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개조 공기총이 당신을 겨눈다

광야의 늑대 | 2013-08-31 09:38:30

조회 5274 | 추천 0 | 다운로드 0

크게 | 작게

살상용 총기, 당신을 겨눈다

개조·밀수된 고성능 불법 총기 10만정 유통… 각종 범죄·조직 폭력에 악용돼

[344호] 1996년 05월 30일 (목)

丁喜相 기자

건국 이래 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 국민이 민간 사회에서 총격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두려움에 떤 적은 거의 없다. 그만큼 총기 범죄에 한해서는 당국의 치안력을 믿어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오히려 합법적으로 총기를 휴대하는 군과 경찰에 있었다. 잊을 만할 때마다 발생했던 군 탈영병과 자질에 문제가 있는 일부 경찰관의 총기 난동이 국민의 가슴에 멍울을 지게 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인명 살상용 고성능 불법 총기류가 시중에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실태를 살펴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민간 사회에서 총격전까지도 가능한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인들이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수렵과 호신용 총기들로서 법은 이들 민수용 총기류의 성능을 통상 인명 살상이 가능하지 않을 만큼의 범주 내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또 총기 소지 자격도 정신 이상이나 범죄 전과 유무를 따져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현재 경찰청에 등록된 이런 종류의 민간인 총기류는 총 57만7천여 정에 달한다(공기총 53만여 정, 엽총 4만여 정).

문제는 인명 살상용 고성능 총기류의 출현과 확산에 있다. 현재 시중에 널리 퍼진 불법 고성능 총기류는 약 10만여 정에 달한다(검찰 추계). 고성능 불법 총기류가 급속히 번진 것은 최근 5년 사이의 일이다. 물론 경찰은 해마다 이런 부류의 불법 총기류에 대한 자진 신고 기간을 정해 출처·신분 등을 묻지 않고 회수하고 있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처방책일 수는 없다. 자진 신고를 할 사람이 불법을 감수하고 비싼 고성능 총기류를 구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2월에 실시된 불법 무기류 자진 신고 기간에 회수된 총기류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이 기간에 회수된 총기는 최근 5년 만에 가장 많은 2만9천4백25정이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찰청은 최근 개방 추세 속에 외국산 총기가 많이 밀수입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인명 살상할 수 있는 ‘투투총’이 주류

당국의 단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는 불법 총기류는 대부분 인명 살상용으로, 크게 소총과 권총으로 나뉜다. 중국·러시아·미국·영국 등에서 생산된 이들 고성능 총기류는 주로 밀수와 개조를 통해 국내에 암시장을 형성했다.

이들 중 우선 시중에 급속히 번지고 있는 소총류는 이른바 ‘투투총’이라 불리는 총기이다. 투투총이라는 명칭은 사용하는 총탄의 직경이 22㎜라는 데서 나왔다. 독일제 라이플 소총, 미국제 브라우닝·모스보그·레밍턴·윈체스터 소총 등이 현재 시중에 널리 퍼진 투투총이다. 여기에 국산 공기총을 개조해 22㎜ 투투 실탄을 장전할 수 있게끔 한 것도 투투총 범주에 든다.

이 투투총의 문제점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고성능 총기라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생산 유통되는 사냥용 공기총과 엽총의 경우 납탄이나 산탄을 사용해 유효 사거리가 30여m인 데 비해 투투총은 화약탄을 사용함으로써 유효 사거리가 3백m에 달한다. 그 위력은 카빈 소총과 맞먹는다. 실제로 외국에서 이 투투총은 정확성이 뛰어나고 반동이 없으며 총소리가 손으로 책상을 ‘탁’ 치는 정도의 저소음이어서 저격 및 원거리 사격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위력 때문에 국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은 화약탄 사용 총기를 인명 살상용으로 간주해 소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 사에에 외국산 투투총이 널리 확산된 것은 수요층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투투총의 주된 수요층은 국내 밀렵꾼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에서 총포상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외국산 투투총이 널리 퍼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냥터에서 경험이 늘수록 고성능 총을 원하기 마련이다. 대개 처음에는 공기총으로 시작했다가 성능이 떨어져 사냥에 실패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 나은 엽총을 찾는다. 그러나 엽총은 수렵 기간에만 사용할 수 있고, 그것도 경찰지서나 파출소에 영치하고 낮시간대에만 소지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불법이지만 소리가 작고 살상력이 뛰어난 투투총을 원하게 된다.”

