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1월 30일, 당시 핀란드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55만의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핀란드를 침공하며 이른바 겨울전쟁(Winter War)이 시작되었다. 오래 전부터 핀란드를 위협하며 전쟁을 공언하고 있었기에 침략이 갑작스러웠던 일은 아니었지만 약소국을 능멸하는 소련의 뻔뻔한 행위에 세계는 분노하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외부에서 핀란드를 도와 줄 수 방법은 많지 않았고 소련의 의도대로 전쟁은 곧바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싸움은 이후 100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결국 소련은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서류상으로 승리를 달성했으나 전술적으로는 여지가 없는 참패를 당했다. 핀란드의 10배에 가까운 30여 만의 인명 피해를 대가로 간신히 얻은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외형만 믿고 너무 자만한 소련군의 무능과 직전에 있었던 대숙청의 여파로 말미암아 지휘 체계가 붕괴되면서 벌어진 한심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리적 이점과 혹한의 기후를 발판 삼아 유격 전술로 침략자를 끊임없이 괴롭힌 핀란드의 강력한 저항이 이런 전과를 이끈 더 큰 이유였다. 침략자가 방심한 틈을 타 은밀히 침투한 핀란드군이 난사하였던 기관단총은 이 당시의 핀란드인들의 분투를 상징한 무기였다. 소련은 이 총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성능에 탄복한 나머지 모방 생산하여 사용하였을 정도였다. 흔히 구국의 총으로 언급되는 수오미(Suomi) KP/-31 기관단총(이하 수오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능성을 엿본 이들

제1차 대전 당시 지옥의 서부전선은 기관단총의 탄생을 촉진시켰다. 참호에서 피아가 뒤 엉켜 싸우게 되자 기존에 사용하던 단발의 볼트액션식 소총으로는 근접전을 벌이기 어려웠다. 기관총은 연사력이 좋았지만 너무 무겁고 반동이 심하여 돌격 시에 사용이 곤란하였다. 결국 권총탄을 사용하여 무게와 반동을 잡아 보병이 휴대할 수 있는 기관단총이 등장하였는데 파괴력, 사거리가 부족하지만 가까운 표적을 제압하기에는 적당하였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사상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어 맹활약하였던 독일의 MP 18 기관단총은 파괴력이나 기계적 신뢰성 등에서 문제가 많아 그다지 성공작이었다는 평가를 듣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단지 연사가 가능한 커다란 권총 정도로 인식되면서 종전 후 기관단총은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제2차 대전에서 맹활약하게 되는 톰슨(Thompson) 기관단총 같은 경우는 마피아 같은 폭력 조직들이 즐겨 사용하며 뜻하지 않은 명성을 날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핀란드에는 아이모 라티(Aimo Lahti)를 비롯하여 근접전에 뛰어난 기관단총의 장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라티는 MP 18이 너무 연사력에만 신경 쓰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지고 구조가 복잡하여 툭하면 고장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면 기관단총이 상당히 뛰어난 보병용 소화기가 될 것으로 굳게 믿고 개발에 착수하였고 그렇게 해서 1922년 탄생한 핀란드 최초의 기관단총이 M/22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M/22는 공기 압축 장치와 진공 조절 밸브를 이용하여 사격의 정확도를 높였는데 이때 취득한 특허는 지난 1986년까지 유효하였다. M/22는 초도 물량으로 200정이 생산되었고 이후 각종 실험을 거쳐 1925년 양산형인 KP/-26이 탄생하였다. KP/-26은 반동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고 당연히 정확도는 더욱 향상되었다. 또한 간단한 조작만으로 발사 속도의 조절이 가능하였고 총신 교환도 편리하였다.

일선에 보급하여 운용해 본 결과 급탄에 문제가 수시로 발생함이 확인되어 곧바로 개선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9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바로 수오미였고 핀란드군의 조병창 노릇을 담당하던 티카코스키 공업(Tikkakoski Oy)에서 1931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이후 소련의 PPSh-41이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특유의 71발들이 대용량 드럼 형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탄창도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산물이다.

최고의 기관단총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수오미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각고의 노력이 이룬 결과다. 아무리 소화기이지만 인구가 300여 만에 불과한 약소국이 직접 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외세의 지배를 겪으며 1918년 독립하였지만 곧바로 외세의 간섭으로 내전의 고통까지 겪었던 핀란드는 그만큼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컸다.

실전에서 얻은 명성

1939년 겨울전쟁이 발발하였을 당시 수오미는 약 4,000정 정도가 핀란드군에 보급된 상태였는데 핀란드의 상비군이 약 7만 명 내외였으므로 이는 결코 적은 수량이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가지고 펼친 핀란드군의 활약상은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침략을 감행한 소련의 자만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전사에 길이 남을 소련군의 참패와 이로 인해 얻게 된 수오미의 명성은 소련군 스스로 만들어준 것과 다름없다.

소련군은 군사적 우위만 믿고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지만 지형 때문에 진격로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렬종대로 진격하였는데 대열이 길어지다 보니 눈보라와 숲에 가로막혀 부대간 연결이 끊기기 일쑤였고 여기에 더해 상상을 초월한 혹한과 눈보라가 밀려오면서 보급에 애로를 겪었다. 이처럼 소련군이 분산되어 눈 속에서 발이 묶인 체 오도 가도 못하고 고립 되었을 때 원거리에 매복한 핀란드 저격수들이 소련군을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핀란드 저항의 하이라이트는 한 밤중에 스키를 타고 급속 침투한 소수의 핀란드 특공대가 수오미로 난사하고 도주하기를 반복한 유격전술이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많은 총탄이 일거에 날아오자 엄청난 대군에 포위된 것으로 착각한 소련군은 공포에 질려 아무 곳이나 총질을 가하여 서로에게 피해를 주기까지 하였다. 그 절정이 핀란드군 1개 사단에 가로막혀 3만 여명이 죽거나 실종 혹은 포로가 된 수오무살미(Suomussalmi) 전투다.

작지만 컸던 명성

전쟁 중에 반동을 더욱 작게 하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보정기인 머즐 브레이크(muzzle brake)를 부착하여 전장을 55mm 증가시킨 수오미 KP/-31 SJR(이하 SJR)이 등장하였는데, 정작 라티는 이 모델이 총구의 속도를 감소시키므로 개발자를 군법에 회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만큼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제작된 수호미의 절반 가까운 물량이 SJR이다.

수오미의 전과는 곧바로 피아는 물론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그 동안 잠시 잊고 있던 기관단총의 효과에 다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참혹한 피해를 본 소련이었다. 기존에 PPD 기관단총이 있었지만 경찰 용도로만 사용하였던 소련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유명한 PPSh-41을 만들었는데 엄밀히 말해 수오미를 그대로 복제하다시피 하였다.

수오미는 종전 후인 1953년까지 계속 양산되었는데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같은 주변국들은 라이선스 생산한 모델까지 포함하면 약 8만 정도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총기로써는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는 수량이지만 전쟁사에 수호미가 남긴 명성은 기본적으로 백만 정 이상은 생산된 동 시대의 여타 기관단총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자주국방에 대한 약소국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라 생각된다.

제원

탄약 9×19mm 파라블럼 / 작동방식 블로우백 / 전장 870mm / 중량 4.6kg / 발사속도 분당 800발 / 유효사거리 2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