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교회의 수호자(?) 메메드 2세


이슬람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알라흐 아크발(알라는 위대하시다)하며 폭탄들고 이스라엘이나 미국 건물에 자살 폭

탄 공격하는 것을 상상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만든 아랍의 이미지는 서구 사가들이 적은 무슬림

들의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질 않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하긴 합니다만... 미국인이든, 무슬림이든, 대부분은 선

량한 사람들입니다. 그걸 잊어선 안되겠지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메드 2세의 발등에 새로운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비록 유서깊은 도시이긴 하나 비

잔틴 제국은 잦은 외침을 당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메메드 2세 본인의 공격을 포함해), 도시가 쇠락하면

서 도시 미관 또한 많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라틴 제국시대 당한 약탈의 흔적을 전혀 지우질 못했죠. 화려

했던 비잔틴 제국의 수도는 규모면에선 엄청났지만 질적인 면에선 굉장히 모자란 도시였습니다. 이것을 오스만투르

크를 상징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할 의무, 그리고 메메드 2세 본인의 강렬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메메드 2세는 자신의 새로운 도시, 이스탄불을 이슬람만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슬람은 옛

부터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푸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물론 세금을 더 내야 하지만) 국제도시를 꿈꾸는 메메드

2세는 이슬람 군주로서는 다소 파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몇몇 행동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동방정교회의 보호

였지요.


앞서도 설명해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콘스탄티노플 방어전에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동서교회의 통합을 통해 교황 및

가톨릭을 믿는 서구 군주들의 도움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정통 동방정교회로써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믿음에 대한 배반행위'지요. 그래서 동서교회의 통합을 동방정교회 인사들은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믿음에 대한 자유만 보장된다면 술탄의 통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들도 많이 했으니까요. 물론 다가오는 술탄의 군

대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원군을 이끌지도 모를 동서교회의 통합을 원하긴 했지만, 그도 사실상 무산되었습니다. 메

메드 2세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에겐 주민의 다수를 이루는 그리스인들을 끌어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동방정교회

의 보호를 통해, 술탄은 동방정교회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도리어 그 믿음을 보호해준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동시에

로마 교황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행위도 근절시킬 요량이기도 하지요. 어차피 올 사람도 없었지만.


동서교회 통합으로 잠시 무너진 동방정교회를 복원하려면 당시 공석이었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민중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때 술탄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동서교회 통합 반대를 이끌어 온 게오르기

오스 스콜라리오스입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수도원에 칩거하던 그는 투르크 군인에 의해 노예로 팔렸는데, 그

가 노예로 팔렸다는 소리를 들은 메메드 2세는 사자를 보내 그를 궁정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콘스탄티노

플 총대주교의 자리를 맡아줄 것을 청합니다. 게오르기오스는 이를 수락, 술탄 치하에서 처음 총대주교직을 맡는 인

물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후 몇 개월 뒤, 게오르기오스는 술탄 메메드 2세로 부터 총대주교의 임명장과 제의 등을 받고

겐다니오스 2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이는 메메드 2세에게도 상당히 의미있는 것인데, 총대주교의

임명은 비잔틴 제국 황제의 역할이었으므로, 기독교도 황제가 아닌 술탄이 동방정교회 - 이제 그리스 정교회라고 불

러야 할-의 수장을 임명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이 동방정교회의 보호자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당시 사람들은 목격하고 있었지요.


물론 또 다른 동방정교회 국가인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지만 오스만투르크가 러시아를 치기엔 너무 멀었고, 반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죠.


어쨌든 술탄은 일종의 종교자치구라고 할 수 있는 밀렛을 만들었고 그 관리자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된 겐다니

오스 2세가 앉은 셈입니다. 술탄에게 충성하는 한 그리스인들이 가진 종교적 권리는 술탄에 의해 보장받았고, 그

들의 종교활동 또한 보장받았습니다. 또 기독교도들은 무슬림에게 연관된 사건이나 형사사건이 아닌 이상 그리스인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지요.


물론 술탄이라고 완전한 자유를 주진 않았습니다. 복장에서도 기독교인임을 상징하는 옷을 입어야 했고 무기도 휴

대할 수 없었으며, 사내아이들을 데려가 예니체리로 바꾸는 행위자체는 변하질 않았습니다만 이 정도의 제약은 큰

것이라고 할 수 없지요. 항복한 도시도 아니고 무력으로 점령한 도시의 거주민들에게는 과분할 만큼 후대를 한 셈

입니다.


메메드 2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겐다니오스 2세는 자주 만나 종교는 물론 정치나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메메드 2세는 학식이 풍부한 이 학자를 좋아했고, 그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다시 취임하기를 권할만큼 높이 평가했습니다. 겐다니오스 2세는 술탄에게 기독교의 교리

를 설명하는 글을 주었고, 이 글은 투르크어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술탄은 이교도의 군주입니다. 그는 필요했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고, 그 덕에 제국의 안정

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뒤를 이은 상당수의 이슬람 군주들은 메메드 2세의 이런 정책을 중단

하거나 약화시켰지만, 종교의 가치와 경제적, 정치적 안정이란 가치에 같은 값을 매기고 이를 수행한 메메드 2세의

생각은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대제국의 건설을 꿈꿔온 술탄 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스모폴리탄의 도시, 이스탄불


최근 우리나라가 시끄러웠던 이유 중 하나가 수도 이전 문제였습니다. 수도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국가의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 경제적이라던가, 문화적 요소도

함께 어울리는 것이지요.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가치를 알고 있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안정된 수도

