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의 죽음, 그리고......


1481년 5월 3일,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가 술탄의 위에 오른지 30년만에 급서하게 됩니다. 19살의 새파란

나이로 무라드 2세의 제국을 물려받은 술탄은 그의 치세 2년만에 기독교도들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의 병합을 시작으

로 발칸 반도, 흑해 연안, 아나톨리아 지방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오스만투르크는

침묵해야 했고, 그의 정복욕에 몸을 떨던 서구제국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해야한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십자가를 앞에 세우고 다시 한번 위대한 기독교도들의 도시를 부흥시킬 수 있을 것이란 달콤

한 꿈마저 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두 가지 요소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오스만투르크

자체이며, 다른 하나는 유럽의 당시 정황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메메드 2세의 뒤를 이은 바예지드 2세는 비록 아버지만큼 패권적인 위업을 이루진 못했으나, 아버지가 남긴

제국을 방어하는데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술탄으로 국가의 내정을 다시고 안팎의 위협을 제

거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30년에 가까운 메메드 2세의 치세 덕에 어느정도 정복지에 대한 흡수병합도 되어있으

므로 제국의 급격한 해체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새로운 술탄에겐 플러스 요소가 되었습니다. 비록 동생

젬의 반란, 그리고 아나톨리아 지방의 시아파 교도인 키질 바쉬들의 반란과 뒤에서 배후조종한 페르시아 사파비 왕

조 세력 등 여러가지 위협과 맞서야 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 등 서구 제국들과의 싸움에서 영토 일부를 상실하는

결과가 있었으나, 바예지드 2세는 수세에 몰리면서도 제국을 방어하는데 성공합니다. 수십년간의 정복전쟁에서 다

져진 오스만투르크의 군대는 정예군으로써 여전히 강력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지요.


두 번째는 유럽 자체였습니다. 십자군의 기치를 들었던 약 3세기전의 일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하나

님의 성지를 지키겠다며 유럽의 군주들이 군대를 이끌고 머나먼 예루살렘까지 오는 일이나, 사자심왕 리처드와

살라딘의 무용담같은 일은 과거의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세속권이 교황권을 누르기 시작한 지금, 군주들은

더욱 많은 군사/경제 요충지를 확보하고 자국의 이익을 증대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약간의 틈만 보여준다

면 즉각 그 틈새로 파고드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중대한 전력이 되는 군사를 차출하여 이

교도와의 전쟁에 투입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군주는 없었습니다. 하물며 욱일승천의 기세를 자랑하는 오스만투르크

군을 상대로 전쟁에 나섰다간 그 전비를 부담하는 일도 서구의 군주들에게는 큰 짐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왕 샤를 8세는 나폴리의 왕에 등극했다가 교황의 요청

에 호응한 이탈리아 각국과 스페인, 신성로마제국의 동맹에 포르노보 전투에서 패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프랑

스로 도망가는 등, 1494년에서부터 1559년까지 벌어진 이탈리아 전쟁에 유럽 강국들이 밥그릇을 놓고 자신들끼리

혈전을 벌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협조만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협약을 맺고, 적

에 대항하려는 움직임마저 있었습니다. 밀라노, 페라라 등 이탈리아 국가들은 점점 팽창하는 베네치아/프랑스의 세

력을 막기 위해 오스만투르크에 연금을 제공하는 등, 유럽은 이미 종교보다는 세속적 이익을 더 우선시 하게 된 겁

니다. 1516년 셀림 1세에 의해 맘루크령 알레포가 함락되고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에 대한 원조를 헨리 8세에 요청했

을때 헨리 8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서로를 파멸시키려는 음모와 생각만이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지배되고 있는 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전면전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콘스탄티노플의 위기에도 눈을 돌렸던, 오랫동안 굳어진 서유럽 군주들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적, 페르시아의 사파비


위대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죽은 후, 이슬람 세력은 네 명의 정통 칼리프 시대를 거치게 됩니다.

마지막 정통 칼리프인 알리의 사후 이슬람은 믿음의 차이로 인해 두 개의 종파로 쪼개지는데, 하나는 무슬림의 대

다수를 이루는 순니파 이슬람, 그리고 순니파 이슬람에 저항하는 시아파 이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슬람의 역사

에 대해선 나중에 외전으로 다루겠습니다만, 순니파 이슬람과 시아파 이슬람은 기독교의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신

교의 차이점 만큼이나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종교로, 오스만투르크와 맘루크 왕조가 순니파를 대표하는 이

슬람 국가라면 페르시아 일대를 호령하는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사파비 왕조의 이스마일 1세는 1501년 현재 아제르바이잔 남부의 도시 타브리즈를 수도로 삼고, '샤'의 칭호를 취

하며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12이맘 시아파를 국교로 삼았으며, 그에 따라 믿음을 달리하는 순니파 무슬림에 대한

탄압을 개시합니다. 이와 동시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아파 계통의 부족이자 아나톨리아

지방에 기거하는 키질 바쉬 족을 지원하여 순니파의 힘을 약화시키고 아나톨리아 지방에 시아파 계의 믿음을 심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런 사파비 왕조의 행위에 격분했으며, 사파비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오스만투르크와 사파비 왕조는 지속적으로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행위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어쨌든 샤 이스마일

1세가 지원한 키질 바쉬족의 반란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 오스만투르크는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게 됩니다.


또 다시 제위 분쟁의 소용돌이에..


술탄 바예지드 2세는 근면한 군주로 비록 아버지가 이룩한 영토의 확장같은 큰 위업을 이루진 못했으나, 주어진 땅

을 방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제위 계승입

니다.


제위에 오른지 이제 30년에 다가가는 그는 이제 아버지 메메드 2세보다도 오래 산, 60줄에 들어선 노인이었기 때문

입니다. 당시 평균 수명으로 비춰봤을 때 60세 이상은 장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때 셀림이 제국의 무대

전면으로 나서게 됩니다. 물론 훗날 그에 붙은 냉혹한 자라는 별명에서 볼 수 있듯,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술탄의

위를 두고 형제끼리 피를 흘리는 참혹한 전쟁에 빠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