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레이테 해전 [2]
가장 남쪽에서 벌어진 격전 수리가오 해전 (1944)
  • 김창원
  • 입력 : 2015.07.03 16:05
    야마시로는 1915년 건조된 함이다. 동일한 시간에 함께 격침된 후소와 자매함이다.
    야마시로는 1915년 건조된 함이다. 동일한 시간에 함께 격침된 후소와 자매함이다.

    수리가오 해협 해전 - 10월 25일 새벽


    수리가오 해전은 네 개의 레이테 해전에서 가장 남쪽에서 벌어진 해전이었다. 니시무라 제독의 남방부대도 구리타 중앙부대가 출발했던 브루나이의 정박지를 출발했다. 항진하던 니시무라 함대는 술루 해를 거쳐 민다나오 근해에 진입했다. 니시무라 함대에게도 중앙부대와 협력하여 레이테만의 상륙 부대를 공격할 임무가 주어졌다. 이 함대는 구식 전함 야마시로와 후소를 주축으로 중순양함 모가미와 네 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단 녹색 둥근 원이 수리가오 해협이다. 니시무라 함대는 구리타 함대와 같이 브루나이 정박지를 출발했고 시마 함대는 일본에서 내려왔다.
    하단 녹색 둥근 원이 수리가오 해협이다. 니시무라 함대는 구리타 함대와 같이 브루나이 정박지를 출발했고 시마 함대는 일본에서 내려왔다.

    민다나오해를 북상한 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의 남쪽 입구에 진입한다. 수리가오 해협을 통과하면 결전장인 레이테만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앞에서 밝혔지만 상륙 지점을 급습할 임무를 띠고 니시무라 함대를 따르는 작은 함대가 있었다. 중순양함 중심의 이 함대는 시마 기요히데 소장이 지휘하고 있는 제3함대였다. 남서방면 함대에 임시 편입된 이 제3 함대는 중순양함 나치와 아시가라, 그리고 경순양함 아부쿠마에 네 척의 구축함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남방부대는 24일 미 해군 폭격기의 공습을 받았지만 경미한 피해 정도로 그쳤다. 중앙부대와 남방부대에게는 철저한 무선 침묵이 실시되고 있었다. 그 탓에 니시무라 제독은 구리타 제독의 중앙부대와 후속하는 시마 부대의 위치와 행동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하던 25일 새벽 두 시, 시마 부대는 25 해리 뒤에서 후속하고 있었고 구리타 부대는 아직도 시부얀해에 있었다. 승조원들 사이에 이제 조금만 더 항해하면 레이테섬이 함대 공격 거리에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났다. 그러나 이 수리가오 해협의 앞바다에 가공할 위력을 가진 미 해군 대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스 올덴돌프 소장이 지휘하는 7함대의 지원 함대였다. 웨스트 버지니아, 메릴랜드, 미시시피, 테네시, 캘리포니아,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총 6척의 전함 부대였다. 이 중 미시시피만 제외하고 모두 진주만에서 일본 해군에게 공격을 받고 침몰되거나 대파되었던 함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가공할 공업력과 정비력으로 모두 수리되어 바다에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중이었다.


    (좌)시마 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나치 (우)제스 올덴돌프 소장
    (좌)시마 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나치 (우)제스 올덴돌프 소장

    전함 부대에는 35문의 8인치 포를 가진 네 척의 중순양함과 54 문의 6인치 포를 가진 경순양함들이 합세하고 있었다. 이외에 28 척의 구축함과 39 척의 어뢰정이 이 함대의 외곽에 배치되어 있었다.


    올덴돌프의 기함 펜실베이니아
    올덴돌프의 기함 펜실베이니아

    니시무라 함대는 괴물 같은 파괴력을 가진 범의 소굴로 뛰어들고 있었다. 니시무라 함대가 좁은 수리가오 해협에 들어선 밤 11시 무렵, 미 해군의 어뢰정이 사방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해협을 통과하던 세 시간 반 동안 미 어뢰정들은 니시무라 함대에 무차별 어뢰 공격을 가했으나 명중탄은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뢰정들이 후방에 타전한 정보 덕분에 미군은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해협을 무사히 통과한 니시무라 함대 앞에는 미 구축함들의 어뢰 공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량의 어뢰를 적재한 구축함이 산탄 뿌리기 식의 어뢰 공격을 가한 결과, 어뢰정이 쏘는 어뢰보다 발사탄 수가 많아 명중률이 더 좋았다.


