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 그리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반 2세가 십자군의 파병을 호소했을 때 이슬람은 이미 사분오열하고 있던

오합지졸의 무리였습니다. 십자군 보다는 동료 이슬람 군주가 자신의 땅을 빼앗을까 전전긍긍해야 했으며, 단합

된 힘은 커녕 도리어 적과 손을 잡고 같은 이슬람을 적대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위대한 아타베그 장기, 그의

아들 누르 알 딘, 아이유브 왕조의 창시자 살라딘, 맘루크의 술탄 바이바르스가 없었다면 십자군 운동은 더 길어

졌을 수도 있었겠지요.


1099년 예루살렘의 함락이 이슬람권에 충격을 주었다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어차

피 망할 나라였으므로 그간 견딘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사실상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에 대해서 서

구의 군주들은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부 식자층은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새기며 비운의 비잔틴 제국에

대한 애도를 표시했습니다만. 서유럽 내부의 상황은 각 국가의 군주들이 핏줄 선 눈으로 상대방을 염탐하기에 정

신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즉 제 코가 석자인 셈이죠. 영국과 프랑스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벌어진 100년 전쟁

의 피해를 복구해야 했으므로 여유가 없었고, 서유럽의 종교 지도자인 로마 교황은 이미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아무리 십자군을 통한 성전을 부르짖어도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

세는 말이 좋아 황제였을 뿐으로 실권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은 없었던 군주였구요. 즉, 유럽세계를 하나로 이끌 구

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이 이뤄졌습니다. 유럽은 각자의 손익 계산을 위해 망해가는

제국은 기꺼이 버렸습니다. 버려진 제국의 술픈 운명이었지요.



자, 그럼 메메드 2세는 왜 콘스탄티노플을 원했을까요. 이미 오스만투르크는 옛 수도인 부르사가 있으며, 화려하진

않으나 술탄의 궁정이 있던 아드리아노플이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지 않고 콘스

탄티노플이란 도시를 원했을까요.


첫째는 콘스탄티노플이란 도시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지중해를 다스렸던 위대한 로마제국의 수도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실상 서유럽의 로마에서

동유럽의 콘스탄티노플로 제국의 중심을 옮겨버림으로서 옛 수도 로마보다 콘스탄티누스의 새로운 도시가 로마의

중핵이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유일한 로마제국의 계승자가 있는 황제의 도시인 만큼 콘스탄티노

플의 가치는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충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의 도시로 동서교회분리

이후 동방정교회의 지도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머무는 곳이기도 하니 종교적 가치도 컸습니다.


둘째는 지리적 가치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시아가 아닌 유럽의 도시이며, 비록

몰락했지만 콘스탄티노플은 동지중해 무역의 중심도시중 하나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한면이 육지이며 나머지 2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도시라는 점을 잊어선 안되겠지요.


하지만 가장 큰 콘스탄티노플의 보물은, 로마제국의 계승자가 유럽인이 아닌 종교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21세의

젊은이에게 옛 로마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함으로써 카이사

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로마 황제의 후계자가 된 것입니다. 결국 메메드 2세는 '로마황제'

로써 사라진 콘스탄티노플과 옛 로마영토의 회복과 재건이 사명이 된 셈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21세의 젊은 술탄, 메메드 2세의 치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메메드 2세가 오

스만투르크의 기본을 잡아줌으로써 장기간 영속하게 되는 오스만투르크의 기틀을 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