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과 열정으로 뭉친 자, 오스만투르크 권력의 정점에 오르다


1511년과 1512년 두 차례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셀림은 처음 반란에는 바예지드 2세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어 크리미

아로 도망치는 참담한 실패를 겪으나, 아버지 바예지드 2세가 이스탄불로의 입성을 원하는 아흐메드의 청을 거절하

면서 또 다시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결국 재차 일으킨 반란에서는 아흐메드의 군대를 격파, 제국이 더

이상의 혼란으로 점철되지 않기를 바란 바예지드 2세는 결국 1512년 4월 25일 술탄의 자리를 셀림에게 물려주게 됩

니다. 31년간 계속된 바예지드 2세의 치세는 비록 정복자 메메드 2세의 위업을 지켜내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창업

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도 있듯 팽창된 제국을 그는 훌륭하게 지켜냈으며, 메메드 2세와 셀림-술레이만 시대를 잇

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낸 근면한 군주였습니다. 술탄의 자리에 물러난지 한달 뒤, 은거지로 택한 데모티카로 가

던 길에 영면하게 됩니다.


오스만투르크 궁정에서 벌어지는 피의 살육. 권력의 정점인 술탄이 즉위하게 되면 이를 놓고 형제끼리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아예 처음부터 그 싹을 자른다는 취지에서 벌어지던 반인륜적 형태의 범죄입니다. 하나

국가가 내전상태로 빠져들게 되면 국력은 안으로 갈무리되지 못하고 구멍빠진 독처럼 새기 마련입니다. 바예지드 2

세의 경우에도 동생 젬이 일으킨 내전, 그리고 그 동생이 로마 교황의 포로가 되어 협박도구로 쓰였던 일을 기억해

본다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형태의 살육은 반인륜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인만큼 이것이 이슬람 제국만의 특징이라고 콕 찝어말할 순 없습니다. 따라서 셀림

1세가 자신의 형제들은 물론 그 자녀까지 모조리 죽여버린 것은 내전으로 인한 혼란의 수습과, 술탄의 권력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다지기 위한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쪽의 사파비 왕조는 제국 동부를 위협하는 심각

한 위협입니다. 새롭게 술탄의 자리에 오른 셀림으로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던 것입니다.


챨디란 전투


오스만투르크 제국 안의 반란을 지원하는 세력이라면 단연 사파비 왕조의 샤 이스마일 1세입니다. 열렬한 시아파의

추종자인 이스마일 1세는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삼으면서 순니파 이슬람에 대한 탄압을 가했기 때문에 순니파를

믿는 오스만투르크로써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셀림 1세는 열렬한 순니파 무슬림으로서, 그리고 오스

만투르크의 지배자로서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서구의 열강들과 사파비 왕조가 밀약을 맺고 제국 동서로

침공해온다면 오스만투르크로서는 미증유의 재앙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정을 수습한 셀

림 1세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게 되는데, 알라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1514년 샤 이스마일 1세는 중앙 아시아 원정

을 떠나게 되어 수도 타브리즈를 비우게 됩니다. 셀림 1세는 전군에 동원령을 내려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현재 이

란 북서부로 침공해 들어갑니다.


대군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한 이스마일 1세는 원정군의 발길을 돌려 급히 타브리즈로 귀환합니다. 하지만 그

의 휘하에는 7만병력. 숫적으로도 열세인데다 하물며 오스만투르크군은 철저히 훈련된 최정예군으로 질적인 면에

서도 결코 우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현재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챨디란에서 조우한 양군은 격돌, 셀림 1세가 이끄

는 오스만투르크는 사파비 왕조의 군대를 무찔러버리고 그대로 수도 타브리즈를 점령함으로서 그동안의 수모를 톡

톡히 갚아줍니다. 하지만 사파비 왕조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오스만투르크군 내부에 폭동이 일어남으로서 오스만투르

크군은 물러갔고, 이스마일 1세는 가까스로 국력을 다시 회복하여 오스만투르크 군의 침략을 막아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전투로 인해 제국 동부를 위협하던 사파비 왕조의 기세를 꺾어버림으로서 제국 동부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투르크는 서로 물고 물리는 라이벌 관계를 지속하게

됩니다.


