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불법남침을 자행한 북한인민군은 낙동까지 밀고 내려 왔다. 국토는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 속에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시시각각 조여드는 한정된 공간에서 대한민국이 없어지느냐? 살아남느냐하고 긴박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런 7월말에 나라를 구하려고 제주건아들은 혈서 지원을 하며 모슬포 주둔 해병 제3대대로 몰려들었다. 그 홍안의 청소년들은 뜨거운 태양아래 비지땀을 흘리며 가혹한 훈련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별이 빛나는 밤이 되면 훈련병들은 기합에 시달리고 엉덩이는 퍼렇게 멍이 들어갔다. 이런 체력소모와 고통은 극한이 경지였고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눈 속에 매화가 피듯이 인자한 장교가 한사람 있었으니 그는 제22중대 제3소대장인 권병주소위였다.

그는 진남포에서 태어나서 공산당의 폭정에 못 이겨 38선을 넘었고 타관 땅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제주땅에서 소위로 임관을 하였으니 이로써 삼다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래서 소대장이 되었고 사병들을 진심으로 아꼈기에 멋진소대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렇게 모슬포에서 추억을 만들어내며 권병주소대장과 제주출신 병사들은 굳게 뭉쳤고 9월 1일에는 용약전선으로 출동했다. 그렇게 하여 진해를 거쳐 당도한게 충무공 정신이 살아 숨쉬는 통영땅이었고 이곳에서 인천상륙의 승전보를 듣게 되었다.

아～ 만세다. 만세, 권병주소대장도 전방으로 갈수가 없을까하며 환희에 넘쳐 있었는데 늦게나마 9월 23일 LST단양호에 승선명령이 떨어졌다. 북으로 향하는 수송선에서 권병주소대장은 너무나 고무되어 있었다. 내고향진남포에는 누구보다도 내가 맨 먼저 입성할 것이다. 여러분 같이 갑시다. 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렇게 인천을 거쳐 영등포구 신길동에 도착한 것이 26일이었다. 새벽안개를 뚫고 권소대장이 인솔하는 소대는 당인리에 이르렀다. 이제는 진공할 지역을 할당받고 누가 먼저 중심부로 들어가느냐 하고 경쟁이었다.

권병주소대장은 카인빈 M2를 한손에 들고 질풍같이 앞장서 달렸다. 여러분! 용감한 사람에게는 총알이 사람을 피해갑니다. 돌격～ 하고 뛰어갔다.

이래서 원효로?용산역?갈월동?서울역으로 노도같이 진군하여 수도 탈환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후에도 촌각을 지체하지 않고 퇴각하는 적을 맹추격하여 경춘가도에 이르렀다. 그래서 10월 2일 양주벌판의 금곡땅에 있는 63고지 야산까지 달려갔으나 그만 매복한 적병의 기습에 걸리고 말았다.

딱～콩, 딱～콩, 다르륵～ 다르륵～하는 적의 총탄은 아군들을 향해 빗발치듯이 꽂혀왔다. 야～ 적이다. 후퇴～ 하고 명령한 후 소대원들을 물러나게 하였다. 그는 맨 후미에서 적을 향해 팡～팡～하고 총을 쏘며 엄호할 때 아뿔싸! 적의 총탄 한발이 그를 비껴가지 않고 그만 척추를 꿰뚫고 말았다. 그는 저절로 푹 꼬꾸라졌고 심한출혈이 일어나며 하체는 요지부동이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혼신의 힘으로 경사지를 굴러 내렸다. 그랬더니 몸은 팽이 돌듯이 돌고 돌아 언덕 밑이 조그만 개울 속으로 쿵～ 하고 쳐 박히고 말았다. 몸은 전연 움직여지질 않는다. 아～사람 살려! 그 아우성 소리를 듣고 제주출신 김유만(태흥리)?최형권(신천리) 두견습수병의 탄우 속에서도 간신히 기어와 그를 끌어 올렸다. 이래서 응급처치를 하고 서울백병원으로 후송시켰다.

그러나 용사의 부상을 병가상사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드디어 성공리에 경인작전을 마친 아해병대는 인천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옛전우들은 권병주소대장을 만났으나 그는 이미 하반신을 못쓰는 반신불수가 되어 있었다.

전우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소대장님! 부디 건강을 회복하십시오. 고맙네. 자네들도 몸조심하며 용감히 싸우세, 그래서 나대신 진남포에 꼭 들어가 주세. 이래서 권병주소위는 지루한 병상생활이 시작되었고 전쟁은 한 인간을 반세기이상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았다.

그는 노상 병원침대위에서 고통과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어쩌다가 찾아간 필자에게 정수현동지! 제주에 사는 내전우들은 잘 있겠지, 아～ 그 칠성통과 모슬포 등 가고 싶은 제주땅～ 하고는 한참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후 “해병”하고 경례를 부치고 돌아서는 나를 보며 눈물짓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진 후 몇 달의 시공 속에서 흘러가 버렸다. 그러다 용사는 지난 2월 2일 병상생활 55년 만에 서울 보훈병원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아～ 어찌 슬퍼하지 않으리. 땅도 울고, 하늘도 울 것이다. 용사여! 부디 영면하시고 또다시 환생한다면 제주땅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소서!

정 수 현 (KMC저널 편집위원)

(제주일보 06.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