 길면서도 다양한 모든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범용 기체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다. 즉, 미국은 전술수송이 가능하면서도 이착륙 능력이 뛰어나 전투 지역 내 전방 공군기지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할 수 있고, 다수 병력의 수송뿐 아니라 긴급 의무 후송(MEDIEVAC)이 가능하여 미군의 20세기 공중 기동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할 종합 수송 시스템의 도입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미국은 이렇듯 교리의 변화가 발생함에 따라 1968년부터 주력 수송기인 C-130 허큘리스(Hercules)를 대체할 대체 기종 도입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미 공군은 1972년 1월자로 고등 중형 단거리 이착륙 수송기 사업(AMST, Advanced Medium STOL Transport)의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발행하면서 12,000kg을 탑재한 상태에서 610m 활주로만 확보하면 이륙이 가능하고, 작전반경은 740km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제안요청서에 넣었다. 당시 미 공군이 운용하던 C-130의 경우 12,000kg를 탑재할 경우 1,200m의 활주 거리가 필요했으므로 그 절반의 거리만으로도 이륙이 가능한 기체를 원했던 것이다.

    이에 최초에는 벨(Bell), 보잉(Boeing), 페어차일드(Fairchild), 맥도넬-더글러스(McDonnell-Douglas), 록히드(Lockheed)/노스 아메리칸 록웰(North American Rockwell) 사가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미 공군은 1972년 11월부로 YC-14를 제안한 보잉과 YC-15를 제안한 맥도넬-더글러스 단 2개 업체로 압축하여 사업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지 않은 상태로 1979년 12월에 취소되어버려 두 기체 모두 양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사업을 취소시킨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술수송이나 전략수송 능력 중 하나에만 집중한 수송기가 아니라 ‘전략수송 능력을 갖춘 전술수송기’를 요구했는데 이 두 기체 다 이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AMST 사업에서 보잉의 YC-14가 경쟁한 맥도넬-더글러스의 YC-15의 모습. AMST 사업은 취소되었으나 YC-15는 C-17로 부활했다. <출처: Tony Landis, 미 항공우주국(NASA)>
    AMST 사업에서 보잉의 YC-14가 경쟁한 맥도넬-더글러스의 YC-15의 모습. AMST 사업은 취소되었으나 YC-15는 C-17로 부활했다. <출처: Tony Landis, 미 항공우주국(NASA)>

    한편 미 공군은 AMST 사업 취소 한 달 전인 1979년 11월자로 새로운 전략·전술 필요성을 충족시킬 C-X 사업을 별도로 발주했다. 이 사업은 1960년대에 도입했던 C-141 스타리프터(Starlifter) 전술수송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발주되어 1980년 10월에 제안요청서가 발행되었으며, 맥도넬-더글러스 사와 보잉, 록히드 등이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YC-15를 기반으로 한 맥도넬-더글러스의 기체가 선정되어 1981년 8월 28일자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YC-15의 개조형인 기체는 C-17로 제식번호가 재지정되었으며, C-74 글로브마스터(Globemaster), C-124 글로브마스터 II에 이어 글로브마스터라는 이름을 승계했다. C-17은 YC-15에 비해 뒤로 처진 후퇴익을 채택, 더 커진 동체 크기, 더 큰 추력을 갖춘 엔진 등에서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퇴역 대상인 C-141의 임무뿐 아니라 록히드의 C-5 전술수송기 임무까지 일부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1992년 말에 실시한 주익 정적(靜的) 시험에서 공군의 요구도는 주익 설계 한도 하중의 150%를 견디기를 요구했으나 C-17의 주익은 128%에서 파손되었고, 1억 달러를 들여 재설계한 후 실시한 1993년 가을 시험에서는 145%일 때 파손되었다. 그나마 사후 검토 때 적재물이 날개 위에 올바르게 실리지 않은 것이 발견되어 재검사를 한 끝에 요구도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양산 일정이 밀린 데다가 개발비용까지 초과되자 국방부는 40호기가 인계될 때까지 시정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맥도넬-더글러스 사는 이 개선 작업을 위해 개발 단계에서만 약 15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C-17은 1994년까지도 예산 초과에 더해 중량, 페이로드(payload: 최대적재량) , 항속거리 등 요구 제원 상당 부분이 충족되지 않았고, 감항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 일정한 범위의 수리 및 개조 수행으로 항공기의 구조, 강도, 성능에 대해 항공기가 비행하기에 적합한 안전성과 신뢰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고, 필요시 해당 항공기 기술 지시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말함) 평가 단계에서도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임무 소프트웨어와 랜딩기어, 탑승 인원이 공중 강하를 실시할 때 발생하는 기류 불균형 등에서 문제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조종사들이 C-17 소음저하연구를 실시하면서 기체를 착륙시키고 있다. <출처: Carla Thomas, 미 항공우주국(NASA)>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조종사들이 C-17 소음저하연구를 실시하면서 기체를 착륙시키고 있다. <출처: Carla Thomas, 미 항공우주국(NASA)>

