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km 대대행군의 여성 소대장

울프독 | 2016-02-15 1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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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이트에 얼마 전에 철원 7연대를 찾아가던 길에 도로에서 운송되고 있던 K 1 탱크를 보며 추억에 잠겨본 글을 쓴 바 있었다.

 

그 여행 날의 오후에 철원 평야에서 행군을 하고 있던 7연대 2대대 장병들을 만나 따라가면서 또 한 번의 군 시절 추억을 즐겨 보았었다. 7연대 2대대는 1950년 7월 초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충북 무극리/동락리에서 북 15사단 48연대를 기습 섬멸시키고 대량의 무기와 군수품을 빼앗은 명품부대다.

 

 

북의 기습으로 암울한 분위기에 미군의 증파를 기다리며 후퇴하고 있었던 한국 정부는 이 대승에 크게 기뻐하며 7연대 장병 모두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내렸었다.그 대승을 기념하여 무극대대라는 대대명을 가지고 있다.

 
무극대대의 육군 카페 글 모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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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극대대는 아침 8시에 완전 군장으로 부대를 출발하여 40km의 행군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때가 오후 5시쯤이었으니 행군의 막바지였다.

 

모두 지친 표정이지만 대오를 유지하고 잘 걷고 있다. 과거 어느 일본 작가가 자기 군생활을 회고하며 ‘병사란 걷는 것 ’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황혼이 내리는 철원 평야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대대원들을 보며 옛 기억의 저장고를 열고 무드에 잠겨본다.

 440km 행군의 막바지 코스를 묵묵히 걷고있는 무극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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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의 키가 무척 커졌다. 나의 기억에 있는 군시절 부대원들의 키는 이렇게 크지 않았었다. 낮에 보면 별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번은 야간 훈련을 나갔다가 역시 야간 행군중인 미군과 조우한 일이 있었다.

 

그때 밤하늘을 배경으로 능청능청 걷는 미군들의 후리후리한 키에 비하면 우리 부대원들이 마치 도토리처럼 작게만 느껴지던 그 답답함이 훤히 트인 철원 평야에서는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 야간에 보았던 미군들에 비해서 평균적으로는 미치지 못할지는 모르나 결코 작은 키들은 아니었다.


느낀 차이가 또 하나 있다.

 

행군의 막바지 단계에서 지칠대로 지친 장병들의 행군 속도지만 그래도 그 속도는 우리 때의 행군 속도에 비하면 상당히 빠르다는 사실이다.

우리 부대는 완전 군장에 이런 장거리 행군을 하지 않았지만 20km까지는 해보았었다. 그때 보았던 것이나 옆 보병 대대가 장거리 행군을 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행군 막바지의 지친 속도는 무척 느렸었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허리는 더욱 굽어지고 목은 앞으로 처져서 힘없이 걸었다. 지금 보면 못 먹던 시절의 영양 상태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반면 철원 평야에서 본 무극대대 행군 속도는 비록 장병들의 피로가 극에 달한 모습이었지만 그 속도는 훨씬 빨랐다.마치 황소가 거친 숨을 쉬면서도 큰 수레를 끌고 느리나마 언덕길을 올라가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는 20여년 전에 한 후배에게서 장병들의 나약한 정신과 체력에 대해서 개탄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조금만 장거리를 뛰면 꼭 엠브란스를 불러야 할 정도의 환자들이 생깁니다.” 신세대 장병들이 풍요의 세상에 살아서 정신력이 나약해졌다는 말인데 그런 관점은 이번 무극대대 장병들의 행군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체격이 좀 비만한 편인 장병 하나가 열외하여서 얼굴의 땀을 닦고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대열로 복귀한다. 그 체격에 이런 장거리 행군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동기에 조종대라는 친구가 있었다. 체육과 출신으로서 역도 선수같은 건장한 체격을 가졌지만 구보나 행군은 그의 아킬레스 근이었다.

다음 날이나 오후에 구보만 있다고 하면 말이 없어지고 신경이 곤두 서있었다.구보나 행군을 나가면 여러 번이나 열외해서 숨을 쉬어서 마지막 단계에서 꼭 낙오할듯이 비틀거렸다. 그러면 구대장이 직접 밀고 우리가 끌고 해서 겨우 완주했었다.

 

그는 그래도 군 생활을 잘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체육 선생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몇 年 뒤에 체육 시간에 심장마비를 맞고 세상을 떴다고 한다.법없이도 살 착하디 착한 친구였는데---우리는 그 친구가 건장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구보에 취약했던 것이 심장에 무슨 선천적인 질환이 있었나 하는 추측을 했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즈음에야 그런 일은 없겠지만 건장한 체격에도 구보나 행군에 약한 친구들은 지휘관은 잘 챙겨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행군 대열 통제중인 대대장 차종석 중령과 고구려 무사같은 인상의 작전 과장

조소령. 차종석 중령은 알아주는 효자인데 다시 7연대를 찾아가면 만나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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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맨 배낭을 보니 엄청나게 크다.배낭 안에 침낭이 들었나? 하여튼 우리가 매던 배낭보다는 훨씬 커보였다.저런 것을 메고 어떻게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걸을 수가 있다고 한다. 배낭 위에 81mm 박격포나 90mm 로켓 발사기를 얹고 가는 병사도 보였다.

“ 참! 그 녀석들 기운이 장사구나.”하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병과가 보병이 아니어서 자대에 배치된 후 장거리 행군은 자주 해보지를 못했으나 그러나 교육중 저런 배낭을 메고 40km 행군을 딱 한 번 해 보았다. 보병학교를 출발해서 무등산을 넘어 동복의 유격대까지 가는 훈련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의 야간 행군 훈련이다.

