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사병 황상병

김바사 | 2014-07-06 11: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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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12중대!
내려와서 전입병 데려가, 그런데 골치좀 아프겠어? 문제사병야."
 
대대본부에 내려가보니 나이가 들어보이는 이등병이 홀쭉한 따블백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황병수 이병, 그를 데리고 중대로 올라온 시기가 아직도 덕비끼내 개울물이 손이 시려운 초봄이었습니다.
그의 군번이 1214****이니 나보다 한참을 고참이지요.
중대내의 1214 군번들이 고참으로 행세하고있으니 아직도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문제가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문제사병>
중대장께 전입신고를하고 2소대에 배정하였습니다.
이미 이 사람이 문제사병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있고 어찌되었건 군번으로보아서는 고참이므로 소대원들이 매우 껄끄러워하며 가까이 다가서지를 못했지요.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가 PX에서 술을 퍼마시고 올라와서는 잠자리에 들면서 최초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술기운이 퍼지면 잠버릇이 엄청 고약했던 것입니다.
코를 골고 이를 갈며 잠꼬대를 하는 것 까지는 견딘다해도 옆의 전우에게 침을 튀기고 콧물을 발라주는데에는 참을 장사가 없는거죠.
다시 동기들인 1214 군번이 많은 3소대로 옮겨주었으나 이번도 술을 마시고 올라와 싸움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결국 본부소대로 데리고와 내 옆에서 자도록 하였지요.
함께 누워 잠들기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나는 이 황이병에게 호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는 바탕이 젊쟎았고 아는 것이 많아 여러 방면에서 대화가 잘 되었습니다.
다만 술의 문제, 그 모든 불행의 인계철선을 건드린 음주의 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최초의 사건이 본성의 주벽이 발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건은 (매복한 운명의 덪에 걸려든) 우연함일 뿐이었고 그 이후의 음주는  괴로움을 잊기 위한 것일 뿐이었는지.
 
<불행은 다른 불행을 몰고오고>
그는 2년전에 의정부(동두천이라던가...)에 있던 자대에서 술을 마시고 하사와 다투다가 대검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탈영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불행들이 줄을 이어 다가오게한 최초의 사건이죠.
탈영한 그는 고향인 충무에서 숨어살았습니다.
입대전에 이미 결혼하여 아내와 어린 자식 둘이 있었고 부모님도 건재하셨죠. 
탈영은 하였으나 일생을 숨어살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1여년이 지난후  "탈영병 자수기간"에 헌병대를 찾아가 자수하였습니다.
"헌병대에 자수한 그 날부터 엄청두둘겨 맞았지요. 이후에 남한산성에서 1년을 살고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7사단에 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당연히 그에게 존댓말을 했지만 그도 두살이 어린 나에게 존칭을 썼습니다.
군대에 오기 전에 충무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사범학교를 나온 것은 아니고.... 아마도 당시에 섬이나 오지에 모자라는 교사를 충원하는 어떤 제도가 있지않았나 싶었는데.. 아내도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만났다고 하더군요..
 
"남한산성에 있는동안 아내는 단 한 번 면회를 오고 발을 끊었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찾아오신 아버님으로부터 들었지요.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 문제로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홧병으로 돌아가신 것이지요, 아내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마이가리 상병>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마음의 안정을 이루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중대원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술을 입에대지 않았으므로 그의 잠자리 버릇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내무반에 들어와보니 그가 혼자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나를 보더니 멋적은 표정으로 씩 웃더군요.
이병계급장을 상병으로 바꿔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좋은 징조로, 부대원들과 어울리고 제자리를 찾겠다는 의지로 보았고 중대원들도 그를 황상병으로 불러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부탁을 했습니다.
"김상병님, 휴가좀 다녀올 수 없겠습니까?, 어떻게 방법을 좀 모색해 주세요"
"아내에게 정식으로 이혼수속을 해 주고 아이들은 어머님게 맏기고 왔으면 합니다."
 
사고병은 자대에 배치된지 6개월이 지나야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하던데 중대장님이나 서무병인 나는 이런 규정에는 무심했습니다.
마침 얼마전에 받은 국방부 검열에서 성적이 좋다고 포상으로 중대에서 모범사병 1명을 선발하여 휴가를 보내주라는 연대의 오더가 있었으므로 중대장께 건의하여 이 황상병을 보내주기로 하였죠. 문제적(的) 모범사병이라 할 것입니다.

