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필리핀 해전 [1]
일본의 승전 가능성이 없었던 전투의 시작 (1944)
  • 김창원
  • 입력 : 2015.07.03 14:58

    필리핀 해전은 1944년 6월 19일~21일 사이 미일 양국 해군 항모 부대 사이에 있었던 해전이다. 일본 해군 전쟁사에서는 ‘마리아나 근해 해전’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 기간 미국과 일본 해군의 항모 부대가 격돌한 다섯 번의 해전 중 마지막 해전이다. 필리핀 해전에서 오자와 중장이 지휘하던 일본 항모 부대는 항모 세 척과 대량의 해군기를 잃고 대패했다. 1941년 진주만 기습에 성공하고 이틀 후 말라야 근해에서 영국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격침하여 항모 시대의 선구자가 되었던 일본 해군 항모 부대는 사실상 이 해전으로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의 시작, 함대결전주의

    (좌) 전투 초계기의 요격을 바라보고 있는 미 해군 장병들 (우) 해전 약도
    (좌) 전투 초계기의 요격을 바라보고 있는 미 해군 장병들 (우) 해전 약도

    야마모토 이소로쿠대장이 부겐빌에서 전사한 뒤 연합 함대 사령관이 된 고가 미네이치 사령관은 미 해군 항모 부대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내실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승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을 했지만 함대결전주의를 강행해야 했던 고가 미네이치 대장
    승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을 했지만 함대결전주의를 강행해야 했던 고가 미네이치 대장

    과달카날 전투로부터 시작한 솔로몬 제도 전투에서 연달아 패전하면서 숙련된 항공요원들을 소진했던 일본 해군은 1년간 절치부심하며 해군 기동 함대를 재정비하고 조종사들을 속성으로 육성해서 공대를 재편성했다. 물론 이들 속성 조종사들의 솜씨는 개전 초기 세계 수준을 넘나들던 선배들에 비하면 걸음마를 겨우 뗀 수준이었다.


    그 사이 미군은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와 길버트 제도, 마셜 제도 등의 남태평양을 모두 점령하고 중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에는 마리아나 제도가 있었다.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당할 경우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심장부가 미군의 장거리 폭격기 B-29의 폭격 거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일본 군부는 사이판, 티니언, 괌 등의 마리아나 제도를 ‘절대 국방권’으로 설정하고 마리아나 방어에 남은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전망은 어두웠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고가 대장이 사적인 자리에서 “이제 일본이 미국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단 3 %도 안 된다.”는 말을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절대 국방권을 사수해야 하는 사령관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그의 전임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매달렸던 “함대결전주의“라는 신기루에 또다시 매달리는 것이었다. 함대결전주의란 적 함대에 회복하기 힘든 대타격을 가해서 전쟁에 염증을 내게 하고 유리한 입장에서 입지를 강화한다는 사상이다. 1905년 일본 함대는 러일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섬멸하고 이 승리를 배경으로 러시아와 강화한 전력이 있다.


    쓰시마 결전장으로 출동하는 일본 제국 함대
    쓰시마 결전장으로 출동하는 일본 제국 함대

    전임자 야마모토는 그 꿈을 좇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태평양 전선을 확장하며 기회를 노렸지만 거꾸로 함대 결전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를 당했다.


    사실 함대결전주의는 당시의 미국과 일본의 공업력이나 생산력을 비교하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함대결전의 대물량전에서 일본이 미국을 이기기란 어려웠고, 압도적인 생산력을 가진 미국이 주력함 몇 척 잃었다고 굴욕적인 강화를 할 가능성도 없었다.


    패전을 거듭하면서도 아무 대안이 없던 일본 해군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실현되지 않을 함대결전 준비에 착수했다.
     


    중부 태평양 마리아나의 대결


    미군의 중부 태평양 공략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일본군은 이 마리아나 제도의 괌 섬, 티니안 섬, 그리고 사이판 섬 등의 방어 계획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일본은 마리아나 제도의 주요 섬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항공력을 증강했다. 1944년 초부터 막강해진 마크 미처 소장의 58기동 부대는 다음 목표인 마리아나 제도를 들락거리며 섬의 군사 기지들을 공격해서 일대의 일본 군사력을 약화시켜갔다.


    미군 침공이 임박했다고 본 일본은 함대 결전의 대전투가 있을 곳은 마리아나 해역이라고 예측했다. 약해진 일본 함대를 가지고 이런 결전을 꿈꾸던 배경에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었다. 일본 함재기 규모는 비록 미국 함대보다 훨씬 허약하지만 마리아나 제도의 여러 섬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이 있었고 이들 기지에 일본 항공기들을 다수 배치할 수 있기에 수적인 열세를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일본 해군 항공대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조건이 또 하나 있었다. 일본 함재기가 미군기보다 훨씬 더 긴 항속 거리를 보유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 항모 부대는 미군 함재기의 항속 거리 밖에서 함재기들을 출격시켜 미 항모를 공격하고 그대로 마리아나 섬에서 급유와 무장을 완료한 뒤에 다시 출격해서 미국 항모들을 공격하고 항모로 귀환하는 장거리 왕복 작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론은 좋았지만 일본 해군이 급조 양성한 항공대 조종사와 승무원의 숙련도는 이런 장거리 작전을 수행하기에 너무 수준이 낮았다. 훨씬 더 숙련된 조종사, 성능이 좋은 함재기를 일본보다 훨씬 많이 가진 미군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대군(大軍)의 적 앞에 전략의 묘수(妙手) 없다.”는 말이 당시 일본의 상황이었다.


