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의 세계

김바사 | 2017-07-02 22: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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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다녀오는 길에 서울역에 내렸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서울역의 모습이 궁금했다고나 할까요.

지상으로 올라와 서울역을 바라보니 길게 결려있는 "시간여행자의 세계" 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수막을 바라보며 웃었지요.
"내가 바로 시간여행자 아니던가..."

내가 이 서울역을 바라본지 어언 60년이 되었고 여전히 여기에 서있으니 어찌 시간여행이 아니며 내가 어찌 시간여행자가 아니리요?
오래 전에 이 서울역을 바라보면서 "서울역 시계는 초침이 없다" 라는 글을 썼는데 이제는 시침이 없더라도 상관치않을 것입니다.
저 시계를 바라보며 서두르던 삶의 분주함은 내게는...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에게도 마감되었을 것이니까요.

세워진지 100년이 되어가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아마도 "나" 라는 관찰자가 사라진 후에도 또 다른 추억을 간직한 관찰자로 이어지면서 영속할 것이지요.
반세기를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100년이란 세월도 긴 시간은 아니더이다.
유년의 시절에 나는 저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보고 싶어했습니다.
그 돔속에 있는 어느 신비한 존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결국 한 번도 지붕위에는 올라가보지 못하였고 그러니 존재자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네요.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나타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 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일생을 큰바위 얼굴과 교감하며 결국 큰바위 얼굴을 닮은 "예언의 인물" 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서울역을 찾을 때마다 존재자가 숨어있을 돔을 올려다보면서도 인증을 받지는 못하였네요...뭐...할 수 없죠.

서울역 안에서 돔을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반투명 천장으로 막혀있어 돔이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이러한 건축물에서는 저 돔이 받아들이 빛이 아래로 내려와야 할 것인데 어떤 이유로 이 천정이 막혀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용이 그려진 천장으로 막혀있었는데 이 그림은 1951년 서울이 수복되자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설치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돔의 일부 유리창이 파손되었는데 이러한 파손을 가리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호기심 충만한 소년이 비밀의 돔을 바라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서울역 앞의 고가도로가 보행로로 바뀌었기에 이 길을 따라 걸어가보니 남대문시장과 명동을 지나게 되는군요.
그려... 오늘은 시간여행자로서 이 거리를 걸어가 보자꾸나.
명동 안쪽에 있는 국립극장을 바라보면 사진작가 "한영수"의 그 시절, 그 눈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나는 사진작가 한영수가 찍은 1958년도의 "명동"을 최고의 작품으로 보며 소중히 여깁니다.

비오는 명동거리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정서, 아름다운 옷을 걸친 마네킹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 절묘하게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어기 매표소앞에 사람들이 줄지어선 극장이 보입니다.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저 극장은 지금도 건재하니 시간여행자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저 극장-국립예술극장을 소녀의 위치(지금은 명동 파출소)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명동성당이죠.
이 아름다운 성당에도 추억은 많으나 그냥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아니...기억하나가 밖으로 밀고 나오려하네요.
아직 전두환 대통령의 시절이던 80년대 중반에 이 성당의 부속건물에서 5.18 사태를 보여주는 비디오를 상영했습니다.
성당앞에는 경찰들이 포진해있었지만 성당에서 상영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요.
말로만 듣던 광주사태의 참변을 보려고 가슴을 조이며 성당안으로 걸어가던 내 모습이 생각납니다.
이 기억은 혹시나.... 아까 서울역에서 고가도로로 올라설 때 어느 단체가 나눠주던 5.18 사태에 대한 비판적 글에 대한 반발로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던 그 불의와 갈등의 시대를 우리가 극복하여 왔기에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진 갈등들을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모든 갈등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리라.

그건 그렇고, 오래전에는 이 성당앞에 케네디 대통령의 흉상이 세워져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보이지가 않네요.
성당의 뒷쪽으로 돌아가니 성모상이 호젓하게 서 있습니다.

그 옆에 신자들이 봉헌한 촛불들이 유리장안에서 가늘게 흔들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 촛불을 봉헌한 신자들은 어떤 소원을 빌며 촛불을 켰을까.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지만 촛블 하나를 켜서 봉헌하였습니다.

나는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타고 흘러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던 것이고,
소원을 빌지않고도 촛불을 올릴 수 있는 지금의 삶에 감사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