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유랑민처럼 텐트치고 다니면서 살기엔 이제 오스만투르크의 위세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국에 어울리는 도시는 오직 하나,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이제 이스탄불로 개명된 도시는 을씨년스러웠습니다. 함락 이후 행해진 약탈도 약탈이지만, 외침과 경제적 쇠퇴기

를 맞은 콘스탄티노플은 허름하기 그지 없었으니까요. 메메드 2세는 이를 무척이나 싫어했으며, 제국의 수도로써

이스탄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우선 이스탄불로 오는 투르크인들에게 많은 경제적 원조를 해줍니다. 집이나 상점

을 지을 때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죠. 물론 투르크 인들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에 남은 다른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원조를 받으며 새로운 술탄의 주민이 되도록 했습니다. 메메드 2세의 이런 정책은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오스만투르크 전 영토에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스탄불은 서서히 옛 콘스탄티노플의 영광에 버금가는

시대를 맞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각종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각지에서 모여든 석공이나 목수 등의 장인들이 이스탄불

에 모였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이스탄불을 떠났던 상인들도 다시 돌아와서 시장도 활기에 넘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인들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인들도 술탄의 도시로 들어왔고, 전통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유태인들도 이

스탄불로 들어와 상업 주도권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이스탄불은 이슬람의 지배로 들어온지 1세기도 지나지 않아

인구 50만의 대도시로 성장합니다.



다시 정복자가 되어....


1453-1461년간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지방의 기반을 다진 메메드 2세는 전쟁을 계속 합니다. 1462년, 술탄 메메

드 2세는 레스보스 섬에 침공, 니콜로 가틸루시오가 어느정도 버티나 결국 술탄의 군대에 무너지게 됩니다. 제노

바 영토인 레스보스 섬의 침공은 이제 오스만투르크가 동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과 겨루겠

다는 것을 선전포고한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1470년에는 또 다른 해상국가인 베네치아의 해군기지인 네그로폰투스에 쳐들어가 점령합니다. 새로운 수도인 이스

탄불 코 앞에 대규모 해군기지가, 그것도 기독교도의 해군기지가 있다고 한다면 불안할 테니까요. 1470년부터 1480

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오스만투르크와 베네치아 공화국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베네

치아는 또 하나의 원군을 발견했는데, 전회에 등장했던 우준 하산이었습니다.


1467년 카라 코윤루 족의 자한 샤를 패배시키고 처형한 뒤 우준 하산은 1469년 아제르바이잔을 노리고 쳐들어온 티

무르의 지배자 아부 사이드 마저 격파함으로서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동쪽의 실력자를 베네치아 공

화국이 놔둘리 만무했습니다. 이들은 동맹을 맺고 공통의 적인 오스만투르크를 손봐줄 계획을 세웁니다. 메메드 2

세는 이걸 놔둘 인물이 아니었지요. 1473년 8월 11일. 페르시아 지방으로 원정을 떠난 오스만투르크군은 바쉬켄트

전투에서 우준 하산이 이끄는 아크 코윤루 군과 조우,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동서 협공 계

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됩니다.


1475년 흑해 북쪽에 자리잡은 제노바의 항구도시 카파가 점령되면서, 제노바 공화국의 흑해 통상 무역은 종언을 고

하게 됩니다. 이로써 오스만투르크는 흑해지역을 평정하게 되었으며, 베네치아와 더불어 동방무역을 담당했던 제노

바는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게 됩니다.


1479년, 발칸지역의 마지막 보루였던 알바니아가 완전히 굴복하면서 오스만투르크는 발칸과 아나톨리아, 바다로는

에게해와 흑해를 다스리는 대제국이 됨으로써, 선친 무라드 2세의 업적을 지키기도 힘들거라도 오판받았던 메메드

2세는, 영토를 확장하고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력을 뿌리내리면서 장기간 영속할 수 있는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습니

다.


위대한 정복자의 최후


발칸과 아나톨리아를 평정한 메메드 2세는 이제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1451년 술탄의 지위에 오른지

이제 29년에 들어선 그는 제국의 지배자로 동분서주하면서 영토를 넓히고, 이스탄불의 건설에 박차를 가해 제국

수도로써의 위용과 기능을 갖추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도들에 대한 관용정책과는

별도로 무슬림으로서의 의무도 게을리 하지 않아 많은 모스크를 건설하였습니다. 제국 통치를 위해 세속 법전

인 카눈나메를 편찬하여 제국을 하나로 묶는 법적 제도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치세 마지막

은 여전히 정복자의 그것이었습니다.


1480년 10만의 대군을 동원해 성 요한 기사단이 머물던 로도스 섬을 공략했으나, 그의 친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군들의 전술이 서로 엇갈렸고 여기에 역병마저 투르크군을 덮치면서 3개월간의 공방전은 로도스 섬에 틀어박

힌 성 요한 기사단의 항전이 거둔 승리로 끝마쳐졌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술탄은 남 이탈리아의 오틀란토 지방

을 공략했고, 겁에 질린 교황 식스투스 4세는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메메드 2세의 죽음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481년 5월 3일,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원정을 떠난 메메

드 2세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습니다. 통풍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독살되었다는 설

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메메드 2세의 사망으로 인해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공포에 떨던 서구 지역은 기독교도의

적이 죽었다 하여 축제를 벌일 정도로, 메메드 2세는 서구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급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건재했습니다. 메메드 2세의 아들인 바예지드의 시대

에 내전을 겪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셀림 1세와 오스만투르크의 전성기를 이끄는 술레이만 대제의 시대

의 황금기를 맞습니다. 바로 메메드 2세가 닦아놓은 제국의 기반이 튼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메메드 2세에 대해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루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