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윤영하 소령

지난달 30일 오후 영국 런던 외곽 한인들이 많이 몰려사는 위성도시 킹스턴의 라치미어(Latchmere)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공연이 열렸다.

트라팔가르 해전 승전 20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 참가차 영국을 방문한 한국 해군순항훈련함대(사령관 최윤희 준장)가 3년 전 이맘때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윤영하(尹永夏·당시 28세) 소령이 다녔던 학교를 방문해 연 추모공연이었다.

윤 소령의 후배인 해사 60기 사관생도 42명으로 구성된 태권도팀을 비롯해 군악대, 사물놀이팀 등 해군순항훈련함대 합동공연팀 전원이 참석했다. 어린이 관객들과 교사·지역주민·교민 등 100여명을 상대로 펼쳐진 공연은 농악놀이·군악대 연주·사물놀이·성악·의장대 및 태권도 시범 순으로 90분간 진행됐다. 태권도팀과 의장대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연에 관중석에선 ‘멋지다(fantastic)’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357호 정장(艇長)이었던 윤 소령은 연평도 근해를 경계하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함교(조타실 위의 함정지휘소) 위에서 숨졌다.

그는 역시 해군 고속경비정 정장 출신으로 대위로 예편한 뒤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1982년부터 3년간 영국에 체류할 때 라치미어 초등학교를 1년간 다녔다.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하씨는 “같은 반 친구가 생일 잔치에 초대하면 좋아하던 기억이 선하다”고 말했다.


▲ 지난달 30일 순항훈련 중인 해군 사관생도 및 장병들이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고 윤영하 소령의 모교 영국 라츠미어 초등학교를 방문해 군악대 연주·사물놀이·태권도 시범 등 추모공연을펼쳤다. 해군순항훈련함대 사령관 최윤희 준장과 알 자와드 교장이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있다/해군본부 제공

윤 소령은 96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자기 소개 글에서 “처음하는 외국생활이었지만 급우들로부터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를 알게 된 최윤희 순항훈련함대 사령관은 라치미어 학교에 합동공연을 제안했고, 알 자와드(Al Jawad) 교장이 흔쾌히 수락했다.

아버지 윤씨는 “함대 출발 전 영하가 다녔던 학교 이름을 물었는데 이런 뜻 깊은 행사를 하려 했나 보다”며 “영하를 잊지 않는 해군과 행사를 열게 해준 라치미어 학교 관계자 모두 고맙다”고 말했다.

순항훈련함대 공보 참모 최태복 소령은 “라치미어는 윤 소령이 처음 다녔던 학교이고 킹스턴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며 “고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서 넋을 추모하고 한국과 영국의 우정을 도모하기 위해 공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알 자와드 교장은 “20여년 전 우리 학교를 다녔던 어린 학생이 훌륭한 장교가 됐다가 북한과의 교전에서 숨졌고, 그를 기리기 위해 한국 해군이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너무 놀랍고 극적인 이야기”라면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해군은 이날 충남·대전 종이접기협회에서 손으로 종이를 접어 제작한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넬슨 제독과 범선’ 등 2개의 초대형 액자를 기념품으로 전달했다. 알 자와드 교장은 “뜻깊은 공연과 훌륭한 선물에 너무나 감사하다”며 “영원히 윤영하 소령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런던=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