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기(機)를 기다리며

김바사 | 2014-06-15 16: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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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산호 화백이 그린 "라이파이"는 60년대에 출판된 만화중에서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만화의 세세한 줄거리는 이제 기억이 흐립니다만 "라이파이" 가 타고 다니던 "제비기"만은 기억에 또렸하게 남아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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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라이파이" 를 접한 것이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나의 만화감상의 역사는 라이파이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이파이가 펼쳐준 신세계는 그 당시에  빠져들었던 "철인 28호" 라던가 "아톰" "고질라"의 재미를 압도하였는데 훗날 이 작품들이 일본만화라는 것을 안 이후에는 "라이파이" 로 인하여 민족적 자부심마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올리는 이야기를 라이파이의 흥미진진했던 스토리가 아니라 그가 타고다녔던... 아름다운 제비양이 몰던...제비기(機)에 국한하고자 합니다.
 
제비기는 제게 하나의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문화충격이라는 용어의 선택이 반드시 합당한 것은 아니겠으나 저는 이 기억을 반추할 때 해설사로서 자주 이 용어를 떠올립니다.
제가 여기서 피력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새로운 비행체를 접한 나의 충격, 그리고 그로 인하여 어렵게 업그레이드 해온 현대식비행기에 대한 관념이 또 다시 무너지던 충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위의 제비기를 보시지요.
제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날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수직꼬리날개 하나만을 갖춘 이 비행물체는  동체의 양측에 달린 로켓 부스터에 의하여 마하 10의 속도를 보장합니다. 
태백산맥에 자리한 비밀 동굴기지서 출발한 제비기는 몇 마디 신변잡담을 주고받으면서 바로 필리핀 상공에 당도함으로서 뒷좌석(택시의 뒷좌석과 흡사합니다.)에 동승한 김철수 탐정을 경악케 하지요. 
이 비행체의 하부에도 문이 있어서 라이파이는 이 문을 통하여 로우프를 타고 레펠링을하여 지상으로 날아내립니다. 한 손에 유도창을 잡고 한 손으로만 로우프를 잡은채로 날아내리는 멋진 장면은 라이파이 만화의 상징입니다.
 
다시 날개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가 이 비행체의 날개없음에 당황한 것은 내가 그 즈음에야 겨우 비행기의 날개에 대한 나의 관념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초반에 각종 문구류의 인쇄물, 거리의 포스터를 통하여 접한 비행기의 모습은 모두가 F-80 쌕쌕이 형의 직선형의 날개를 갖춘 비행기였습니다.
 
쌕쌕이.jpg
 
그런데 당시 미국 공보원에서 발행하여 전국의 초등학교까지 배부한 "자유의 벗" 에는 날개가 뒤로 꺾인 비행기가 실려있었죠. F-86세이버입니다.
이 날개가 뒤로 꺽인 F-86세이버는 이미 6.25 전란중에 날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조잡한 색상으로 인쇄된 내 노트와 화판, 딱지, 그리고 전봇대에 붙어있는 반공 포스터에는 여전히 직선날개의 비행기가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한 번 자리잡은 어떤 대상에 대한 관념은 쉽사리 수정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 다른 예가 탱크의 모습입니다.

 
제비1_0002.jpg

당시의 출판물에 등장하는 탱크들의 모습은 거의 전부가 위와 같이 캐터필러의 뒷부분이 앞부분에 비하여 아주 낮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서투른 제 그림솜씨로 묘사된 위의 탱크의 모습은 오히려 그 당시의 그림보다 뒷부분이 높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탱크의 캐터필러의 높이는 앞이나 뒤의 높이가 같다는 제 고정된 관념이 뒷부분을 좀 더 낮게 그리려는 제 손가락을 강력하게 통제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와는반대로 당시에 노트나 문방구용품들에 인쇄된 그림들에 의하여 형성된  나의 "캐터필러에 대한 관념" 은 캐터필러는 뒷 부분이 낮다는 것이었으므로 극장에서 보여주는  "대한 늬우스" 나 "리버티 늬우스(미국공보관 제작)" 에 나오는 탱크의 앞과 뒤가 평평한 캐터필러의 모습이 나를 당혹케 한 것입니다.
(이 뒤가 낮은 캐터필러의 모습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들의 탱크 이미지가 해방 이후와 전란기까지 끈질기에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캐터필러의 형상에 대한 관념의 고착증은 4.19나 5.16당시에 거리에 등장한 셔먼탱크나 "돌아오지않는 해병"을 관람하면서 겨우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기간에 비행기의 직선의 날개에 대한 나의 관념도 겨우겨우 뒤로 꺽인 날개를 용납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영웅 "라이파이"가 날개가 아예 없는 제비기를 몰고 등장한 것입니다.
야단났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날개없는 제비기가 잘 날아다닐 수 있을데 대한 (북한용어) 정당성을 찾아내어야 했지요.
제비기에 대한 의구심을 그대로 둔 채로 라이파이를 읽는다는 것은 좀 찜찜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찾은 학문적 자료라는 것이 "지구팽이(자이로스코프)의 원리" 우주시대의 과학(학원사 발행)에 소개된 "날으는 짚(JEEP)" 이나 "비행접시(UFO)"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비행접시에 대한 책을 갖고있다고 자랑하던 마장동 친구를 졸라 그의 형이 갖고있던 아담스키의 "비행접시" 라는 책을 빼어돌려 탐독하였고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렸지요.
"비행접시도 날개없이 날아다니는데 제비기라고 안될까!!"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들어가 물상(물리)시간에 "베르누이의 정리" 를 배우고 영각(받음각)이니 기압의 차이니 하는 비행기의 날개의 원리에 대하여 배우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 날개없는 제비기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왜? 그리도 그 날개없는 제비기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여 애를 썼을까? 그것은 내가 그 제비기와 라이파이와 제비양을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나의 만화에 대한 기억은 서정주 화백의 "엄마찾아 삼만리" 나 "사라호여 안녕", 박기준 화백의 "고향설" 박기당 화백이 붓그림으로 그린 "시계탑의 비밀", 김경언화백의 "날쌘돌이", 추동성(이 분이 고우영씨로 압니다.)님의 짱구박사로 시작됩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대를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준 작품들이었지요.
그러나 과학기술로 무장된 장비를 갖추고 이 좁은 나라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로 날아다니며 악당을 쳐부수는 라이파이를 따라다니며 내 눈은 넓은 세계를 향하여 열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유년에 읽은 만화를 두 줄기로 나누어 라이파이를 그 하나의 줄기에 단독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현대식 무기, 특히 새로운 비행기의 모습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죠. 아득한 시절에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떠난 제비기는 돌아올까? 날개없이도  마하 10으로 날아다니던 그 낭만의 비행체가?
너무 오래 기다렸나요?
 
블라디미르: 제비기가 오기는 올까?
에스트라공: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어...
포조:  이봐! 이젠 엉덩이가 짓무르고 있다고!   
 
하하...오랜만에 편히 쉬는 일요일에 서투른 그림마져 그려보며 즐거웠습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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