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9.2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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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지상군의 수호자

K-9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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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는 국경을 조정해주는 도구”  - 앰브로즈 비어스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소설가)
“대포는 저속한 싸움에 존엄을 가져다 준다” - 프레드릭 대제 (프러시아 황제, 1740년 ~ 1786년 통치)


역사를 돌이켜보면 1346년 100년 전쟁의 와중에 대포가 등장한 이래 전쟁은 대포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누가 더 강력하고 사정거리가 먼 포를 보유했는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판가름 나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은 포병으로 만들어진다는 나폴레옹의 격언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휴전선 건너편에 배치된 장사정포가 우리 국방의 위협으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2차 대전에서 포병의 적 사살률은 60%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노련한 병사에게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십중팔구 포격이라고 답한다. 이런 간단한 수치나 질의만 보아도 21세기의 스마트 전쟁에서도 왜 대포가 중요한지 드러난다. 미군도 아프간과 이라크 전에서 포병의 미비한 배치를 아파치 공격헬기와 같은 항공지원으로 보충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암울했다.

최초의 자주포인 영국의 Mk I

자주포란 스스로 움직이는 대포


역사 속에서 포병은 크게 도보포병과 기마포병으로 구분되었다. 대다수인 도보 포병은 걷는 포수와 말이 끄는 대포로 구성된 반면, 기마포병은 모든 사람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기동성을 확보했다. 현대의 자주포는 이런 기마포병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주포란 차량에 탑재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대포를 말한다. 최초의 자주포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등장했던 Mk I 야포차량이다. 세계 최초의 전차인 Mk I의 차대를 활용한 Mk I 야포차량은 포를 이동시키는데 말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이동가능하다는 점에서 커다란 혁신이었다.


과거에는 구축전차나 돌격포 같은 직사화기도 자주포로 분류되었다. 특히 구축전차 등은 전차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부족한 기갑전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현대에 들어 자주포는 포병전력의 주축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대포병 능력이 강조되면서 자주포의 중요성은 증가하였다.


견인포의 경우 포병이 한번 이동하고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병력이 포를 차량과 결합하고 다시 진지를 구축하고 포를 배치하는 데만 해도 몇 십 분이 걸린다. 그 사이 적은 아군의 포병에 대한 대포병 작전을 실시하여 포대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자주포가 등장하고 나서 실전에서 운용은 매우 간단해졌다. 자주포 자체가 이동하는 포대진지이기에 부대 전개와 이동에 필요한 부수적인 시간이 절감되었다. 그리하여 포격 이후에 약 1~2분 만에 장소를 이동하여 공격하는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 (SHOOT AND SCOOT)'이 가능해졌다.

미국의 자주포 M106A6 팔라딘 <출처: US Army>

세계의 자주포


하이테크 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 스마트 전장에서도 현대적 육군은 포병전력을 중시한다. 디지털 컴퓨터 사격장치, GPS 및 관성항법장치 등이 도입되면서, 자주포는 더 이상 계산하고 좌표를 찾느라 시간을 소모할 필요 없이 즉각 포격이 가능해졌다. 견인포에 비해 고가의 무기체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자주포의 개발 및 배치에 인색하지 않다. 이는 자주포가 뛰어난 기동성 및 생존성을 보유하여 지상군의 전력상 우위를 보장하는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야포는 서구권과 동구권에서 각각 105mm, 122mm가 주력이던 것이 현재는 155mm, 152mm가 표준이 되고 있다. 현재 주력이 되고 있는 자주포들로는 M106A6 팔라딘(미국), AS90(영국), G6(남아공), PzH2000(독일), CAESAR(프랑스), 2S19 MSTA-S(러시아), 83식(중국), 99식(일본) 등이 있다.


