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중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습니다. 시작은 우리하고 일본이 한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어

느샌가 뒷전인 듯 하고 중국과 일본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나라는 웬지 낄 틈도 없어

보입니다. 국력의 차이일까요.


최근 일본에서 중국에서 벌어지는 반일 시위가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가자 안전을 위해 자위대를 파견한

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중국으로서는 아마도 옛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오고 있을 겁니다. 군대

를 파견한다면 아마도 가장 섬뜩할 나라가 중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치욕적인 나날의 연속이던 19세기 후반. 결정타라면 결정타랄 수 있는 것이 바로 청일전

쟁입니다. 서구 열강도 아닌 예전에 천하디 천하다고 여긴 일본에게 대청국이 백기를 들었으니, 어찌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1895년 4월 17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은 열강들의 간섭으로 인해 어느

정도 후퇴하게 되었으나 청국으로써는 이런 치욕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심했을테지요.

무엇보다도 막대한 전쟁배상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으니, 동아시아의 거인 청나라의 운명 또한

풍전등화였습니다.


당시 황제인 광서제는 사사껀껀 방해를 놓는 서태후가 청일전 패전 이후 이화원에서 칩거를 하고 있었

으므로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황제는, 1898년 강유위 등이 설파하는 개혁을 단행하기로 마음먹고 무술

변법을 일으켜 청나라의 국운을 바로 세워보려 했습니다. 하나, 권력을 잃으면 자신도 끝장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늙은 여우 서태후는 조정에서 2품관 이상의 인사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무력도 그녀를 따르는 무리가 쥐고 있었으니 변법파로써는 당시 신식군대를 가진 원세개에게 가

황제의 성은에 보답하라면서 그를 끌어들이려 합니다. 하나, 원세개는 두 세력을 저울질 해보다가 이들

을 버리고 서태후 쪽에 붙으니 100일 정도의 짧은 혁명으로 끝나 변법파는 죽임을 당하거나 해외로 도피

해야 했고, 광서제는 서태후에 의해 궁 안에 유폐되고 시행된 모든 개혁조치는 무로 돌아가니, 서태후가

다시 청의 실권을 잡아 청나라는 이제 그 파국을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의화단입니다.


권법과 봉술을 익히고 주문을 외우면 총포에도 끄떡없다는 의화단의 태동


산동성 지방은 옛부터 방술이 싹튼 땅입니다. 특히 막대한 교세를 자랑하는 백련교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그 백련교의 한 일파가 바로 의화단입니다. 혹시 홍콩 영화 황비홍을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에 나오는 교주가 한 것처럼 주문을 외우고 권법을 익혀서 사람들 앞에서 데몬스트레이션도 해주죠.

이러한 퍼포먼스와 더불어, 당시 서양 세력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의 흐름을 틈타 교회를 약탈, 방화하고

서양 물건들을 때려부수고 외국인을 습격하는 등, 당시 서민층 중국인들의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의화단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농민들 같은 서민층이었습니다.


의화단의 난

1899년 원세개는 산동순무로 취임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의화단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흩어진 의화단은 하

북성으로 유입되면서 세력을 재집결하게 됩니다. 이에 서태후의 측근들인 보수파는 의화단을 이용하여 당

시 조정에서 견제하던 양무파를 견제하는 동시에, 이들을 이용해 외세를 몰아낼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의화

단은 부청멸양, 즉 청나라를 일으키고 양이를 멸한다는 기치를 들고 있었으니 서로의 이익이 맞아 떨어졌다

고 할까요. 결국 의화단은 합법화 되고 청나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당당히 북경에 입성, 순식간에 애국

적인 단체로 변모하게 됩니다. 의화단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한 병부상서 서용의, 호부상서 입산, 이부좌시랑

허경징, 내각학사 연원, 태상시경 원창 5명의 대신은 삭탈관직과 더불어 사형되었고, 대외적으로 외국인들의

신임을 받던 경친왕 대신 배외적 성격이 강한 단군왕이 기용되는 등, 청나라의 흐름은 기묘하게 흐르기 시작

합니다.