    1994년 7월에는 미 회계감사국(GAO,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이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C-17의 이착륙 능력이 뛰어나 해외에서 C-5를 운용하는 것보다 6,400개 이상의 활주로를 더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나, 훗날 이 발표는 미 회계감사국이 활주로 길이만 놓고 계산한 것일 뿐, 활주로의 착륙 강도나 적재 수하물 종류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를 둘 다 고려해 다시 계산했을 때는 C-17이 C-5보다 911개의 활주로를 더 사용할 수 있다고 파악되었으나, 이 또한 조악한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한 C-17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 결과였다. 미 회계감사국은 1995년 1월 미 공군의 C-17 도입가격이 1992년 당시 추산한 금액보다 고가였다고 지적했으며, 1994년 5월에는 미 육군이 27,000kg짜리 저고도 낙하산 개방 시스템(LAPES, Low-Altitude Parachute Extraction System)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C-130에 탑재된 19,000kg급으로도 충분하다고 요구도를 변경했다. 미 회계감사국은 1997년 7월에도 C-17이 만재 상태에서 노면이 젖은 910m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할 수 없으며, 이륙을 위해선 1,500m 활주로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맥도넬-더글러스는 같은 해 미 회계감사국의 지적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퇴역 후 제309항공우주정비재생단(309th Aerospace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Group, AMARC)에게 인계했던 YC-15를 다시 비행 가능 상태로 전환해 시험비행을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C-17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이미 1995년부로 대부분 해결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첫 C-17 비행 대대는 1995년 1월에 미 공군에 인계되어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갔다.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조종사들이 C-17 소음저하연구를 실시하면서 기체를 착륙시키고 있다. <출처: Carla Thomas, 미 항공우주국(NASA)>


    특징

    앞서 말했듯이 전략·전술수송기의 역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C-17은 단거리 이착륙(STOL, Short Take-Off and Landing)에 특화되어 있어 장거리 전략 수송이 가능하며, 활주 거리가 짧아도 되는 특성을 이용해 전방지역 수송 임무를 소화할 수 있는 전술수송기의 역할도 겸한다. 특히 기체 신뢰성이 높고 정비가 용이한 것이 장점이며, 거의 모든 종류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고, 전술 투하가 가능하며, 위급 시에 투입되어 다수의 부상자를 후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전천후 수송기로 꼽힌다. 사실상 작전지역이 전 세계인 데다가 긴급 전개 소요가 많은 미군의 특성상 C-17의 역할은 지대하며, 하루 반나절 안에 지구 반대편에 전개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공정사단 및 공정군단에게 C-17은 가장 핵심적인 기동수단이다.

    C-17이 미사일 교란용 플레어(flare)를 발사 중인 장면. 플레어 발사 모습은 통칭 ‘천사의 날개’로 불린다. <출처: 미 공군>
    C-17이 미사일 교란용 플레어(flare)를 발사 중인 장면. 플레어 발사 모습은 통칭 ‘천사의 날개’로 불린다. <출처: 미 공군>

    글로브마스터 III의 가장 독특한 장점은 대형 수송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착륙 거리를 길게 확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글로브마스터 III는 최소 3,500피트(1,067m) 길이에 90피트(약 27.5m) 폭을 가진 활주로만 확보되면 안정적인 이륙이 가능하고 착륙도 화물을 최대한으로 적재한 상태에서 2,700피트(823m)만 확보되면 착륙이 가능하다. 또한 화물적재량도 75.52톤(77,520kg)에 달해 화물적재량이 20.4톤인 C-130이나 80톤인 AN-22, 66톤인 Y-20 혹은 37톤인 A400M보다 크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C-17이 미사일 교란용 플레어(flare)를 발사 중인 장면. 플레어 발사 모습은 통칭 ‘천사의 날개’로 불린다. <출처: 미 공군>

