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ISIS" 라는 집단에 눌려 무기력하게 패퇴했다는 이라크군의 소식을 들으니 착잡합니다.
 
나는 80년대에 소위 "중동 로자" 로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3년간 일했습니다.
사우디 육군사관학교 건설공사와 쿠웨이트의 접경지역에 있는 "알 바틴" 이라는 곳에 군사기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죠.
이곳에서 목격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군인들의 모습이나 장비, 그리고 그 척박한 땅의 가혹한 환경을 체험하면서 형성된 어떤... 선입관이 희생된 이라크 병사들의 모습위로 떠오릅니다.
 
"알 바틴"의 군사기지는 광대한 부지를 마치 피자를 자르듯이 여섯조각으로 균등하게 잘라 일부는 필리핀 업체에 맡기고 세 조각을 우리업체가 시공하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조각, 14개동으로 이루어진 1개대대 시설의 전기공사에 공구책임자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대대본부, 몇동의 숙소, 디스펜서리, 식당, 교육장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옆의 현장도 거의 동일하나 우리공구에는 없던 모스크가 한 동 있었습니다.
미국공병단(COE)이 주관한 이 공사는 당시의 우리나라 군대의 설비에 비하여 모두가 크고 호화스러웠는데... 일부 화장실만 빼고....이러한 시설이 이 나라의 군대실정에 맞기는 하는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하더군요. 
화장실만 빼고라는 말은 화장실의 형태가 좌변기가 아니라 재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척박함을 넘어 횡포마져 부리는 땅에서 이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그 사람들은 우리와는 세상을 사는 방식이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벌판에 야적해놓은 자재를 감시하기 위하여 인근 마을에서 주민 한 사람을 고용했었죠. 뭐.... 경비라기보다도 주민들과의 협조차원이었는데....
이 사람이 양털로 만든 모포 한 장을 들고와서는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벌판에서 아예 먹고 자더군요.
어쩌다가 우리들이 다가가면 몸에서 모래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와서는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지키고 있는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선량하며 야망이나 내일이라는 개념은 아예 가지고있지 않은 듯한 이 사람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우리네와는 다르다는 것을..
요즘 동영상에서 많이 듣게되는 "알라 아크발!"은 몰라도 모든 것을 알라신의 뜻으로 돌리는 "인샬라!"는 많이 들었습니다.  
 
공사중인 기지를 지키는 부대의 인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영국식 제복에 베레모를 썼는데 우리에 비하여 몸이 비대한 병사들이 많았고 또 콧수염까지 기른 군인들이 많아 나이가 한결 많아 보였죠. 
그들이 이따금 초소옆 벌판에서 제식훈련을 하였는데 맙소사! 이렇게 발을 못맞추는 군대는 처음보았습니다.
아니? 겨우 몇십명이 어떻게 이리도 발을 못맞출 수가 있죠? 
몇 번 이 장면을 바라보고나니 이들의 문화풍속이 몸동작의 일치까지를 요구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생각은 리야드 왕궁앞의 보초병을 보면서 굳어졌습니다.
왕궁 주변에 부속되는 건물로 아주 크고 호화스러운 저택이 여러곳 서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집을 제1왕비의 집, 제2왕비의 집으로 불렀지요.
그 정문앞에는 베레모에 정복을 입은 보초병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지나는길에 바라보면 집총을 하고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간이의자에 편안히 앉아있고 또 총은 저쪽 건너편에 놓여있더라는 이야기죠. 이 또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단편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이 나라 군대의 군기가 엉망이라고는 생각치 않았으며 다만 문화풍토의 기반이 다르구나...하는 생각은 많이 하게 되더군요.
문화풍토적 기반이라...리야드 시내의 서점에 가면 이슬람 영광의 시절에 백마를 타고 장검을 빼어든채 사막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영웅이 있고 승리로 점철된 전쟁의 역사가 있는 것이죠.
다만 이런 그림이 보여주는 이슬람 전사들의 모습에 저기 발도 못마추며 행진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매칭하기가 좀 어려웠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사우디 육군사관학교 현장을 방문한 국왕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의 절도있는 행동과 그들이 지닌 "황금총" 에서 옛 이슬람 제국군대의 절도를 언듯 바라보기는 했습니다만.

 군대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하는거죠.
우리나라의 경우도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군인들이 트럭을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 트럭위에서 큰소리로 군가를 불러대고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휘파람을 불며 "히야까시"(^.^)를 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마도 지휘관들이 자기 부대원들의 용감성을 과시하는 수단의 하나로 부추키거나 용인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지금은 이런 행태를 상상할 수도 없죠.  그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요즘의 병사들은 샌님들입니다. 
여하튼 내 나라에서 굳어진 관념 "군대는 일사불란" 이라는 생각의 잣대를 그들에게 들이댄 것이 잘못인지 모릅니다.
 
이라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듣자하니 ISIS의 침공병력이 수백명에 불과했다던데 어떻게 수만명의 군대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갔다는 것일까.
후퇴를 하더라도 어떤 매뉴얼이 있었을 것인데 그 많은 포로들은 웬일일까,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런 기사를 읽다보니 문득 옛 사우디 시절에 내가 바라본 아라비아 군대의 모습이 생각난다는 것이지요.
독재자 후세인 시절에 그렇게도 위용을 과시하던 이렇게 무기력해 지다니?
아니면 후세인 시절에도 이미 내적으로는 무기력한 ...발만 잘 맞추는....군대였는지도 모르죠.

모쪼록 이라크의 군대가 강건하여져 국제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고자하는 정권을 광기어린 집단으로부터 잘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머물던 알바틴의 캠프로 모랫폭풍이 몰려오는 장면입니다.

기왕에 "알 바틴"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모래폭풍의 이야기를 하지않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수도 "리야드" 에서 북쪽으로 530킬로미터의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 땅의 가혹한 환경을 체험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모래폭풍" 이었습니다. 
모래폭풍은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다가오죠. 멀리서 밀려오는 검은구름을 발견하면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모래폭풍이 다가오면 순식간에 캄캄한 밤으로 변하며 세찬 모래바람이 피부를 때리고 숨을 쉬기도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