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03 16:09

글자크기

[무기의세계]

저가 전투기의 베스트셀러

F-5 전투기

0 0
F-5E 타이거 Ⅱ의 공식 발표 사진

냉전 시기였던 1980년대 이전에 각 진영의 맹주를 자처하던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그야말로 치열하였다. 그 중에서도 끝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군비 경쟁은 세계를 제3차 대전의 공포에 떨게 만들 정도였다. 양측은 보병용 소총에서 전략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상대보다 좋은 무기를 갖기 위해 어떠한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들이 사용할 무기의 개발과 생산이 우선이었지만 더불어 많은 수가 같은 편에 공급되었다.


 

(좌)스페인 공군의 F-5 <출처 : (cc) Jerry Gunner>
(우)싱가포르 공군의 F-5E <출처 : (cc) Dave1185 at en.wikipedia>

남 주려고 만든 전투기?


전투기도 그러하였는데 냉전 시기에 수많은 전투기가 저렴한 가격이나 공여의 형태로 동맹국에 대량 공급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F-35 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에는 개발 단계부터 추후 해당 전투기를 사용할 여러 나라들의 지분 참여를 받거나 대외 판매를 염두에 두고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모습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고 그것이 바로 냉전의 모습이었다.


물론 미국이나 소련만이 보유한 최신예 전투기를 즉시 공급하여 준 것은 아니었고 잉여 장비나 전성기를 지난 전투기들이 지원 품목이었지만 그렇더라도 마구 뿌려대기 어려울 만큼 전투기는 값비싼 무기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능을 갖추었지만 대외에 공여하거나 군소 국가들이 획득하기 쉬도록 저렴한 전투기가 요구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베스트셀러가 현재 한국 공군도 사용 중인 F-5 시리즈 전투기다.


 

(좌)브라질 공군의 F-5 <출처 : (cc) 브라질 공군>
(우)필리핀 공군의 F-5E

MiG-21같은 전투기가 필요해


1958년 말, 실전 배치된 MiG-21은 무장 탑재량과 작전 반경이 작지만 기동력이 뛰어나고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소련제 전투기다. 원래 탄생 목적이 공대공 전투보다는 소련 본토를 공격하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서였지만 동시대에 등장한 F-4를 비롯한 미제 전투기에 비해 객관적 성능이 뒤졌다. 덕분에 개발 직후부터 소련만의 보물처럼 취급 받지는 못하였고 많은 친소 국가에 대량 공급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가격이 저렴하고 기술력이 뒤진 중소국가들도 쉽게 유지 보수가 가능할 만큼 구조가 간단하여 값비싼 고가의 전투기를 운용하기 힘들었던 많은 나라에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월남전이나 중동전처럼 수많은 전쟁에서 주력기로 맹활약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제 최신예 전투기들을 애먹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중소국가의 현실에 맞는 전투기였던 것이었고 결국 현재까지 가장 많이 생산된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비슷한 시기에 미군도 마치 MiG-21처럼 2선급 동맹국이나 친미국가에 무상이나 저가에 공급하여 줄 수 있을 만큼 저렴하고 정비가 용이한 전투기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전투기 제작사들은 자국 내 전투기 채택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성능의 전투기 개발에만 매진하고 있던 상태였다. 오로지 노스럽(Northrop)만이 미국 정책 당국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좌)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F-5의 프로토타입 기종인 YF-5A
(우)11,000대 이상이 생산된, F-5의 벤치마크 대상이었던 MiG-21

Freedom Fighter, 자유의 투사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노스럽은 정책 당국과 별개로 저가 전투기를 필요로 하는 별도의 시장이 있다고 보고 1955년부터 N-156이란 이름으로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이때 처음 관심을 표명한 곳이 1947년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면서 항공 전력이 대폭 축소된 미 육군이었다. 그들은 지상군을 근접에서 엄호할 전투기를 원하였던 것인데 육군의 고정익 항공기 보유와 운용이 불허되면서 불발로 끝났다.


 

F-5B의 파생형으로 총 1,187기가 생산되어 미 공군의 훈련기로서 사용 중인 베스트셀러 T-38 탤론

바로 그때 N-156이 정부의 눈에 띄면서 오로지 동맹국에 공급할 목적의 경량 초음속 전투기 제작을 의뢰 받았고 노스럽은 곧바로 개발에 나서 1959년 7월에 초도기가 비행에 성공하였다. 성능에 만족한 당국은 F-5A(단좌형)/B(복좌형) Freedom Fighter라는 멋진 이름을 부여하였고 즉시 양산에 돌입하였다. 더불어 N-156은 미 공군의 고등 훈련기(이후 T-38) 플랫폼으로도 채택되어 노스럽의 입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초창기 F-5A/B는 레이더가 없는 등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20여 개국에 800여기 이상이 공급되거나 현지 생산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 공군도 1965년 20기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초음속 시대를 개막하였고 이후 8기의 정찰용 RF-5A를 포함한 총 126기의 F-5A/B를 운용한 주요 사용국가가 되었다. 이로써 MiG-21을 보유한 북한에 비해 열세를 보이던 공군 전력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좌)F-5E 타이거 Ⅱ의 초기 생산분 사진
(우)미 공군 가상 적기 편대에서 사용하던 F-5E 타이거 Ⅱ

'자유의 투사', 호랑이로 변신?


