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에 대한 추억은 살아오면서 축적한 그 어떤추억보다도 강합니다.
이 추억은 거치른 본성으로서 다른 추억을 압도하고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에 가장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상의 대화에서도 문득, 문득 군대시절이 떠오르도록 수많은 키워드를 자신과 링크시켜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강인한 기억들은 어쩌면...자신에 대한 기억을 교정하고 재정립해달라는 요구로 인하여 집요한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군대시절이란 40년이 넘은 과거의 이야기인데 아직도 자신의 이야기를 반추하고 반성하여 재정립해 달라고 조르는 추억들이 많습니다.

신읍리 골짜기 12중대에 당도하여 전입신고를 마치고 내무반을 돌며 하사관과 고참들에게 예를 올렸습니다. (짜:3)
2소대 이중사가 말하더군요.
"어. 우리 중대에는 인사계가 아직 안계셔, 얼마있으면 김상사라고 아주 좋은 분이 올거다."

 몇개월 후에, 그러니까 내가 첫휴가를 다녀온 후 서무병 보조원이 되었을 때 (짜:1)
"아주 좋은 김상사" 가 중대로 오셨습니다. 인사계, 요즘 말로는 행보관이시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 분의 인상은...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 조물주께 제품의 최종 마무리...당시 용어로 매끈한 "시아게"를 받지 않고 출고되신 분 같았습니다.
이건 험담이 아닙니다. 
강원도 정선산(産) 방석희 일병, 깍사(이발병) 장운상 일병, 그리고 취사병 양만수 일병이 갖고있는 토속적이고 인간적으로 순수한 인상을 이 황해도 출신의 상사님께서 과분하게 갖고 계시더란 이야기일 뿐이죠.
 
여하튼 이 김상사님과 행정병인 나와의 관계는 매우 껄끄러웠죠.
그 분이 보기에 나는 아무 쓸모없는 "서울출신" 이었습니다.
눈치도 없고 삽질도 못하고, 싸리나무가 뭔지도 모르고, 새끼줄도 꼬지못하는 ...더구나 라면도 못끓이는 어리비리.....
"이것도 몰라?"
"아니?사회에서는 뭘하다왔냐?"
"힘만 쓴다고 되냐? 요령이 있어야지 쯔쯔" .... 이 양반이 좋은 분 맞아?.....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에그머니!!>
이듬해 3월이 되어 우리는 철책선에 투입되어 81미리 박격포 진지인 "대구포" (짜:2)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철책선에 투입된 부대는 경계근무만 하고 훈련이 없었으므로 김상사님도 좀 한가해 지셨죠.
겨우 열두어명이 생활하는 막사에서 정리정돈 잔소리를 하시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어느 날, 행정반 책상위에 놓은 깡통을 보셨습니다.
"이런걸 왜? 여기다 올려놓나?" 하시며 깡통을 열어보시는 순간 "에그머니! " 하는 비명이!
그 깡통속에는 월남병장인 갈병장(짜:4)이 뱀을 잡아먹고 모아놓은 뱀껍대기가 들어있었죠.
어찌되었든 이 "에그머니!" 라는 결코 군대용어일 수 없는 소리가 김상사님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그 순간 더 놀랍게도 나는 이 김상사님께 최초로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503벙커의 해골>
얼마 후에 조금은 가까워진 김상사님과 나는 503 벙커를 찾아갔습니다.
503벙커는 철책선 바로 앞에 있었는데 하사관 이하사가 1개분대를 데리고 근무하고 있었죠.
그런데 근무하는 병사들의 불만이 김상사께 전달되었습니다.
병사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철책선 근무를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와 아침을 먹고 점심때까지 취침을 하는데 야간근무에 나가지않는 이하사가  고참병이나 이웃 벙커의 하사관을 불러 바둑을 둔다는 겁니다.
바둑알을 딱! 딱! 내려놓은 소리나 떠드는 소리가 취침을 방해한다는 것이었죠.
더구나 인근에서 해골을 하나 주어와서는 닦고 에나멜로 광택을 내어 책상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양초를 고정시켜 촛대로 썼으니 (전방에는 전등이 없었고 석유등잔을 사용했습니다) 어두운 벙커안에서 빛나는 해골로 벙커안은 괴괴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입니다.
 