    새벽 3시, 결국 함대 주축인 두 척의 일본 전함들이 어뢰 공격에 당했다. 야마시로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자력으로 항해할 수 있었으나 후소는 미 구축함 멜빈함의 뇌격에 격침 당하고 말았다. 니시무라 전함을 동행했던 네 척의 구축함 중에서 두 척의 구축함이 격침되고 피격 후 힘들게 회피하던 한 척의 구축함 아사구모도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미 주력함들과 마주보기도 전에 소형함들에게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니시무라 함대는 그대로 전진했다. 그 앞에 미 전함들의 거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 전함 웨스트 버지니아는 38킬로미터의 거리에서 접근하고 있던 니시무라 함대를 레이더로 탐지하고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진주만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 기습을 받고 불타던 웨스트 버지니아. 대수리를 받고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진주만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 기습을 받고 불타던 웨스트 버지니아. 대수리를 받고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벽 4시 경, 니시무라 함대가 20킬로미터 거리까지 접근해오자 16인치 거포 8 문의 포문을 일제히 열었다. 이미 미군 어뢰에 중상을 입고 겨우 항해하고 있던 야마시로는 첫 번째 일제 사격에 명중되었다. 전함 캘리포니아, 테네시, 이어서 메릴랜드도 16인치 거포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 미국 전함들이 가한 일제 사격의 횟수를 보면, 웨스트 버지니아 16회, 메릴랜드 6회, 테네시 13회, 캘리포니아 9회, 미시시피 1회에 이른다. 미시시피는 오직 한 발만 사격했는데 이 한 발은 태평양 전쟁 중에 전함에서 전함으로 발사한 마지막 포탄이었다. 목표를 확인하지 못한 펜실베이니아만이 사격을 가하지 못했다.


    전함에 이어서 미 함대의 중순양함들과 경순양함들도 포문을 열었다. 레이더 조준 시스템이 없던 일본 함대는 사격이 불가능한 원거리에서 날아온 포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표적을 확인하지 못한 일본 함대는 맹목적으로 짐작 가는 곳에 난사를 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무참히 공격 당한 야마시로는 새벽 4시 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니시무라 사령관은 침몰하는 야마시로와 운명을 같이했다.


    니시무라 쇼치 중장. 수리가오 해협에서 전사했다.
    니시무라 쇼치 중장. 수리가오 해협에서 전사했다.

    중순양함 모가미도 대파되었지만 구축함 시구레와 함께 수리가오 해협으로 되돌아가 남쪽으로 도주하였다. 40해리 뒤에서 니시무라 함대를 후속하던 시마 함대는 역시 미 어뢰정들의 공격을 받았다. PT-137의 뇌격에 경순양함 아부쿠마가 명중되어 함대에서 이탈하였다.


    이어서 시마 함대는 어둠 속에서 해상에 부유하는 잔해들과 멀리서 무수히 번쩍거리는 섬광을 발견했다. 이미 니시무라의 함대가 전멸의 길을 간 것이라 판단한 시마 제독은 함대 퇴각을 명령했다. 시마 함대는 오던 길을 뒤돌아 전속으로 후퇴하면서 구리타 함대에 니시무라 함대의 전멸을 긴급 타전하였다.


    그의 기함 나치는 철수 중에 앞서 후퇴하고 있던 중순양함 모가미와 충돌하였다. 모가미의 조타실은 침수되고 이어서 속도를 잃기 시작했다. 모가미는 그대로 표류하다가 다음 날 아침, 미 항공기의 공격을 받고 격침되었다.



    운 없었던 니시무라 함대의 7척의 함들 중에 최후미에서 항해하다가 재빨리 반전한 구축함 시구레만 빼고 6척이 전멸하고 말았다. 그나마 후속하던 시마의 함대만이 일찌감치 눈치를 채고 도주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사마르 해전 - 1944 10월 25일


    홀지 제독이 자기 휘하 3함대의 모든 항공 역량을 총동원해서 오자와 제독의 북방함대를 섬멸하겠다고 맹진 북상하고 있던 사이 샌 버너디노 해협은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전함들로 구성된 34 기동 함대를 동원해서 해협 입구를 봉쇄하겠다는 최초의 구상은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25일 새벽 3시, 텅 빈 샌 버너디노 해협에 구리타 제독이 지휘하는 중앙부대의 함대가 나타났다. 일본 중앙부대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유유히 해협을 통과한 뒤 레이테에 바로 인접한 사마르섬의 해안을 따라 남진하였다.


