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필리핀 해전 [3]
미군기, 암흑 속의 생사를 건 귀환 (1944)
  • 김창원
  • 입력 : 2015.07.03 15:10

    바다로부터 온 재앙


    필리핀 해전 첫날, 오자와 기동 부대의 재앙은 하늘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군 잠수함이 바다에서의 재앙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 첫 날 미 정찰기들은 일본 기동 부대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두 척의 미군 잠수함이 이날 아침 일찍 오자와 기동 부대를 발견하고 미행하고 있었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잠수함 알바코어는 일본 오자와 부대를 미행하다가 뇌격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함장 제임스 W. 블랜차드 소령은 근거리에서 항해하고 있던 일본 항모를 목표로 정하고 어뢰 발사의 기회를 노렸다. 이 항모는 당시 일본 해군의 최대 규모의 최신 항모인 다이호였다. 알바코어가 기회를 잡아 어뢰를 발사하려고 하는 순간 발사 통제 시스템이 고장난 것을 발견하였다.

    미 잠수함 알바코어
    미 잠수함 알바코어

    그렇다고 발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함장은 목측으로만 어뢰를 발사했다. 6발의 어뢰들은 각기 다른 각도인 부챗살형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 어뢰를 발사한 시각, 항모 다이호는 42기의 함재기들을 막 출격시킨 참이었다. 이들 함재기들은 제 2 파의 공격대였다. 여섯 발의 어뢰 중 네 발은 목표를 벗어났다.


    그러나 나머지 두 발은 다이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종사 고마츠 사키오는 다이호에서 막 이륙을 한 순간 다이호를 향하여 기포를 끌고 달려오는 어뢰를 보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기수를 돌려 어뢰의 앞으로 돌진하였다. 어뢰는 그의 기체에 부딪혀 폭발하였다.


    그러나 한 발은 그대로 달려가 항모 다이호의 우현에 정확히 명중했다. 폭발은 항모내의 두 항공 연료 탱크를 파괴시켰다. 다이호 항모 호위 구축함들이 전속으로 알바코어 쪽으로 달려와 폭뢰 공격을 했지만 알바코어는 가벼운 손상만 입고 탈출했다.


    어뢰에 명중 당한 직후 다이호 지휘부는 이 뇌격의 피해가 극복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파공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의 침수도 막았고 항모의 추진 기능이나 항타 기능도 이상이 없었다.


    응급 조치를 끝낸 다이호는 임무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금이 간 연료 탱크에서 새어나온 휘발유 유증기[油蒸氣]가 함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다이호 내부에서 있었던 대참사의 전조였다.
     


    잠수함의 2차 공격


    다이호가 죽음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바다 밑에서 또 다른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오경 미 잠수함 카발라가 2만 6천 톤의 항모 쇼가쿠를 뇌격하기 좋은 위치로 소리 없이 이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카발라도 역시 6발의 어뢰를 부챗살 대형으로 발사하였다. 달려간 어뢰들 중에 무려 세 발이나 쇼가쿠의 우현을 명중시켰다. 대파된 쇼가쿠는 추진력을 잃고 해상에 정지했다.


    잠수함 카발라
    잠수함 카발라

    어뢰 중 한 발은 주 격납고의 항공유 저장 탱크를 명중시켰다. 이로 인해 마침 출격에서 돌아와 연료를 주유하고 있던 항공기에 불이 붙으면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격납고 안의 폭탄과 실탄이 연달아 폭발하여 불길이 확산됐고 여기저기 터진 연료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온 연료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겉잡을 수 없는 화재에 선수가 기울기 시작하자 함장은 총원 퇴함 명령을 내렸다.


    일본 항모 쇼가쿠
    일본 항모 쇼가쿠

    이후 불과 수 분 만에 파괴적인 재앙이 쇼가쿠를 덮쳤다. 함내 전체에 유증기가 확산되어 있는 시점에 격납고 안의 폭탄 한 발이 폭발하자 연이은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쇼가쿠는 두 동강이가 나면서 순식간에 전복되어 침몰하였다. 함의 승조원과 항공대원 함계 1,263명이 전사하고 570명이 생존했다. 구축함 우라카제가 뇌격을 한 잠수함을 찾아 폭뢰를 투하했지만 카발라는 약간의 피해만 입고 도주하였다.
     