포병의 공격거리도 점차 증대되어 2차 대전 당시 10km 권이던 사정거리가 70년대 말부터는 30km로 증가했으며, 요즘에 이르러서는 40km 대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로켓추진식의 스마트포탄 등이 개발되면서 사거리는 더더욱 증가되고 있다. 특히 현대의 자주포들은 포탄장전 및 포신구동이 자동화되어 빨리 쏘고 빨리 장전할 수 있다. 또한 무인정찰기, 영상탄환, 인공위성 등의 도움으로 적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명품 무기체계 1호로 데뷔한 K-9 자주포 <사진: 양욱>

국산 명품 무기체계 1호, K-9 자주포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말에 최무선이 흑색화약을 개발하는 등 화포 개발의 선진국이었다. 우리 육군도 포병전력의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여 70년대 초부터 105mm와 155mm 견인포를 국내 생산하였다. 미군으로부터 M107 자주포를 도입하여 자주포를 운용해오던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는 K-55 자주포를 생산하여 약 1천여 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당시 우리의 화포 전력은 북한에 비하여 열위에 있었다. 북한군의 포병전력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을 뿐 아니라 보유한 화포의 절반가량이 자주화 및 차량탑재용이어서 기동성이 뛰어난 포병전력을 보유했다.


우리 육군은 이런 양적 열세를 질적 우위로 극복하고자 했다. 특히 사정거리가 증가된 야포를 배치하여 군단 종심작전에 대한 화력지원이나 화력전 수행능력을 향상시켜야만 했다. 이에 따라 KH179와 K-55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육군은 K-55를 이어갈 차세대 자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


차세대 자주포는 1989년부터 체계개념연구가 시작되어 약 10년간의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1999년부터 전력화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로 개발된 차세대 자주포는 삼성테크윈, WIA, 풍산, 한화, LG정밀 등 백여 개의 업체가 개발에 참가했다. 그래서 K-9은 1990년대 국방과학기술의 총화와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은 제1호 국산 명품 무기체계가 되었다.

세계 정상급이 성능을 보유한 K-9의 기동 모습 <사진: 양욱>

K-9 자주포의 세계 정상급 성능


K-9은 52구경장(약 8m)의 155mm 포신을 채용하여 사정거리가 40km 이상으로 늘어났다. K-9은 최대 3분간은 분당 6발의 사격이 가능하므로 기존의 K-55보다 3배 이상의 화력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K-9은 자동장전시스템과 자동포신이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즉 K-9의 사격통제용 컴퓨터에 표적위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산출하여 포구를 목표방향으로 지향시키고 탄약을 자동으로 이송, 장전한다. 결과적으로 K-9 자주포는 서 있는 상태에서라면 30초 이내에 초탄을 발사할 수 있다.


게다가 K-9은 혼자서 사격제원을 바꾸면서 사격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단독 TOT(Time On Target,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간에 쏜 포탄이 같은 위치에 동시에 떨어지도록 하는 사격)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단독 TOT 능력을 갖추게 되면 한 대의 자주포가 여러 대가 동시에 쏜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예컨대 K-9 한 대가 3발을 쏘면, K-55 3대가 한 발씩 쏜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K-9 한대가 K-55 3대에 맞먹는 능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K-9은 1,000 마력의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최대 67km까지 달릴 수 있어 K1 시리즈 전차와 동등한 기동능력을 자랑한다. 위치확인장치, 자동 사격통제장치, 포/포탑 구동장치 및 통신장치를 탑재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계산한 사격제원 또는 사격지휘소로부터 접수된 사격제원에 따라 포를 자동으로 발사할 수 있다.


방호력의 측면에서는 전차만큼은 단단하지 않지만 고강도 장갑판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적 포병화력의 파편이나 중기관총, 대인지뢰 등에 대한 방호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생방전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어 생존성이 향상되었다.


K-9은 미국이 보유한 M109A6 팔라딘이나 영국의 AS90에 비해 현저히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며,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PzH2000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능이다. 어떤 제원을 살펴보아도 세계 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다. 바로 이런 K-9의 성능에 주목한 터키는 K-9의 기술을 도입하여 자국에서 생산한 T155 FIRTINA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다.


K-9은 대당 가격이 40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무기체계이다. 약 10억 원이었던 K-55 자주포에 비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K-55보다 한 차원 높은 성능인 데다가 동급의 최첨단 자주포인 PzH2000의 가격이 약 1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가격대 성능 면에 있어서도 K-9은 우수한 첨단무기체계라고 하겠다. 비록 최근에 K-9의 결함을 지적하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무기체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상의 미비였다. 세상에 완벽한 무기체계란 없으며, 다만 운용자의 경험이 합쳐져 국방력으로 표현될 때 무기체계는 완벽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