북경에 입성한 의화단은 조직적으로 외국 세력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일본 서기관 스기야마가, 그

리고 독일 황제의 대리인인 독일 공사 케틀러가 죽음을 당하는 등, 외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고 청국

은 이에 뒤질세라 관군의 지원까지 덧붙여주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당시 조정의 분위기는 이상해서, 사관 소

영작은 '오랑캐는 옛부터 군신부자의 도가 없었으니 하늘이 의화단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한다." 하였고, 예부상

서 계수는 '오대산의 승 보제는 하늘이 내린 신병 10만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를 불러들여야 한다.'고 했습니

다. 또한 어사 팽술, 그리고 보수파의 영수인 군기대신 강의 등은 이들 의화단의 신통력이 실로 총포도 통하

지 않는다며 기세를 북돋았으며, 양인을 죽이는 자에게는 성인 남자/여자/아이 각각에 은 50냥/40냥/30냥의

현상금을 걸었으니, 청나라의 광기는 가히 눈뜨고 보기 어려운 한 막의 희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질 것이 뻔

한 전쟁을 위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때가 1900년 6월 21일의 일입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본 및 독일을 포함한 8개국 연합군은 일본군을 주축으로 하는 약 4만 5천의 군대를 파견

하게 되는데,이들 군대는 의화단과 수구파를 추종하는 관군 세력을 연달아 격파하면서 1900년 8월, 북경에

입성하게 됩니다. 55일간 농성했던 외국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요. 결국 북경이 연합군의 손에 들

어가기 전 난을 부추긴 서태후는 한족의 노파로 변장하고 북경을 탈출하여 서안으로 도망가니, 북경은 폭도로

변한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침탈당하는 비운을 다시 맛봐야 했습니다. 특히 독일 황제는 군대에 청국을 야만

국으로 취급하라는 칙령까지 내렸고 독일군은 말 그대로 혈안이 되어 살육과 침탈을 합니다. 연합군 병사 가

운데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넘쳤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의화단의 난을 주도한 수구파는 실권하

게 되고, 양무파가 다시 권좌에 올라 의화단에 반대하던 5명의 죽은 대신들이 사면복권되고 의화단의 잔당들

을 처리하게 됩니다.

굴욕의 신축조약

다음 해인 1901년 9월, 북경의정서라 불리는 신축조약이 맺어지게 되는데, 이 조약의 주된 골자를 살펴보면

1. 독일과 일본에 사죄사(謝罪使) 파견
2. 사건 지휘자 처벌
3. 외국인이 살해된 지방에서 과거(科擧)의 정지
4. 관세·염세(鹽稅)를 담보로 총액 4억 5천만 냥 배상
5. 천진 인근 청국군 배치 금지
6. 공사권 (치외법권지역 설치) 및 호위를 위한 자국군대 배치

등 청나라는 의화단이라는 단체 한번 잘못 썼다가 국토는 황폐화되고 막대한 보상금에 더욱 굴욕적인 강화를

맺는 꼴이 됩니다. 특히 4번의 4억 5천만냥은 해마다 고리의 이자가 붙어 약 10억냥에 가까운 금액이 되었으니

청나라는 사실상 이때를 마지막으로 국운이 끝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권법과 봉술을 익히고 주문을 외워 총포를 막는다던 의화단. 그들은 병력이 20만으로 연합군보다 훨씬 수적

우위에 있었으나 체계가 잡히지 않고 실제로 외국의 신무기에 픽픽 쓰러졌습니다. 차라리 청나라의 국운을

위해서 라면 문란해진 내치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을 벌이며 자강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았을까요. 무조건

적인 양인배척으로 인해 외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침략할 빌미를 주었고 그들의 신통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니 백해무익한 존재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의화단의 난이 끝난 후 외교 테이블에 올라가야 했던 청국은 할말이 없었습니다. 청국이 이번 난에 깊숙

히 개입되었다는 것은 각국에 던진 선전포고만 봐도 너무도 명백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결국 각국의 이해 속

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가뜩이나 좁았던 외교 무대에서 청나라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고, 제 목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때 맺은 신축조약은 청의 명줄을 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되

니, 의화단 사건은 현실감각이 결여된 국가 지도자와 지도층을 만날 경우 그 나라와 국민이 겪게 되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는 희극이었습니다. 싼 맛에 혹 떼러갔다가 돌팔이 만나 혹 하

나 더 붙인 청나라 조정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