    스페인에서 미 육군 CH-47 치누크(Chinook) 헬기를 탑재 중인 C-17 후방 램프의 모습. 최초 이 CH-47은 미 해군 강습상륙함 필리라야우(Pililaau) 함으로 스페인까지 수송해왔다. <출처: 미 공군 / Tech. Sgt. Russell E. Cooley IV>
    스페인에서 미 육군 CH-47 치누크(Chinook) 헬기를 탑재 중인 C-17 후방 램프의 모습. 최초 이 CH-47은 미 해군 강습상륙함 필리라야우(Pililaau) 함으로 스페인까지 수송해왔다. <출처: 미 공군 / Tech. Sgt. Russell E. Cooley IV>


    운용 현황

    C-17의 초도 비행은 1991년 9월 15일에 이루어졌으며, 첫 양산 기체는 1993년 6월 14일자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Charleston) 공군기지에 인도되었다. C-17로 구성된 첫 비행대대인 미 제17공중수송비행대대가 1995년 1월 17일자로 창설되어 실전 운용에 들어갔다. 현재 미 공군의 C-17은 공군 기동사령부에서 운용한다. C-17이 본격적으로 전쟁터를 누빈 것은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의 일부로 2003년에 실시된 북부 지연 작전(Operation Northern Delay)부터였다. 이 작전은 약 1,000명의 미 공정부대원들이 공정 강하를 실시하면서 C-17의 첫 공수작전으로 기록되었다. C-17은 아프가니스탄 전쟁(OEF, Operation Enduring Freedom)에서도 활약했으며, 2010년 아이티 지진, 2011년 파키스탄 신드(Sindh) 주 홍수 사태 등에도 투입되어 인도적 지원 및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은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의 후속 지원 작전에 C-17을 투입해 활용하기도 했다.

    C-17은 처음에는 맥도넬-더글러스에서 생산했으나 보잉이 1997년 맥도넬-더글러스를 합병하면서 생산자가 변경되었다. 보잉은 2013년 9월 시퀘스터(sequester: 미 연방정부의 예산 삭감)의 영향 때문에 국방비가 삭감되어 C-17 도입 대수가 줄자, 해당 기체의 생산 라인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2015년에 최종 기체인 279호기를 생산해 인도한 후 양산 20년 만에 생산 라인을 완전히 폐쇄했다. 보잉은 2017년까지는 C-17의 후속군수지원(ILS, Integrated Logistics Support)을 실시하면서 예비 부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C-17은 총 223대가 미군에게 인도되었고 34대가 해외로 수출되었다. C-17의 단종 후, 보잉은 약 3,000개의 일자리를 삭감하고 1억 달러 가량의 매출 감소를 예상하고 있으며, 미국의 방산 컨설팅 기업인 틸 그룹(Teal Group)은 에어버스(Airbus) 사의 저가 수송기인 A400M 아틀라스(Atlas)가 C-17의 해외 판매 판로를 뺏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미 공군에 납품된 C-17 최종 기체인 P-223번기. 2013년 9월 12일, 롱비치(Long Beach)에서 열린 C-17 첫 인도 20주년 기념행사 중에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던 모습이다. <출처: 미 공군 / Senior Airman Dennis Sloan>
    미 공군에 납품된 C-17 최종 기체인 P-223번기. 2013년 9월 12일, 롱비치(Long Beach)에서 열린 C-17 첫 인도 20주년 기념행사 중에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던 모습이다. <출처: 미 공군 / Senior Airman Dennis Sloan>

    C-17은 미국을 제외한 총 7개국 이상에 판매되었으며, 미 공군 외에도 영국 왕립 공군(RAF, The Royal Air Force), 호주 왕립 공군(RAAF, Royal Australian Air Force, RAAF), 캐나다 왕립 공군(RCAF, Royal Canadian Air Force),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군 등이 운용하고 있다. 나토의 경우 2006년 나토 가맹국인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미국 및 평화적 파트너 국가인 핀란드, 스웨덴이 공동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 전략 공수 능력 향상을 위해 2대의 C-17을 공동으로 구매했다. 그 외에도 인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C-17을 운용 중에 있다.

