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의 이야기

스티븐 | 2013-06-25 09: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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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25전의 나   

 

이 당시 한국군은 5개 사단 15개 연대가 있었다. 그 중 10개 연대가 38선 경비에 배치되었고 나머지는 후방에 있었다. 

미 군사고문단은 38선이 미소간에 채결된 국제분할선이라는 이유로 북한 공산군이 절대로 남침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주장이었다. 그리고 참모총장 채병덕 중장은 ‘한국군은 철통같이 38선 경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주장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군의 장비와 편성은 북한공산군에 비해 엄청난 차이(공산군은 전투기, 전차, 중포 등을 갖춘 10개 사단을 갖고 있었다)가 있었으므로 중견간부들은 항상 불안해서 가슴만 조이고 있었다. 

여기에 정국도 소란하였고 국회에서는 정국의 긴박한 실정은 제쳐놓고 정당 싸움만 하고 있었으므로 우리 장교들은 모두가 실의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나는 대대장 부임 후에 부대 근처에 집을 구하지 못해 을지로 2가에 위치한 동서 집에서 삼각지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 했다. 그 당시 대대장이 집이 없다고 해서 누구하나 걱정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동서에게는 너무나 미안해서 매일 집을 얻으러 다녔지만 집이 있다고 해도 얻을 만한 돈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6월 초에 삼각지소방서 부근에 헌병대위가 살고 있는 집으로 10만원의 전세 비를 내고 이사했다. 
우리들은 모처럼 부부만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은 것이다. 부대와의 거리도 가까워져서 한결 편했다. 집에서도 우리 부부는 다정하게 지냈고 2번째 임신한 아내는 3개월째가 되었다. 첫 아이 죽음의 슬픔도 잊어버리고 다시 태어날 자식을 기대하며 우리들의 희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그러나 가정생활과는 다르게 부대 근무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비상소집, 연대장의 비인간적 대우(대대장을 병사 취급), 같은 동기생이면서도 잘난 척하는 부연대장은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보병학교 교관으로 남으라.’고 했을 때 생활 보장이 않된다는 이유로 원대 복귀한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생략)   



 2. 6.25사변이 발발하던 날   

아침 5시경 곤히 잠들고 있는 나에게 연락병 이하사가 급히 달려와 비상소집 이라는 전달을 했다. 
“이 하사! 나는 대대장을 그만 두었으니 윤 소령에게 연락하고 다시는 오지 말라.”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 당시는 비상소집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짜증이 날 정도이었기에 이 날도 연습비상으로만 생각하고 애매한 이 하사만 꾸중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하사는 몇 마디 설명한 다음 부대로 돌아갔다가 10여 분 후에 다시 와서 이번에는 제법 상세하게 보고했다. “대대장님 오늘 새벽에 전방 38선이 돌파 되었습니다. 현재 개성과 동두천 북방에서 교전 중이라 합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뛰고 정신이 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전투복을 갈아 아내에게 “흔히 있는 38선상의 충돌이니 안심하고 집에서 기다리시오.” 라고 말하고 라디오를 틀어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낯익은 아나운서가 38선 상의 공산군의 침공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사태임을 직감하고 더욱 긴장했다.   

나는 7시 경 이 하사를 대동하고 연대로 급히 출근했다. 삼각지 부근에는 사람의 왕래가 평소보다 뜸했고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연대에 도착한 나는 대대본부에 잠간 들렀다가 연대장 실에 들어갔다. 연대장 실에는 나만 빼놓고 연대지도부와 참모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연대장 임충식 중령, 부연대장 한신 중령, 3대대장 안문일 소령, 정보참모 백창욱 대위, 작전참모 고광도 소령, 연대부관 이승형 대위와 나는 넓은 탁자에 삥둘러 앉았다. 벽에는 25만 분의 1 한국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정보참모는 최근의 전황을 청색, 적색으로 기입하고 있었다. 

이미 개성은 적의 수중에 들어갔고, 의정부 방면은 동두천 지방과 연천 북방에서 교전 중이었으며 춘천, 강릉방향은 전황이 불명확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심상치 않은 사태에 대하여 마음을 조이면서 연대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우리들은 약 5분간의 상황설명을 청취한 뒤 연대장의 지시를 받았다. “우리 연대는 군의 예비대로서 하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하라. 불행이도 1대대가 전원 휴가 중이어서 전투력은 2, 3대대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주력부대는 2대대가 될 것이니 2대대는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하고 연대본부도 2대대에 지원의 중점을 두시오. 

이번 38선상의 침공이 38선상에서 종결되기를 바라지만 장기화될 때는 공산군의 남한적화시도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1대대 장병들도 속히 귀대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시오.” 연대장의 지시였다. 

훈시내용처럼 1대대는 전 장병이 3개월간 휴가 중이었다. 이것은 우리 연대 뿐 아니라 전군의 연대가 1개 대대씩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육군본부의 처사는 다분히 공산당의 사전계획에 의한 군내 푸락치의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대장의 지시가 끝난 뒤에 우리들은 잠시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연대장은 “명령만 내리면 내일은 평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합시다.”라고 제법 여유 있는 농담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세이지 사실은 내심 걱정이 많았다. 한신 중령과 나는 작년 6월부터 금년 1월까지 옹진반도에서 38선 경비 작전임무에 직접 근무한 대대장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적의 전투력에 대하여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간부였다. 적은 이미 전투기, 전차, 150밀리의 중포를 장비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 국군은 105밀리 M1라고 하는 야포가 1개 사단에 1개 포대(6문)가 있는 정도였으니 비교가 않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이번 사건이 전면전이고 남침적화 야욕의 전쟁행위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막연하게 앞날에 대해 태산같은 걱정을 하면서도 부디 38선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만을 소원했다.   


 *금년 10월1일 발간될 예정인 장춘권 장군의 회고록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의 내용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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