    다이호의 침몰


    한편 유증기가 함내에 퍼진 항모 다이호는 설계의 오류와 서툰 방재가 그 최후를 재촉하고 말았다. 미숙한 통제 장교는 유증기가 함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함내의 공기 배출 장치를 최대로 가동시켰다. 그러나 이 장치의 가동이 오히려 유증기를 함내에 빠르게 확산시켰다. 다이호를 물위에 떠있는 화약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 다이호는 먼저 침몰한 쇼가쿠와 같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기울기 시작했다. 사령관 오자와 제독과 참모들은 다른 항모인 즈이가쿠로 이동하고 사령기를 걸었다. 함대 지휘부가 옮겨 간 직후 다이호는 2차 폭발을 일으키고 침몰하였다. 1,751 명의 승조원과 항공대원 1,650명이 전함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산호해 해전에서 미 항모 렉싱턴 1세가 유증기 확산으로 폭발한 전력이 있는데, 미 해군은 이 경험을 살려 항모 설계 시 유증기의 신속한 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본의 신조함인 다이호는 유증기 신속 배출 기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자와는 즈이가쿠로 사령부 이동을 한 직후에야 이미 출격시킨 일본 공격대 함재기들이 비극적인 피해를 입고 거의 괴멸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작전 가능한 항공기는 아직 150기가 남아 있었다. 오자와는 공격을 속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무리한 결심에는 괌 섬이나 로타 섬에 배치되었던 함재기들이 손상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섬의 항공대 역시 괴멸되었다는 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오자와는 다음날인 6월 20일 다시 대공세를 펼칠 준비를 한다.
     


    기동부대를 찾아라


    6월 20일, 미국 58 기동부대는 일본 기동부대를 찾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항속거리가 긴 일본 항공기의 이점을 살려 장거리에서 출격시킨 일본 기동부대는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19일 새벽부터 정찰기들을 내보내 광범위한 해역을 찾아보았으나 아무 결실이 없었다. 20일 점심 무렵에 내보낸 정찰 임무의 헬캣기들도 빈 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오후 3시가 넘어 드디어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한 정찰기가 적 함대 발견 무전을 보내왔다. 무전이 불안정했지만 확실히 적 함대를 발견했다는 정보였다. 몇 분 후 적 함대 발견의 확실한 전문이 수신되었는데 일본 기동함대는 미 함대에서 275마일 밖에서 20노트의 속도로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황혼의 출격


    기동함대와 일본 기동함대와의 거리는 미 해군 함재기들의 한계거리였다. 출격 후 연료 부족으로 해상 추락할 가능성이 너무 큰 거리였다. 더구나 곧 밤이 올 시간이었다. 그러나 58 기동부대의 미처 중장은 전 항공기를 출격하는 결단을 내렸다. 선두 그룹의 공격대가 출격을 완료했을 때 정찰기로부터 다시 보고가 들어왔다. 일본 함대가 60마일이나 더 먼 곳에 위치해있다는 정정보고였다. 선두 공격대는 예정보다 더 먼 곳을 비행할 연료도 부족했고 설사 돌아온다 해도 항모 착륙이 불가능했다. 미처 제독은 제 2 파의 출격을 캔슬시켰지만 이미 출격한 1 파의 임무를 중지시키지 않았다. 1 파 공격대는 240기 편성이었다. 14기가 여러 이유로 귀환했고 226기가 계속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갔다. 226기는 전투기, 폭격기, 뇌격기로 편성되어 있었다. 95기는 헬캣 전투기들이었고 54기는 어벤저 뇌격기들이었다. 어뢰를 장비한 어벤저는 몇 기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네 발의 500파운드 폭탄을 정비했다. 급강하 폭격기는 76기였다. 그중 51기는 신형인 헬다이버였고 26기는 구형인 돈트레스였다. 58기동 함대의 1 파 공격대는 해가 막 지려는 시각에 일본 함대를 발견했다. 오자와는 35기 정도의 전투 초계기를 상공에 띄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초계기로 무려 226기나 되는 미군 항공기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좡) 미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은 오자와 기동 부대 (우) 개장 항모 히요. 24,150톤. 원래는 국제 여객선으로 건조 중에 항모로 변경 건조되었다.
    (좡) 미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은 오자와 기동 부대 (우) 개장 항모 히요. 24,150톤. 원래는 국제 여객선으로 건조 중에 항모로 변경 건조되었다.

    일본기들은 용감하게 덤벼들었고 대공포화 역시 극심했으나 미군기들은 일제히 일본 기동함대에 폭격을 가했다. 제일 먼저 목표가 된 것은 유조선들이었다. 첫 타격을 당한 유조선 두 척이 대파되어 표류하자 일본은 이들 유조선을 포기한다. 개장 항모 히요는 항모에서 출격한 네 기의 어벤저기로부터 폭탄과 어뢰 공격을 받았다. 화재가 일어나면서 항공유 탱크가 인화되고 이어서 대폭발이 뒤따랐다. 해상에 정지해버린 히요는 곧 함미부터 침몰하기 시작해 파도 밑으로 사라졌다.


    250명의 승조원들과 항공대원들이 함과 운명을 같이 했다. 나머지 승조원들은 구축함들에게 구조되었다. 항모 즈이카쿠와 준요, 그리고 지요다는 폭탄에 명중되어 피해를 입었고 전함 하루나도 피격되었다. 그러나 침몰은 겨우 면했다. 20기의 미국 항공기들이 이 공격에서 격추되었다.
     


    암흑 속의 귀함


    적 기동함대를 공격하는 임무를 완수한 미 1 파 항공대에게는 이제 귀환하는 것이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장거리를 비행했던 항공기들의 연료 계기 바늘은 빠르게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밤의 장막이 바다를 덮자 위험한 야간 비행이 시작됐다.


