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皇 陛下 玉音의 깊은 뜻

시지프스 | 2007-08-14 0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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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천황은 이렇게 말하였다.../ 고모리 요이치 지음/ 뿌리와 이파리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 가 있다. 여기서 ‘세계’ 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실’ 을 의미한다. 환상문학의 텍스트들이 그러하다면 별다른 해악이 없겠으나 만약 그 텍스트가 공식문서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쇼와(昭和) 천황 히로히토의 ‘ 종전조서, 800자’ 가 이에 해당한다.

제목 부터 기만이다. 전쟁에 패하여 (敗戰) 작성된 것 인데 전쟁을 끝내며 (終戰) 작성한 것 으로 되어 있다. 사태를 명료하게 규정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사태에 관하여 남을 기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패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모호함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아바스 통신 도쿄 지국장 이었던 로버트 길랭의 지적은 예리하다. “물론 항복이란 말도 사용되지 않았다. 잔인한 원자 폭탄이 종결 이유라고 했다. 이 텍스트는 정말 이상했다. 그 정신에서 볼 때 철저하게 일본적 이었다.”

종전조서의 첫 문장은 이렇다. “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 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 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짐이 신민에게 고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천황제 국가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동선언은 포츠담 선언 이다. 이걸 수락한다는 것을 4개국에 통고토록 했으면 당연히 이어지는 문장들 에서는 그 나라들과의 전쟁에 관한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은 실로 제국의 자존(自存) 과 동아(東亞)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 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 천황은 “미·영 2개국” 과의 전쟁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1941 년 이후의 전쟁에 대해서만 “종전”을 선언하는 것 이다. 더욱이 “미·영”과 전쟁을 벌이게 된 까닭도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데 있었다.

명백히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해온 일련의 침략 전쟁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마치 없었던 일 인양 꾸며졌으며, 설혹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짐의 뜻이 아니”라 신하들이 저지른 것 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나라들은 일본의 ‘맹방(盟邦)’이 된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것이 “ 무엇보다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국체수호를 실현하기 위한 수사” 라고 지적한다. ‘국체’라는 말 역시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본래의 뜻 보다는‘천황 개인’을 의미한다. 이 역시 텍스트의 기만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종전조서’는 대충 만들어진 문서가 아니다. 이는 1945년 8월 15일 이래 일본 정부가 중국 침략,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취해온 공식적인 입장 이기도 하다. 이미 천황의 종전조서로써 다 말하였고, 연합국의 승인을 받은 일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 이다. 그러니 그들은 종전 조서에 밝힌 이러한 공식 견해를 바탕으로 해마다 망언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이 망언이 아님을 굳게 믿고 있는 것 이다. “‘종전조서’, 즉 ‘옥음(玉音) 방송’은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일회적인 목소리를 넘어, ‘대동아 전쟁’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 인가를 둘러싼 내각과 국회를 포함한 정치적 담론장에서의 역사 인식을 지배하는 말의 규제력이 되기 시작했다.”

이 조서는 또한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하게 해줌으로써 일본을 무혈침공 할 수 있었고 -- “만약 천황을 ‘전쟁범죄’인 으로 소추하면 국민의 강한 반발이 생기고 폭동이 일어나 미국으로서는 더 많은 파견군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점령도 장기화 된다는, 협박과도 같은 점령 비용론에 의해 히로히토를 면책하는 것의 이점이 주장된 것이다.” -- 수월하게 동북아시아 지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미국의 기본 태도를 담고 있기도 하다.



송태욱 옮김.

문화일보 200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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