    막강한 중앙부대 앞에 나타난 것은 상륙 작전을 엄호하던 미 함대의 작은 호위 항모 3개 함대였다. 태피 1(Taffy 1), 태피 2 태피 3라는 콜 사인으로 더 잘 알려진 미니 항모 부대였다. 이들의 본래 명칭은 임무 단위 부대(태스트 유닛 task unit) 77.4.의 1. 2. 3 부대로, 킨케이드 제독 지휘의 7함대 소속이었다.


    호위 항모는 말이 항모지 만 톤 미만으로서 대량 생산한 것들이었다. 작다는 특징 때문에 지프 항모라고도 불렸다. 작고 속도도 느렸으며 적재한 함재기도 적었다. 대공이나 대잠 무기도 빈약한 수준이었다. 정규적인 해전이 아니라 주로 수송선단이나 함대의 호위 임무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호위 항모 세인트 로. 가미카제 공격으로 침몰한 최초의 미군함이다. 7,900톤, 탑재기 28기, 5인치 포 두 문을 장비했다.
    호위 항모 세인트 로. 가미카제 공격으로 침몰한 최초의 미군함이다. 7,900톤, 탑재기 28기, 5인치 포 두 문을 장비했다.

    이들 세 개의 호위 항모 부대에 총 16척의 호위 항모가 있었으나 숫자만 많았지 각 세력은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구축함들의 엄호를 받고 있었다. 구축함으로는 네 척의 전함과 여섯 척의 중순양함이 주력인 일본 중앙부대에게 명함을 내볼 만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일본의 완전한 기습이었다. 중앙부대에 제일 가까운 함대는 크립튼 스프래그 소장이 지휘하는 태피 쓰리였다. 기습에 놀란 스프래그 소장은 항모의 항공기를 전부 발진시키고 전속력을 다하여 스콜이 쏟아지는 동쪽 해역으로 도피했다. 스프래그 소장은 동시에 호위하는 구축함과 호위 구축함들에게 연막 차장을 하도록 긴급 명령을 내렸다.


    중앙부대의 구리타 사령관은 홀지 제독의 기동부대가 모두 북쪽의 오자와 부대를 격멸하기 위해서 북상한 줄은 미처 모르고 이들 작은 호위 항모 부대가 홀지 제독이 지휘하는 주력 기동부대인 제3함대인 것으로 오판했다.


    그는 강력한 항공 반격을 예상하고 그의 함대에게 대공 회피 대형을 취하게 하고 함대들에게 흩어져서 재량껏 적 함대를 격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순간에 미 해군사상 가장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구축함이 출현했다. 미 구축함 존스턴이었다.


    기어링 급의 미 구축함 존스턴.
    기어링 급의 미 구축함 존스턴.


    존스턴은 일본 중앙부대와 가장 근접해있던 구축함이었다. 함장 어네스트 E. 에반스는 이 절망적인 순간에 그의 구축함 존스턴을 최대 속도로 적 중앙부대의 전함 함대에 돌격시켰다.


    연막을 뿌리며 적 함대에 육박한 존스턴은 어뢰를 발사하여 일본의 중순양함 구마노의 함수를 명중시켰다. 대파된 구마노는 함대에서 이탈하였다. 일본 함대가 쏘는 포화를 뚫고 돌격하는 존스턴의 모습은 미 함대 수병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함대 사령관 스프래그 소장은 호위 함대에게 존스턴을 따라 일본 함대에 총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태피 쓰리의 구축함 호엘과 헤르만, 호위 구축함 새무엘 B. 로버츠들은 존스턴을 따라 자살 행위에 가까운 돌격을 시작했다. 미 구축함과 호위 구축함은 겁 없이 맹진하면서 전방의 일 함대에 어뢰를 발사했다. 한 발만 맞아도 큰 피해를 보는 어뢰 수십 발이 일본 함대에 쇄도하자 일본 함대는 이를 피하느라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용감한 미 함대의 돌격함들은 곧 최후를 맞았다. 구축함 로버츠와 호엘이 일본 함대의 맹렬한 포화에 격침 당했고 이어서 어뢰를 다 쏘고 5인치 포로 적함들을 공격하던 존스턴도 일본 구축함들의 반격에 격침되었다. 에반스 함장은 전사하였다.