감상사는 벙커안에 들이닥치자마자 이하사의 관물을 뒤집어 엎고 바둑판과 해골을 계곡아래로 집어던져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로서 끝!
"에그머니" 로 마음을 연 내 호감은 이 순간에 "존경"으로 완결되었고 이 호감과 존경은 내가 풍산리에서 군대생활을 마칠때까지 변함이 없었던 것이지요. 
 
<대구포의 밤>
밤이되면 막사를 밝히는 석유 등잔불의 심지를 내려 최소로 해 놓고 사회에서 작은 교회의 권사였다는 안일병이 무사한 하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풀어진 김상사께서 침상에 누운채로 두런두런 옛 이야기를 풀어놓았죠.
"그 때는 매트레스가 어디있냐?, 콩나물을 담아온 거적을 말려 침상에 깔았지"
"배는 맨날 고팠지, 그러다가 보름에 한 번쯤 미군이 보내준 소세지가 왕창나오는거야, 이걸배터지게 먹고나서 화장실 전쟁을 벌리고..."

<미스테리한 과거>
그런데 좀 더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전쟁당시의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나는 산으로 도망을 갔어, 추위에 먹지도 못하고 며칠을 산속에서 헤메다보니 다친 발가락이 썩어들어가 뼈가 드러나 보이더라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멀리 국군들이 쳐들어 오고 있더군,  국군이나 인민군이나 다를 게 없었어, 잡히면 죽는거지... 그러다가 결국....." 
국군을 피해서 도망갔다는 이 대목은 무엇이었을까... 이 미스테리는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있는데 내 기억은 집요하게 이 기억을 내어 놓습니다.

그 날,달콤하게 다가오는 졸음에 물어보지 못했다할지라도 이후에 물어볼 시간은 언제나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는 하나의 조건이 설정되어 있었죠. 

"국방부의 시계나 빨리 돌아가라, 제대후에 이 사람들을 다시 볼 일이야 있겠나."

바로 이러한 심리가 김상사의 삶에 대한 관심을 적당한 선에서 정지시키는데 작용했다고 나는 봅니다.
아득한 시간이 흐르고 보니 국방부의 시계는 아무 것도 아니였고 삶의 순간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을 크게 넓혀줄 수 있고 사람을 향하여 마음을 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우쳐줄 수 있던 인연을 속좁음으로 인하여 흘려보낸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요.
 시간이 흘러 나도 고참이 되었고 전입하는 후배들에게 내가 전입 날에 이중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인사계 김상사님은 아주 좋은 분이시다."
 
나는 글의 서두에서 오래 남는 기억은 치유와 교정을 졸라대는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억은 내가 김상사에 대하여 정식으로 마음을 드러내어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 글로서 김상사에 대한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바 입니다.
 
 <김승모 상사님>
아직도 건강하게 노년을 향유하고 계시리라고 믿어봅니다.
각박하다는 군대에서 보여주신 인간미를 존경했습니다. 그 시절 당신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자연의 어떤 섭리가 힘을 써주사 40년전에 김상사의 곁을 지나간 7사단 5연대의 한 병사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음을 전해주소서.  



****************** 짜투리 글 **************************
1. 첫 휴가를 다녀와보니 내가 떠난 다음 날 서무병 후임대상인 병사가 카빈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귀대한 내가 얼떨결에 서무병 보조가 되었지요.
   상당히 오래 전에 자살한 김일병에 대한 글을 올린 바가 있었는데 정서하여 다시 한 번 올리고자 합니다.
 2. 박격포 진지인 "대구포" 시절은 군대이야기에는 금기어 이겠지만 ... 많이 행복했습니다.
 3. 풍산리의 연대 보충대에서 배치받은 신읍리 계곡의 자대를 찾아가는 모습은 "자대 가는 길" 이라는 글로 남긴바가 있습니다.
 4. 월남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월남병장이라고 했는데 갈병장(원래의 성은 "제갈" 입니다.)도 월남병장이었죠.
    시간만 나면 뱀을 잡아먹으려고 돌아다녔는데 월남에서 뱀에대한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