노예의 나라, 맘루크조의 멸망


몽고제국의 침략을 막아낸 술탄 바이바르스 1세라는 영걸을 탄생시킨 맘루크조는 시대가 흐르면서 쇠약한 국가로

변모해가고 있었습니다. 맘루크간의 갈등으로 인해 힘이 한곳으로 모이질 않았고, 무엇보다도 흑사병같은 질병으

로 인한 인구의 감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역이 쇠퇴함으로서 국고에 모이는 돈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사실입니

다. 맘루크조의 주된 수입원은 이집트 수에즈를 통과하는 인도를 오가는 상선으로부터 거둬들이는 통과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톨로뮤 디아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발견했으며,

1497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수에즈를 통과하는 배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입

니다. 따라서 맘루크 조의 국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군대에 줄 월급도 마련하기 빠듯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맘루크의 술탄 알 굴리는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을 지켜보면서 머지않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군대가 자신들을 향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파비왕조의 패배를 본 그는 양국간의 평화를 다지는 조약을 맺자면서

사신을 파견했으나 셀림 1세는 이를 거절하고 1516년 시리아로 진격합니다. 같은 해 8월 24일, 알레포 북부에서

조우한 양군은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맘루크군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던 맘루크 기병이 격파당하

고 술탄 알 굴리마저 전사하는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맘루크의 새로운 지도자로 뽑힌 투만베이는 젊고 잘 생긴 술탄이었다고 합니다. 외모만큼 능력도 있는 인물로, 그

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더 저항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으며, 제국을 존속시킬 수 있다면 셀

림 1세의 신하가 되는 일도 감수할 작정이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군대를 소실했고, 새로운 군대를 징집하고 기

존 병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은 이미 남아있질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었습니다. 이미 껍질만 남은 맘루크 왕조. 하지만 젊은 맘루크들은 투만베이에게 오스만투르크군과의 마지막 일전

을 벌일 것을 요구했으며, 이들의 요구를 들은 술탄은 최후까지 저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이런 술탄과

젊은 맘루크들과는 달리 맘루크 군의 핵심인 고참병들은 적절한 보상이 있기 전에는 싸우지 않는다는 뜻을 밝힘으

로서 술탄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시리아로 진격해오는 10만의 오스만투르크군과 맞서기 위해 군대를 수습해 이끌고 나간 투만베이는 대규모 전투를

피하고 사막 지역에서 오스만투르크군을 이리저리 유인하면서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카이로 인근에서 붙은

양군은 결사적으로 싸웠습니다. 투만베이의 용감무쌍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오스만투르크에게 돌아갔으며,

투만베이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포로신세가 되었으며 카이로는 함락됩니다. 이때가 1517년 1월 22일, 투만베이가

술탄의 자리에 오른지 3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석달 뒤인 1517년 4월 14일, 맘루크조의 마지막 술탄

투만베이는 카이로시 주웨일라 문 밖에서 교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셀림 1세는 1514년 사파비 왕조를 꺾

었고, 1516년에는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지역을 병합 흡수하였으며, 1517년에는 맘루크조를 쓰러트리고 나

머지 영토를 흡수함으로서 3년이 채 못되는 사이에 영토를 두 배 이상 늘려놓게 됩니다.


한 손에는 정치, 다른 한 손에는 종교를


셀림 1세의 정복전쟁은 조부인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략과 비교했을때 결코 적다고 할수 없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슬람 교도에게 가장 신성한 세 곳의 성지 - 메카, 메디나, 그리고 예루살렘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이슬람의 수호자를 칭하는 오스만투르크의 정통성을 덧붙여주게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술탄이 칼리프

의 지위를 겸하는 술탄-칼리프 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세속적 권력의 상징인 술탄에게 종교적 권위마저 붙여주었

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초기 이슬람 시대,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 뒤를 잇는 네 명의 정통 칼리프 시대의 경우, 종교적 권위 뿐만 아니라

세속적 권력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정교일치의 권력자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칼리프의 세속적 권위는 사

라지고 그 권력은 술탄에게 모였습니다. 국가에 의해 다른 칼리프가 옹립되면서 칼리프의 권위는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이며, 그나마 명맥을 이어오던 칼리프 제도마저도 1258년 훌레구가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칼리프를 시해함으로

서 치명타를 맞습니다. 맘루크 조의 바이바르스 1세에 의해 카이로에서 다시 칼리프 제도가 부활하나 맘루크 술탄

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신도들의 왕자'이자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라는 칼리프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로마를 다스린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자리처럼 말이지

요.


셀림은 압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 알 무타와킬 3세로부터 칼리프의 자리를 받음으로서, 그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의 술탄이자 칼리프를 동시에 칭하게 됩니다. 칼리프의 권위를 야금야금먹은 세속권력이 결국 종교적 권위마저 흡수

하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술탄의 자리에 오른지 이제 5년 밖에 흐르지 않았으나, 이제 셀림 1세는 명실상부한 오

스만투르크의 주인이자, 세 개의 성도를 수호하는 이슬람의 방패, 그리고 신도들의 왕인 칼리프가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47세, 이제 셀림은 그의 마지막 치세 3년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