    밤 9시에 가까워진 시간, 출격 항공기 중 첫 편대가 58 기동 부대의 어두운 상공에 나타났다. 이들이 항모를 발견하고 착륙하는 과정에서 어둠은 큰 장애였다. 그렇다고 유도 조명을 밝히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파일럿들을 살릴 것인가,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미처 사령관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윽고 미처 사령관은 항모 포함 모든 함들에게 조명을 밝히고 하늘을 향하여 서치라이트를 밝히라고 명령한다. 함대 외곽 초계선의 구축함들에게는 멀리서도 발견할 수 있도록 조명탄을 쏴 올리도록 지시하였다. 출격한 함재기들이 멀리서도 귀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수 함재기들의 해상 착수


    안전한 귀함을 위한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80여기의 함재기들이 연료 고갈로 바다에 불시착했다. 며칠 동안의 집중적인 수색과 구조 활동의 덕분에 불시착 조종사의 4분의 3이 구출되었다.
     


    일본 기동 부대의 철수


    그날 밤 오자와는 도요다 연합함대 사령관으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고 함수를 돌렸다. 미 기동 부대가 추격을 했지만 전투는 이로서 종결되었다. 일본 기동함대는 네 번의 공격을 가했었다. 373기의 함재기가 동원되었지만 항모로 살아 돌아온 함재기는 불과 130기에 지나지 않았다. 미 해군 항공대 공격을 피하고 생환한 이들 함재기 승무원들은 비극적이게도 두 척의 일본 항모들이 격침되었을 때 목숨을 잃었다. 단 이틀의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세 척의 항모와 433기의 함재기 그리고 육상 발진 항공기 200기를 잃었다. 미군은 첫날 단지 23기의 함재기를 잃었다.


    한편 둘째 날 한계 거리에 출격해서 야간에 귀환해야 했던 미군기들은 귀환이 가능했던 215기 중 115기만이 돌아왔다. 20기가 일본기의 요격과 대공사격에 당했고 80기 이상이 연료를 소진하고 바다에 불시착했다. 미군도 일종의 사고로 입은 피해가 컸지만 일본의 피해에 비하면 경미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군의 피해는 신속한 복구가 가능했지만 일본군의 피해는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일본 항모 부대의 소멸이라 일컬을 만했다.
     


    미일 신형기의 대결이었던 전투


    미군은 이 해전에서 어벤저, 헬다이버 등의 급강하 폭격기와 F6F 헬캣 전투기 등 거의 신형기로 장비 교체가 된 항공대를 출격시켰다.


    (좌) 뇌격기 어벤저. 미드웨이 해전부터 참전했다. (우) 급강하 폭격기 헬다이버. 필리핀 해전에서 구형기 돈트레스와 같이 활약했다.
    (좌) 뇌격기 어벤저. 미드웨이 해전부터 참전했다. (우) 급강하 폭격기 헬다이버. 필리핀 해전에서 구형기 돈트레스와 같이 활약했다.

    일본은 급강하 폭격기 스이세이, 사이운 함상 정찰기, 함상 공격기 덴잔, 그리고 쌍발 폭격기 긴카 등 신형기 다수를 참전시켰으나 여전히 제로기를 비롯하여 구식 항공기들이 주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형기가 배치되었다고는 하지만 조종사들의 미숙한 능력으로 그 성능을 십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좌) 일본 급강하 폭격기 스이세이 (우) 일본 급강하 폭격기 덴잔
    (좌) 일본 급강하 폭격기 스이세이 (우) 일본 급강하 폭격기 덴잔

    이 해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해군기는 단연 일본기를 집단으로 섬멸한 미 해군 F6F 헬캣기였다. P 47이나 F4U와 같은 2천마력급의 대형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렵함은 일본의 제로기를 능가했다. 이미 1943년 11월 타라와 전투에서부터 진가를 발휘했던 헬캣은 필리핀 해전이라는 대형 무대에서 화려한 실력을 선보였다.
     


    필리핀 해전의 결산


    일본은 과달카날 전역 동안 입은 피해를 힘들게 복구하여 미군과 결전을 벌였다가 단 이틀 동안의 해전에서 90%의 전력을 잃어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일본 해군 항공대에는 경항모 한 척의 항공대 편성에 필요한 수준의 조종사들만 살아남아 있었다.


    넉 달 뒤에 벌어진 레이테 해전에서 오자와의 기동 부대는 단지 미군 홀지 함대를 유인해내는 미끼 역할을 했을 뿐이다. 보유 항공기와 숙련 승무원들을 모두 잃어버린 일본 해군은 결국 육상에서 발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막장 전술을 고안해내서 7천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도요다 소에무는 이 막장 자살 돌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초대형 전함 야마도를 특공에 내보내서 수많은 인명을 잃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함대 결전 사상을 끝까지 추구하며 참혹한 결과를 만든 일본 지휘부는 막판까지 비현실적인 특공을 추구하여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런 막장 전술로도 일본의 항복을 막을 수는 없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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