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조교

김바사 | 2014-06-01 21: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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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씨가 쓴 "한국인의 의식구조" 는 명저입니다.
그 글중에 이 분이 동작이 매우 굼떠서 훈련병시절에 겪은 애로사항이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죠.
바로 이 대목으로 인하여 나는 그 분에게 좀 더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야! 이건 내 이야기쟎아!"
그렇다면 나도 나의 어리숙했던 군대시절을 고백하여 나와같은 성격을 가진 분들과 나누고 싶어지네요. 
 

군대_4.jpg


 왼쪽의 모습이 그 해 6월에 직장의 상사를 모시고 찍은 입대기념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의 (왼편병사)의 모습이 불과 5개월 후의 제 모습입니다.
 이 때가 자대에 배치되어 진지작업을 하던 때로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이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그 시절을 돌아보는 즐거움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 해 6월 이맘때>
나와 동료들은 입영대상자 막사생활을 마치고 지급받은 군복을 걸치고 조교의 인솔하에 보무도 당당히(?)연무문을 통과하여 25연대 막사에 당도했습니다. 
진짜 군대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중대막사에 들어가자마자 조교의 군기잡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군화를 벗고 침상위에 올라가 정렬한다. 동작시간 5초!!"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모두가 침상에 올라가 정렬하였고 나만이... 오직 나만이 아직도 군화끈을 풀지도 못하고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사회에서의 버릇대로 신발끈을 너무 옹쳐매어 풀 수가 없더군요.
"이자식! 고문관아냐?" 순식간에 조교의 군홧발이 날아와 머리를 쳤지만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군화끈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이 악연의 조교, 김성신(가명)병장에 얽힌 추억 몇 가지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훈련이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에 내가 평소에 못마땅해하던 동료와 말싸움이 붙었습니다.
그 동료에 대하여 뭐가 그리도 못마땅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여하튼 그 녀석에게 이런 욕을 했습니다.
"야! 이 싸가지 없는놈아!!" 그러자 녀석의 입에서 이런 대꾸가 나왔습니다.

"그래... 나는 싸가지가 없고 너는 멍청하다..."
완패!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 자리를 피했죠. 내가 여러차례 멍청한 행동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거든요.
 
당시 병사들간에 유행하던 말중에,
"내가 왜? 이럴까? 사회에서는 안그랬는데?" 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내겐 유난히도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왜 그리도 지급받은 물건을 잘 잃어버렸는지...
그 중에서도 군번줄을 여러차례 잊어버렸는데 이 잃어버린 군번줄은 얼마가지도 못하여 조교 김병장의 손에 쥐어져 있곤 하였습니다.
"야! 또 너냐? 이 자식이 정신은 집에다 맡겨놓고 왔나?"
몇 차례 군번줄을 잊어버리자 이제는 분실이 문제가 아니라 저녁 점검시간에 내 군번줄을 들고 서 있을 조교를 바라볼 일이 더 끔찍하더군요.
 
<고문관의 탄생>
그러다가 군번줄은 문제도 아닌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탄띄에 달고다니던 수통을 수통피, 수통컵과 한 세트로 잃어버린 것이죠. 
그 날 밤에 황산벌 벌판에서 야간침투라는 조금은 엉성한 훈련을 받았는데 야밤에 몰래 적에게 다가가는 훈련이었습니다. 
"절대 떠들지 말고 살금살금 기어가다가 조명탄이 뜨면 총을 배 아래에 깔고 엎드려라, 알간네?"
그렇게 기어가다 엎드리다를 반복하다가 적진앞에 이르러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데 뭔가 옆구리가 허전한 겁니다.
수통이 없어진거죠.
그날 밤.  황산벌의 밤하늘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을 때 주의를 했어야 하는데...

자연은 내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여주면서 관람료로 내 옆구리에 찬 수통을 슬쩍하신 것이지요.....싱거운 소리는 그만하고...
 
<시련의 이틀간>
이건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방독면 하나의 값이 찝차 한 대 값이라는 군대에서 수통 한 세트를 분실한 댓가는 얼마일까? 
주변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망을 보아줄테니 어디서 하나를 훔치라고 하더군요.
"대책이 없쟎아? 어쩔건데? 조교한테 엄청 깨지고 영창갈래?" 
"군대는 요령야! 남들도 다 훔치면서 분실물이 돌고 도는데 너도 그 유통과정에 참여해야지? (사탄아 물러가라)"
 동료들의 부추킴을 받아 정말로 훔치기 직전까지 갔지만 내 고지식한 인간적 특성상 이건 도저히 아니더군요.

결국 고통스러운 이틀을 보낸 후 저녁 점호시간에 조교앞에 서서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던 조교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의 머리위로 방출되던 열기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훈련도 없고 또 분실과정에서의 마음고생으로 지쳐 있어서 그저 멀거니 침상에 앉아있는데 조교가 들어오더니 내게 수통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옛다! 제발 잃어먹지 말아라!"
이건 감격이었습니다. 수통을 살펴보니 마치 거지가 차고다니다가 버린 물건같던데(하하).... 그게 문제가 아니죠. 숫자가 채워졌쟎습니까.
 