행군 중간에 무등산을 넣은 것은 행군을 서 너 배 힘들게 만들었다.

산을 타기 시작하자 현기증이 날정도로 온몸의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정상 바로 아래 능선에 오르니 십 분 간 휴식 명령이 떨어졌다.

기진맥진한 모두가 퍽퍽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데 물론 나는 가장 큰 소리를

내고 쓰러지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주위 억새풀 사이로 스쳐가는 밤바람이 스산하다. 어디서 “ 캥” 하고 여우 우는 모습이 들려오는데 평생 산에서 여우 우는 소리는 들어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보름 달이 무등산 위에 휘영청 떴는데 여기서 나는 잠시 여기서 그 달빛이 핏빛으로 보이는 환시를 몇 초간 맛보기도 했었다.

 

10분간 휴식 후 우리는 다시 천근만근한 몸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도 쉽지가 않았었다. 올라올 때 체력을 다 소모해버려서 걷기가 힘들어서 날이 훤하게 뜰 때는 비틀거리는 동기들까지도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동복의 유격대 본부까지 다 도착했다.

 

공포의 무등산  - 8 부 능선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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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몸을 움직여 짐을 관물대에 정리하면서 보니 동기들의 얼굴이 꼭 괴기 영화에 나오는 강시처럼 변화 해버린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하룻 밤의 극도의 고통과 체력 소모가 저런 급격한 체중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지금도 별로 납득이 가지를 가지는 않지만 사실이었다.

 

양말에 피가 묻어서 바꾸어 심으려고 양말을 벗었더니 발이 말이 아니었다.

한 발바닥에 12 개씩의 물집이 터지고 일부는 터져서 피가 나오는 곳도 있었다.합계 24개의 물집이었다. 그런 발로 훈련은 힘들테니 입실했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런 것을 알아주는 유격대가 아니다. 그냥 오후부터 훈련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아프더니 갈수록 무디어져서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의 조화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2 주간의 유격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배낭은 전부 트럭으로 보내고 총만 맨 단독 군장으로 평지의 도로로 돌아왔는데 갈 때에 비하면 마치 하이킹하는 기분으로 도착했었다.무거운 배낭과 해발 1,000미터에 가까운 산을 등산하는 노고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힘들게 행군하는 부대원들 사이에 여성 병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물게 보였었다.요새는 머스마도 계집아이처럼 예쁘장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하기 힘들지만 역시 여자로 보이는 병사들은 가쁘게 호흡을 하며 힘들게 행군하는 티에서 표가 난다. 여군들에게 이 40km 행군은 힘든 것이 사실일듯.

 

어 ? 왜 사진찍으세욧?!- 빠르게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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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의 중대에서 키가 작은 간부가 대열을 지휘하면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조금도 지치지 않은 발걸음으로 가면서도 경광봉으로 통과해가는 차량마다 빠짐없이 행군 대열과 간격을 벌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가까이 따라가 보니 여자 소위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강한가하고 차를 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모두 지쳐서 사진을 찍어도 그냥 모른체 하는데 이 간부는 벽력같이 화를 내며 달려온다.“ 왜 사진찍으세욧?!”

 

생각 밖이다 그래서 구차하게 설명하였다.

“실은 작가인데 국방관계 미디어에 한번 소개 할려고--” 어쩌고 하는데

그 소위가 나를 먼저 알아본다.

 

“ 아-! 아저씨세요? 저 6사단 사령부에서 한번 뵈었잖아요!”

그때야 생각난다 .작년 10월 포천의 6사단 사령부에서 7연대 초산부대의 압록강 진격 기념행사를 할 때 압록강에까지 진격했던 유일한 민간인 여성 생존자인 정정훈 여사가 참석했었다.

 

적십자 간호고등 학교 학생으로 납북되어 가던 중 7연대에 구출 받았던 두 명의 여고생 중의 한 명이다.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철수중에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이대용 장군의 중대원과 같이 열흘동안 400킬로를 걸어 탈출했었던 분이었었다.

 

정정훈 여사는 허리가 아파서 하루 종일 집에 누어서 보내지만 7연대 압록강 행사 때면 아들과 딸의 부축을 받고 꼭 전방까지 와서 참석했었다.

작년 초산 부대 압록강 진격행사는 6사단 사령부에서 있었는데 아픈 허리 때문에 제대로 기동을 하지 못했었다. 그때 여자 소위가 마치 자기 친할머니 모시듯 정여사를 극진히 모시는 장면이 감동적이어서 말을 나누어 보았었다. ROTC출신으로서 2대대 통신 소대장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름은 잊어 버렸다.

 

그 소대장을 다시 철원 평야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미 해는 져가고 어둠이 오는데 후래쉬를 터뜨리는 것을 잊어서 다시 한 장 더 찍겠다고 하니 웃으면서 OK한다.

 
나 훈녀예요. -------서쪽 하늘의 석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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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극대대의 행군을 더 따라가며 이것저것 소묘(素描)할 토픽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날이 어두어져 오고 있었고 7연대에 돌아가 더 할 일이 있었다.무극 대대도 한 두 시간 후에 부대로 귀대할 것이다.

“장병들 모두 수고했다.”

이 추운 철원의 평야 넓은 곳에서 지친 몸으로 묵묵히 행군하는 무극대대원들을 보는 OB들로 하여금 옛 추억을 살려내며 그 추억은 아드레나린의 분출로 연결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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