취재진이 사냥인들을 수소문한 결과 대개 투투총을 가진 사람은 공기총·엽총까지 함께 소지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들의 투투총이 모두 외국산인 것은 아니다. 국내 구식 공기총을 개조해 투투 실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총 역시 살상력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명백히 소지 및 사용이 금지된 투투총 범주에 든다. 검찰 추계에 따르면, 시중에 암거래되는 10만여 불법 총기류 대부분은 공기총을 개조해 투투 실탄을 사용하는 투투총이고, 그 중 약 천여 정이 순수 외국산 투투총이라고 한다.

문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이런 투투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현실에 있다. 순수 외국산 투투총은 주로 미군부대를 통하거나 밀수에 의해 유통된다. 그러나 공기총을 개조한 투투총은 전국에 산재한 1천2백여 총포상 중에서 보급에 적극 뛰어든 상인들을 통해 구입하거나 개조를 의뢰할 수 있다.

현재 이런 고성능 불법 투투총의 시중 가격은 3백만~3백50만원대로,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이라는 것이 총포업계의 말이다. 더구나 이처럼 심각한 불법 총기류를 단속해야 할 경찰마저 일부에서는 불법 총기 유통을 ‘부업’으로 삼는 경우가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월1일 적발된 서울 방배경찰서 서병희 경위의 투투총 밀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경위는 80년대 중반 일반 업자와 함께 총포사를 사실상 동업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투투총 4정(미제 브라우닝 2정, 모스보그 1정, 공기총 개조 투투총 1정)과 투투 실탄 천여 발을 시중에 밀매했다가 적발되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백승학 검사는, 경찰 중에는 총기를 다루다 보니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고, 사실상 총포상 허가와 운영 과정에서 경찰이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어 밀거래에 유착되는 일이 일부 나타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총포상과 경찰의 관계는, 불법 무기 자진 신고 기간에 총포상이 불법 무기를 일괄 수거해 경찰에 넘겨주고, 경찰로서는 이것이 실적에 올라가므로 사실상 ‘공생’이 가능한 구조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중에는 이제 투투총의 위력을 넘어서는 M16 소총 총열 및 실탄까지 대량으로 나돌고 있다. 일부 총포상과 총기 밀조 전문가들이 결탁한 이 놀라운 유통망은 전국에 걸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2월 충북 음성에서 M16 총열과 불법 소음기를 일반 총기에 부착해 M16 실탄으로 사냥하던 밀렵꾼들이 적발되었는가 하면, 지난 3월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역시 M16 소총 총열을 동물용 마취총에 부착해 M16 실탄 5백여 발과 함께 팔아온 총포상들이 검거되었다. 그러나 이 총기와 실탄이 유출된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광주지검 강력부 이병석 검사는 “처음에는 외국에서 밀수된 게 아닌가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정밀 조사 결과 국내 방산업체에서 생산된 것들로 확인돼 군부대에 통보했고, 현재 군이 유출 경로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총기 밀매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는 고성능 실탄이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실탄류는 외국산 투투총이나 국내 개조 투투총에 사용되는 화약탄이다. 시중에 널리 유통되는 이 실탄들의 종류를 확인해 유출 경로를 역추적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화약탄(투투 실탄)은 주로 원산지가 미국·영국 등 투투총기 제조회사로서, 국내에 합법적으로 수입된 뒤 불법 유통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거나 밀수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시중에 나도는 투투 실탄 수십만 발은 실탄 뒷면에 각각 알파벳 E자, F자, REM자가 새겨진 것들이 주종이고 일부는 △표가 새겨진 것도 있다. E자는 영국 커넥스사가 생산한 실탄이며, F자와 REM자는 각각 미국 페더럴사와 레밍턴사가 생산한 실탄이다. 반면 △표는 국내 풍산금속이 생산해 경찰용으로 공급하는 실탄이다.
사격용·경찰용 실탄도 불법 유통돼