<조교에 대한 미스테리>
수통을 손에들고 들고 지난 이틀간의 마음고생을 반추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저 조교  김성신 병장은 나에게 기합을 주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첫날의 군홧발은 별개로 하고 말이지요.
나의 어리비리한 행태로 형성되었을 "고문관" 이라는 선입관만으로도 나를 가볍게 보아 구타나 기합은 능히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좀... 성격이 불같은 면모가 있었고 훈련병에 대한 손찌검도 종종 보여주었거든요.
 
그 대표적사례가 내 동료 박종구(가명) 훈병에 대한 구타사건이었습니다.
전 중대원이 PRI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구보로 귀대를 했는데 지친 훈련병들이 막사앞에서 바로 정렬을 하지 못했습니다.
성질이 불같은 조교가 박종구를 선택하여 끌어내어 주먹으로 배를 쳤는데 호흡이 정지되었는지 안색이 파랗게 질리더니 쓰러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박종구는 "저 시키(조교) 두고보자. 훈련소 나갈 때 소원수리로 반드시 찌를거야" 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조교의 이런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그가 내게 손찌검조차 하지않은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던 것이지요.
여하튼 나는 수통사건으로 인하여 이 조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의 모든 언행을 호의적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조교나 우리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려있던 어느 날, 
훈련병들의 태권도 동작에 못마땅해하던 조교가 단상에서 시범을 보인다며 높은 발차기를 해 보였습니다. 멋있었죠!
그런데 의욕과잉의 발차기가 머리위에서 정지하지 못하고 등뒤로까지 너머가는 바람에 나자빠지며 단상위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의 안색은 예전에 그가 박종구에게 만들어 주었던 안색을 재현하였고 결국 동료 조교들에게 업혀 의무대로 실려갔습니다.
 
나는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기도했는데 내 옆의 박종구에게는 이것이 신(神)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의 입에서 "소원수리로... 찌를거야" 라는 말이 사라졌지요.
 
여하튼 그는 무사하였고 우리도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떠나 103보충대로 떠났습니다.
아쉽게도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시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내가 군대가 짬을 허용치 않더라는 말을 한다면 이는 핑계일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로 그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내 마음이 너무 여린 것을 드러내는 것 같아 멋적었다고나 해 두지요.  
 
103보충대를 거쳐 7사단 교육대로 가고 거기에서 5연대 3대대 12중대로 팔려간 이야기를 지난 번의 "자대 가는 길" 에서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그 해 겨울에 첫 휴가를 나와 작은 아버님댁을 찾아뵈었습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는 아버님과 같은 분이시죠.
작은 아버님은 57킬로그램으로 입대한 조카가 7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휴가를 나온 것이 놀라셔서 내 몸의 여기저기를 눌러 보시더군요.
내 살이 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신 작은 아버님은 흐믓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래... 네가 논산에 있을 때 내가 거기 중대장에게 편지를 보냈지...내 조카좀 잘 보아 달라고."
 
<나에게도 빽이 있었네>
아하...그 중대장님, 말씀마다 알갔네? 알가서? 를 반복하시던 장교분.
하하... 나에게도 빽이 있었네요.

지난 번 "자대가는 길" 에서 언급한 6명의 동기들은 그 해 겨울이 가기도 전에 모두 중대를 떠나 "좋은 곳" 으로 빠져나갔고 그 때마다 그들을 좋은 곳으로 빼어준 배경(빽)들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친척이 장군이래, 검사래... 국회의원이라는구먼....
그런데 여기, 전쟁전에 남으로 내려오셔 배고픔을 면하고자 군대에 입대하신 후 전쟁을 겪으시며  삶의 소중한 나날을 군인으로 사시다가 대위로 제대하신 작은 아버님이 조카를 위하여 힘을 써 주신 것입니다. 어느 장군의 빽보다도 조카를 위한 이 배려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마리가 풀리는 것일까요? 논산의 그 불같은 성격의 조교가 나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은 이유가?
그렇다고만은 생각치 않습니다. 그가 중대장의 지시를 받아 나를 꺼려했다는 생각은 뭔가 흡족치 않습니다.
나의 추정은 이렇습니다.
 훈련병들이 집으로 보내는 편지들은 거의 공개적으로 조교들에게 검열(?)되었습니다.
내가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당시의 형편상.... 중풍으로 누워계신 어머님과 어린 두 동생에 대한 염려가 스며들어 있었죠.
아마도 이 편지의 사연이 조교, 김성신 병장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날 자유시간에 그가 내무반의 훈병들과 군대생활의 처신을 이야기하면서 "가령 김바사 같은 경우에 말야..." 라는 말을 했거든요. 내가 그에게 내 형편을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고마운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리>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끄러움이 찾아오더군요.
그 편지에 드러낸 내 인간적 속성과 그 앞에서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내 어리비리함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찌되었건 그 분이 나에게 보여준 호의를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먼하늘 어딘가에서 세월의 풍상을 겪었을 그 분이나 나나 모두가 한 시절을 회고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좋은 세월을 사셨길 바라고 또 당신을 호의적으로 기억하는 짧은 인연이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 나의 작은 아버님! 아직도 건강하십니다.  
요즘 사시는 안산이 분위가가 엄청 침울하다던데.... 안부전화라도 드려야 겠군요.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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