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의 정치조직


여기서 잠깐 오스만투르크의 권력 조직을 살펴보면 우선 모든 권력은 술탄에게 집중된 전제군주제입니다. 술탄도

종교적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만, 그 종교적 의무라는 것도 잘 살펴보면 술탄의 권력을 심각할 정도

로 위협하는 것도 아니며, 제약을 많이 가하지도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셀림 1세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은 종

교 최고지도자인 '칼리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칼리프가 가진 신성의 권위, 그리고 술탄이

가진 세속적 권력은 술탄의 지위를 강화시켜주는 발판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술탄에게 충성을 맹세한 예니체리 군

단의 지원을 받는다면 술탄의 권력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요. 이슬람 법학자인 울레마들은 세속법률

의 권리를 술탄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술탄의 상징인 투그라가 찍힌 칙령 '피르만'은 이슬람 율법을 제외한 모든 것

을 능가하는 권위를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영은 술탄이 권력의 대부분을 일임한 재상과 그 및의 상급 고위 관료들이 모인 디반이라는 각료

회의에서 결정이 나는 구조입니다. 디반(Divan)은 재상을 중심으로, 각각 유럽 지역(루멜리아)과 아나톨리아 지역

을 관장하는 두 명의 재무대신-데프테르다르-과 사법과 종교를 담당하는 군사법관-카디아스케르- 두 명이 있습니

다. 이들은 각각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사실상 제국의 통치를 담당하는 것은 재상이지만, 재상의 정책은

재무대신의 인가가 있어야 필요한 예산을 타낼 수 있었으며, 또한 소비된 예산에 대한 결산보고 또한 해야 했습니

다. 또한 이슬람 학자인 울레마들의 고위직은 술탄의 임명을 받는 자리로 재상은 이를 제어할 권한이 없습니다.

울레마들의 의견은 정교일치체제를 지향하는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투르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재상 또한 이들을 쉽게 볼 순 없었습니다. 따라서 재상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었으나, 핵심적인 것에서는 여전

히 술탄의 권위 하에 제국의 경영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술레이만의 오른팔, 이브라힘 파샤의 등장


정조대왕에게는 즉위초 큰 힘이 되어준 홍국영이란 사내가 있었습니다. 똑똑한 군주들이 자신의 심복을 키우면서

그 반대 세력도 기르는 까닭은 군주 혼자만으로는 국가경영을 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적을 무찌르는

칼이 되기도 하고, 위험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방패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한 두명, 또는 한 세력 정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다스리는 것이 대제국인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광대한 몽고제국을 세운 칭기스칸에

게도 야율초재라는 명신이 재상을 맡아 몽고제국의 기틀을 마련해준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대제

국을 다스리는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에게도 이같은 측근지신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술레이만은 자신의 주변에서

재상감을 찾던 중, 1523년 자신의 시종출신인 이브라힘을 자신의 오른팔로 삼아 제국의 재상으로 삼습니다.


이브라힘 파샤는 술레이만의 시동출신으로, 두뇌가 명석하고 풍채가 좋은 호남형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술레이

만의 총애를 받은 이브라힘 파샤는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즉시 디반의 수장, 즉 오스만투르크의 재상이 됩니다. 여

기에 술레이만은 1524년, 술탄의 여동생 하디스를 이브라힘의 아내로 맞게 해주어 술탄과 재상간의 확고한 사이를

재확인시켜줍니다. 물론 이런 고속승진의 당사자는 질투하게 되는 세력이 생기기 마련이며 이를 누르기 위해서는

실력을 보여주는 길이 제일 빠르다는 사실을 이브라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실력까지 보여주면 군소리는

사라지는 대신 더 큰 원한과 시기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재상이 된 후 바로 공을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아흐메드 파샤의 봉기입니다.

조기에 진압하고 어수선한 이집트의 행정조직을 개선시켜 1년 만에 정리해버린 이브라힘의 군사, 행정 능력은 술탄

의 총애에 대해 수근거렸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해버렸지요. 이집트를 점령함으로서 전통적으로 많은 투사를 길

러낸 이집트 지역에서 안정적인 군인의 수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훗날 술레이만의 정복전쟁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모하치로....