    한편 일본 함대가 목표로 하는 미 호위 항모 부대는 함재기를 이륙시키면서 항모들이 장비하고 있던 5인치 포 등 화기를 총동원하여 일본 함대에 사격을 가했다. 몇 발 명중시키기도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호위 항모들은 쏟아지는 일본 거포탄 속을 뚫고 계속 도주하였다. 오전 9시 경, 함대의 맨 후위에 있던 항모 갬비어 베이(Gambier Bay)는 추격해온 일본 주력함 야마토가 발사하는 18.1인치 포탄을 여러 발 맞고 전복 격침되었다.


    야마토의 포격에 격침되는 호위 항모 갬비어 베이. 우측 원 안은 일본 함
    야마토의 포격에 격침되는 호위 항모 갬비어 베이. 우측 원 안은 일본 함

    구축함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16척의 호위 항모에서는 준비가 되는 대로, 하다못해 기관총이라도 장탄하고 이륙하였다. 16척의 작은 호위 항모에서 시간을 다투는 필사적인 출격을 한 각종 미군 함재기는 450기나 되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F4F와 같은 구형기들이었다.


    그러나 일본 함대는 아무 항공 엄호가 없었다. 미 함재기들은 쉬지 않고 적함에 돌격하여 폭탄을 투하하거나 기총 소사를 가했다. 미 호위 항모 부대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힌 일본 함대는 당황하였다. 이 항공 공격에 구리타 제독 중앙부대의 공세는 어이없이 끝나게 된다.


    미 함재기가 투하한 어뢰들을 피하던 야마토는 평행 항주(航走)하던 두 발의 어뢰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어느 쪽으로도 변침을 못하게 된 야마토는 달리는 어뢰 사이에서 미 함대들과 반대의 방향으로 정신 없이 달려야 했다. 구리타는 어뢰의 사정거리 밖에서야 변침을 하게 되었지만 이미 투지를 잃었다.


    구리타의 기함 야마토
    구리타의 기함 야마토

    그는 함대의 전함들에게 야마토를 따라서 북으로 변침을 하라고 명령했다. 구리타는 엉망이 된 함대를 다시 편성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북의 안전 지대로의 변침을 명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침에 대해 그는 후에 북쪽에 미국 항모 부대-홀지 제독의 3 함대-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이 항모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북상했다는 해명을 했지만 사실 홀지 제독의 부대는 그의 전방에 있지 않았다. 홀지 제독의 부대는 오자와 부대에게 유인 당해 훨씬 더 위쪽에서 북상하고 있었다.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 일본 해군 항공대의 개척자이자 가미카제 특공대의 창시자이다. 일본 패전 다음날인 1945년 8월 15일,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게 만든 양심의 가책으로 자결했다.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 일본 해군 항공대의 개척자이자 가미카제 특공대의 창시자이다. 일본 패전 다음날인 1945년 8월 15일,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게 만든 양심의 가책으로 자결했다.

    대규모 공중 공격 가능성을 걱정한 구리타 제독은 피해를 무릅쓰고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함대에게 샌 버너디노 해협으로 철수하라고 지시하였다. 덕분에 함대 피습의 정보를 받고 급거 방향을 돌린 홀지 제독의 항공력으로부터 함대를 보존하였지만 나가토, 하루나 공고들은 미 해군의 반격으로 모두 피해를 입었다. 구리타가 브루나이의 정박지를 출동했을 때는 다섯 척의 전함이 있었지만 이제 온전하게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함 야마토뿐이었다.


    이 중앙부대가 참패에 가까운 후퇴를 한 뒤에 루손섬 육상의 제1 항공 함대 사령관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은 최초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출격시켜서 태피 쓰리의 호위 항모 세인트 로를 공격하여 격침하였다. 태평양 전쟁 최초의 가미카제 특공대 출현이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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