그런데 E자가 표시된 실탄은 사격 선수용으로 국내에 유일하게 합법 수입되는 제품이다. 결국 이 실탄은 사격계에서 시중에 불법으로 흘러나온 셈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총포상은 “사격 선수와 코치 들이 이 실탄을 빼내 개당 5백원씩 받고 밀매업자들에게 판다. 밀매업자는 이 실탄을 다시 실수요자에게 개당 천원씩에 판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처럼 선수용 실탄이 대량 불법 유출되고 있는데도 대한사격연맹 산하 각종 사격선수단에는 이를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사격계에서는 투투 실탄을 선수가 주문하는 양에 따라 무제한으로 수입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격 연습 후 탄피와 사용 실탄을 대조하는 사후 관리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군부대와 달리 사격 선수용 실탄에는 그런 제도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표시 실탄은 경찰 전용이므로 경찰에서 유출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F자나 REM이 새겨진 총탄은 국내에 합법 수입처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밀수 외에는 출처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앞서의 총포상은 “F자나 REM이 새겨진 실탄은 주된 유통 경로를 미군부대로 보아야 한다. 미국 내에서 개당 30원 하는 이 실탄은 국내에 들여올 경우 가격이 천원대로 뛰므로 밀매업자의 부탁을 받은 일부 미군(속)이 이를 들여다 유통시키는 것이다”라고 전한다.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아직까지 수사당국은 밀매 조직의 뿌리를 한 차례도 건드린 일이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민수용 고성능 총기 전문 수사 체계가 없었던 데다 마약·조직 폭력 등과 달리 총기 문제는 지역을 뛰어넘는 공조 수사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최종 소지자만 적발해 구속해온 것이 사실이었다”라며 총기 수사 체계의 허점을 인정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구입할 수 있는 고성능 투투 소총 시장에 최근에는 각종 권총류까지 가세했다. 특히 권총류는 동북아 주변국의 정세 불안을 틈탄 각종 국제 범죄 조직이 한국을 총기 밀매 시장으로 개척하기 위해 상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입 사실이 차츰 확인되고 있다. 이들 범죄 조직은 총기를 완전 분해한 뒤 분산 은닉하거나 장난감총으로 위장, 또는 유사 화물과 혼합하여 배에 싣는 등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딸린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91년 이후 올 5월 현재까지 국제 범죄 조직과 연계된 외국 선원이나 내국인이 공항과 항만을 이용해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총기는 70정에 달한다. 이 중 권총류 39정(실탄 6천5백70발)이 러시아·중국·필리핀·일본 등 외국인에 의한 밀반입이었다. 개방 추세를 타고 공항과 항만 검색이 대폭 이완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실제 국내에 들여온 권총류는 훨씬 많으리라는 것이 수사 당국의 추정이다.
물론 밀렵에 실제 사용되는 소총류와 달리 권총은 사용처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국내에 실질적인 수요층이 널리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조직 폭력 세력의 두목급이나 2선으로 은퇴한 과거의 주먹들은 유사시에 대비해 호신용으로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0년대 국내 3대 폭력 조직의 고문으로 활동하다 현재 2선으로 은퇴해 서울 용산 일대에서 여러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인사는 총기 소지 문제에 명확히 답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로 여운을 남겼다. “과거와 같은 무식한 칼잡이 시대는 갔다.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단순히 그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가의 차원이 아니라 백그라운드에서 호신을 완벽하게 갖춰준다. 전성기가 지난 사람들에게는 경찰이나 검사가 무서운 게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고 위 아래 없이 덤벼들려 하는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다.”

국내 조직 폭력 세력이 언제 총기를 사용할 것인지 불안해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오히려 더 큰 불안 요인은 고성능 불법 총기류 시장이 널리 형성되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우리 현실이다. 총기 범죄는 범죄 조직끼리의 싸움보다는 국민을 상대로 한 강도·살인 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여러 총기 사용 범죄가 그런 우려를 충분히 뒷받침해 준다(상자 기사 참조).

결국 현재 형성되어 있는 불법 고성능 총기류 유통망과 암시장이 계속 방치된다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야 건설업계를 들쑤신 사후약방문 현상이 이 경우에도 똑같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 그 뇌관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지 않고 있다.

丁喜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12/h200912080956202198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