술탄 술레이만에게 헝가리왕국을 적으로서 멸망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속국을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베오그라드 공략의 빌미가 되었던 외교사절이 가지고 간 외교 문서입니다. 술탄은 헝가리의 보전

을 언급하면서, 1515년 빈 협약에 따라 헝가리-보헤미아 왕국을 다스리는 야기엘론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간의

결혼을 통해 이들 두 세력이 하나로 합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었지요. 헝가리를 속국으로 함으로서 신성로마제

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헝가리의 핵심요지인 베오그라드와 동지중해의 방해자

로도스기사단을 제거한 뒤에도 헝가리로 진군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할 때 술레이만의 목적은 헝가리의 점령이 아

닌 신성로마제국의 압박수단으로의 헝가리를 원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헝가리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모두

꽉 막힌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카를 5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

고, '마지막 남은 십자군 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적이었습니다. 즉 말로는 대화가 안되는 존재란

것이죠. 그리고 헝가리도 베오그라드의 침공을 통한 술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522년 빈 협약을 이행하여 야기

엘론-합스부르크의 왕가의 결연을 공식화하였고, 1524년 재차 보낸 술레이만의 제안을 거부함으로서 대화할 여지

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술탄에게 남겨진 수단은 헝가리가 과거의 힘을 회복하기 전에 치는 것이었습니다.


1526년 8월 29일, 헝가리의 모하치 평원에서 만난 두 세력의 전투에서 술레이만의 군대는 6만, 이를 방어하는 루

트비히 2세의 군대는 2만 6천명으로 술레이만의 병력쪽이 압도적이었지만, 루트비히 2세는 지리적 잇점으로 승리

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스만군의 선봉대가 모하치에 도착했을때 헝가리군은 기세를 올리며 전투를

시작했으며 사기가 충천했으나, 술레이만의 본대가 도착하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강력한 화포와 머스킷으로

무장한 오스만투르크군의 공세에 걸려든 헝가리군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고, 일부는 늪지에 빠져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익사해서 죽어버리게 됩니다. 비록 헝가리군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16000에 달하는 오스만투르크군

을 죽였으나, 오스만투르크 또한 비슷한 수의 헝가리군을 죽였으며 대부분을 포로로 삼는 등, 헝가리군은 궤멸적

인 타격을 입고 항복하게 됩니다. 루트비히 2세는 전투 중 말에서 내동댕이 쳐져 강으로 내던져졌고, 갑옷의 무게

를 이기지 못해 익사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두 시간만에 끝난 이 전투로 헝가리의 수도 부다까지는 별다른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수도 부다를 점령한 술레이만이었지만 아직 헝가리를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로 병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술레이만

은 헝가리를 속국으로 삼긴했으나 영토를 병합하진 않는 대신 자신의 뜻에 따라줄 친 오스만정권을 세우는게 이득

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는 점령지 부다에서 영국의 군주 메리 여왕에게 보낸 서신에서 "헝가리 왕 루트비히 2세

의 죽음에 유감을 표하오. 헝가리에 온 것은 루트비히 2세에게 왕위를 가져가기 위함이 아니라 이전에 당한 고통

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소. 모하치 전투에서 루트비히 2세가 살았다면 짐은 일정의 조공을 받는 대신 그의

왕위와 영토를 지켜주었을 것이오"고 라고 했으며, 훗날의 행적을 보더라도 술탄에게 헝가리는 병합보다는 속국

화하는 것을 더 원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겨울을 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

한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술레이만은 오스만투르크의 뜻을 온 유럽에 전한 것에 만족하고 수도 이스탄불로 환궁

합니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유럽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 오스만투르크 군은 강하다.

2. 이제 유럽의 세력 판도에 오스만투르크의 영향력이 강하게 전해질 것이라는 것을.


이제 남은 경쟁자는 유럽의 절대적 세력으로 부상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5세였습니다. 그와의 파워게임, 그리

고 십자군 전쟁당시에는 꿈도 꾸기 힘든 유럽의 군주와 이슬람의 군주가 한편이 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보게 됩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