MiG-21이 계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쳐 동구권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하자 이에 대항하여 미국도 1970년 11월 F-5A/B의 추력, 무장, 레이더 등을 보강한 성능 향상 기종을 동맹국에 공급할 새로운 경량전투기인 IFA(International Fighter Aircraft)로 선정하였는데 이것이 F-5E(단좌형)/F(복좌형) 전투기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전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Tiger Ⅱ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었다.


 

한국에서 라이선스 생산된 KF-5F 제공호 <사진 출처 : 공군>

일사천리로 개발을 마친 F-5E/F는 1972년 초도 비행에 성공한 후, 총 1,399기가 미국 및 여러 나라에서 라이선스 생산 되었다. 1991년 발발한 걸프 전쟁에서 다국적군 소속으로 100여기가 동원되어 전장 차단 및 지상군 근접 지원 임무에 투입되어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1974년 미국을 통해 월남공군이 사용하던 19기의 F-5E를 이전 받으면서 최초 사용국 중 하나가 되었다.


한발 더 나가 1982년에는 라이선스 생산에도 나섰는데 이것이 바로 KF-5E/F 제공호로 현재도 수량으로 한국 공군 전술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계속 사용 중이다. 비록 작전 거리가 짧고 전자 장비가 부족하지만 긴급 출격 능력이 탁월하고 기동력이 뛰어나 현재 북한의 주력 전투기인 MiG-19나 MiG-21에 능히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이외 주변국의 전력을 고려한다면 시급히 교체되어야 할 노후기종이라 할 수 있다.


 

(좌)F-5E/F의 진화형인 F-5G는 F-20이라는 제식 번호를 받아, F-20 타이거샤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우)F-20 타이거샤크의 매버릭 미사일 발사 모습

못다 핀 꽃, F-20


1980년대 들어서 여러 나라가 미 공군이 Low급 전투기로 사용하고 실전에서도 많은 전과를 올린 F-16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미 공군의 주력인 F-15는 비싸기도 하지만 최고 우방국에만 선별적으로 공급하였던 관계로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전투기였다. 반면 좋은 성능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대외 판매가 용이한 F-16은 기존의 많은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며 순식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자 노스럽은 그 동안 전 세계에 수많은 F-5 시리즈가 깔린 점을 고려하여 교체 물량만 확보하면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을 거라는 계산하여 F-5E/F를 좀 더 파워풀하게 재설계한 후계기를 순전히 자사 부담으로 개발에 나섰다. F-5A/B 사용국 대부분이 F-5E/F에 획득하였던 점을 고려하여 단지 마케팅측면에서만 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수차례 설계 변경 끝에 1982년 차세대의 F-5라 할 수 있는 F-5G Tiger Shark가 탄생하게 되는데 오히려 F-16 Block 1보다 늦게 개발됨으로써 각종 전자장비, 무장수준, 작전능력은 F-16 당시 모델들 보다 좋았던 것으로 평가 되었다. 비록 미 공군은 F-16, 미 해군은 F-18을 이미 채택한 상태여서 F-5G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그 성능을 인정하여 F-20이라는 F-5 시리즈와 전혀 다른 제식 번호를 부여 하였다.


 

F-5 시리즈의 마지막인 ㄹ-20은 해외 마케팅에 열을 올렸으나 결국 구매자를 만나지 못하고 사업이 종결되고 말았다.

그렇게 막을 내려야 할 역사


노스럽은 3기의 F-20 시제기를 제작하였고 적극적인 해외 세일즈에 나섰는데 그 첫 번째 무대가 기존 F-5 시리즈의 최대사용국 중 하나이며 KFP계획으로 불리는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을 벌이던 우리나라였다. 1984년 10월 10일 수원비행장에서 기동을 선보였는데 한기가 엔진이상으로 추락하고 조종사가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결국 한국 판매는 없었던 이야기가 되었다.

F-5E 타이거Ⅱ의 비행 모습

절치부심한 노스럽은 결함을 손보고 이듬해 5월 14일 캐나다 구즈베이(Goose Bay)에서 있었던 에어쇼에서 다시 비행에 나섰으나 여기서 또다시 추락하는 불운을 맞보게 되었다. 이러한 연이은 사고로 결국 1986년 11월 F-20 사업은 공식 종료되었고 노스럽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50여 년 전 등장하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약한 F-5 시리즈의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F-5는 탄생부터 최고가 아니라 마당쇠를 목적으로 하였던 전투기였다. 그래서인지 21세기에 들어서도 아직도 현역에서 활약하는 F-5 시리즈를 보면 비록 노쇠하였지만 묵묵히 자기 일에만 전념하며 모두를 안심시킨 경험 많은 집사가 오버랩 된다.


 

제원 (F-5E Tiger II 기준)
길이: 14.45m/ 전폭: 8.13m/ 높이: 4.08m/ 최대이륙중량: 11,187kg/ 최대속도: 1,700 km/h(Mach 1.6)/ 항속거리: 1,405km/ 실용상승한도: 15,800m/ 무장: 20mm 기관포 2문, 7개 하드포인트에 3,200kg 무장 장착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