일주일 후 그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귀대하였습니다. 
" 다 해결 됬습니다. 아내도 좋게 보내주었고 아버님 성묘도 다녀오고..." 
아! 잘 되었지요. 이제는 제대하는 날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군요.!
 
<운명의 집요함>
그런데 말입니다.
운명이 가혹한 시련의 화살을 날리면 결국은 피할 수 없게된다는 두려움을 이 황상병의 불행을 통하여 느끼게 됩니다.
 
그가 귀대한지 1주일이 못되어 어머님이 보낸 전보가 왔습니다.
"둘째아이 교통사고 속히오라"
황상병은 이 전보를 받고 밤새 울었습니다. "나는 압니다. 얘는 벌써 죽었어요! 그걸 안다고요"
 
다음 날, 나는 그를 위병소까지 바래다주며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반드시 돌아오라고 말이지요.
그가 떠난지 사흘만에 내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김상병님, 오늘 죽은 딸을 리어카에 실어 뒷산에 묻고와 이 편지씁니다," 
"....비마저 억수같이 내리네요. 살면서 체험할 수 있는 슬픔이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군요....."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이런 다짐이 붙어있었습니다. "....귀대는 꼭 하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요."
 
그러나 귀대할 날에, 저물도록 그는 귀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시간까지 귀대하지 않으며 연대 상황실에 직보하도록 되어있었으므로 애가타서 기다리다가 결국 밤늦게 연대에 미귀자 발생  보고를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으나 아무도 그의 관물에 손을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사계 김상사님이 나섰죠.
"그 녀석 관물 정리해서 반납하고 사제물건들은 소각해버려! 그녀석 자살했을거야, 니들같으면 살겠냐?"
그의 따블백을 뒤집으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 빼곡한 수첩한 권과 몇 장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언젠가 나에게 보여주며 작은 한숨을 내어쉬던 그 사진들... 작은 섬에 놀러가서 동료교사들과 찍은 그 흑백사진들에는 함빡웃는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중대본부앞에서2.jpg

                                          일병시절 신읍리 중대본부앞에서(좌)

<식기닦기에 좋은 계절>
시간이 가면서 그의 존재는 쉽게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고보니 그가 우리 중대에 와서 떠나가기까지 불과 몇개월을 채우지 못했군요.
이제 덕비끼내의 개울물은 "식기를 닦기" 에 좋아졌습니다.
개울가, 중대원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 식기를 닦던 그의 모습을 행정반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곤 했습니다.
군복이 헐렁해보이는 여윈 몸, 마치 도를 닦듯이 손잡이달린 미식기를 노려보며 닦아대는 그 모습은 세상을 향한 어떤... 의미있는 몸짓 같았는데 그 몸짓을 이해하기에는 나 또한 어린 병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시절을 반추함>
나는  지금도 그가 남녂땅 어느 하늘아래 살고있으리라 믿고, 자식을 잃은 슬픔이 불행의 종결이었으며그 이후의 삶이 안식을 얻었으리라 믿습니다.
그 시절은 반추해보면서 이런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 날 그가 밤새워 울 때 "아직은 모르는 일" 어쩌구 하기 보다는 그저 함께 울어주었으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이라는,  
황병수님, 아득한 한 시절의 인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주십시요. 내내 평강을.




************ 짜투리 글 ***********************
 
1. 식사때가 되면 소대별로 식기를 옆구리에 끼고 저 아래 대대식당으로 열을 지어내려갔다가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뒷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개울물에 식기를 닦았지요. 봄이면 주변에 원츄리 새순들이 올라오고

     개구리와 가재들이 노닐던 이 곳은 작은 휴식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개울가를 떠올리면 여지없이 거기에 식기를 닦는 황상병이 앉아있습니다.
 
2. 최근 불행한 "관심사병" 사건을 보면서 황상병을 떠올렸습니다. 당시에는 "관심사병" 이란 용어는 

    없었죠.
   또 최근의 임병장과 내가 기억하는 황상병의 건은 사건의 성격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관심사병"의 문제에 대하여는 나는 확고한 관점이 없습니다.
    그저 사건이 터지면 놀라고 희생된 병사들에 가슴이 아플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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