    호주 왕립 공군 소속 KC-30A로부터 공중급유를 받고 있는 미 공군 소속 C-17의 모습 <출처: 미 공군 / Christian Turner>
    호주 왕립 공군 소속 KC-30A로부터 공중급유를 받고 있는 미 공군 소속 C-17의 모습 <출처: 미 공군 / Christian Turner>


    파생형

    ● C-17A: 기본형인 군용 수송기 형상

    C-17A 수송기 <출처: 미 공군>
    C-17A 수송기 <출처: 미 공군>

    ● C-17A ‘ER(Extended Range)’: 주익 아래 추가 연료탱크를 장착한 C-17A의 비공식 명칭. 2001년 블록 13형부터 해당 업그레이드가 반영되었다.

    C-17A ER 수송기는 기본형인 C-17A와 외양상 차이가 없다. <출처: 미 공군>
    C-17A ER 수송기는 기본형인 C-17A와 외양상 차이가 없다. <출처: 미 공군>

    ● C-17B: 이중 간격 플랩(double-slotted flap)을 추가하고, 추가 랜딩기어 하나를 동체 중앙 하단에 설치했으며, 이착륙 거리를 줄이기 위해 엔진 추력을 향상시킨 설계 안. 보잉 사가 2007년경 미군에 제안한 형상이다.

    C-17B 제안 모델 <출처: (flikr) http://www.avgeekery.com/2015314three-c-17-derivatives-that-never-took-off/>
    C-17B 제안 모델 <출처: (flikr) http://www.avgeekery.com/2015314three-c-17-derivatives-that-never-took-off/>

    ● MD-17: 민수용으로 제안하기 위해 설계한 파생형. 맥도넬-더글러스 시절에 설계안이 나왔으나 보잉에 합병되면서 BC-17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보잉이 제안한 BC-17X 형상 <출처: 보잉(Boeing)>
    보잉이 제안한 BC-17X 형상 <출처: 보잉(Boeing)>


    제원

    - 종류: 전략·전술수송기
    - 제조사: 맥도넬-더글러스(1991~1996) / 보잉(1997~2015)
    - 초도비행일: 1991년 9월 15일
    - 실전배치일: 1995년 1월 17일
    - 승무원: 2명(조종사) / 1명(기상적재사)
    - 탑승인원 : 공정병 102명, 혹은 측면석/팔레트 설치 시 134명, 측면석/화물 팔레트 설치 시 54명, 혹은 부상자 후송용 침대 설치 시 환자 54명과 의료 인력
    - 측면 좌석(고정 설치): 54석(양면 각 27석)
    - 중앙 좌석(접이식): 48석(앞뒤 양면식 좌석 8세트)
    - 탑재장비량: M1 전차 1대와 스트라이커(Stryker) 경전차 3대, 혹은 M1117 장갑차 6대 가능
    - 유상하중: 77,520kg
    - 전장: 53.04m
    - 전고: 16.79m
    - 동체 반지름: 6.86m
    - 날개 길이: 51.74m
    - 날개 면적: 353㎡(주익) / 78.5㎡(미익)
    - 자체 중량: 128,100kg
    - 최대이륙중량: 265,350kg
    - 최대연료량: 134,556리터
    - 추진체계: 40,440파운드(180kN) 프랫 앤 휘트니(Pratt & Whitney) F117-PW-100 터보팬x4
    - 순항속도: 마하 0.74(829km/h)
    - 항속거리: 수하물 최대 탑재 시 2,420해리(4,482km) / 공정부대원 탑승 시 5,610해리(10,390Km)
    - 실용상승한도: 13,716m
    - 최대주익하중: 750km/㎡
    - 최소중량대비출력: 0.277
    - 최대이륙중량 시 이륙 거리: 2,300m
    - 착륙 거리: 1,100m
    - 대당 가격: 2억 1,800만 달러[2007년 기준 플라이어웨이 비용(Flyaway cost: 빈 동체에 엔진만 얻은 상태를 추산한 가격)]

    C-17A 글로브마스터 III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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