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황초령

노출된 연대의 측방이 걱정스러워진 리첸버그 대령은 병력을 도로가 협소하고 적이 매복할 가능성이 높은 황초령으로 진출시키기 전에 북서쪽의 미확인 지대에 대한 수색정찰을 실시하기로 마음먹고는 40km 에 이르는 위험스러운 수색정찰 임무에 참가할 지원자를 모집하라고 지시했다.
7연대 1대대 중화기중대 랄프 뵐크 일병: ":연대장이 지원자를 모집했을 때 약200명이 손을 들었습니다.지원동기는 적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거나,안절부절 해서 무언가를 행동에 옮기고 싶다거나, 또는 그저 운동을 하려는 것이었지요. 나는 적에게 한방 먹이고 싶은 쪽이었습니다."
리첸버그는 대대장들에게 그 임무를 지휘할 소대장을 한 명 지명하라고 지시했고, D중대의 소대장인 윌리엄 고긴중위가 뽑혔다. "고긴은 성격이 조심스럽다고 알려져 있어 후보자 세 명중에서 선택됐는데, 장교는 용감해야 하지만,동시에 부하들의 목숨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하거든요."라고 리첸버그가 나중에 이야기했다.
11월8일은 날씨가 쌀쌀하고 안개가 끼었다. 15명의 정찰대는 정오경에 행군종대로 서쪽을 향해 출발했고, 첫 번째
확인점까지 두 봉우리 사이의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를 따라 5KM쯤 행군했다. 고긴 중위는 산에 가려서 확인점 1과 2에서는 대대와 무선교신을 못했다. 오후가 한참 지나서 정찰대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원지대에 이르는 2KM쯤 되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으나 적은 보이지 않았다.

황초령을 넘어 행군하는 동안 7연대가 만난 유일한 저항은 11월9~10일 밤에 걸쳐 곰 한 마리가 G중대 1소대 전면에 으르렁거리며 나타나 서북쪽으로 뻗어 있는 케이블카 궤도를 오른쪽으로 터벅터벅 넘어가면서 침낭 안에 잠들어 있는 해병들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10일 아침 일찍 츄엔 리 중위의 소대를 첨병으로 한 데이비스 중령의 7연대 1대대는 황초령을 넘어 넓고 평평한 고원지대에 진입했고, 리첸버그 대령은 다음과 같은 간략한 보고를 스미스 장군에게 했다. "오늘 부로 고토리 점령완료."

1950년 11월10일은 데이비스가 자랑스럽게 말한 "우리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해병대"의 창설 175주년 기념일이었고,이상적 상황은 아니었지만 기념일 행사가 엄숙하게 치러졌다. 여느 때처럼 해병대 사령관의 기념일 성명이 전 장병에게 낭독되었고,저녁에는 함흥에 있는 사단사령부 식당에서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다. 고원지대 고토리에서는 데이비스 중령이 해병대 교범에 별도로 준비되어 있는 구절을 낭독하고, 노획한 북한군의 장교군도로 커다란 케이크를 자른후 처음 조각은 참석한 해병 중에서 가장 연장자에게, 두 번째 조각은 가장 나이가 어린 해병에게 나누어졌다.

조지아주 출신의 레이몬드 G, 데이비스 중령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시카고에 있는 예비대대의 검열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중령 계급에 11년간이나 머물고 있었는데, 해병대에서는 같은 계급을 오래 다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해병대는 장교들에게 완벽한 교육을 실시하고 대상인물이 진급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일 때만 진급을 시켰다.

산악지대의 기온이 다시 급격히 떨어졌고, 더 큰 추위가 곧 들어닥칠 것 같았다.
스미스 장군: "나는 동절기 피복장비를 흥남에 있는 보급품 야적지에서 불출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수성선의 반을 채울 만한 양의 피복장비들이 탄약과 식량 야적지들 사이에 흩어져 있었거든요. 7연대가 벌써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 부대에 먼저 피복을 보급했습니다. 동절기 군화로 말하자면, 오리 사냥꾼이 신는 장화 타입이었고, 영하의 기온에서 동상 걸리가 딱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중공군이 항공관측으로부터 자신들을 숨기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를 알고 있는 리첸버그 대령은 그들이 그 지역을 떠났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수동에서의 교전 전에 해병항공대가 7500명의 병력을 가진 중공군124사단의 머리터럭 하나도 알아채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박격포 소대장 조셉 오웬 중위: "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전진할 곳 어디엔가 엄청난 숫자의 국(gook)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12.동장군의 내습