    필리핀 해전의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은 도요다 소에무 대장이 맡았다. 그의 전임이었던 고가 미네이치는 1944년 3월 31 대형 비행정을 타고 이동하던 중 필리핀 다바오와 태평양의 팔라우 섬 사이 해역에서 태풍에 말려 추락 사망하였다.


    소에무 제독은 취임하고 얼마 뒤인 6월 초에 미 항모 부대가 마리아나 제도를 공격하자 그간 계획 단계에 있던 아고 작전을 발령하였다. 원래 작전 목표는 공세로 나가 미군 항공력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지만 아고 작전이 발령되고 일주일이 안 된 6월 14일 미군의 사이판 공략이 시작되자 자연히 사이판 공략 미 함대를 격멸하는 것으로 변경 실시되었다.


    (좌)아고 작전을 발령한 도요다 소에무 제독 (우)제3함대를 지휘한 오자와 제독
    (좌)아고 작전을 발령한 도요다 소에무 제독 (우)제3함대를 지휘한 오자와 제독

    작전 참가 함대는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이 지휘하는 제3함대였다. 일본군은 이 작전에 가용 해군기들을 모두 동원하였다. 3함대 휘하에는 세 개의 항공전대로 구성된 세 개의 항모 부대가 있었는데 오자와 제독은 제 1 항공전대의 사령관직을 겸직했다.


    작전 참가 항모의 숫자는 9척이었지만 기동 부대로서 전투력은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9척 중 성능 좋은 정식 항모는 신조함 다이호와 진주만 공격에 참가했던 쇼가쿠, 즈이가쿠 세 척으로 모두 제1항공전대에 편성되었다. 제2항공전대에 편성된 항모 중 준요와 히요는 건조 중인 화객선을 급히 개조한 개장 항모들이었고 류호는 경항모였다. 제3항공전대에 편성된 즈이호, 지도세, 지요다도 모두 경항모들이었다. 이외 야마토와 무사시를 포함한 다섯 척의 전함이 제3함대에 합류하였다.

    항모 다이호는 37,000톤의 최신 항모로서 진수한지 3개월밖에 안된 최신 항모였다. 갑판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장갑이 있었고 여러 개량된 장비들이 추가되었다. 3 함대 사령관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은 1 항모 전단의 다이호를 기함으로 삼았다.
    항모 다이호는 37,000톤의 최신 항모로서 진수한지 3개월밖에 안된 최신 항모였다. 갑판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장갑이 있었고 여러 개량된 장비들이 추가되었다. 3 함대 사령관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은 1 항모 전단의 다이호를 기함으로 삼았다.


    미 해군의 58 기동 부대를 이끈 미처 제독
    미 해군의 58 기동 부대를 이끈 미처 제독

    항공기는, 일본 항모 부대가 450기를, 육상 기지가 300기를 동원할 수가 있었다. 일본군은 이 해전에서 합계 750기의 동원 항공기들 중 600여 기를 잃는 대패를 당하게 된다.


    주력 함대는 필리핀 링가만을 떠나서 6월 16일 서부 필리핀 해에서 편성을 완료하고 17일에는 전 함대가 연료 공급을 완료하였다. 미군 측은 이미 6월 15일 저녁 잠수함 플라잉 피시(Flying Fish)가 일본 함대가 필리핀 샌버너디노 해협을 통과했다는 무전 보고를 입수하고 결전 준비에 들어갔다.


    5함대 사령관 스프루언스 중장은 대해전이 임박해 있음을 예감하고 사이판 북쪽 바다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미처 제독에게 58 기동 부대를 필리핀 해로 집중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58기동 부대는 다섯 개의 기동 함대로 구성된 막강한 부대였다. 다섯 개의 기동 함대는 아래와 같이 편성되었다.


    TG 58.7
     7척의 전함이 전방 배치되어 일본기를 방어하는 대공 포대로서 운영되었다.


    TG 58.4
    항모: 에섹스(Essex)
    경항모: 랭글리(Langley), 카우펜스(Cowpens)


    TG 58.1
    항모: 호넷(Hornet), 요크타운(Yorktown)
    경항모: 벨로 우드(Belleau Wood), 바탄(Bataan)


    TG 58.2
    항모: 벙커힐(Bunker Hill), 와스프(Wasp)
    경항모: 캐벗(Cabot), 몬테레이(Monterey)


    TG 58.3
    항모: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렉싱턴(Lexington)
    경항모: 샌 자신토(San Jacinto), 프린스턴(Princeton)


    항모가 에섹스 한 척만 편성되어 전력이 제일 약한 TG 58.4는 북쪽에 전개되었다. 그 동쪽에 TG 58.1, TG 58.2 TG 58.3 세 개의 기동부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일렬로 배치되었다.


    마리아나 제도의 미 해군들을 총괄 지휘하는 스프루언스 중장의 기함은 전투 해역 밖에서 위치한 중순양함


     

    (좌)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TF-58 기동 부대 (우) 렉싱턴은 1942 년 5월 산호해 해전에서 침몰한 렉싱턴의 명칭을 물려받은 후계함이다. 27,100톤
    (좌)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TF-58 기동 부대 (우) 렉싱턴은 1942 년 5월 산호해 해전에서 침몰한 렉싱턴의 명칭을 물려받은 후계함이다. 27,100톤

    58 기동 부대는 정식 항모 7 척에 경항모 8척이 항공력의 주축이었다. 58 기동 부대에는 다수의 중순양함들과 경순양함들, 그리고 58척의 구축함이 있었고 28척의 잠수함이 활동했다. 이들 미처의 항모 부대가 출격시킬 함재기들의 총 숫자는 956기나 되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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