맥아더 장군은 11월 초에 있었던 중공군의 공격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겼다. 서부전선의 미8군과 동부전선의 미10군단은 제각기 압록강을 향해 맹렬히 진격할 예정이었고, 그들이 압록강에 도달하면 5개월에 걸친 이 소규모 단기전은 끝날 거라는 것이 맥아더의 예상이었다. 중공군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송시륜 장군이 예상한 대로 전술적 상황이 전개된다면,미 해병대는 진흥리, 고토리,하갈우리 그리고 유담리 사이에 길게 늘어져서 배치될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그의 병력들로 하여금 미 해병의 분산된 부대들을 포위하게 하고,황초령의 교량을 폭파해 버린 후 미군을 분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송 장군의 예상이었다.
북한에 진입한 중공군 병사 개인은 솜으로 누빈 한쪽은 흰색,다른 한쪽은 짙은 황토색의 양면 겸용 군복을 입고, 모피로 테를 두르고 귀마개가 달린 솜을 넣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앞에서 본것처럼 수동에서 조우한 중공군은 울퉁불퉁한 고무밑창을 댄 천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나중에 도착한 병력은 반가죽 신발을 신었는데, 더러는 가죽 부츠를 신은 경우도 있었다. 통신장비는 원시적 이어서 연대 이하의 부대에는 무선 통신장비가 거의 없었고, 유선 통신장비도 대대 이하 부대에는 없었다. 중대 단위에서는 전령이나 나팔, 뿔피리, 호루라기, 심벌즈, 신호탄, 전등 등의
신호장비를 주요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중공군은 그들의 강점(스테미너,은밀성,우세한 병력)을 최대화할수 있고, 약점(공습에 대한 취약점, 부족한 수송차량,제한된 화력지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야간전투를 선호하였다. 중공군에게는 명예로운 전역이란 규정이 아예 없었는데, 중국인 농부가 한 번 입대하면 죽거나 포로로잡히거나, 또는 임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대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그해 가을 송 장군의 제9병단은 한반도 서북부에서 미8군과 대치한 제13병단에 측면방어를 제공하고, 장진호 부근에서 미10군단 예하의 해병 1사단과 다른 부대들을 격멸하라는 이중 임무를 부여받았다.
10군단을 험준한 산악지대로 끌어들이는 것이 한반도 동북부에 있어 송 장군이 세운 전략의 핵심 성공요건이었다.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육군이 보급품을 지켜줄 것라고 안심시켰지만, 육군의 임무수행 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스미스 장군은 진흥리에 수비대를 남겨놓고, 또 7연대가 북쪽을 향한 진격을 재개하자 고토리에도 따로 수비대를 배치했다. 그는 보급을 측면에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병력을 겨울전투에 투입시키고 싶지 않았고, 10군단 지휘부의 비현실적 요구사항에 직면하여 해병대의 진격속도를 거의 명령불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지연시켰다.

11월9일 밤에는 첫 눈이 내려 고개의 좁은 도로가 하얗게 눈에 덮였다. 다음날 기온은 몇 시간 만에 13도나 곤두박질쳐 밤이 되자 영하 13도가 되었고, 초속 10~15m의 속도로 불어오는 시베리아 바람이 체감온도를 더 떨어뜨렸다.
5연대 2대대 군의관 헨리 리트빈 해군중위: 계란을 빨리 해치우고 나서 커피를 즐기려고 방책 말뚝 위에 올려놓았던 커피 컵을 들어보니, 맙소사! 컵이 너무 차가워져서 손가락이 그 금속컵에 쩍 달라붙고, 커피 위에는 얇은 얼음이 얼었더군요.전투원들에게 주는 영향은 정말 심각했고,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데이비스 중령: "정말 심각했습니다. 참모들과 함께 부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동상의 증상인 새하얀 반점이 발이나 다리에 난 해병들을 발견하면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 피워 있는 불가로 데려갔습니다."
로이 펄 상병: "나는 미네소타에서 자라나서 그런 추위에 익숙했지만, 추위가 그렇게 갑자기 몰아친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떤 남부 출신 해병들은 울더군요."

같은 날 알몬드 장군은 해병사단에게 압록강을 향해 진격을 재개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스미스 장군은 지도상으로 거리를 재 보았는데, 황초령에서 압록강 국경까지는 대략240km 정도 되었다.
13일 스미스 장군은 흐린 날씨 속에 헬기편으로 진흥리로 날아가 철도연변의 보급창을 경비하던 5연대 3대대에서 지프를 빌려 황초령까지 가보았다.
"내가 갔던 날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는데, 도로는 물이 흘러나오는 곳마다 빙판이었고,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산악지대는 흥남보다 7도는 낮다는 것을 알았죠."라고 스미스 장군은 말했다.



13.하갈우리

츄엔 리 중위의 첨병조는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장진강에 놓여 있는 긴 콘크리트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해병 7연대는 드디어 거대한 인공호수인 장진호의 남쪽 끝에 있는 하갈우리에 도착하였고, 파랗게 언 얼음판처럼 보이는 호수는 벌써 군용 지프의 무게를 견딜 만큼 얼어 있었다. 도로는 마을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왼쪽은 23km 떨어진 유담리로 향했고, 오른쪽은 호수 동안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모호하게 그려진 일본지도에 따르면 산 속 어디선가 길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속에 도로의 훨씬 뒤쪽에서는 7연대 2대대가 전진해 오고 있었다.
록우드 중령: "우리는 계속해서 도로 위쪽으로 걸어나갔고, 바람이 점점 강해졌습니다.너무 세서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아니면 등을 돌려서 뒷걸음으로 걷기도 했습니다."
호머 리첸버그 대령은 유능한 연대장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가끔은 대하기가 어려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알파 바우저 대령은 그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아주 고집이 센 네델란드계 미국인이었는데, 제 주장이 강하고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항상 자기가 옳다고 확
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하들에게 임무완수를 요구했는데, 그건 좋은 거지만, 좀 제멋대로였고 대대장들을 꼼짝
못하게 했습니다.

조지 크로츠 일병: "우리 분대는 보조선로에 서 있던 화물수송용 화차에서 쉬었는데, 분대장이 나더러 불쏘시개를 구해 오라고 시켰습니다. 하갈우리는 참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11월15일 오후 7연대의 전 병력이 장진호의 남쪽 끝에 집결했고, 제1해병공병대대는 불도저를 사용해 야전활주로 건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 밤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떨어졌다.
하갈우리에서의 짧은 휴식기간중에 존 얀시 중위의 소대원들은 스탠리 로빈슨 일병을 좀더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좀 특이한 경우였습니다."라고 위생병 제임스 클레이풀이 회상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샌디에이고의 부두에서였습니다. 우리가 항해를 시작하기 직전이었죠. 그는 함정 영창에서 불려나온 죄수들의 무리 속에 있었는데, 현병들이 그들을 바짝 붙여세워 갑판으로 끌고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로빈슨이 몇 번이나 탈영해서 구제불능이라고 여겨졌을 터인데, 어떻게 포츠머스 해군교도소에서의 종신수형 생활을 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사단은 병력부족 상태에 있었고, 모을 수 있는 해병은 다 모으려 했기 때문에 로빈슨도 고전적 제안인 영창과 일선보병 중에 택일 하라는 요구를 받았겠지요. 로빈슨이 698고지에서 캐글리오티의 분대를 떠맡아서 수류탄으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백린 수류탄으로 적 기관총사수를 죽여 고지 정상을 몇 분 동안 혼자서 지켜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요."
"하갈우리에서 그와 얘기를 하면서 또래의 어린 아내와 아기가 있었으며,가족한테 문제가 생겨 탈영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얀시 중위 소대에 배치된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죠. 얀시 중위는 내가 아는 가장 거친 해병 중 한 명이었지만, 친절하게 대해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빈슨과 약 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몇 달 동안 그의 심리를 파악하려고 했던 해군소속의 어느 심리학자보다 더 로빈슨을 잘 알게 됐지요.로빈슨도 자기가 얀시 중위, 부중대장 레이 볼 중위, 중대장 월터 필립스 대위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인생에서 뭘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던 잃어버린 영혼이 잘 할수 있는 뭔가를 찾아낸 경우였죠. 몇 년후에 그가 콜로라도주 고속도로 순찰대와 총격전 중에 사살됐다고 들었습니다.
해병대의 표어는 '항상 충성을' 이란 뜻의 라틴어 셈페르 피델리스였습니다. 해병대원이라면 그 말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아시다시피 해병대는 로빈슨 같은 젊은이들에게 충성을 바칠 대상을 제공해 줬지요.
그날 오후에 지프가 우리 옆에 서기에 보니까 리첸버그 대령이 앞에 타고 있더군요. 소대에서는 연대참모는커녕 자기 대대장도 보기 힘들어서, 연대장이 방문한 건 귀빈방문이나 마찬가지라 차려 자세를 취하고 그를 바라보았습니다.나중에 들으니 연대장이 698고지 무용담을 듣고는 로빈슨을 개인 경호원으로 데려가려고 왔다더군요.로빈슨을 부르더니 아래위로 훑어보고 나서 개인장구를 챙겨서 지프 뒷자리에 타라고 하더군요.
얀시 중위와 소대원들은 로빈슨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그가 떠나는 것을 섭섭해했습니다. 하지만 스탠리 로빈슨은 또 한번 탈영을 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